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은맛깔나는브런치다!
클래식음악을듣는데대단한사전준비가필요한것은아니다.교향곡과협주곡의정의는무엇인지,현악사중주의악기구성이어떤것인지를자세히알지못하더라도바흐나모차르트의음악에매혹되는일은인간으로서의즉자적인반응에가깝기때문이다.저자에따르면클래식감상이란별다른내적성찰이나정서의함양없이바쁘게흘러가기쉬운우리의일상속에여유와격조를제공할수있는‘맛깔나는브런치’같은것이다.그럼에도보통사람들은정반대로클래식음악을무거운‘디너(dinner)’처럼생각한다.주요이론과음악사조를다알고있어야비로소맛볼수있는‘정찬’처럼여긴다는것이다.그러다보니더욱클래식음악에서멀어진다.
하지만클래식음악의음표들사이에는바로그음악을만든작곡가들의삶과고뇌,분투의기억역시깃들어있다.저자는그들이,자기가원하는바를얻어내기위해부단히노력한‘음악의장인’(바흐),탁월한기업가정신을보여준‘벤처음악가’(헨델),널리알려진괴팍한이미지와달리놀라울만큼‘정상적인인격의소유자’(모차르트),삶의소소한재미를즐기고탐닉할줄알았던‘반전남’(베토벤)이라고말한다.
그의삶이극적이고영웅적이다보니우리는베토벤역시한인간이었다는사실을종종잊곤한다.베토벤의일생이오직운명과의대결로만점철된것은아니다.그또한삶의소소한재미를즐기고탐닉할줄알았다.(…)그가언제나듣는이를압도하는힘있는곡만을쓴것은아니었다.음악에서도베토벤의반전은있었다.만약이책을읽고있는당신이베토벤의음악에지레겁을먹는사람이라면,여기서권하는부드럽고따뜻하고서정적인베토벤의작품을시작으로‘베토벤입문’을하는것도하나의방법일수있다.(본문219~220쪽)
위대한클래식작곡가들의발자취를더듬어보는일은,그들이한음표한음표씩심혈을기울여이룩해낸걸작들을감상하고이해하는데도움이될정보와단서를발견하는과정이기도하다.
우선음악의‘맛’에집중하라
이책에서다루는클래식음악,즉고전음악이란대략17세기부터약300년간에걸쳐유럽을중심으로활동했던작곡가들이창조한음악을가리킨다.음악사조로보면바로크시대(비발디,바흐,헨델)를시작으로고전주의(모차르트,하이든,베토벤),낭만주의(슈베르트,멘델스존,쇼팽,요한슈트라우스,브람스,파가니니,리스트,베를리오즈,베르디,바그너등),전환기의클래식(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스트라빈스키,번스타인등)으로이어진다.사실300년은넓게잡은것이고,가장폭발적으로클래식음악의걸작들이쏟아져나온시기는1700년부터1900년사이의200년이라고볼수있다.클래식음악은인류역사에서이두세기동안있었던특정한문화현상이다.
저자는이시대를살아간위대한작곡가들의음악을한명의‘감상자’로서살펴본다.음악을전공하지도이분야의널리알려진전문가이지도않은저자가이책을쓰게된것도오랜시간클래식음악을즐긴감상자로서가진‘자격’덕분이다.저자는클래식음악은아무나감상할수없는어려운음악이라는선입견을안타까워하며어찌보면아주당연하고간단한해결책을제안한다.그저마음이끌리는음악을편한자세로감상해보라는것이다.후대평론가혹은음악애호가들의해설이나감상을일단뒤로하고한곡한곡듣다보면어느새마음에와닿는,나아가“생활의격랑속에서한발벗어나잠시숨을고를기회”를가질수있다고귀띔한다.
