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나기 선생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독하지만 따뜻한 산문 | 음지 양지 모두 품은 인류학 입문)

우나기 선생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독하지만 따뜻한 산문 | 음지 양지 모두 품은 인류학 입문)

$19.10
Description
일본 영화사의 굴곡을 지나와 거장으로 남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낱낱의 삶을 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라야마부시코》, 《우나기》로 세계적인 거장의 자리에 오른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첫 산문집 『우나기 선생』.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41편의 산문, 오직 이 책을 위해 사흘 동안 진행된 인터뷰 전편, 그리고 그의 모든 영화를 다룬 상세한 필모그래피로 이루어져 있다.

쇼치쿠 영화사의 조감독으로 입사해 오즈 야스지로 같은 거장 밑에서 일하다 닛카쓰 영화사로 옮겨 감독 데뷔를 하고, 더 자유로운 제작을 위해 ‘이마무라 프로덕션’을 차려 독립하고, 후학을 키우고자 일본영화학교(지금의 일본영화대학)를 세우고 운영하기까지, 배우론, 연출론, 제작론, 교육론을 포함해 영화판에서 그가 겪은 수많은 일화가 담겨 있다.

나아가 태평양전쟁 전후의 개인사며 추억,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쑥대밭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관찰과 자신의 별별 생활법 등 따뜻하고 쾌활한 예술가의 일화들을 통해 영화 바깥의 저자의 생각까지 엿볼 수 있다. 탁한 삶을 그리면서도 인간적 정서를 놓지 않았던 그의 영화들처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삶에 열심이었던 현실의 저자를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이마무라쇼헤이

영화감독,다큐멘터리작가,영화제작자.1926년9월15일도쿄에서중산층집안의셋째아들로태어나어려서부터아버지와연극을보러다녔다.제2차세계대전당시징용을피하다종전이듬해인1946년와세다대학교서양사과에진학했으나학업보다는연극부활동에매진했다.이무렵가정교사로일하는한편전후戰後의어수선한분위기속에서암시장을드나들며돈을벌고훗날그의작품에자주투영될뒷골목문화를익혔다.1951년대학교를졸업하고쇼치쿠오후나촬영소에조감독으로입사해오즈야스지로,이케다다다오,오바히데오등명장들밑에서일했으나가장큰영향을준건가와시마유조였다.3년뒤인1954년닛카쓰촬영소로자리를옮겨1956년가와시마유조감독의<풍선>으로각본데뷔,1958년<도둑맞은욕정>으로감독데뷔했다.첫감독작부터세간의주목을받았고<돼지와군함><일본곤충기><붉은살의>등으로명장의자리를굳혔다.1966년더자유로운영화제작을위해닛카쓰에서나와이마무라프로덕션을차리고<인류학입문><인간증발><신들의깊은욕망>등을내놓아명성을날렸다.그뒤한참다큐멘터리에전념하다극영화로는11년만인1979년걸작<복수는나의것>으로화려하게컴백했다.이후칸영화제황금종려상2회수상의영광을안긴<나라야마부시코>와<우나기>를비롯해<간장선생><붉은다리아래따뜻한물>등말년까지철저하고속깊은영화를남겼다.
2006년5월30일도쿄에서간암으로사망했다.일본영화대학의전신인일본영화학교를세운존경받는교육자로서,현재일본영화업계종사자중상당수가이학교출신이다.

목차

신주쿠의벚꽃은환상

청춘기행,쇼치쿠조감독시대/요코스카항구기행/픽션과다큐멘터리의경계에서/여자프로듀서/농촌실습/사투리/결혼식/선생님의가르침/성실한여배우/항구마을의낭만/그옛날의삭막함/일본영화의발견/나의스승/히바리추도/오징어젓/유도가의죽음/K군과하구로도/꽃피는체리와기타무라가즈오/신주쿠유곽터에서/노년의동창회에서/쑥대밭의무덤/조숙한소년/가와시마유조기념회/싱가포르의왕씨/남태국의일본인의사/영화인과빚/40대독신남두사람/경솔한강사/유객인명부/<검은비>제작현장에서/말의문제/도시형전중파/요전번전쟁/나라야마부시의현재/자욱한비합리/윗분들의청소사업/A군의배구/서혜부와안구/올로케이션영화의비애/신주쿠벚꽃환상/여성의세기

