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 변양균 회고록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 변양균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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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경련 대항 세력을 만듭시다”
변양균 전 장관이 회고한 역대 정부 경제 정책 비화
2006년 10~11월의 어느 날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헬기 안에서 독대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밀명’을 받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항 집단을 만들어 기존 재벌 질서를 깨뜨려 보자는 것. 2세, 3세 재벌 일색인 전경련 말고, 당대에 자수성가했지만 재벌의 견제 때문에 더 올라가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기업가들을 모아 경제 주도 세력을 바꾸자는 것이 대통령 노무현의 취지였다. 밀명을 받은 변양균 정책실장은 가칭 ‘진보경제인모임’ 결성을 위해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였지만 이내 벽에 부딪혔다. 그 누구도 재벌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대통령 임기 말이었다. 결국 ‘전경련 대항 세력 육성 계획’은 세간에 드러나지 않고 사라졌다. 이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회고한다.

재벌의 힘과 영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당시엔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노 대통령도 나도 꽤 순진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YS(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처럼 비밀스럽게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발표해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때 진보경제인모임이 성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전경련을 창구로 재벌에게 거액을 거둬들인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도 양상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면 문재인 정부에서 ‘전경련 패싱’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전경련을 따돌리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81쪽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는 ‘노무현의 남자’라고 불릴 만큼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얻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변양균 전 장관의 회고록이다. 이 회고록이 값진 것은 ‘전경련 대항 세력 육성 계획’처럼 지금껏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역대 정부의 경제 정책 비화를 빼곡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회고록은 흔하지만 경제 정책 회고록은 드문 게 현실이다.

저자 변양균은 제14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경제기획위원회에서 시작해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를 거치며 정통 경제 관료의 길을 걸으면서 박정희부터 노무현까지 여섯 대통령의 주요 경제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보좌하거나 비밀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는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정부 예산 개혁과 경제 정책은 물론 사회 정책, 장기적 국가 기획 설계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관료 퇴임 후 17년 만에 내놓는 이 책은 그러므로 한 전직 경제 관료의 단순 개인 회고록 이상의 성격을 지닌다. 한국 경제가 성장기와 전환기를 거치는 동안 역대 정부 경제 정책이 입안, 탄생된 배경과 이들 정책이 당대 사회 현실과 맞부딪쳐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오늘의 한국 경제와 사회를 형성한 과정을 돌이켜보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증언이다.

300자 평
박정희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한국의 앞날을 열어간 경제 정책 현장의 생생한 증언

1973년 박정희 정부부터 2007년 노무현 정부까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부 정책의 배경과 비화를 담은 회고록. 노무현 정부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변양균 전 장관이 퇴임 후 17년 만에 내놓았다. 제2의 토지개혁, 금융실명제, 전경련 대항 세력 육성 계획, 행정수도 이전, 미군기지 이전과 용산공원 개발,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오늘의 한국 사회를 형성한 굵직한 정책의 이면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국민을 위한 재정”이란 한마디에 의기투합한 정통 경제 관료와 개혁적 색채가 뚜렷한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이 읽는 이를 뭉클하게 만든다.
저자

변양균

1949년9월25일경남통영에서태어나부산에서초중고를다녔다.고려대학교경제학과를졸업했고,미국예일대학교에서경제학석사학위를,서강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다.제14회행정고등고시에합격하여경제관료의길에들어섰다.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기획예산처를거치며경제개발,정부예산및국가기획분야에서공직생활을이어왔다.노무현정부에서기획예산처차관을시작으로기획예산처장관,청와대정책실장을지냈다.노무현대통령의경제참모이자복지비전설계책임자로노무현대통령의경제사회정책을기획·추진했을뿐아니라그의경제철학과복지비전을가장가까이서느꼈다.현재노무현재단상임운영위원과노무현대통령기념관건립기획위원으로있으며,더나은사회로의변혁을위한정책블로그omnipresentrevolution을열었다.