내가종종듣는샌프란시스코FM라디오클래식음악채널의한프로그램은‘TheIslandofSanity’라는제목을달고있다.우리말로하면‘온전한정신의섬’이라고할까?다시말해클래식음악은정신없는,혹은정신나간듯바쁘게돌아가는세상으로부터떨어져있는휴식처,안식처라는메시지다.물론음악몇곡듣는다고당면한고민이나문제가저절로해결될리는없지만,분명클래식음악감상은우리에게아름다움,균형,섬세함,정교함등에대한감각과인식을일깨워혼란과혼동의현실너머에있는가치와이상,그리고그가능성을감지하고명상해볼기회를제공한다.미국이나한국이나갈수록사는게쉽지않은세상이지만,그럴수록생활의격랑속에서한발벗어나잠시숨을고를기회를가지는것도중요할듯하다.(본문5~6쪽)
클래식은과거가아닌현재진행형이다
클래식음악의시작을알리는바로크음악은낡고오래된,그래서특별한취향을가진사람들만이듣는음악이아니다.바로크의힘은여전하며오늘날에도음악가들에게영감과아이디어를준다고저자는말한다.20세기중반남미음악가빌라로보스가쓴<브라질풍의바흐>,영국작곡가벤저민브리튼이헨리퍼셀의주제를가져다확장시킨<젊은이들을위한관현악입문>등은이미그자체로클래식이된지오래다.바로크음악이얼마나멋질수있는지를보여주는최근사례로는영국가수데이비드보위가등장하는루이뷔통광고를들수있다.이광고의하이라이트는보위가하프시코드를연주하며바로크풍이물씬풍기는<아이드래더비하이I’dRatherBeHigh>를부르는장면이다.이렇듯바로크음악은역사책이나박물관에모셔두기에는,또전문음악가들과소수의마니아들만즐기도록두기에는아까운예술이다.(109쪽)
바로크음악의뒤를이은고전주의음악도마찬가지로우리의일상생활속에밀착되어있다.저자는단하루동안모차르트의음악을네번이나접한적이있다고말한다.공연을보러간것도,음반을틀었던것도아니며,그저집에서몇시간TV를켜놓고있었을뿐인데영화와연속극,광고등에서모차르트의음악이계속흘러나왔다는것이다.온종일TV를보고있었더라면더많은모차르트의음악을접했을지도모를일이다.이뿐만이아니다.2016년12월,유니버설뮤직그룹은모차르트서거225주년을기념해그해10월말에내놓은500달러상당에CD200개묶음의세트가불과2개월만에6,250세트,개수로는장장120만장이상이팔렸다고발표했다.모차르트사후2세기가넘어서도그의음악이여전히보편적인힘을가지고있음을보여주는사건임에틀림없다.(115~116쪽)
놀랍게도비발디가타계한뒤서구문명은2세기가까이그의음악을거의,아니전혀알지못했다.생전에이미퇴물취급을받기시작하던비발디의음악은그의죽음과동시에베네치아대중의기억에서빠르게사라졌고,비발디는“그런바이올리니스트도있었다는데…”라며유럽의몇몇음악가와평론가가지나가다언급하는정도를제외하면사실상잊힌인물이었다.심지어오늘날바로크음악의ABC처럼되어있는<사계>나<화성의영감>조차도20세기초까지거의연주된적이없었다.평론가들이흔히‘비발디르네상스’라고부르는현상은20세기중엽인1950년대이후에야본격적으로시작되었다.(본문31~32쪽)
비발디의사례에서도알수있듯이,클래식음악은고정된과거가아니라현재와끊임없이상호작용하는음악이며따라서당대를살아가는감상자들의반응과정서가중요한역할을한다.
바흐vs.헨델,베르디vs.바그너…
클래식음악을잘모르는사람이더라도‘음악의아버지’와‘음악의어머니’라는표현은한번쯤들어보았을것이다.이는아마일본에서유래한표현이아닐까싶지만,사실두사람은아무런직접적인관계가없다.그런데도두사람의행보를들여다보면볼수록개인적으로나예술적으로나우연이라고는생각할수없을만큼많은공통점과흥미로운차이점을보인다.
