아버지의 창

아버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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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기봉은 철학ㆍ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모악산 아래 들꽃교회에서 목사로 살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시집을 냈다. 그 시집을 축하하며 시인 박형진이 짧고 간결하게 이렇게 썼다.
저자

이기봉

목차

1부
물잠자리떠난교회ㆍ13
생일도관사(官舍)ㆍ14
봄ㆍ15
아내의밥상ㆍ16
28년째아내ㆍ18
아내가웃었다ㆍ19
당신의봄옷ㆍ20
아빠와아들ㆍ21
아버지1ㆍ22
아버지2ㆍ23
생일ㆍ24
바늘귀를꿰다ㆍ25
아버지의창ㆍ26
쪽팔린목사ㆍ27
이방인ㆍ28
다시부는바람ㆍ29
땅맴ㆍ31
체리를따며ㆍ32
내가무섭다ㆍ33
이런날ㆍ34
밥짓는냄새ㆍ35
수선화성경책ㆍ36
장마ㆍ37
인생숙제ㆍ38

2부
봄비ㆍ41
현상ㆍ42
꽃이지니ㆍ43
나무를심으며ㆍ44
그대여ㆍ45
보리의꿈ㆍ46
지난여름엔ㆍ47
가을인가?ㆍ48
증명ㆍ49
서두름ㆍ50
공부ㆍ51
배추가푸른이유ㆍ53
학교종이땡땡땡ㆍ54
풀과작물의차이에관하여ㆍ55
소낙비ㆍ56
하늘이도와야한다는말ㆍ57

3부
목포엄마ㆍ61
산책ㆍ62
용서ㆍ63
개가좋은이유ㆍ64
그냥그랬다ㆍ65
타인ㆍ66
모과로부터ㆍ67
선생님ㆍ68
물티슈ㆍ69
물감ㆍ70
도둑놈ㆍ71
첫사랑ㆍ72
횡단보도에서ㆍ73
입원실풍경ㆍ74
내입에다금바리ㆍ75
형진형ㆍ77
금화식당아저씨1ㆍ78
금화식당아저씨2ㆍ79
4월에따르는꽃술한잔ㆍ81
눈물ㆍ83

4부
간자(間者)ㆍ87
상식ㆍ88
냉수ㆍ89
정직ㆍ90
등기부등본ㆍ91
체중계ㆍ92
변비ㆍ93
책,책,책ㆍ94
채찍ㆍ95
계시ㆍ96
놈,놈,놈ㆍ97
문득,아들!ㆍ98

5부
합체(合體)ㆍ101
바람이전하는말ㆍ102
벙어리산ㆍ103
운장산의꽃ㆍ104
천룡사에서ㆍ105
사랑길ㆍ106
외뿔고래(鯨角)산에서ㆍ107
산이아니었다ㆍ108
우중산행(雨中山行)ㆍ109
분실ㆍ110
산같다ㆍ111
다시산ㆍ112
고백ㆍ113
물뜨러가는길ㆍ114
다섯시햇살ㆍ115
산수화ㆍ117
잠깐1ㆍ118
잠깐2ㆍ119

■아내한테바치는헌사/유채림(소설가)ㆍ121

출판사 서평

아내한테바치는헌사
유채림(소설가)

