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17.00
Description
“나는 작가이기 전부터 번역가였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의 오직 번역에 관한 산문집
“어떻게 태어날지 결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는 결정할 수 있다”
─백수린 소설가 추천

데뷔작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가인문학메달(National Humanities Medal)을 받은 줌파 라히리.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넓혀나가던 작가는, 장편소설 『저지대』를 출간한 뒤 이탈리아어로만 글을 쓸 것이라 선언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 올린 그가 ‘안전한’ 길을 뒤로하고 제2의 언어로 달아나는 도전을 감행한 것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줌파 라히리는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시작으로, 『책이 입은 옷』 『내가 있는 곳』 『로마 이야기』까지 차례차례 이탈리아어 작품을 선보이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은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에 몰두해 있던 시기, 미국에서 처음 출간한 산문집이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연대순으로 배치된 에세이에는 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세 작품을 번역하며 쓴 서문과 후기,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중 에코와 나르키소스의 신화로 보는 원작과 번역의 관계, 안토니오 그람시와 이탈로 칼비노에 관한 탐구, 번역 노트, 강연 발제문 및 연설문 등이 망라되어 있다. 처음부터 영어로 쓴 글도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어로 썼던 글을 영어로 옮긴 글도 있어, 줌파 라히리는 “본질적으로 이중언어 텍스트”라고 이 책을 소개한다.
인도계 미국인인 그는 벵골어와 영어의 이중언어 작가로서, 소설을 쓸 때 머릿속에서 벵골어로 대화하는 인물들을 영어로 옮겨 써야 하는 번역의 딜레마를 토로하며 자신은 “작가이기 전부터 번역가였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라고 고백한다. 어느 쪽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내가 진정한 모어를 갖지 못한 작가라는 자각, 어떤 의미에서는 언어 고아라는 느낌”을 받아온 줌파 라히리는, 이 책에 번역과 ‘자기번역(self-translation)’을 배우고 숙고하는 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글쓰기와 번역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성찰의 경험으로 가득 찬 글들은 번역가 줌파 라히리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는 건 아울러 번역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나는 작가이기 전부터 번역가였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 나는 영어와 벵골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생활환경에서 자랐고, 이건 곧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이 두 언어를 끊임없이 번역해왔다는 의미였다.
─서문에서
저자

줌파라히리

줌파라히리
1967년영국런던의벵골출신이민자가정에서태어났다.곧미국으로이민하여로드아일랜드에서성장했다.바너드대학교에서영문학을전공하고,보스턴대학교문예창작학과대학원에재학하면서단편소설을쓰기시작했다.같은대학에서르네상스문화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
1999년첫소설집『축복받은집』을출간하며그해오헨리문학상과펜/헤밍웨이상을,이듬해퓰리처상을수상했다.2003년출간한장편소설『이름뒤에숨은사랑』은‘뉴요커들이가장많이읽은소설’로뽑혔고전미베스트셀러를기록했다.2008년출간한소설집『그저좋은사람』은프랭크오코너국제단편소설상을수상했고〈뉴욕타임스〉선정‘2008년최우수도서10’에들었다.2013년두번째장편소설『저지대』를출간했다.가족과함께로마에서거주했던경험을계기로이탈리아어로쓴산문집『이작은책은언제나나보다크다』『책이입은옷』,소설집『내가있는곳』『로마이야기』등을출간했다.
프린스턴대학교를거쳐현재바너드대학교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있다.미국과이탈리아를오가며생활중이다.

