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양장)

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양장)

$13.52
저자

김소연

시인.수없이반복해서지겹기도했던일들을새로운일들만큼사랑할수있게되었다.숨쉬기.밥먹기.일하기.또일하기.낙담하기.믿기.한번더믿기.울기.울다가웃기.잠들기.이런것들을이제야사랑하게되었다.시가너무작아진것은아닐까자주갸우뚱하며지냈고,시가작아진것이아니라우리가커다래졌다는사실을알아가는중이다.

시집『극에달하다』『빛들의피곤이밤을끌어당긴다』...

목차

책머리에

1
엄마를끝낸엄마

2
입이있다는것
경주시천군동적산가옥
등돌림
걸어서그곳에가기
조금다르기
손전등을비추며걷던밤
장소애場所愛,topophilia
간극의비루함속에서
기도를잠시멎게하기
나를애태우는‘무’
빵과너
실수가찬란해지는일
쓴도쿠와쓴도쿠의반대말
한결같은무능
모든이의시점

3
덧없는환희

4
막연漠然함에대하여
아등바등의다음스텝
소리하지않는바위
피부뜯기
어금니를깨무는일
내가시인이라면
어깃장의시간들
얻기
2030년1월1일화요일맑음
내일은무얼할까
나무젓가락과목각인형
평화롭게

5
편지두상자

출판사 서평

“엄마는엄마를끝내고
나의자식이되어유리벽너머에앉아있었다”
어머니와딸에대한통찰과빛나는유년시절의기억

『어금니깨물기』에서눈에띄는것은가족,그중에서도특히어머니와딸의관계에대한시인의통찰이다.자랑스러운딸이어야하되늘남자형제보다는물러서있어야하고,자주어머니의감정받이가되는한국사회많은딸들의운명을,김소연시인은담담하게써내려간다.

나는엄마를오래싫어했다.엄마는내가아주어렸을때부터나를착취하는사람이었고,오빠보다뒤에서있기를지나치게종용해온억압의주체였다.나는자랑스러운딸이어야하되오빠보다더자랑스러우면안되었다.아주좁은영역안에서적당히운신하는법을나는일찌감치체득했다.(…)
이제는엄마를싫어하지않게됐다.화해를한것도아니고,용서를한것도아닌채로저절로그렇게됐다._15쪽

‘엄마를오래싫어했다’라는말속에담긴의미는한마디로표현하기어려운‘애증’일것이다.어머니에대한미움을토로하던김소연시인은,어머니의투병생활이이어지며그미움이사라지는경험을한다.그리고어느덧돌봄의주체가뒤바뀐상황을인지하곤‘엄마는엄마를끝내고나의자식이되었다’라는인상적인문장을남긴다.수많은딸들이마음속에품고있을어머니에대한애증은,시인의문장을통해보통의감정으로보듬어진다.
김소연시인은어머니에대한고백을한축으로,유년시절의기억들도세세하게소환한다.‘뽑기’를해먹으려다가국자를태웠던기억,이발사행세를하려던오빠에게머리를잘렸던기억,아버지가어머니에게보냈던연애편지를몰래읽으며부모님의젊은시절을상상하던기억…….가족이야기를중심으로펼쳐지는시인의글들을읽다보면,한시절에대한추억이지니고있는것이한사람의삶을얼마나풍성하고다채롭게해주는가를실감하게된다.또한추억은이야기로남아보석처럼윤이나는돌멩이처럼삶에서오래도록매만지게되기도한다.

생각이짧았던어린시절의많은실수들은,호기심은왕성했으나사고는단순했고현실은예상을빗나갔으나대처능력은부재했기때문에빚어졌다.단순했던만큼,간단하게실수를인정했고명쾌하게용서를구했다.벌을받든이해를받든,받을것을받았다.후회를하든,반성을하든,할것을했다.그랬기때문에,실수가빚어낸이야기하나가미담으로서서히변신할수있었다.자꾸매만져보석처럼윤이나는돌멩이처럼반짝거리는추억이될수있었다._95~96쪽

무릎을감싼채웅크리고앉은아이가
자기심장만을바라보며시를썼던시절,
시인과시쓰기에대한겹겹의단상

첫시집을내기까지웅크리고앉아시를썼던아이는어느덧여러권의시집을내고독자들의사랑을받는시인이되었다.김소연시인의시와시쓰기에대한지극한애정은산문집곳곳에서드러난다.다른시인의시집들을읽으며“한개인이자기방식으로입을열어자기어법으로한글자한글자적어내려간세계”라고표현하고,시쓰기의고단함과환희또한은은하고나직하게이야기한다.특히3부에단독으로실린글「덧없는환희」에서자신에게영향을끼친외국시인들을한명씩호명하다가폴란드의시인쉼보르스카를끌어오는대목도주목할만하다.그를두고“시인의위대함이아니라사람의위대함을완성해갔다”라고깊은애정을드러낸다.노벨문학상수상작가인쉼보르스카의언어들이,한국시에어떤영향을미쳤는지이야기하는과정은자못흥미롭기도하다.

