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21.83
Description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 고대 DNA를 말하다!
왜 인간은 살아남은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을까? 고생인류와 현생인류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게놈은 무엇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전 인자는 어떤 것일까?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는 게놈 연구로 인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반테 페보의 저서로, 고대 DNA를 연구해 인간의 본질과 인류의 기원을 파헤친다. 1980년대 초 이집트 미라의 DNA 해독부터 2010년 네안데르탈인 핵 게놈과 데비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까지 그의 고대 DNA 연구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네안데르탈의 핵 게놈 해독은 왓슨의 DNA 이중 나선 구조 규명에 비견되는 과학계의 이정표다. 이 책은 이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 낸다. 실험실의 내밀한 풍경, 시료를 찾아 나서는 모습, 과학 하는 사람들의 딜레마, 연구 기금 확보, 협업과 경쟁, 공동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연구팀의 모습, 학술지 논문 출판 과정 등 과학계 외부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구체적인 상황들이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 또 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개인적인 일화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 한 권의 소설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의 다른 이면에는 저자의 ‘열정’ 그리고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자신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유명 과학자 수네 베리스트룀의 혼외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으며, 과학자로서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한 프로젝트의 도전 앞에 선 그의 진솔한 마음의 소리도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과학적 지식에 앞서 ‘스반테 페보’라는 한 인간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

스반테 페보

저자 스반테 페보는 195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이집트에 다녀온 후 고대사에 매료되어 웁살라 대학교에서 이집트학을 공부했다. 이후 분자생물학으로 방향을 바꿔 바이러스 관련 연구를 시작했는데, 대학원생이던 1981년부터 지도 교수 몰래 고대 이집트 미라 연구에 나서 미라의 DNA를 추출하고 염기 서열을 분석하여 1985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앨런 윌슨의 배려 아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으면서 멸종한 얼룩말의 일종인 콰가얼룩말과 캥거루쥐 등의 DNA를 당시 신생 기술이던 중합 효소 연쇄 반응(PCR)을 통해 연구했다. 1990년에는 독일 뮌헨 대학 정교수로 임용되어 매머드, 동굴곰, 대형 땅늘보 등 멸종된 동물과 5000년 된 얼음 인간 외치의 DNA를 해독하면서 고대 게놈 연구의 기반을 닦았다.
이어 본격적으로 고생인류의 DNA 연구에 뛰어들어 독일 네안더 계곡에서 발견된 뼈를 통해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서열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고,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이후로는 네안데르탈인의 핵 게놈 해독에 몰두했다.
2006년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4년 만인 2010년 드디어 네안데르탈인의 핵 게놈 해독에 성공하여 이를 『사이언스』에 발표했고, 같은 해 시베리아 남부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뼈의 게놈을 해독하여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고생인류임을 확인하고 이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고대 DNA 연구로 여러 과학상을 받았는데 특히 2011년에는 매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최고의 논문 저자들에게 주는 뉴컴 클리블랜드 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타임」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선정되었다. 현재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유전학 분과장으로 있다.

목차

1부 송아지 간으로 몰래 시작한 연구
― 이집트 미라 DNA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알아내기까지

1 기계장치에서 나온 네안데르탈인
2 미라와 분자
3 과거를 증폭하다
4 실험실의공룡
5 좌절

2부 “나는 인류의 역사를 밝히고 싶다”
― 새로운 연구소 마련과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 추진까지

6 크로아티아와 인연을 맺다
7 새로운 보금자리
8 다지역 기원설에 대한 논란
9 핵 DNA를 얻을 수 있을까?
10 핵 DNA를 얻을 수 있다!
11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3부 무모한 도전에 나서다
― 프로젝트에 쓸 뼈확보에서염기 서열 해독, 매핑까지

12 무정한 뼈
13 세부적 문제들에 시달리다
14 게놈을 매핑하다
15 뼈에서 게놈으로

4부 네안데르탈인은 우리 몸 안에 살아 있다
― 유전자 이동과 이종교배 이야기

16 유전자가 흘러갔을까?
17 머리를 맞대다
18 유전자가 흘러갔다!
19 대체 집단

5부 프로젝트의 완성과 또 다른 인류의 발견
― 게놈 서열 발표와 그 반향, 데니소바인의 DNA 발견까지

20 인간의 본질?
21 게놈 서열을 발표하다
22 매우 특별한 손가락
23 네안데르탈인의 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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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 리뷰]