일단공통점이상당하다.둘다독일인이며1686년에태어난동갑내기다.바흐는키가180센티미터로당시에는무척큰키였는데,헨델역시‘작센의거인’이라는별명이붙을정도로체구가컸다.자존심강하고괴팍했던두사람은자타가공인하는건반악기의달인이었으면서도정작음악가로서의경력은바이올린연주자로시작한것도똑같다.심지어두사람은죽음마저같은끈으로연결되어있다.두사람모두말년에당뇨를앓았던것으로추정되고합병증과수술후유증으로시력을잃었다.그런데놀랍게도바흐의눈을수술했던돌팔이의사존테일러가헨델의백내장수술을했던바로그의사였다.(104~105쪽)
그러나음악적인측면에서는두사람의차이점이분명히드러난다.바흐음악의기본뿌리가독일루터교의교회음악이었던반면,헨델은유럽궁정음악의전통,프랑스의무곡,이탈리아의오페라등에서골고루영양소를뽑아자신의것으로삼았다.또한바흐가중세의연금술사를방불케하는장인적실험정신과완벽주의를보여주었다면,헨델은각시대에유행하던음악장르의장점을십분활용하여고객이원하는음악을내놓는사업기질을발휘했다.이런점에서저자는음악의아버지혹은어머니라는정체불명의비유보다는바흐는‘음악의장인’,헨델은‘음악의기업가’라는비유가더부합한다고지적한다.(106쪽)
낭만주의오페라의양대산맥인베르디와바그너도흥미로운비교대상이다.둘다1813년생동갑내기로생전에조국의통일을목격하는감격을누렸다.뒤늦게오페라분야에서성공을거두고,이후작품의제작과공연전과정에서무소불위의자율권과권위를행사했던것도비슷하다.하지만음악적인측면에서는대조적인행보를보였다.베르디는선율의기세를앞세워관객을즐겁게하는음악을,바그너는감상자의의식전체를자극해관객을압도하는음악을추구했다.저자는베르디는전유럽을상대로오페라팬들이원하는작품을적극적으로만들어낸주문형작곡가로,바그너는시장의요구와는상관없이항상내면의창조적충동과예술적비전에따라작업해간작곡가로평가한다.(345~347쪽)
클래식음악,그향연의현장으로초대하며
바흐,헨델,모차르트,하이든,베토벤,슈베르트,멘델스존,쇼팽,브람스,베르디,바그너등등클래식음악속의내로라하는기념비적천재들은사실상1700년부터1900년까지단200년동안활약했다.물론그이후에도재능있는연주가,위대한지휘자들이꾸준히등장하기는했지만,18세기부터2세기에걸쳐뜨겁게타올랐던작곡,즉창작의불길은더는찾기힘들게되었다.그리고이렇게위대한창작의시대가끝난자리에소비와향유의시대가꽃을피웠다.오늘날클래식음악은우리와매우가까운곳에있다.오랜세월왕족과귀족,부호등선택받은소수의인류만이누릴수있었던음악이누구나마음만먹으면엄청난경제적부담없이도즐길수있는수준까지대중화된것이다.
‘클래식’혹은‘클래식음악’이라는말은왠지어렵고지루하다는느낌을준다.클래식은아무나감상할수없으며제대로감상을하려면대단한사전지식이필요하다는생각이들기도한다.학창시절음악시간에배운바흐나헨델혹은모차르트나베토벤이생각나기도하는데,흰색가발을쓰고한껏멋부린의상을입은그들이들려주는음악은화성학이나대위법같은난해한이론의이해를요구하는것만같기도하다.
이책의일차적목표는클래식음악이라는진수성찬을즐기고싶지만,그와관련된매너나절차에익숙하지않아짐짓망설이는독자들에게초대의인사를전하는것이다.그렇다고해서가볍게맛보고버리기에는클래식음악이품고있는보물이너무나도아깝다.탁월한음악이우리에게선사하는의미와가치는무궁무진하다.하지만그무게를처음부터떠안고끙끙대며출발할필요는없다.시작은우선가볍게하는편이좋을것이다.그렇게재미를찾다보면어느새대작에담긴의미와가치또한체득할수있을것이다.저자는이책이클래식음악감상의묘미를경험하지못한독자들에게는새로운경험을시작하는계기를,이미클래식음악의맛을어느정도나마경험해본독자라면더욱깊이있는음악의향연속으로몰두하는기회를제공하기를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