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아무것도아니야”
2012년서울의한대학교강당,매주남성들이오르던채플연단에여성교수가등장했다.존재만으로도이례적이었을그가캠퍼스내에서‘오빠’라는호칭이갖는이성애기반권력관계를꼬집은것은당시로서매우논쟁적이었다.그로부터약10년후,한국양성평등교육원장을지내며‘잠재적가해자’라는용어로또한번,더크게논란의중심에선그는바로나임윤경이다.2012년에는학생들의SNS와익명게시판에비난글이들끓었고,2021년에는양평원에항의전화폭탄이쏟아졌다.이런집중포화를받을때어떻게버티느냐는질문에나임교수는“페미니스트의기본전략이백래시아니에요?”라며호쾌하게웃었다.수십년간불평등과백래시에잔뼈가굵은큰언니답게,그는지금의20,30대여성들을향해“쫄지마,아무것도아니야”라며경쾌한응원을보낸다.
그말에누구보다먼저가슴이뜨거워진이는과거나임교수의채플연설을들었던학생중한명이자,지금은‘허스펙티브(Herspective)’뉴스레터를보내는이혜미기자다.“여기자는뽑아놓으면퇴사해”“남자가일시키기편하지”같은소리를습관적으로들으며,그는더열심히노력하고더크게성취하는것으로자신의능력과실력을증명하고자분투했다.그런데대체언제까지?가쁜숨이턱밑까지찬채로,혼자성취해서는아무것도바뀌지않는현실을직시한순간,비로소‘존재하고’‘버티고’‘발언함’으로써기울어지고경직된세상에균열을내는여성동료들의모습이눈에들어왔다.홀로자기증명을위해애쓰던그가‘나’가아닌‘우리’를말하는여성들의목소리에주목하게된이유다.
뮤지션,스타트업대표,작가,운동선수,정치인,학자…
“네가뭔데”“여자가무슨”같은말을뚫고
새로운길을내는‘여돕여’들
책제목인《여자를돕는여자들》은자기영역에서최선을다해균열을내고영토를넓힘으로써궁극적으로다른여성들에게더넓은길을열어준개척자여성들을조명하고자붙인이름이다.저자이혜미가만난열명의여성들은각자자기분야에서고유한성취를이루었다.조직을이끌거나,마이크를잡거나,말과글로영향력을행사하며,소위말하는성공과출세를손에넣기도했다.그러나이들은그것이오로지자신의노력과능력만으로이루어진것이아님을,누군가로부터받은다양한형태의도움이지금의그들을있게했음을기억한다.그리고그기억하는마음이다시누군가를돕게만든다.
50만구독자를거느린콘텐츠플랫폼‘뉴닉’의대표김소연은서울대경제학부출신에《포브스》가선정한30세이하아시아인리더다.화려한이력을갖춘그가정작자신의성공비결로꼽은것은운과타인의도움이다.그는‘여자라서’받는제약과차별로부터비교적안전한집단에속했기에창업의꿈을키울수있었고,그집단을벗어나진짜세상을만났을때비로소자신이운이좋았다는사실을깨달았다고한다.투자유치를위해일분일초가아까운때에‘여성창업자’라는점을설명하는데시간을쏟아야하고,창업지원사업에서연결해준남성멘토와멘토링일정을잡으며“왜이렇게데이트약속잡기가쉽지않지?”라는농담을들어야하는상황은그저가벼운예시에불과할것이다.그래서그는이모든난관을뚫고앞서나간여성창업자선배들에대한리스펙과그들이내밀어준손에대한고마움을잊지않는다.또다른누군가가자신을보고용기를얻을수있도록더잘해야겠다는책임감도느낀다.
세상이기대하는대로행동하길거부하고,당당하게자신을표현하는여성에게는소위‘나대는여자’라는꼬리표와함께“네가뭔데”같은핀잔이따라붙는다.“여자가무슨사업을해?”“여자가무슨정치를알아?”“여자가무슨주짓수를해?”무수히변주되어온이런말들앞에서앞길이창창한여자들이얼마나자주망설이며자신의자격과능력을의심했던가.그런이들에게핫펠트는“남이헛소리하는것에”신경쓰지말자고,“상처받고힘들어하는건내손해”일뿐이라고말하고,류호정은당신잘못이아니니“자기검열하지”말라고당부한다.이제막출발선에선이들의불안하고흔들리는마음을누구보다잘아는김소연은묻지도따지지도않고“무조건할수있습니다”라는응원을보낸다.과거의김소연자신이가장듣고싶었을응원을말이다.
