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의 말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 | 양장본 Hardcover)

아녜스 바르다의 말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 | 양장본 Hardcover)

$23.95
Description
사진, 영화, 설치 미술까지 분야를 넘나든 전방위 예술가
아녜스 바르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주는 국내 첫 책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으로 영화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며 일찌감치 ‘누벨바그의 대모’라는 수식어를 거머쥔 아녜스 바르다. 그는 기성 상업 영화의 관습을 거부하고 저예산, 즉흥성, 자유로운 촬영 기법을 중시한 누벨바그의 선구자로 불린다. 첫 작품을 만들기 전까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바르다는 영화를 잘 몰랐기에 오히려 기존의 영화 어법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진가로서 예술가 인생에 첫발을 내디딘 바르다는 “사진을 찍는 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국립민중극장의 공식 사진가로 당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찍으며 영화와의 연결 고리가 생겨났고, 자연스레 영화라는 또 다른 표현 수단을 얻게 됐다. 사진과 영화를 병행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던 그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3) 촬영 중 발견한 감자를 설치 미술 작품으로 발전시키며 미술작가로의 행보를 시작한다. 머릿속에 펼쳐진 드넓은 세계를 시각적 우주로 만들어내는 방식에 한계란 없었다. 그러나 평생 쌓아 올린 바르다의 명성과 업적은 철저하게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리크 로메르 등 같은 시대 남성 감독들 뒤에 놓여 왔다. “저는 그저 완벽한 문화적 도구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시네마테크나 도서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죠. 저는 잊힐 거예요.”

마음산책 열네 번째 ‘말 시리즈’의 주인공은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호랑이처럼 싸워야만” 했던 아녜스 바르다이다. 그는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발견하는 모순들을 끊임없이 조명해왔다. 처음으로 국내에 바르다를 소개하는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에는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스무 편의 인터뷰가 담겼다. 연도순으로 각본가, 영화평론가, 배우 등 각기 다른 스무 명의 인터뷰어와 나누는 때론 유쾌하게 장난스럽고 때론 묵직하게 진솔한 대화들은 읽는 이를 웃고 울게 한다.

유년 시절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자란 덕에 자유의 감각을 얻게 되었다는 일화부터 영화감독이자 창작자로서 느끼는 고충과 희열, 외부 반응에 휘둘리지 않으며 예술적 자아를 유지하는 힘, 삶과 사람을 향한 애정,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한 견해까지 내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터뷰 당시 상황에 따라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즉흥적인 발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톡톡한 매력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아녜스 바르다의 말』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료집 역할을 한다. 2019년 아흔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는 작품을 넘어 그 자신의 말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곧 죽겠죠. 하지만 제 작품은 저 스스로도 존중해요. 제 작품을 칭찬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싸워서 얻어낸, 싸울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로요. 돈도 없이, 힘도 없이, 보답도 없이 늘 투쟁해왔죠. 찾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손을 놓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제가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걸 원치 않아요.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아요. 완성된 제 작품엔 박수를 보내면서도 말이죠.
─258쪽

바르다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주변인으로 여겼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미술로 자연스럽게 새 영토를 개척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지금 자신에게 적합한 표현 수단을 찾았다. 그의 삶이 그의 작품 목록만큼이나 풍성해 보이는 이유는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르다에게 주된 표현 도구는 영화였고, 그는 그 도구를 마음껏 활용했다. 더할 나위 없이.
─407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저자