안녕리마을은음전한곳이었다.단층의기와집들사이로돌담길은정겨웠다.한여름엔능소화가흐드러지게피어나고,능소화지고나면코스모스가피어났다.마을앞들판은서서히익어갔다.그맘때돌담길은노란은행잎으로난분분했다.그돌담길끄트머리에그리운기역자집이있었다.녹슨철대문을밀고들어서면넓은마당이나왔다.마당한가운데엔수도꼭지가있어,빨래든설거지든웬만한부엌일은그곳에서할수있었다.남향의안채는50대아주머니와여고생딸이살았고,서향의바깥채는월세를놓았다.
대학시절,서향의바깥채에서우리는살았다.복학생인이기봉과대두,내가뒤엉켜지냈다.방은아주비좁았다.짐이라고는책상하나,철제책꽂이하나가전부였는데도셋이다리펴고누우면방안이꽉찼다.부엌은방보다더욱조악했다.수도가없는부엌이기에개수대가없는건당연했다.부엌세간이라고는석유곤로하나,구석에연탄수십장이쌓여있는게전부였다.그런데도누군가가라면이라도끓이노라면둘은못들어갈정도로좁았다.우리는그서향의바깥채에서월세이만원을내고살았다.학교까지는걸어서삼십분거리였다.
학교앞에방이없는건아니었다.우리가만족할만한방이없을뿐이었다.집집마다서너개씩방을만들어놓고학생들을받았기에학교앞은늘번잡하고시끄러웠다.우리는신산스러운벗들로부터벗어나개인적사색을즐기고싶었다.비록등하굣길이만만찮은거리였으나안녕리의음전함이우리를충분히매료시킨거였다.
우리는그안녕리에서두학기를버텨냈다.버텨내다니?언뜻안녕리생활을두고쉽게식상한것처럼보일수도있겠다.하지만그럴리야?우리는공간을택할수있었으되시대를택할권리는없었다.우리의시대는잔인하고야비하고비열했다.살인마전두환이영구집권을획책하던때였다.교정은늘최루가스로매캐했다.최루탄에맞아누군가는실명하고,누군가는끌려가고,누군가는수배중이었다.우리앞에저항의길말고는다른길이없는것처럼보였다.그런시절이었다.
그러니안녕리의삶인들그윽하고안온할리있었겠는가.하지만안녕리였기에가혹한시절을견뎌낼수있었음을고백하지않을수없다.안녕리의시간이우리에겐여백이었기에그랬다.혹독하고치열한시간속에서빠져나와숨돌릴여유를준곳이안녕리였다는얘기다.만약학교앞이었다면어땠을까?매캐한최루가스와붉은화염병말고다른무엇을떠올릴수있었겠는가.
수십년이지난오늘에와서도안녕리는돌아가고픈곳으로남아있다.시위가없는날,수업을마치고안녕리자취방으로향하던길은여태도또렷하다.멀리보통리저수지너머로해가넘어갈무렵,노을은그렇게붉을수없었다.다가갈수없는노을을따라걷는동안,아무것도아닌것에대한슬픔이밀려와가슴이먹먹해지고는했다.미래에대한막막함이거나,미래에대한두려움때문이거나,혹은현재의쓰라림때문이었겠다.

물보라
초여름,밤이되면그안녕리에서우리는번갈아가며부엌을드나들었다.부엌은수도가없고개수대도없었으나용케하수구구멍은있었다.낮에흘린땀을씻느라우리는양동이에물을받아그부엌으로들어가고는했다.몇바가지의물을끼얹은뒤에야상쾌한기분으로밤을보낼수있었다.대두는책상에앉아과제물정리를하고,이기봉은책상대용인두리반을펴놓고앉아히브리어공부를했다.배를깔고엎드린나는주로소설을읽었다.자세로보아쉽게곯아떨어지는건나였고,다음이이기봉,마지막이대두였을것이다.물론책보는분위기가다였다면우리중에학과수석을넘어전교수석인들안나왔을까.어차피나야성적과상관없는인생이었다.온갖고뇌를짊어진듯보이는게나였고,실은아무것도아닌서글픔으로사는게나였다.이기봉과대두?실인즉그들인들별수있었겠나.그들한테서도장학금받았다는얘기를들어본바없다.젠장,어쨌든나보다야월등했겠지.
여하튼쏟아지는별들을넋놓고바라보는서정적인밤또한우리의밤이었다.그런밤이면어울리는게뭐였을까.삼겹살은가난한자취생들형편에어울리지않았다.활명수만마셔도취하는내게소주역시가당찮았다.그런밤이기봉은종종기타를들었다.운동가요말고는흥얼거릴수있는게거의없던나와달리이기봉은탁월했다.그는아는노래의폭부터차원이달랐다.뿐만아니라대학합창단지휘를한데서도알수있듯대단한실력자였다.그러니안채에서조차시끄럽다는소리한번없을만큼그의노래는빼어났다.그는기타를잡으면서너곡정도는가볍게불렀다.
그의노래가여태도감미롭게귓가에떠돌고는한다.특히최진희의‘물보라’가그랬다.