“자신을믿고가세요.함께살아남았으면좋겠습니다”
그렇다면애초에김소연처럼‘안전한집단’에속하지않은여성들은어떻게해야할까?하미나와임소연은남성구성원중심의능력주의가그어느곳보다치열한이공계에서서로를도우며살아남는법을보여준다.두사람은여학생이수학을잘하면‘별종’취급하며,공대나자연대말고교대나사범대를추천하는분위기에서자랐다.그래서임소연은한때수학?과학을못하는척백치전략을쓰는가하면,남자교수들의인정을받기위해아등바등하던시절이있었음을고백한다.그러다임신과출산을계기로,자신보다학문적성취가뛰어나지않은남성연구자들이착착교수자리를차지하는것을보며,이제껏‘내가부족해서’라고생각했던것이실은‘여자라서’겪는문제임을직시하게됐다.
하미나는‘여성우울증’을주제로석사논문을쓰는과정에서교수진들과의견이달라수차례좌절을겪었다.스스로도자기능력을의심하고,졸업을포기할생각까지했다.그때논문을계속쓰도록그를일으켜세운사람이임소연이다.한편임소연은자기가하고싶고옳다고믿는것을하며사는모습을보여준하미나를‘나를도운여자’로꼽았다.무엇보다‘여자와여자가함께한다는건이런거구나’를하미나와친구백가을로부터배웠다.남성연구자들을중심으로한폐쇄적이고위계적인‘랩실’을떠올리면,사제지간으로만난임소연과하미나가‘과학기술여성연구그룹’이라는이름아래맺은수평적연결이더욱귀하게느껴진다.
‘우리’라는감각과‘연결’의힘을믿는
이들이건네는단단하고구체적인응원
이공계만큼이나개인의기량과능력이우선시되는곳이체육계아닐까?그것도아주어려서부터.김은희는초등학생시절자신을가르쳤던테니스코치로부터성폭력을당했다.10년도더지난일을사건화하겠다고나선것은우연히시합장에서가해자를마주친날부터였다.나를해한범죄자가아직도내제자,내후배와한공간에있다는사실을용납할수없었다고한다.모두가어차피이길수없는싸움이라며말렸다.그런데도죽이되든밥이되든결론을내야겠다고마음먹은것은내가안하면결국나중에누군가가해야한다는,바꿔말하면지금내가해야그걸발판삼아누군가가앞으로나갈수있다는믿음때문이었다.김은희가그긴싸움을감당한덕에,성범죄피해손해배상청구권시효의시작을범행시점이아닌‘성폭행으로인한외상후스트레스장애현실화’시점으로보는기념비적인판례가남게되었다.그는여기서그치지않고,자신과유사한피해를겪은후배선수등을제도적지원과연결해주거나소송절차를밟도록돕는일을하고있다.
이책에등장하는여성들은앞서걸음으로써그존재만으로뒤따르는이들을돕는가하면,김은희처럼직접적으로다른여성을돕는일에나서기도한다.전수연은난민과인신매매여성의인권을지키는변호사다.약자도존엄한인격을누리며살아가도록돕는것이자신의일이라고믿는그에게직업선택에후회안하는지물었더니단호하게“안한다”는대답이돌아왔다.삼성전자,코카콜라등글로벌대기업에몸담으며,자신을드러내지않고묵묵히일하는여성들이정작조직에서제대로인정받지못하는것을숱하게목격한한승희는여성과아시아인을돕는커리어리더십코치로활약한다.“여자는네트워크에약하다”라는편견을깨고,서로도와서잘되는여자들이더욱많아져야한다는것이그의생각이다.