아녜스바르다

전방위예술가.사진가,영화감독,미술작가를넘나들며특유의작품세계를펼쳐보였다.1928년벨기에브뤼셀출생으로프랑스인어머니와그리스인아버지사이에서태어났다.프랑스남부의세트지방에서유년시절을보내다1943년파리로이사한다.에콜뒤루브르에서미술사와사진을공부하고,소르본대학교에서문학과심리학을전공한다.국립민중극장의사진가로일하며당대유명배우들의사진을찍지만,정지된이미지에만족하지못하고사진의전과후를그려내는작업에흥미를갖는다.1954년영화사타마리스필름스를설립해〈라푸앵트쿠르트로의여행〉을쓰고연출한다.바르다는이영화로불과서른남짓한나이에‘누벨바그의대모’라는찬사를얻는다.사실과허구를결합한실험적인영화제작은이후바르다의작품세계에일관되게나타난다.
누벨바그의유일한여성감독으로주체적여성으로서자각과삶에서발견하는모순,지금여기의현실에대해꾸준히이야기했다.1962년자크드미와결혼한해에는죽음을앞두고자신과세상을재인식하는한여성을다룬〈5시부터7시까지의클레오〉로대중에자신의존재를각인시킨다.인상파화가의작품을연상케하는영상미의〈행복〉(1964)으로베를린영화제은곰상을,다큐멘터리의예술적걸작이라불리는〈방랑자〉(1985)로베니스영화제황금사자상을거머쥔다.2000년에는버려진물건을줍는사람들의모습을담아낭비사회를비판한〈이삭줍는사람들과나〉로영화계안팎에큰반향을일으킨다.이영화를찍으며발견한감자를설치미술작품으로발전시킨〈감자유토피아Patatutopia〉는미술작가로서행보를시작하는계기가된다.
말년까지왕성한창작욕을보이며젊은예술가JR과협업한〈바르다가사랑한얼굴들〉(2017)로칸영화제에서최우수다큐멘터리에수여하는골든아이상을받는다.한편새로운물결을이끈영화사적공로를인정받아2015년칸영화제명예황금종려상을,2017년미국아카데미위원회가주관하는거버너스어워즈에서명예오스카상을수상한다.2019년2월에는베를린영화제에서60여년에이르는영화창작인생을회고한〈아녜스가말하는바르다〉를발표해영화팬들을기쁘게한바르다는그해3월,파리자택에서암합병증으로90세에생을마감한다.

목차

서문_제퍼슨클라인

5시부터7시까지의아녜스바르다
모든창작자는매개자다
세속적우아함
땅속을흐르는직관의강
여성은사랑만하는존재가아니에요
나,영화만드는사람
삶을통해구축되는영화
바다는그어디도아니라서
시간은혈액의순환을닮았어요
다양한우연의순간들
저는잊힐거예요
하고싶은걸자유롭게
타로카드인터뷰
영화는죽고싶어하지않아요
개척자는언제나모험을추구해요
줍는자의소박한몸짓
새로운친구를소개하듯이
하나의세계를만드는작업
영화만들기와직관을향한애정
다들평화롭게지내면좋겠어요

옮긴이의말
연보
원주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삶과사람을향해보내는집요한애정
휴머니즘과굽히지않는긍정주의로빚어낸작품세계

바르다의관심은늘지금여기,우리가살고있는현실세계와그세계를구성하는사람들을향했다.삶에서포착한문제의식을유의미하게전달하기위해바르다는허구와실재를결합하는표현방식을고수한다.“다큐멘터리와픽션이라는두장르사이에다리를놓으려”한노력은실제마을주민들과배우들을함께출연시킨〈라푸앵트쿠르트로의여행〉에서부터시작한다.〈5시부터7시까지의클레오〉(1962)에서클레오가바라보는거리또한실제거리의풍경을그대로담아내최대한다큐멘터리의질감을살리려했다.떠돌이소녀의죽음을회고적으로돌아보는〈방랑자〉(1985),40세여성과15세소년의사랑이야기를그린〈아무도모르게〉(1987),남편자크드미의어린시절을탐구한〈낭트의자코〉(1991)등바르다의픽션영화는다큐멘터리와픽션의경계를절묘하게오간다.
이러한영화만들기는새로운시도를주저하지않는탐구적이고실험정신강한바르다의성향에서비롯되었다.첫아이를임신한상태에서촬영한다큐멘터리영화〈오페라무프거리〉(1958)에서는한임신부가무프타르거리를거닐며품는다양한상념들을접이식의자위에올라가담아냈다.〈다게레오타입〉(1975)에서는80미터짜리전선을다른차원의탯줄로상상하며그범위안에사는주변이웃들을보여준다.남이버린물건과음식을주워생계를유지하는실제인물들의모습을그려낸〈이삭줍는사람들과나〉(2000)는형식뿐아니라내용면에서도영화계안팎으로큰반향을불러일으켰다.여기서멈추지않은바르다는젊은예술가JR과사진트럭을타고프랑스마을을돌아다니며촬영한〈바르다가사랑한얼굴들〉(2017)로“시네마로쓰는에세이의정점”(김혜리)에올라섰다.
한동안영화에전념하던바르다는일흔중반에들어서설치미술로보다도전적이고혁신적인작업을할수있다는사실을발견한다.일찍이“영화를만드는이유는소통하고함께나누기위해서”라고말했던그는,관객들을작품속으로더욱친밀하게끌어들일수있는설치미술에큰매력을느끼며작업을이어간다.지칠줄모르는열정과활동영역의확장에도변함없이바르다의내면한가운데자리했던것은사람과삶을향한애정이었다.그런휴머니스트적인면모야말로바르다의예술생애를지탱하고앞으로나아가게한원동력이라고할수있다.