목차

들어가는말짐을내려놓다

1장복지국가의꿈을꾸다
-노무현정부재정개혁-

노무현과첫만남
‘국민을위한재정’,그한마디에인생을바꿨다
재원배분의틀을바꾸다
‘변양균말잘들으라’,전부처에보낸노무현메시지
비전2030의탄생과아쉬움
‘2030년복지국가의꿈’,야당과언론설득못해좌절

2장투명하고공정한시장을위하여
-노무현정부경제정책-

긴박했던한미FTA협상
한미FTA고의로결렬?말도안되는음모론과싸웠다
한미FTA비준,길고긴여정
노무현은세번물었다,“지지율이왜오르지”
실패로끝난‘진보경제인모임’
헬기안노무현의밀명,“전경련대항세력만듭시다”
이념에서못벗어난종부세
집값잡겠다더니편가르기로변질된종부세
미리대비한글로벌금융위기
“빚쟁이에시달려본적있나요”,코스피최고치경신에과열걱정

3장한반도평화와균형발전의초석을놓다
-노무현정부안보·사회정책-

‘고슴도치론’과제주해군기지
“자위대와맞붙으면?”,노무현‘해양강국의꿈’제주에담다
서해안·개마고원공동개발구상
개마고원에최고급관광단지,사라진남북공동개발꿈
국방개혁2020과모병제논의
병사봉급인상은첫단추,언젠가모병제로가야
용산공원과이라크파병
노태우가열고노무현이민용산시대,윤석열이매듭
무산된행정수도이전과세종시
“독재정권도못해낸일을하겠다면국민이믿겠습니까”
김연아금메달과평창유치전
‘피겨여왕’김연아탄생밑거름이된과천빙상장

4장경제·재정정책,원칙대로만합시다
-박정희정부에서김영삼정부까지-

1970년대부동산대책과토지개혁
박정희제2의토지개혁,남덕우가막았다
신군부의특수계급창설시도
청와대비서관“국무위원들,전부다접시물에빠져죽어야합니다”
‘6공황태자’예산을막다
‘박철언예산’저항한최각규,“노태우는대통령이아니야”
예산보고로위장한실명제발표
YS의금융실명제연막작전,두번들러리선예산실
실망스러웠던황장엽면담
시장경제몰랐던황장엽,북한지식인의한계였다
1997년외환위기피할수없었나
YS무능,여당무기력,야당비협조가외환위기불렀다

5장영원히잊을수없는‘인간노무현’

학창시절‘호남의기억’
호남선열차의남루한승객,영남학생인생바꿨다
50대에만난‘인간노무현’
참모부담꺼린노대통령,현대차에직접“물량달라”민원
100번도넘었던식사자리
노무현,말투지적에“내인생바꾸란말이냐”격분

남기고싶은말_저자인터뷰장기적관점에서국민전체의이익을목표로

출판사 서평

“전경련대항세력을만듭시다”
변양균전장관이회고한역대정부경제정책비화
2006년10~11월의어느날변양균청와대정책실장은헬기안에서독대한노무현대통령으로부터‘밀명’을받는다.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대항집단을만들어기존재벌질서를깨뜨려보자는것.2세,3세재벌일색인전경련말고,당대에자수성가했지만재벌의견제때문에더올라가지못하고어려움을겪는기업가들을모아경제주도세력을바꾸자는것이대통령노무현의취지였다.밀명을받은변양균정책실장은가칭‘진보경제인모임’결성을위해물밑에서조용히움직였지만이내벽에부딪혔다.그누구도재벌의심기를건드리려하지않았기때문.게다가대통령임기말이었다.결국‘전경련대항세력육성계획’은세간에드러나지않고사라졌다.이에관해저자는이렇게회고한다.

재벌의힘과영향력이얼마나무서운지당시엔제대로알지못했던것같다.노대통령도나도꽤순진했다고할수있다.어쩌면YS(김영삼대통령)의금융실명제처럼비밀스럽게준비하다가어느순간갑자기발표해야했던건지도모르겠다.이때진보경제인모임이성공했으면어떻게됐을까.전경련을창구로재벌에게거액을거둬들인박근혜정부의국정농단사건도양상이많이달라지지않았을까.그러면문재인정부에서‘전경련패싱’이란말이나올정도로전경련을따돌리는일도없지않았을까.‘역사에가정은없다’고하지만이런생각이든다.-81쪽

《진영을넘어미래를그리다》는‘노무현의남자’라고불릴만큼대통령의각별한신임을얻으며노무현정부에서기획예산처장관과청와대정책실장을역임한변양균전장관의회고록이다.이회고록이값진것은‘전경련대항세력육성계획’처럼지금껏일반에잘알려지지않은역대정부의경제정책비화를빼곡이담고있기때문이다.정치회고록은흔하지만경제정책회고록은드문게현실이다.