저건더이상방도가없다

여성의성근원에도사린것/어떻게바뀔지모릅니다/단역이어도존재감이분명해서말이지/가와시마유조는압도적으로훌륭한감독/감정을조장하는음악은필요없다/이타이틀은몹시부끄러웠다/내뜻과달라서심통을내면서찍었습니다/매력없는여자를보면손해봤다고생각한다/나한테문부대신상같은걸줘도괜찮은가/더모자라고더의지가없는녀석을그리고싶었다/한인간을철저히조사해대본을만들어본다/못난여자가자기주장을하기시작한다/저건더이상방도가없다/연출은하지않기로약속하고/처음부터세트를철거할생각은아니었다/배우들모두한테서무시당했죠/요코스카와는인연이깊다/배우도아직기대할만하다/다시찍고싶은작품중하나이기는하다/조감독이었을때부터올로케이션으로찍고싶었다/우라야마기리오의죽음으로돌연방향전환/컬러는아무리해도색이경박해진다/칸에는상을받는단계까지있어본적이없다/땅을파는데신경을기울였다/장어다음은잉어가어떤가/이쪽도늙어빠져있을수는없는것이다

좋지않은가,필모그래피

[극장영화]
도둑맞은욕정/니시긴자역앞에서/끝없는욕망/니안짱/돼지와군함/일본곤충기/붉은살의/인류학입문/인간증발/신들의깊은욕망/호스티스가말하는일본전후사/복수는나의것/좋지않은가/나라야마부시코/뚜쟁이/검은비/우나기/간장선생/붉은다리아래따뜻한물

[텔레비전기록영화]
미귀환병을좇아(말레이시아편·태국편)/멀리가고싶다─나의시모키타/부부안의해적/가라유키상/무호마쓰,고향으로돌아가다

[그밖의작품]

<붉은살의>현장대본
후기를대신하여
연보
참고문헌
옮긴이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칸영화제그랑프리를두번수상한일본감독
영화감독이마무라쇼헤이의첫산문집

과거사문제와사회적반감때문에음성적으로향유되던일본대중문화가공식적으로우리나라에받아들여진건겨우1998년10월,제1차일본대중문화개방조치가시행되면서부터다.하지만이때도영화,비디오,출판물등에서부분적인개방만허용됐는데,영화의경우한일공동제작영화이거나세계4대영화제수상작에한한다는까다로운조건때문에단네편의영화만이극장에걸릴수있었다.구로사와아키라의<가게무샤>,기타노다케시의<하나비>,박철수의<가족시네마>,그리고이마무라쇼헤이의<우나기>.
1997년<우나기>로칸영화제황금종려상을받기전에도이마무라쇼헤이는1983년일본판고려장이야기인<나라야마부시코>로먼저같은상을받고이미세계적거장의위치에올라있었으며,칸영화제그랑프리를두번수상한유일한일본감독이라는기록은아직까지깨지지않고있다.하지만의외로그는이런성취를이루고도화려하고밝은주목을누리기는어색해했다.대학시절부터문학도답지않게신주쿠암시장등을돌며뒷골목문화를익히고비주류인사람들속에서갖은고생을한까닭에어떤저항심내지반골성을띠지않을수없었기때문일것이다.그는영화와다큐멘터리를오가며건달,창부,재일조선인,그밖에외면당한사람들에게자주눈길을쏟았고대중의기호에아랑곳하지않는길을걸었다.일본영화계의스튜디오시스템에안주하며예술적성취를이루거나돈되는영화를만들겠단일념을간직하기보다는,자금을모으려집을저당잡히고주변에아쉬운소리를하는한이있어도자신이해야할영화를만들었다.그렇게그만의주제와영화기법을지켜<복수는나의것>등지금껏영감을주고인용되는걸작을남겼다.
『우나기선생』은영화감독이마무라쇼헤이의국내첫산문집이다.그가여러매체에기고했던41편의산문,오직이책을위해사흘동안진행된인터뷰전편,그리고그의모든영화를다룬상세한필모그래피로이루어져있다.쇼치쿠영화사의조감독으로입사해오즈야스지로같은거장밑에서일하다닛카쓰영화사로옮겨감독데뷔를하고,더자유로운제작을위해‘이마무라프로덕션’을차려독립하고,후학을키우고자일본영화학교(지금의일본영화대학)를세우고운영하기까지,배우론,연출론,제작론,교육론을포함해영화판에서그가겪은수많은일화가한편한편유머와우수를간직한채그려다.나아가영화바깥의이마무라쇼헤이도섬세하게보여주는데,태평양전쟁전후의개인사며추억,그리고전쟁이끝난뒤쑥대밭에서살아가는인간군상에대한관찰과자신의별별생활법등따뜻하고쾌활한예술가의일화들이다.대학시절문학을끼고살았고사실을채집하는데능한감독답게이마무라쇼헤이의글은문학과다큐멘터리의중간에있어,자신의일들을영화처럼생생하게전한다.탁한삶을그리면서도인간적정서를놓지않았던그의영화들처럼사람에대한애정을잃지않고삶에열심이었던현실의이마무라쇼헤이를만날수있는첫책이다.