그의노래
대학을졸업하고우리는흩어졌다.이기봉과대두는뜻한대로들어선길이었는지는몰라도목회자의길로들어섰다.대두는일산을거쳐서울에서자리를잡았고,이기봉은뜻밖에도남들이부러워할만한자리를대두에게넘기고작은민중교회를거쳐홀연히목포로내려갔다.어떻게든서울에붙어있겠다고발버둥치던시절에이기봉은굳이좁은길을택한것으로보였다.당연히보기에좋았다.

느닷없이이기봉한테서전화가온건불과얼마전이다.목회에만심혈을기울이고있는줄알았더니틈틈이써온시를출판할계획이니발문을부탁한다고말했다.나는흔쾌히수락했다.그의시를본다는것,그것자체로흥미로웠다.나아가그와나의아주다른삶이드디어서로의깊이를더해주는계기가될거라고믿어의심치않았다.
그리하여보내준시편들을읽었다.기뻤을까?흥분을감추지못했을까?아,나는우울했다.그의시편들행간에담긴것들이무척답답하면서도아픔으로다가왔다.그러니가벼이읽을수없었다.

사거리횡단보도끝
붕어빵과오뎅을파는포장마차가들어섰다
지난여름엔
뭐하며사셨을까?[지난여름엔]전문

배추가푸른건
심은사람과
바라보는사람들이
푸르기때문이다[배추가푸른이유]전문

그는왜포장마차속으로들어가지않았을까.붕어빵을사면서지난여름까진뭐하셨느냐고왜묻지않았을까.연민을능가하는건궁금증이다.궁금증을능가하는건행동이다.하면그는당연히포장마차속으로들어가는행동을보여야하는거였다.못들어갈이유가있었다면그냥지나쳐간들무엇이문제란말인가.행동하지않는연민은자칫마음의짐으로남을뿐이다.오지랖넓다는힐난이괜히나왔을까.
이는본질과현상이라는철학의근본문제이기도하다.보이는현상만으로과거와현재를유추해낼때어떤위험에노출될수있다는건아무리강조해도지나치지않다.그위험한시적상상력의결과는[배추가푸른이유]에서도그대로드러난다.땅을갈고씨를뿌린노동에대한이기봉의시선은각별하다.오죽하면심고가꾼농민의수고에대한찬사로푸른사람이라는상찬을올렸을까.하지만씨뿌리고가꾼농민이라고해서모두도매금으로푸른사람이라는찬사를받을수는없는일이다.하물며바라보는사람들까지푸르다면십분양보해도이는지나치다.나만해도그렇다.푸른배추를봤기로서니내가왜푸르단말인가.나는푸르지않다.나는몸도마음도지독히늙은데다인색하고성정마저더럽다.푸른배추를바라보는현상만으로다들푸를거라는믿음은일반화의오류일뿐이다.
그런데도그가[지난여름엔]이나[배추가푸른이유]를쓴데는그만한이유가있겠다.그는30여년동안성직자로살아왔다.타인의시선속에서살아오는동안그는늘모범적인길을지향할수밖에없었을지도모른다.말은부드러워지고모든행동은은근히조심스러워졌을게아닌가.날것을경계하고자기검열에꽤많은공을들이지않았을까.그의다른시편들속에서그런면을엿보는건별로어렵지않다.실은그점이나를우울하고서글픈감정에휩싸이게한다.하긴그랬기에나는나의벗들과는다른길을택했던거다.그의또다른시를보자.