“외환위기막을기회있었다”
오늘의한국경제와사회를만든역사적사건의이면

각정부의경제정책비화몇가지를더살펴보자.민주화가진전될수록정부의정책도투명해지고국회와언론등의견제와감시아래집행되지만,김영삼정부까지만하더라도첩보작전을연상케하는비밀정책추진이잦았다.대표적인것이박정희정권말기인1978년비밀리에추진되었던토지개혁작업이다.
부동산가격폭등에골머리를앓던박정희정부는경제기획원내에비밀태스크포스를꾸려이승만대통령에이은‘제2의토지개혁’안을준비했다.일정기준을초과하는땅을모두국가가강제수용하여전국세대별로공평하게재분배하겠다는이급진적인토지개혁안은최종단계에서현실에옮기지못하고1978년‘8.8부동산조치’로대체되었다.한국사회의고질인부동산문제의양상이완전히달라질뻔했던일이었다.
그런가하면군사정변으로권력을잡은신군부는1980년전두환정부초기에전역한직업군인에게각종특권을부여하는법안을추진했다.군부의지지를받기위해헌법이금지한사실상의특수계급을만들려는시도였다.당시사무관신분이었던저자를비롯해경제기획원관료들이반대하자권총을찬현역중장이찾아와위협을가하기도했다고회고록은전한다.

그때자리를그만둘걸각오하고법안처리를막는데애썼던사람들이기억난다.경제기획원의이진설경제기획국장과이석채기획4과장,청와대의김유후법무비서관이다.특히이국장은권총을찬군인의협박에도굴복하지않는용기를보여줬다.-181쪽

1993년8월김영삼대통령이단행한금융실명제는철통보안속에전격추진된것으로유명하다.책에밝힌자세한증언은세간에알려진이상이다.당시경제기획원예산총괄과장이었던저자는대통령에게보고할예산안작업을담당했는데,보고일당일막상언론에발표된것은예산안이아니라금융실명제긴급명령이었다.발표를감추기위해예산보고를빙자한연막작전까지펼친것이었다.보고서작성자는물론청와대경제수석조차몰랐던비밀작전이었다.정보가누설될경우예상되는기득권의저항을그만큼우려했던것이다.

사실금융실명제를추진한건김대통령이처음이아니었다.경제기획원과재무부에선진작부터금융실명제를해야한다는논의가있었다.전두환대통령시절인1982년7월에는금융실명제추진방안을공식발표하기도했다.강경식재무장관과김재익청와대경제수석이전대통령결재를받아금융실명제도입에나섰다.하지만기득권세력의벽에부딪혀실패했다.우여곡절끝에법안이국회를통과하기는했지만부칙으로시행시기를무기한연기하는황당한일이벌어졌다.노태우대통령도1987년대선에서금융실명제실시를공약으로내걸었다.하지만노대통령이김영삼,김종필총재와손잡은3당합당이후흐지부지됐다.김영삼대통령이긴급명령으로금융실명제를도입한데는그런실패의경험이교훈이됐을것이다.-211쪽

이밖에도6공황태자라불리던‘박철언예산’관련에피소드,1997년외환위기시경제사령탑과조직구조의문제,무산된행정수도이전과세종시건설,긴박했던한미FTA협상과정,제주해군기지건설등《진영을넘어미래를그리다》는오늘의한국사회에깊숙한영향을미친주요정책의배경과이면의이야기를흥미롭게전한다.

“국민을위한재정이필요합니다”
개혁적대통령과정통경제관료의운명적만남

5개장으로구성된회고록에서는1장부터3장까지를노무현정부의‘재정개혁’,‘경제정책’,‘안보·사회정책’에할애하고있다.이전역대정부의정책비화는4장에서다룬다.노무현정부비중이높은것은저자의경력에기인하지만,노무현정부경제운용에대한세간의오해를바로잡고싶은강한의지때문이기도하다.저자에따르면노무현대통령은이념보다는실용을중시하는사람이었고시장경제원칙에충실했다.

