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에서 (제임스 설터 산문)

그때 그곳에서 (제임스 설터 산문)

$13.00
Description
작가의 작가, 제임스 설터의 소설 같은 여행기!
《스포츠와 여가》 《올 댓 이즈》의 저자 제임스 설터의 국내 첫 산문 『그때 그곳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의 도시와 시골을 걷고 머물며 쓴 열여덟 편의 산문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여행과 장소와 사람을 담은 자전적 기록이면서도 저자의 소설과 같은 정서를 담았고 또 소설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저자의 여느 소설처럼 이번 산문의 주된 정서도 덧없음이다. 저자는 여행기 곳곳에서 오래전 머물거나 스쳤던 곳들 혹은 역사 속의 장소들을 찾으며 지난날을 떠올리고 세월의 틈을 더듬어간다. 과거와 현재에 수시로 잠기며 세월 탓에 덧없는 환상처럼 다가오는 사람들과의 일을 떠올리고, 생략을 통해 더 큰 여운을 남기는 저자만의 문체로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 시간에 닳아가는 나날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기억들을 건져낸다.

중년이 되어 아내와 찾은 파리에서 떠올리는 전쟁 직후 젊었을 적의 파리와 그때 전전하던 저렴한 호텔들, 한 해 묵을 집을 찾아 사전답사를 갔던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인으로 처음 발을 들였으나 세월이 흘러 아들과 다시 찾은 일본, 롱아일랜드로 이름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시인 월트 휘트먼의 기억을 간직한 포마노크. 저자가 떠올리는 장소와 사람,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숱한 기억은 여행 자체보다 삶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 기억들은 삶이 그렇듯 덜 말해졌기에 더 그립고 애틋하고 그 뒷일이 알고 싶어지는 간절함을 자아낸다.
서로 독립적이면서 정서 면에서 일관된 열여덟 편의 글에서 저자의 기억 속에 큰 자리를 차지한 사람, 장소, 시절뿐 아니라 문학과 등반과 스키 같은 취미 이상의 것, 건축과 레스토랑과 음식 등의 내밀한 기호가 더없이 절제된 음성으로 회상된다. 기억을 한참 음미하며, 훗날 영롱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현재의 여정에 충실하면서 삶은 더욱 불가역적이고 허망한 것임을 지인과 역사·문학 속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빌려 이야기한다.
저자

제임스설터

저자제임스설터는미국소설가.1925년뉴저지에서태어나뉴욕에서자랐다.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졸업후전투기조종사로수많은전투에참전,비행중대장까지지냈다.한국전쟁경험을바탕으로군에서집필한『사냥꾼들』(1956)을출간하면서전역,전업작가로데뷔했다.1967년『스포츠와여가』로“사실적에로티즘의걸작”이라는평가를받으며작가로서입지를굳혔다.이후한동안시나리오집필에몰두해영화《다운힐레이서DownhillRacer》(1969)와《어포인트먼트TheAppointment》(1969)의시나리오를썼고,《세타인들Three》(1969)시나리오를쓰고연출했다.1975년『가벼운나날』을발표해큰호평을받았다.리처드포드는서문에서“소설을읽는독자들에게제임스설터가오늘날미국최고의문장가라는사실은일종의신념과도같다”라고썼고,줌파라히리는“이소설에부끄러울정도로큰빚을졌다”라고말했다.1988년펴낸단편집『황혼DuskandOtherStories』으로이듬해펜/포크너상을받았으며,시집『스틸서치StillSuch』(1988),회고록『불타는날들BurningtheDays』(1997)를냈다.2000년대들어서는단편집『어젯밤』(2005)을발표해“삶이라는터질듯한혼돈을누구도설터처럼그려내지못한다”라는찬사를받았다.이밖의작품으로소설『암오브플레시TheArmofFlesh』(1961,2000년개정판은『캐사다Cassada』),『솔로페이스SoloFaces』(1979),여행기『그때그곳에서』(2005),부부가함께쓴에세이『위대한한스푼LifeisMeals』(2006)등이있다.2013년장편소설『올댓이즈』를발표해“더없을위업”“설터의작품중에서도최고”등수많은극찬을받았다.2012년펜/포크너재단이뛰어난단편작가에게수여하는펜/맬러머드상을받았고,2013년에는예일대에서제정한윈덤캠벨문학상수상자로선정됐다.2015년6월,뉴욕주새그하버에서아흔의나이로세상을떠났다.