관찰자이마무라쇼헤이의인류학입문
독하고따뜻한산문에담은인간군상의희비극

<돼지와군함>이끝나자역시300-400만엔쯤예산이오버돼프로듀서는시말서를쓰고,나는이후3년정도작업배당을못받고,근소한계약금을받기는했어도밀려난것이다.어쩔수없이나는아내와나이어린두아이를데리고도카이도의미시마에옮겨가살았다.
-232쪽

이마무라쇼헤이는칸영화제그랑프리를받은두영화와<복수는나의것>으로이름을크게떨쳤지만,그의극영화들이되도록감정을자제한데서도알수있듯이다큐멘터리,즉관찰과기록에무척능한감독이었다.<돼지와군함><일본곤충기><인류학입문><인간증발>같은1960년대의작품들은다큐멘터리이거나혹은다큐멘터리에버금가는조사가뒷받침된영화이고,그뒤에는1979년<복수는나의것>을내기전까지11년간자의반타의반으로극영화를쉬면서아예여러편의다큐멘터리를만들었다.그는영화만들기의재미를다음의한마디로압축한다.“인간이재미있다.”(「후기를대신하여」)본질적으로인간본성에대한관찰과고찰에서그의예술은이루어졌다.
이런면은그의산문에서도유감없이발휘된다.이마무라쇼헤이는영화를만들때“감정을조장하는음악은필요없다”잘라말하는데그의글도다르지않아,억지스럽게꾸미기보다는그저겪은일들을사실위주로,과잉된감정없이편안하게풀어놓는다.그것도예술가인자신의심미적인자아를천착하는법은거의없고,자신이직접겪었던태평양전쟁전후의도쿄라든지그쑥대밭에서살아가던사람들이야기,전쟁전의평온했던가족이야기,대학시절신주쿠암시장을드나들며인생공부를한이야기,일상에서스치거나로케이션헌팅을다니며만난사람들이야기등이다.그의눈은대부분타인을향해있다.그에겐자기외부의모든게글감이자영화소재였다.
그가타인의삶,특히소외당한사람들의삶을주목하게된계기는정확히이야기하지않지만그의산문곳곳에는태평양전쟁전후로크게달라진삶이때로는자신의일화로,때로는타인의일화로담담하게그려져있다.이마무라쇼헤이는본성을억누르고사는범상한일본인을주목하는대신더없이솔직한하층민과서민을주목하며,큰역사의이면에서실핏줄처럼무시되다가때로통증으로다가오는,일본사회의모순이라할삶들을요리조리따지고기억한다.과한동정없이,하지만애정은듬뿍담아,산전수전을겪어본사람답게의젓한웃음을동반해쓴그의글에서거장의배포며어른의너그러운마음을느낄수있다.