부엌창문을열더니아내가웃었다
포장지도없이달랑꽃대를드러낸프리지어열송이가
아내손에서아내처럼웃고있었다

투박한손을가진초로의남자가
도둑걸음으로창문에놓고간프리지어앞에서
아내는정말행복하게웃었다

선물은주는사람의마음이라는것
환하게웃는건선물한사람의마음을읽었다는것

아내는환하게웃는데난자꾸만눈물이났다[아내가웃었다]전문

그는창문에프리지아열송이를올려놓았다.아내에게주는선물이다.나라면분명,이거받아,선물이야,하고잔뜩폼을잡았을텐데,표현키어려운미안함때문이었을까?그는그러지않았다.꽃을발견한아내는환하게웃었다.행복해서웃었다.그런데이상도하지,아내의환한웃음에그는자꾸만눈물이난다.
그는가난한목회자다.대학을다니면서는의정부기지촌부근에서거기사람들과얼마간지내더니,졸업을앞두고는서울의큰교회에서일을시작했다.하지만1년만에그곳생활을접고지역사회학교,세칭야학이라는곳에서노동청년들과뒹굴며함께놀았다.그리고그는서울생활을뒤로하고훌쩍목포로떠났다.청춘에냉온탕을거치더니그는서울을벗어나버렸다.시쳇말로잘나가는것에도무지관심이없었다.그러니그는가난한목회자다.그게그의정체성이다.그처지에아내한테번듯한무언가를해줬을리있겠나?그런그의아내는교사다.처녀때교사였는데지금도교사다.

평생을어부로살았다는제주어부고씨
서슬퍼렇게달려드는바다에서다금바리를주로잡는고씨는
30년만에처음으로다금바리를넣고씹었다고갈매기처럼웃어댔다

정말처음드셔본다금바리회라고요?
직접잡으시는데도그럴수가있나요?

돈이니까그랬지
돈도큰돈이었으니까그랬지

통발얼레처럼돌아가는카메라앞에서
고씨는그날잡은다금바리여섯중에서가장작은아가미에칼을
들이밀었다
회한점집어들고아내의입에찔러넣으니
아내는금방부용꽃이되고
배는파도를북처럼두드리며달렸다
잡은이도먹질않았으니잡은자의아내야말해뭐할까
제주앞바다에주름가득한꽃두송이가
포말속에서환하게피어나고있었다

다금바리가돈이아니라꽃이되는제주바다에서
어부고씨는오늘도그물을던져돈을건진다[내입에다금바리]전문

다금바리,농어과생선으로최고의횟감.값이비싸니그다금바리를전문으로잡는고씨조차쉽게먹어치울수없다.카메라앞이기때문이었을까.웬일로고씨는방금잡은다금바리한마리를회쳐서아내의입에넣어준다.다금바리를받아먹는아내의모습에감격한이는고씨가아니다.이기봉이다.그는아마도자신의아내를떠올리며이시를써내려간듯하다.금슬좋은부부를두고누군들감격하지않을까싶지만,이기봉은그농도가짙다.오죽하면아들조차아내의뒷전으로밀려난다.

시집한권을들고변기에앉았다
시가끝나며배변도끝났는데
화장지가보이지않았다

아들,아들아!
두번만에답이왔다

화장지!
이보다명료한주문이또있을까
문득,아들이아내같았다[문득,아들]전문
이기봉은가족의고마움이나소중함이여일하다.그는그반경안에서시적상상력을키워나간다.덕분에그의시들은메시지가단순한편이다.전복적이지않으니편안하고,한정된세계안에서사유하니소박하다.파도에휩쓸릴위험도없다.아내의희생에대한경외의감정을드러낸[고백]에이르면,역시그래,하면서절로고개가끄덕여진다.

산이된나를벗고간다
산아래에서나를기다리는
산보다더산같은
여인에게로나는간다[고백]전문

다산은『유배지에서보낸편지』에서둘째아들한테당대의시를두고다음과같이평한다.
“요즈음시의경향을보면예스러우면서힘있고,기이하면서우뚝하고,한가하면서뜻이심원하고,맑으면서환하고,거리낌없이자유로운그런기상에는전혀마음을기울이지않는다.”
이기봉의시들속에서다산의시론을잣대로들이민다면걸맞은걸찾기란쉽지않다.그의시대부분은가족과자연이라는반경을통하여서사람과세상을조심스레들여다보기를반복하고있다.그래서첫시집『아버지의창』은아내라는프리즘을통해상실되어가는가족이세상의시작임을곡선으로연결되어있다는것을말하는것으로보인다.하지만삼십수년간가난한목회자로서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