목차

서문

신고물품없음
유럽
공동묘지
파리
사이렌의노래
왕들의프랑스
프랑스의여름
바젤의저녁
스키타는삶
고전적인티롤
유럽의최장코스
불멸의나날
승리아니면죽음
잘안가는길
미시마의선택
트리어
다운스걷기
포마노크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제임스설터의국내첫산문
“작가의작가”가쓴소설같은여행기

작가는낯설고이질적인경험에서글감을얻고,그래서많은작가가디아스포라를자처하며여행자에이방인으로나섰다.제임스설터도그랬다.제2차세계대전때전투기를몰았던굵고선한기억이각인된이래미국,유럽,아시아할것없이몇달,길게는몇년씩살며공허함을채웠고그경험들을동력삼아소설을썼다.언젠가<파리리뷰>와의인터뷰에서그는이렇게말했다.“여행은인생을다른방식으로보는문제예요.어떤의미에서작가는늘뭔가를알려주는유랑자이고아웃사이더여서계속이동하는게삶의일부랍니다.”
『그때그곳에서』는『어젯밤』『가벼운나날』『스포츠와여가』『올댓이즈』『사냥꾼들』등으로“작가의작가”라는찬사를받는제임스설터의국내첫산문이다.원체다작을하지않고자기경험을소설로승화할지언정자아를앞세우는글을자제했던작가임을떠올려볼때이여행기는소설작품과는다른고유함이있다.하지만『그때그곳에서』를더고유하게만드는건이책이여행과장소와사람을담은자전적기록이면서도그의소설과같은정서를담았고또소설처럼읽힌다는점이다.미국,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일본의도시와시골을걷고머물며쓴열여덟편의산문에서제임스설터는과거와현재에수시로잠기며세월탓에덧없는환상처럼다가오는사람들과의일을떠올리고,생략을통해더큰여운을남기는그만의문체로살아온날과살아갈날,시간에닳아가는나날속에서영롱하게빛나는기억들을건져낸다.

"나는자욱한아침안개로덮인몽파르나스공동묘지위쪽에서가을과겨울한철씩살았고,광활하고차가운망자의숲을걸어일하러갔다.길은비어있었고,나는지나치는모든것을들여다보고낯선이름들에잠겨어지럼증을느꼈다.연인과가족들이점심을하러들른일요일레스토랑의대화처럼내가절대알수없지만유혹의파도처럼다가온삶의역사같은이름들.그이름을쓴이상한글자들에나는어리둥절했고,술취해듣는음악처럼그것들을상상했다.나는부패의향이라여긴그희미하고시큼한냄새와더불어글자들을들이마셨다.발레리의말을빌리자면“삶의선물이꽃으로화하는”그냄새를아직도기억한다."
-58쪽

"제임스설터는내가전작을읽고싶은몇안되는북미작가중하나로,출간전인책들을안달하며기다리게된다."
-수전손택

조각조각떠오르는사람과장소
예술,책,사람으로부터배우는삶의방식

"여러해동안나는스키에헌신했다.시간을들였고뼈가많이부러졌다.뼈는아물었고─이제어느쪽어깨나다리였는지조차말할수없다─시간은허투루쓰이지않았다.말해줄것도회상할것도없는시간이진정낭비된시간일뿐,많은것을기억하고있으니시간은허투루쓰인게아니다.오트루트나버거부엔못갔지만나머지는나의일부다.나는어린사내아이와리프트를타고올라가고있었다.옛날버몬트에서겪은일이다.여덟아홉살쯤되었고영국인같은금발에잘생긴소년이었다.그가친구에게그러듯이내게몸을돌리더니눈덮인세상에둘러싸여털어놓았다.'진짜재밌어요.그렇지않나요?'그가진짜맞았다."
-152쪽

서로독립적이면서정서면에서일관된열여덟편의글에서는제임스설터의기억속에큰자리를차지한사람,장소,시절뿐아니라문학과등반과스키같은취미이상의것,건축과레스토랑과음식등의내밀한기호가더없이절제된음성으로회상된다.
중년이되어아내와찾은파리에서떠올리는전쟁직후젊었을적의파리와그때전전하던저렴한호텔들.출판계의첫친구로이제는고인이돼버린지인과언젠가저녁을들기로약속했던파리의식당.한때로마에서만나냉소를구축하게만든이기적인여자.한해묵을집을찾아사전답사를갔던프랑스의시골마을들.스위스바젤에서어느저녁슈페츨리를함께먹었던이상적인여인.모든영광을뒤로하고조용히은퇴한오스트리아의전스키선수와그가이끌어준스키.번영이지나고쇠락해버린미국콜로라도의광산촌과산골마을에서겨울을기다리던일.제2차세계대전때군인으로처음발을들였으나세월이흘러아들과다시찾은일본.미시마유키오가좋아해이따금들러글을썼다던도쿄의힐톱호텔.지도를들고갈매기가날아다니는목초지를하염없이걸었던영국사우스다운스웨이.그리고롱아일랜드로이름은바뀌었어도여전히시인월트휘트먼의기억을간직한포마노크.
제임스설터의장소와사람,그리고거기서가지를친숱한기억은여행자체보다삶에방점이찍혀있다.그기억들은편편이덧없음의정서를띠고인상파화가의그림처럼전해지지만진실하며,삶이그렇듯덜말해졌기에더그립고애틋하고그뒷일이알고싶어지는간절함을자아낸다.