1996년 어느 날 이 책의 저자 스반테 페보는 독일 본에 있는 라인 주립 박물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박물관에서 얻고 싶은 것은 바로 네안데르탈인의 뼈였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DNA 연구를 한답시고 뼈를 내 달라고 하면 들어줄 리 만무했다. 150여 년 전 네안더 계곡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은 독일의 비공식 국가 보물이었다.
페보는 그 뼈를 꼭 얻고 싶었다. 네안데르탈인이 누구인가? 그들은 진화적으로 우리 현대인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이들이 유전적으로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누구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박물관의 담당 큐레이터가 고맙게도 페보에게 전화를 걸어서 몇 년 전에 자기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 큐레이터는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얻을 가능성이 얼마쯤인지 물은 적이 있었고 페보는 5퍼센트쯤 된다고 솔직히 답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후인 지금 그 큐레이터가 다시 전화를 걸어 와 정말로 그 귀한 뼈를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여러 연구팀이 박물관에 연락해서 DNA를 확실히 얻을 수 있다며 시료를 요청한 모양이었다. 박물관 측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다른 연구실에 의견을 구하기로 했는데 페보의 솔직한 대답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 큐레이터가 옛일을 잊지 않고 페보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 큐레이터는 네안데르탈인의 위팔뼈에서 3.5그램을 잘라 내 페보에게 전달했다.(124쪽 그림) 페보와 연구팀은 이를 가지고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 서열을 해독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이 연구에 대해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거는 “우주탐사 역사의 달 착륙과 같은 사건”이라고 선언했고, 학계의 ‘다른 편’인 다지역 기원론의 주창자이며 고고학자인 밀포드 울포프조차도 “만일 누군가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스반테 페보일 것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43쪽)
페보의 연구에 대한 칭찬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미 서른 살 무렵이었던 1985년 세계 최초로 고대 이집트 미라의 DNA를 추출해 해독했고, 그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하여 우리나라 언론에도 소개될 정도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미라 연구는 고인류학 또는 DNA 고고학이라는 신흥 학문이 출발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의 연구 인생은 어쩌면 열세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이집트에 갔을 때 이미 싹텄는지 모른다. 그곳에 다녀온 뒤 파라오, 피라미드, 미라 등 고대사에 빠져 지냈던 것이다.

송아지 간을 사다가 몰래 시작한 미라 연구

1980년대 초 박사 과정으로 웁살라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던 페보는 문득 “이집트 미라를 대상으로 이러한 연구를 할 수는 없을까?”(49쪽)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그게 가능하다면 파라오가 통치하던 시절의 이집트인들과 현대 이집트인과의 관계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사후 조직에 DNA가 얼마 동안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슈퍼마켓에서 송아지 간 한 덩이를 사다가 오븐에 넣고 가열하여 미라를 만들었고 거기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으로 대학 박물관에 있는 진짜 이집트 미라를 가지고 똑같이 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실패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당시 동독 베를린 국립 미술관에 머물면서 더 많은 미라 표본을 수집하여 그중 2400년 된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여 염기 서열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57쪽 그림)
논문을 작성해 『네이처』에 보내기 전에 페보는 지도 교수에게 먼저 갔다. 당시까지 그는 이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했다. 연구 기금과 귀중한 시간을 엉뚱한 곳에 썼다고 꾸중을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는 페보를 혼내기는커녕 놀라워하면서 원고를 읽어 보겠다고 했다. 또 페보가 지도 교수의 자격으로 논문의 공동 저자가 되고 싶은지 묻자, 자신이 잘 모르는 연구의 공동 저자는 될 수 없다고 했다!
원고를 학술지에 보내고 얼마 뒤 출판 승낙과 함께 교정쇄가 도착했을 때 페보는 그중 한 부를 아무런 메모도 없이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앨런 윌슨에게 보냈다. 향후 윌슨이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을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하고 싶었던 페보는 출판 전에 논문을 보내 주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내 윌슨의 답장이 왔는데, 거기에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 있었다. 윌슨이 페보를 ‘페보 교수(?)’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연구실에서 안식년을 보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닌가. 페보는 정식으로 편지를 써서 자기는 교수도 박사도 아니며 연구실도 없다고 설명해야 했다. 그러고는 실험실 동료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자진화학자인 앨런 윌슨을 모셔다가 일 년 동안 나를 위해 배양 접시를 닦게 만들 뻔했다.”라고 농담했다.(65쪽)
이후 페보는 윌슨의 배려로 버클리에서 고대 DNA 연구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한번은 현재 살아 있는 캥거루쥐와 50여 년 전의 캥거루쥐의 DNA를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진화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다이아몬드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 이상, 앞으로 박물관 표본들의 과학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좁은 시야의 소유자들은 연구를 계속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77쪽)

실험실이 공룡의 DNA로 오염되었다고?

