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마중 : 문진영 짧은 소설

햇빛 마중 : 문진영 짧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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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결과가 심사위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라는 평과 함께 2021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문진영 작가의 첫 짧은 소설집.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눈속의 겨울〉 이후 세 번째 책으로 오랜 시간 세공한 짧은 소설 30편이 담겨 있다.
“어둠과 햇빛을 함께 껴안고 자기 삶의 무늬를 만들 줄 아는”(임규찬, 문학평론가) 문진영의 소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만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이는 완벽히 겹쳐져 하나의 그림자로 보이는 실루엣에서 또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다양한 빛깔로 물든 이 소설은 우리 모두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중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유한 방식으로 이상하니까. 계절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통과하며 낯설게 아름다워진다. 프리즘을 경유한 빛처럼, 경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하게 다채로운 빛깔로.”
나아가 〈햇빛 마중〉은 그 출발부터 남다른데, 그림을 그린 박정은 작가와의 13년이라는 오랜 우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문진영 작가의 이전 책 표지들을 모두 그린 박정은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작업을 함께했다. 문진영 작가가 글을 쓰면, 그 글을 읽은 박정은 작가가 해석을 더해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책을 펼치면 두 작가의 상상력이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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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진영

2009년장편소설『담배한개비의시간』으로창비장편소설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눈속의겨울』,중편소설『딩』,짧은소설집『햇빛마중』등이있다.2021년김승옥문학상대상을수상했다.

목차


작가의말

너무좋은사람

토마토와선인장
미소를기다리며
구여친클럽
지민이와나
벚꽃엔딩
서쪽으로
요가원에서
두바퀴돌아서제자리

한낱사람으로우두커니

봄의실종
한개의여름을위하여
은각사로가는길
북극의여인들
네미
고래울음
엘리펀트

계절은우리와관계없이

여긴지금새벽이야
공터의사랑
어이
생일파티
조개무덤
코끼리의황홀
봄날은간다

우리는우리의궤도를따라

햇빛마중
동물원에서
원탁의정과장
피터팬
어떤휴일
운석사냥
해결사
눈썹달

출판사 서평

당신은지금어떤계절을지나고있습니까.괜찮은가요.
가만히물어보는일.그리고귀를기울이는일.
그러는동안나는마치햇빛을마중하러가는듯한마음이된다.한참을귀기울이다보면비로소누군가의마음이어렴풋하게모양을드러내니까.밤하늘이서서히밝아지듯이.
-「작가의말」중에서

관계의다채로운국면과
이색적인시공간이들려주는이야기

책은총네가지장으로나뉘는데,그중첫구성속이야기들을관통하는주제는‘관계’다.맨처음등장하는소설「토마토와선인장」은동네도서관에서열리는시쓰기강좌에서만난두사람을그린다.은퇴후그동안꿈꿔왔던시쓰기수업을듣게된‘나’(선인장)는그곳에서토마토님을만난다.그는자기소개시간,대부분의중년학생들이각자살아온시간을설명하며‘그렇게되었다’고말하는데반해‘그렇게되고싶다’고말하는사람이다.두사람은커피를마시면서혹은순댓국을먹으며동병상련의기분을나누어가진다.이후이어지는소설들에서는다음과같은주제가펼쳐진다.‘너무좋은사람’의무해함이누군가에게는상처를주기도한다는모순적인생각(「미소를기다리며」),‘기훈’의전애인인내가그의또다른전애인에게느끼는묘한감정(「구여친클럽」),오래된연인사이어긋나는타이밍(「벚꽃엔딩」)과서로의‘엄친딸’로서살아온두동갑내기의일생(「지민이와나」)까지.그일련의관계들속에서유독경쾌한시선은‘요가원에서’멈춘다.긴시간을건너한요가원에서다시만난두친구는서로에게너는‘좀다르게’살줄알았다고고백한다.대학시절,더러운연못에빠진채로폭소했던둘의장면이그고백뒤로스쳐지나간다(「요가원에서」).