"자기연민이라고는조금도찾아볼수없었다.예술,책,사람으로부터배우는최고의교훈은여전히삶의방식이다.그녀의얼굴엔평정심이넘쳤다.나는그게보기좋았다.그녀는아는것의아주일부만말했다.나는E.M.포스터가재능을사랑했던여자를떠올렸다.여자란섬세한지각과관용적판단이있어야하며,도덕적인우월함과생생한성격묘사능력을갖추고세가지분야에서전문가여야한다고그는묘사했다.셰에라자드였다.그런부류의여자가내앞에앉아있었다."
-129쪽

삶·역사·문학속인물들의호출
시간을곱씹는진액같은문장

"우리가거기에어떻게갔는지는잊었다.사진이밖에걸려있었다.분위기를살피려고내가먼저들어가보았다.스타일괜찮은곳으로보였다.“어때?”내가나오자다들물어봤다.'훌륭해.'내가말하자다들들어갔다.나는“네이트단골집이래”하고설명했다.예쁜여자들이여럿있었다.악단이연주중이었고바도있었을것이다.'300프랑씩달라고.'나는좀아는듯말했다.'그럼내가계산을책임지지.'여자들은이미자기소개를시작하고있었다.경험이없지않은와이스와듀발이‘자,그럼’이라말하는양짧은시선을나누는게보였다.2차에서돈은바닥났지만그건중요하지않았던것같다.프랑스로의출항전날밤처럼쏟아지는행복을느꼈다.줄곧그랬고지금도행복의일부는선명하게남아있지만그게어디서비롯했는지는알수없다.나는이후로그거리를찾아보았지만,지금은사라져버렸다."
-55쪽

제임스설터의여느소설처럼『그때그곳에서』의주된정서도덧없음이다.그는여행기곳곳에서오래전머물거나스쳤던곳들혹은역사속의장소들을찾으며지난날을떠올리고세월의틈을더듬는다.과거나지금이나장소는같지만혼자이던것이둘이되었고,군용선을타고건넜던바다는여객기로이동하게되었고,전란으로폐허였던곳은빌딩숲이되었으며,영원한번영을누릴것같던곳은터만남긴채사라졌다.그러는사이친구,연인,우상이었고한때아군이거나적이었던기억속의수많은사람이과거속으로떠밀려갔다.그리고그는더나이먹고더풍족해지고세상을더많이알게됐지만,그래서삶은더욱불가역적이고허망한것임을제임스설터는지인과역사·문학속인물들의에피소드를빌려이야기한다.한없는무상함에흔들리지않고,“단어를손바닥에놓고곱씹으며진액만남도록문장을졸이는”그답게기억을한참음미하며,훗날영롱하게떠올릴수있도록현재의여정에충실하면서.

"유럽대륙에서겨울스포츠,특히스키의인기를일으킨건영국인이지만요즘영국인은소수다.클로스터스에찾아오는대부분은스위스인이고독일인,마침내는10퍼센트정도일미국인이찾아온다.거의모두가차를몰고오지만기차를타고오면엄청나게편하다.그리고예를들어알피나나체사에머무른다면임대기차를길건너기차역에끌고오는거나마찬가지다.1920년대까지만해도농부들이막아그리송에차를몰고오는게금지됐었다.요즘새로운주택,호텔,콘도미니엄없는마을을떠올리는것만큼이나상상하기어려운일이다.'단순배관공도죄백만장자가되죠.'호텔소유주한명이의견을밝혔다.'모든건축가도요.스위스에서건축가는명망있는직함이아니에요.모두가자칭건축가니까.'그는침울하게말을보탰다.
하지만정상에서몇킬로미터나계속되는길고긴코스,눈에갇힌겨울풍경을달리다보면옛날같은느낌이든다.저아래멀리계곡에자리한집들,빠르게내닫는흔적이스키밑에서영원할것만같다."
-166~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