버클리에서 유대류인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의 DNA를 연구하여 『네이처』에 발표할 무렵 스승 윌슨은 마지막 저자로 페보의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마지막 저자로 등재된다는 것은 연구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과학자라는 의미였다. 이러한 연구 공로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뮌헨 대학 정교수에 임용된 페보는 버클리를 떠나 독일에서 새로운 연구 인생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 페보는 진짜 고대 DNA를 골라낼 수 있는 ‘진품 기준’을 마련하는 등 이 신흥 학문에 과학적 체계를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고대 DNA를 증폭하는 중합 효소 연쇄 반응(PCR) 실험에서 오염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 사제의 DNA를 연구하려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큐레이터의 DNA를 연구할 수도 있었다.
그즈음 유타 소재 한 대학 연구팀이 8000만 년 전의 뼛조각에서 추출한 DNA의 서열을 『사이언스』에 발표하면서 그 뼈가 공룡에서 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페보는 이 연구가 사실인지 파헤쳐 보기로 했다. 유타 연구팀이 발표한 서열을 분석해 보니, 조류나 파충류보다는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와 유사해 보였다. 그는 그것이 핵 게놈에 끼어들어 돌연변이를 축적한 mtDNA일 거라고 추정하고 실험해 보았다. 그래서 정자의 머리를 분리한 다음 거기서 DNA를 정제하고 유타 연구팀이 했던 방식대로 PCR를 돌렸다. 그랬더니 정말로 유타 연구팀이 찾아낸 공룡의 서열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즉 유타 연구팀이 해독한 것은 공룡의 DNA가 아니라 핵 게놈으로 자리를 옮긴 인간의 mtDNA 조각이었던 것이다.
『사이언스』에 ‘전문가 논평’을 쓰면서 장난기가 발동한 페보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추출한 DNA로 유타 연구팀이 발견한 것과 비슷한 서열을 얻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 우리 실험실이 공룡의 DNA로 오염되었다. 2) 공룡이 멸종하기 전에 포유류와 이종교배를 했다. 3) 유타 연구팀의 실험이 인간의 DNA에 오염되었다.(103쪽)

비독일 출신만으로 세워진 새로운 인류학 연구소

1997년 뮌헨 대학에 있으면서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mtDNA 서열을 발표할 무렵 페보는 독일의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막스플랑크협회와 새롭게 설립할 인류학 연구소의 장소를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협회의 입장은 분명했다. 발트해 연안의 작은 항구도시 로스토크였다. 이 도시가 있는 주는 협회의 연구소가 하나도 없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요구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페보는 단호히 반대했다. 그냥 뮌헨 대학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통보했다. 그 작은 도시로는 인재를 유치하기 어려울 터였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협회 측에서도 페보의 분명한 의사를 깨닫고는 결국 방향을 선회하여 라이프니츠로 결정했다.(143쪽)
당시 페보가 구상한 새로운 연구소는 학제 구분에 따라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 초점을 맞춘 곳이었다. “인간을 동물과는 다른 독특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고생물학자, 언어학자, 영장류 학자, 심리학자, 유전학자들이 이 질문을 함께 연구하는 다학제 간 연구소가 되어야 했고, 이때 사용해야 하는 개념적 틀은 진화였다. 진화인류학연구소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새로운 연구소에 발달심리학자 마이크 토마셀로, 영장류 학자 크리스토프 보쉬, 비교언어학자 버나드 캄리가 합류해 각 분과를 맡았다. 페보를 포함해 모두가 해외 학자였다. “장차 400명이 넘는 인원을 고용하게 될 거대한 연구소를 나라 밖에서 온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맡길 정도로 국수주의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141쪽)
이후 이 연구소는 성공적인 기관으로 성장했는데 페보는 그 비결로 세 가지를 말한다. 1) 각 분과장들이 모두 독일인이 아니었기에 시작할 때부터 서로 잘 해보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2) 서로 비슷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데도 전문 분야가 겹치지 않아서 직접적인 경쟁이나 라이벌 의식이 없었다. 3) 막스플랑크협회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 ‘마법의 뼈’를 찾아서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에 자리를 잡은 후 네안데르탈인 핵 게놈 연구에 몰두하던 2006년 5월 어느 날 페보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을 얻기 위해 크로아티아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방문하기 며칠 전 시료 채취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누군가 압력을 넣지 않고서야 상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