이책에는‘우리’라는단어가참많이등장한다.자신을위해,나아가다른이들을위해판을넓히는여성들은“동료를많이만드세요.내가아닌다른여성들과함께목소리를내세요”라고입을모은다.나임윤경은쉽게바뀌지않는세상에서여성들이계속앞으로나아갈수있었던것은혼자가아니었기때문이라며“탑을쌓지말고너도앉고나도앉는대청마루를깔자”고한다.
열명의여성들은나이도직업도다양하고,그들이겪어온삶의스펙트럼도천차만별이다.그럼에도이들의이야기를읽다보면어느순간겹치고연결되어마치한사람의말인것처럼들리는문장들이있다.각자위치는다르지만비슷한종류의고민을겪어온동료들과선배들의목소리가담겼기때문일것이다.
“당신을도운여자는누구인가요?”
저자는인터뷰를끝맺을때마다인터뷰이들에게“당신을도운여자는누구인가요?”라고물었다.핫펠트,김소연,나임윤경등이자신의어머니를‘나를도운여자’로꼽은반면,전수연변호사는가족안에서자기편을찾을수없었다고한다.대신그는또래의동료변호사두명과힘든일은나누고,화나는일은같이분노하며힘을얻는다고답했다.김은희는재판의전과정을함께해준스포츠법학자주종미교수를비롯해소송을진행하면서만난모든여성의얼굴을떠올리기도했다.
저자가던진질문의의도는분명하다.‘여자를돕는여자들’로소개한열명역시다른여성의도움을받으며여기까지왔다는것.그러니“우리에게필요한것은나를도울한명의롤모델이아니라그동안서로를도와왔던우리의공을직시하는일”(곽민지추천사)이라고말하고싶은것이다.
“여성들의관계는흔히‘여자의적은여자’라는근거없는낙인으로쉽게폄하되곤하지만,우리모두는필경생애한번쯤은다른여자에게빚지고빚주며지금에이르렀다.나를도운그여자는엄마일수도,친자매일수도,체육수행평가를함께했던키다리친구일수도,지하철에서조용히불법촬영피해사실을알려준대학생언니일수도,혹은지금사무실옆자리의과장님일수도있을것이다.(…)책의마지막페이지를덮는순간,독자들에게도어떤여성의얼굴이떠올랐으면좋겠다.”
-프롤로그
책속에서
뮤지션핫펠트
살면서많이들었던이야기가“여자는꽃이다”였어요.특히여자연예인은잠깐피고지는꽃이라나요.그런데아무리생각해도내가꽃같지가않은거예요.오히려나는새인것같다고생각했어요.(32~33쪽)
‘뉴닉’대표김소연
창업지원사업을통해연세가지긋한남성멘토를배정받았어요.멘토링약속을잡으려고전화통화를하는데시간이자꾸엇갈리자“우리는왜이렇게데이트약속잡기가쉽지않지?”라고하는거예요.제가마음을가라앉히고“멘토님,저는데이트가아니라멘토링을받으러온겁니다”라고말해야했어요.(…)우리사회는지금도젊은여성을회사의대표나창업자로대우해주지않는경우가많아요.(50~51쪽)
논픽션작가하미나
누군가가자기를인정해주기를기다리지않으셨으면좋겠어요.인정과마찬가지로사과도기다리지말고요.그저스스로를믿고갔으면좋겠어요.무엇보다주변에비슷한여자들과연결되었으면좋겠어요.(85~86쪽)
과학기술학자임소연
저는수업에서하미나와백가을이라는친구들을보면서‘진짜저렇게살아도돼?’라는생각을가장먼저했어요.이들은그때도페미니스트로활동하면서연구를했거든요.저는남자교수들의인정을받으려고아등바등하는사람이었고요.이친구들이자기가옳다고여기는것,하고싶은것을하고사는모습이정말살아있는
것처럼보이더라고요.제겐학생이라기보다는멘토같은느낌이에요.(84~85쪽)
테니스코치김은희
“그걸꼭네가해야돼?”라는말을많이들었어요.제가하면다음에누군가는이과정을안거쳐도되거나,시간을많이줄일수있잖아요.죽이되든밥이되든뭔가를해야,그것을발판삼아누군가가앞으로나갈수있지않겠어요?(95쪽)