그녀는말했다.자신이‘도마도’인이유는,‘토마토’는앞으로읽어도토마토,거꾸로읽어도토마토이기때문이라고.그렇게앞뒤가똑같은사람이되고싶다고했다.또,토마토가채소라고하기에도과일이라고하기에도애매한것처럼,자신역시그렇게한가지로정의되지않는사람이되고싶다고도했다.귀밑머리가희끗한사람이그렇게되고싶다,고말하는게좋아보였다.나를포함해다들나는이렇고이런사람이라고,이렇게살아왔고그래서이렇게되었다고했지다른게되고싶다는꿈같은건더는꾸지않고있었으니까.
―「토마토와선인장」중에서,20쪽

두번째장의시공간은익숙한골목부터바닷가,여행지와이국의어느중앙역계단을넘나든다.“아무도없는,모든게정지된듯한밤거리에서분명히존재하고흔들리고있는것들에관해”적어낸이야기들이다.그가운데드러나는풍부하고도아름다운문장들은우리에게그동안볼수없었던광경을선사한다.특히후반부에서연달아이어지는세편을읽고나면“두꺼운구름”이“머리위에서부터피어올라마을전체로퍼져가고있는”듯한(「네미」)기분을만끽할수있다.“물속에서올려다보는것처럼”일렁이고흩어져희뿌옇게흘러가는(「고래울음」),해질녘의초원을느릿느릿걸어가는코끼리무리처럼마치“시간의속도에저항하는듯한”(「엘리펀트」)모든다정한움직임을감지하게된다.

너는문득울음을멈추고자리에서일어나가로등불빛속으로천천히헤엄치듯걸어들어갔다.그림자를길게늘인채로,그림자의끝을내게살짝얹은채로너는가로등불빛을올려다보았고나는너를올려다보았다.나는내몸에닿아있던그그림자의끝을쥐어보려나도모르게손을내밀었다.
―「고래울음」중에서,112쪽

모든살아있는생명의쓸쓸함
그리고,가능한우리의세계

세번째,네번째장에서펼쳐지는이야기들은문진영작가가이전책들에서보여주었던청춘의현실을담고있으면서낭만적인쓸쓸함또한엿보게한다.표제작「햇빛마중」에서밤잠을이루지못하는‘성언’은조금이라도더자기위해새벽마다자전거를타고강변을달린다.“같은코스를달려,같은시간에잠들고깨기를반복하는것으로애써무언가가끊어지지않고있다”고느끼기위해서다.그러던어느날근처편의점에서우는남자를마주치는데,짧은대화가오간뒤남자가일어나걷기시작하자성언이그뒤를따라걷는다.담배를나눠핀두사람은대교위환하게빛나고있는불빛을함께바라본다.남자와헤어진성언은다시달린다.흐흐흐,하고실없이웃어도본다.마치햇빛을마중나가는중인듯한그의등뒤로동이터온다.

그런가하면,동화속에서본것같은장면들이펼쳐지기도한다.작가의꼼꼼한설계를따라가다보면이내미지의세계속으로탐험을떠나게되는것이다.공중을떠다니는상상을하면마치무중력상태인듯가벼워진몸으로둥둥떠오르는‘나’의세계(「피터팬」),혹은다이아몬드광석이떨어져내리는마을(「운석사냥」)을향해.

크리스마스같지않아요?
남자가담배연기를내뿜으며말하더니흐흐흐,하고웃었다.그렇네요,성언이고개를끄덕였다.
정말그랬다.매일밤저불빛을종착점삼아여기까지달려왔으면서도,무감했었다.단한번도한적없었다.아름답다거나,축제같다거나,그런생각은.남자가담배한개비를꺼내성언에게건넸다.담배를끊은지오래였지만성언은그것을받아입에물었다.남자가불을붙여주었다.성언이담배를다태울때까지곁에서기다리던남자가말했다.
고맙습니다.
―「햇빛마중」중에서,179쪽

작가는앞선소설들에서보여준관계에이어또다른관계들,특히동식물과의관계를세밀하게드러낸다.잃어버린길고양이를향한상실감과끝나지않을애정(「봄의실종」),떠돌이개의시점에서쓰인,역경과질병이뒤따르는길생활이야기(「어이」),낡은동물원에서보았던북극곰에대한기억등,내내우리곁에있었지만알아차리지못했던순간들에대해작가는이야기한다.이는일상의장면장면을들여다보는그만의고유한시선속자연스러운이동이자포착일것이다.

눈이보이지않기시작한것은한달전쯤이었나.1년쯤되었을수도있다.앞서걷는김씨의두다리가날이갈수록흐릿해졌다.마침내나는리어카에머리를박고말았다.그러기를몇차례,결국김씨가걸음을멈추고내게로다가왔다.내겨드랑이에두손을넣어나를번쩍들어올렸다.그는한참동안내눈을들여다보았다.얼굴의희미한윤곽만이보였으나,그의따뜻한숨이내얼굴에동그랗게닿아오는것이분명하게느껴졌다.그는나를리어카위에올려놓았다.
―「어이」중에서,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