많이조사하느라너무나가서탐정회사같이됐어요.조수일을하는사람들은호적등본을떼다놓고“시나리오네요”라더군요.호적등본을보니굉장히재미있어요.어떤사람의과거를조사하려고호적을보고,그사람이정착한발자취를제1고에서제2고로끝도없이계속작업했습니다.이걸“호적놀이”라고부르고있죠.기층사회를계속해서조사해요.<일본곤충기>때는매춘부와매춘알선업자의관계를취재해서썼더니대학노트세권이됐어요.듣고기록하는취재가무척재미있는거죠.그런데이걸캐스팅해서영화로만들려고하면전혀다른기분이돼버려요.이취재한것이영화화되면얼마나재미있을까생각은합니다만.줄거리를쓰지않아도제대로기층사회를맞닥뜨리니까요.
-231쪽

조감독,감독,제작자를거쳐선생이되기까지
이마무라쇼헤이가영화계에서살아가는법

쇼와32년(1957년)매춘방지법이성립한해,요코스카를무대로<돼지와군함>이라는영화의시나리오를쓰고있을때당시아직건강했던오즈야스지로와노다고고선생이입을모아“그대들뭘일부러좋아서버러지만그리나?”라고말씀하셨지.그때결정했다.‘나는죽을때까지버러지만그린다.’
-218쪽

이마무라쇼헤이는1951년와세다대학교서양사과를졸업하고그해쇼치쿠영화사조감독부에입사했다.당시는일본영화가막최전성기로발돋움하던때로,쇼치쿠영화사는오즈야스지로,가와시마유조,시부야미노루같은명감독들을보유하고철저한도제시스템을앞세워영화부흥에큰몫을했다.이런환경에서는으레제자가스승의그늘안에안주하기쉽지만이마무라쇼헤이는탁월하게주체적인사람이었다.그는3년만에쇼치쿠의시스템을벗어나닛카쓰영화사에서자기영화를일구어갔으며,1960년대에는쇼치쿠소속인오시마나기사같은감독들과일본영화의뉴웨이브를이끌었다.일본의영화사들이줄도산한60년대후반70년대초반에도그는자기의작풍을지키며끝내살아남았고이후의성과는알려진대로다.
하지만그의예술적아집은오로지자신만을위한게아니었다.이마무라쇼헤이는그토록동경한구로사와아키라와가와시마유조뿐아니라존경과애증이공존했던오즈야스지로같은앞세대감독들이하지못한일,즉‘일본영화학교’를만들어젊은영화인을키우는일에자신의힘과재산을모두털었다.앞세대에대한반감에서인지아닌지는알수없지만그의교육은거칠긴해도도제방식과는달랐고,사제의관계도경직되었던옛날과달랐다.그의영화가그랬던것처럼이학교도자기혁신을계속해지금은‘일본영화대학’으로개편되었다.현재일본영화업계종사자중상당수가이학교출신이며,우리나라와중국등해외에서도학생이끊이지않는다.
『우나기선생』에는쇼치쿠영화사의조감독으로시작해세계적거장이되고,거기서번돈으로다시비대중적영화를만드는것도모자라영화학교선생님이되어학생들과티격태격하기까지의흥미로운에피소드가빼곡히담겼다.일본영화계시스템의부흥과붕괴를함께하면서도움츠러들지않고끊임없이자신의강단을지킨감독의호방한면면을만날수있다.일본영화사史의굴곡을지나와끝까지거장으로남은이마무라쇼헤이의낱낱의삶을그자신의글과말로전한다.

일본영화학교도창립후얼마되지않았고게다가이사측에의지는낮으나투기심은충분하다는식의멤버도있고나도이치만좇아서,운영이뜻대로안되는시기가있었다.덤으로내조수가감독독립하도록자금마련도도와야해서엉덩이에불이붙은것같은1년이었다.상층부를완전히교체하고일체의책임을혼자서폼나게짊어졌지만빌딩의집세도직원의급료도지불할수없어서오랜지인,친구에게기대어곳곳에돈을빌리며돌아다녔다.(…)남탓을할수는없다.학생들이적으로보이는게싫어서죽을만큼지쳤지만,몇사람인가하고뜻밖에얼굴을마주하게되면“선생님,영화찍어주세요.우리가아르바이트해서자금을모을테니까”라고말해“얼마모이는데?”라고물으니“한사람에5만엔씩30명이라고치고150만은모입니다”라고말한다.금액의적음도감동적이라나도모르게눈물을머금은일도있다.
-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