노무현정부는인위적경기부양을하지않았다.그게경제를망친것처럼낙인이찍혀있다.나는지금이라도잘못알려진것을바로잡고싶다.일부부족한점은있겠지만이념에휩쓸리지않고기본에충실한경제정책을했다고자부한다.그래서초기에는어려움을겪었지만임기후반으로갈수록성과를냈다.반면에김영삼·김대중·이명박정부를보면초기에확장정책을폈다가임기말에는모두좋지않았다.-20쪽

그런데‘늘공(늘공무원)’이자보수적정통경제관료였던저자는어쩌다가개혁색채가진한대통령과한배를타게된것일까?대통령후보시절의노무현과의첫만남을저자는‘세상을바꾸고싶었던정치인,국가재정의틀을바꾸고싶었던경제관료의운명적만남’이라고평가한다.두사람의화두는‘국민을위한재정을만들자’는단한문장이었다.

식사중에노고문이옆자리에앉은나에게말을걸었다.국가재정에관한이야기였다.“내가대통령이되면정말국민을위한재정을쓰고싶습니다.아이디어가부족해고민입니다.”정치인에게서‘국민을위한재정’이란말을들은건처음이었다.마음깊은곳에서감동이일었다.나는‘톱다운’방식으로예산을편성해야한다고했다.“이건정말엄청난개혁을하지않으면안되는일입니다.시스템자체가그렇습니다.”내가이렇게말하자노고문이짧게답했다.“알겠습니다.하여튼그렇게좀할수있도록해봅시다.”-36쪽

‘국민을위한재정’을구현하기위해만든장기적정부계획서가‘비전2030’이었다.국민을위해재정을쓰려면국가가돈을어디에써서,나라를어떻게만들려하는지계획이필요했다.저자는기획예산처장관으로대한민국정부수립후처음으로만드는장기계획서인비전2030작업을주도하면서노무현대통령과함께‘2030년복지국가대한민국’의꿈을그렸다.그러나원대한포부는이해받지못했고언론과야당의집중포화를맞으면서비전2030은좌초되었다.

당장야당과언론은물론여당까지들고일어났다.“천국을꿈꾼다”“환상이다”하는온갖비난이쏟아졌다.재원논란이크게불거졌다.2030년까지1100조원(물가상승반영한경상가격)을투입한다고한게화근이었다.도박게임‘바다이야기’에빗대일확천금을노리는도박이나마찬가지라고꼬집는신문만평도있었다.-49쪽


“경제정책은이념과색깔을넘어서야한다”
대한민국의미래를그리기위한반성적회고록

《진영을넘어미래를그리다》는한미FTA협상타결과같은성공한정책은물론,비전2030처럼좌초한정책까지가리지않고담담하게수록하고있다.실패한정책에서도반면교사를찾자는취지다.저자는또회고록을통해‘경제정책만큼은이념대립을넘어서야한다’는메시지를독자에게전한다.

다시한미FTA협상타결직후다.노대통령이불쑥말을꺼냈다.“이상하다.왜지지율이상승하지.”한번도아니고세번이나비슷한얘기를했다.나는속으로어이가없었다.‘아니,FTA를타결하면당연히지지율이올라가지떨어질리가있나.’그런데왜노대통령은반대로생각했을까.그만큼지지자들의한미FTA반대에노대통령이마음고생을많이했기때문일것이다.노대통령은개방은거스를수없는대세이지만정치적으로는손해를감수한다는인식이강했다.‘이제협상을타결했으니지지세력이확떨어져나가겠지.’그게노대통령의짐작이었다.-73쪽

저자는노무현대통령이지지세력의반대를무릅쓰고국가의장기적관점에서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추진한사례를회고하며“내인생의20대부터50대까지줄곧했던일이경제정책수립이었습니다.경제정책은이념이나색깔에좌우되지말아야합니다.특정진영의논리로경제정책을수립하면안된다는뜻입니다.단기보다는장기적관점에서국민전체의이익을목표로해야한다는걸말하고싶었습니다”라고책을집필한속내를밝힌다.대통령이바뀔때마다판이하게다른정책으로혼란을겪어온것이우리현실이다.1973년부터2007년까지30여년의경제정책비화를담은이회고록이주는성찰은결코작지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