“우린서로알고지내는사이잖아요.우리가서로를좀더잘이해할수있기를원해요.제영화에서당신을왜곡하는일은절대없을거예요.그저제가할수있는한,최대한꾸밈없이영화에담아낼게요.”(…)다시말해,누군가에게다가가려한다면아주부드럽게움직여야해요.물리적으로천천히,도의적으로도천천히다가가야해요.어떤인물을향해줌인을한다면,최대한부드럽게해야해요.그들의실제움직임을유기적으로,생물학적으로도정확한방식으로따라가야하죠.카메라가움직일땐영화의리듬을따라야만해요.
─140~141쪽

촬영은영화언어들가운데하나예요.구도잡기나편집과마찬가지로요.관객을영화에집중하게만들어야하지만,동시에거리를두고판단할수있게끔해야하기도하죠.관객들의감정선을제의도대로움직이려하지않았어요.궁극적으로모든창작자는매개자예요.삶과우리가감정이라부르는직감으로이루어진자연스러운생산물을관객에게전달하는임무를수행하는중개자죠.
─62쪽


여성으로서여성의영화를만든다는자긍심
계속싸워나가면서더나은삶을꿈꾸자는희망의메시지

바르다는차분하고꾸준한관심으로‘여성’의주체적인삶을고민했고,그에관해말하기를멈추지않았다.〈5시부터7시까지의클레오〉는암진단을기다리며자신과세상을재인식하게되는한여성의이야기로관객들의큰호응을얻었다.뒤이어나온〈행복〉(1964)에서는아내를두고또다른사랑을찾는남편에게단죄를가하지않았다는이유로급진적페미니스트들에게거센비난을받기도한다.이에대해바르다는자신이〈행복〉에서그리고자했던것은행복의가변성과죽음이라는두가지테마였음을확실히했다.
몇년뒤그는조금더직접적으로페미니즘을다룬영화한편을만든다.두여성의우정을보여주면서동시에여성이낙태할권리를주장한〈노래하는여자,노래하지않는여자〉(1977)를통해68혁명보다보비니(한소녀가성폭행당한뒤낙태를했다는이유로유죄판결을받아광범위한저항을불러온사건)가더중요하다는의견을피력한다.이미1971년여성지식인343명이참여한낙태합법화찬성선언문에이름을올리기도한터였다.바르다는그때까지남성영화감독들손에수동적이고사랑밖에모르는존재로다뤄진여성상에반기를들며주체적인여성을그리는데주력했다.
“저는제자신을페미니스트라고말할수있어요.물론다른페미니스트들이보기엔충분치않겠지만요.”스스로말하듯바르다는여성각자가자기만의방식과속도대로여성운동에참여하기를바랐다.자신의한계를인정하면서도급진적이지않은여성들을탄압하는대신,다양한유형의여성들과함께사회제도와관습을바꿔나가야한다고생각했다.“페미니스트들에게는충분히페미니스트적이지못하고,다른이들에게는너무페미니스트적”이라고평가받는어중간한위치에서도바르다는소신껏여성의더나은삶을위한영화를만들어나간바르다의신념은지금우리사회에도시사하는바가크다.

영화에서여성의이미지는남성들에의해강력하게구축됐죠.남성들은그걸받아들여요.여성들또한그걸받아들이고요.여성스스로가여자는예뻐야한다고생각하죠.옷도예쁘게잘입어야하고,사랑스러워야하고,항상사랑을꿈꿔야하고등등.저는이런문제들에늘분노했지만,그이미지를바꾸기에는저역시역부족이었죠.영화를보면여성은언제나사랑과연관이있어요.사랑에빠져있거나그렇지않죠.사랑에빠진적이있거나앞으로그럴예정이죠.혼자일경우에도과거에사랑에빠졌었거나,마땅히사랑에빠져야하기에당장이라도사랑에빠지고싶어하죠.
─120쪽

한여성의삶에서한명의남자는고작5.1퍼센트정도를차지할뿐이에요.그가호감형이어도그렇고,아무리특별한사람이라도마찬가지죠.여성에겐직장이있고,아이들도있고,다른친구들도있어요.사회생활도해야하고요.다른모든남성의영화를보세요.역전된관계를아무거리낌없이적용시키죠.서구영화중에서여성이러닝타임의5퍼센트이상을차지하는영화가몇편이나될까요?범죄영화에서여성이등장하는장면이얼마나되나요?심리드라마도마찬가지고요.남자들은아직그럴준비가안된것처럼보여요.
─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