누군가가나에게이런질감의말을걸어와주기를고대하며사는것은나뿐만은아닐것이다.이런질감의대화를나누지않는한,숱하게사람을만나고숱하게대화를해도외로움은더해지기만한다는것은나만이느끼는허기는아닐것이다.그래서더더욱나는쉼보르스카와대화를하고싶어시집을펼친다._130쪽

늘언어를예민하게다루는시인만이써내려갈수있는산문의문장들이있다.또한시와산문은그어법이분명다르지만,읽다보면시인의산문은마침내‘시’를향해가는또다른여정이아닌가생각하게한다.시인과글쓰기에대해각별해지고,언어앞에서겸허해지는고요한경험을권하고싶다.

책속에서

증오심이성장기의내게는얼마간유용했다.덕분에내마음대로내가되어갈수있었다._16쪽

내가숨기는것들이엄마에게보일까봐,바깥에서내가만난사람과보낸시간과해본경험들이엄마에게읽힐까봐,내가무슨생각을하는지엄마가다알아버릴까봐,엄마를얼마나싫어하는지들킬까봐싫었다._18쪽

숟가락이입속을들락거릴때에치아와부딪치는소리또한좋아한다.수프나뜨거운국물을떠마실때의느낌을특히좋아한다.젓가락을쓸때에는손에게쾌락을주는느낌이라면,숟가락을쓸때에는크게벌린입에게쾌락을주는느낌이든다.숟가락에그득담긴찰랑찰랑한액체를입에넣으면,어쩐지물약으로된해열제를나에게떠먹이던어릴적엄마가눈앞에있는것만같고나는곧회복될것만같다._27쪽

이런방식으로이해라는것이나에게올때,나자신을조금쯤더아끼게된다.노력해서얻게되는이해라기보다는저절로와닿아서비로소살아나는이해._43쪽

장소라는말과공간이라는말은엄연히구별된다.장소는시간이부여해준가치와역사가부여해준이야기를함께담은,고유한이름이있는공간이다._61쪽

기억나지않아서다행이었다.거기가어디였는지를기억할수있었다면찾아오지않았을기억들을되찾을수있어서.기억나지않는다는것과그럼에도불구하고명백한사물하나가증거물처럼내앞에있다는그사실을나는시로쓰기시작했다.명백한것과명백하지않은것의간격사이에서비가쏟아져내리고있었다._70쪽

이러한나를견디다견디다공책을펴고연필을들고나는시를쓴다.시를쓰면서또다시치명적인순간을경험한다.어떤단어는도망치고싶어하고,어떤단어는자책하고,어떤단어는애닳아하고,어떤단어는어쩔줄을몰라한다.나는더어쩔줄을몰라한다._73쪽

아름다움에매료되지만아름다움이어딘지모를비린내를품고있다는것에낙담하는과정을겪고,괴로움인줄알았으나괴로움이종내는비겁함의다른얼굴이었음을확인하는과정을겪는다._75쪽

아버지의맨처음직업은농업교사였다.저녁이면야상점퍼를입고다방에나가음악을들었다.그는담배피우는법과당구치는법을배웠다기보다는담배를멋있게피우는법과당구를멋있게치는법을배웠다.멋있게하는법을배우면외롭지않았다.쉽게누군가와친해질수있었다.어떤사람은다가와인사를건넸고어떤사람은힐끗거렸다.가장무뚝뚝했던사람에게궁극의구애를펼쳐그는결혼을했다._105쪽

아버지는자식들의우상이었던적이없었다.능력도제로였지만권위나억압도제로였기때문에아버지는가족의평등한일원에가까웠다.하지만,오래기억하고이야기나눌이미지몇가지를확실하게선물해주기는하셨다.이를테면전나무같은것.12월이시작되면잘생긴전나무를가져와마루한쪽에세워두고자식들에게크리스마스장식물을매달게했다.반짝이는크리스마스전구에휩싸인전나무의모습은아버지의모습이기도했다.플라스틱이아닌,진짜전나무.크리스마스시즌에만잠시빛나던._109~110쪽

상처에는통증이수반되지만흉터에는통증은수반되지않는다는것을마음에새기면서어떻게든잘지나가려애를썼다.그리고흉터를흉터라고부르지않고흔적이라고부르려고노력했다.‘흉터’는상처가아문자국을뜻하는데,‘상처’보다‘아문’에더의미를둘때에그걸흔적이라고불러도좋을거라생각했다._164쪽

기다렸던문장은언제고한걸음늦게내게서구현될것이고,그것을구현하는나는언제고다른것을기다리는사람이되어가는,시차와낙차를경험하는자가될것이다.나는시차와낙차를발견하는자이고그것을자주경험하는자일것이다._170쪽

아빠는엄마가어떤심정으로편지에답장같은것을하지않았는지평생이해하지못했다.아빠는자신이설계하고있는미래와녹록지않은현재의간극사이에서불안을잠재우기위해서,자신의열렬한마음을밤새세세하게적고또적을수밖에없었다.그걸받아줄단한명의수신자가반드시필요했다.그수신자가엄마였다는것은그다음으로중요했다._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