‘보슈’공동대표서한나
제가여자로서살면서느낀것을그냥솔직하게얘기했고,앞으로보고싶은미래를그대로글로쓰고말을했어요.그런데그런글과말을보고다른여자들이자기안에있던불씨를느낀것같아요.그불길이조금씩커지는걸보면서저도같이힘을내고있습니다.(138쪽)
국회의원류호정
제가타투업법을위한퍼포먼스를했을때굉장히화제였잖아요.그런데사실기자회견장소에는기자가한분도안오셨어요.그모든건저자신을유명하게하고자했던게아니라,정의당에찾아온분들의목소리를어떻게하면효율적으로알릴수있을지고민한결과로행한퍼포먼스였거든요.저는그래서‘쇼한다’는말을들어도좋습니다.(156쪽)
인권변호사전수연
코넬리우스플랜팅가라는미국의신학자는‘환대’를“타인에게우리안에머물공간을마련해주고,그공간에서그사람이꽃피우도록하는것”이라고정의내렸어요.꽃피우게한다는건그사람의잠재되어있던정체성이드러나고발현되면서,더안전하게인간의존엄성을유지하며살아가도록공간을마련하는거라고봐요.우리는혼자사는존재가아니잖아요.(189쪽)
문화인류학과교수나임윤경
지금와서이렇게보니아무것도아니에요.나를차별했던사람들이나차별적인사회구조때문에한때쫄긴했지만쪼그라들진않았거든요.그사실을많은여성이경험으로알아요.지금당장은겁이나고두려울수있지만,이다음에우리각자가후배여성들에게“야,아무것도아니야”라고말할수있을거라꼭믿어요.그믿음으로여러분에게“악플달고위협하고혐오하는걔들아무것도아니야,쫄지마”라는말씀을드려요.(223~224쪽)
글로벌리더십컨설팅대표한승희
한승희에게물었다.그오랜시간어떻게필드에서스스로깨달으며성취해나갔느냐고.그랬더니이런답이돌아왔다.“저도못했어요.제가못했기에깨달은것들을후배여성들에게알려주려는겁니다.”
못내아쉬워후배여성을그냥지나치지못하는마음,그마음이아마많은여성들이공유하는감정일것이다.(256쪽)
추천사
여자끼리싸움붙이려는시도에진절머리가난당신에게이책에탑승할것을권한다.나도모르는사이내인생에들어와격려로,연대로,존재로,생존으로위기마다나를건져올렸던당신의여자들이행간에서차례차례등장할것이다.
-곽민지(〈비혼세〉팟캐스터)
여자인우리는이미여러번죽었다.“네가뭔데?”라는말과“꼭네가해야해?”라는말사이에서조금씩죽었다.이책을덮을때쯤엔스스로에게,그리고곁에있는여자들에게말해주고싶을것같다.큰일은여자가하자고.
-박초롱,이다혜(〈큰일은여자가해야지〉팟캐스터)
모든일이어쩔수없게느껴지는날에는이책을또다시집어들고싶다.서로를돕는방법이끊임없이말을걸어주는일이라면,나는책속의여자들에게또한번빚을졌다.남은건갚아나가는일뿐이다.
-손수현(배우,《쓸데없는짓이어디있나요》저자
《여자들돕는여자들》이건네는응원은구체적이고실용적이다.다른여성의삶과말이나를돕는다.한번더버티고,다시한번일어선다.미래는우리앞에있다.
-이다혜(《씨네21》기자,《퇴근길의마음》저자)
빛나는그림자를따라책을읽고나니어느새내안의두려움이옅어졌다.오래전부터이어진돌봄의릴레이에어느새나도동참하고있었다는사실을알아차렸다.분명당신도그럴거라고믿는다.
-홍승은(작가,《당신이글을쓰면좋겠습니다》저자)
마음은급한데세상은너무천천히변하는것같고,더많은여성동료들은보이지않는것같을때,이책에담긴이야기들이필요하다.이들의존재를확인하는것만으로도번쩍힘이난다.
-황효진(〈시스터후드〉팟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