목차

서문

왜이탈리아어인가
통_도메니코스타르노네의『끈』서문
병치_도메니코스타르노네의『트릭』서문
에코예찬_번역의의미를고찰하며
기원문에부치는송가_어느번역가지망생의메모
나를발견하는곳_자기번역에관하여
치환_도메니코스타르노네의『트러스트』후기
그람시의‘트라두치온’_통상적이감과특별한번역에대하여
언어와언어들
이국의칼비노

후기_변신을번역한다는것
몇가지메모
옮긴이의말
부록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이탈리아어는나에게제2의삶,
또다른인생을안겨주었다”
나자신을번역하며깨달은자유의감각

줌파라히리는이탈리아어로연이어책을출간한후에도,몇몇이탈리아어모어사용자들에게끊임없이왜‘너의’언어가아닌‘우리’언어로글을쓰느냐는질문을받았다.그는마치『이작은책은언제나나보다크다』의에필로그처럼느껴지는첫번째에세이「왜이탈리아어인가」에,로마에서느낀“이탈리아어가내것이아니”라는소외감을털어놓는다.그러면서‘왜이탈리아어로글을쓰느냐’는물음에랄라로마노와엘레나페란테의작품에서발견한몇가지은유를들어답한다.줌파라히리에게이탈리아어는“눈부신장관을펼쳐”보이는“문”이며,“취약함을실험”할수있는다른형태의“실명”이며,새로운문화/언어에뿌리내리는“접목”행위에다름없다.

왜이탈리아어냐고?이렇게요약하고싶다.문을열려고,다르게보려고,나자신을다른존재에접목해보려고.
─44쪽

한편,줌파라히리는이탈리아작가이자친구인도메니코스타르노네의소설『끈』『트릭』『트러스트』를번역하면서명실상부한번역가로거듭난다.『나와타인을번역한다는것』에는이세작품을옮긴과정을상세히기술한서문과후기도담겼다.줌파라히리는단어를선택하는일과문화적인맥락에대한이해의어려움을집요하게파고들면서“양적으로나질적으로나텍스트에대한사랑을충족시키기에번역보다좋은방법은없다”라고단언한다.
줌파라히리가번역가로서의자의식과언어적인지평을더욱확장하게된것은자신이이탈리아어로쓴『내가있는곳』을직접영어로번역하면서다.그는자기번역이란,양쪽텍스트를끊임없이오가면서“지면에쓰인낱말하나하나의유효성을의심하도록”강요받는“가혹한행위”이며,작가는“원본과파생본의서열이해체”되는경험을통해자기작품의약점을발견하고오류를바로잡게된다고털어놓는다.그러면서도자신의글을“한언어에서다른언어로”바꾸면서스스로“깊이변화했다는사실”을알게되는짜릿함에대해서도주지한다.이처럼줌파라히리는자기번역을반추하면서번역행위의본질적인어려움뿐만아니라그작업에서얻는즐거움과경이까지고스란히담아낸다.

나에게이탈리아어번역은내가사랑하는언어와멀리떠나있을때그언어와의접촉을유지하는방법이다.번역한다는건한사람의언어적좌표가달라지는일,놓쳐버린것을붙잡는일,망명을견뎌내는일이다.
─115쪽

“나는번역한다,고로존재한다”
번역은자신의기원으로돌아가는것

이책에서특히흥미로운지점은오비디우스의『변신이야기』,그중에코와나르키소스신화를비유도구로삼은번역에대한성찰이다.에코는“남들이한말의마지막한토막만을따라”하지만,줌파라히리는그에게서복제를넘어“경청하고복원하는”열정적인태도를발견한다.그에따르면번역은단순히원작을“반복”해서“파생”시키는“모방”에그치는것이아니라,번역가의“상상력과독창성과자유로움을요하는연금술”과도같은것이다.이러한고찰은번역을문학의보조적인행위로취급하는인식에경종을울린다.

모든번역은다른무엇도아닌,변신으로보아야마땅하다.다시말해일정한특성과요소들이떨궈지고다른것들이얻어지는,과격하고고통스럽고경이적인변화로보아야한다.
─77쪽

줌파라히리가존경할만한번역가로서집중적으로조명하는인물은안토니오그람시다.그는그람시가옥중에서가족들에게쓴편지와수고(手稿)를읽으면서다양한언어와번역에대해지속적이고끈질긴관심을보이는그람시란인물을분석한다.문화와언어사이를계속해서오가는줌파라히리에게번역에끝없는열망을보이는그람시는이상적인번역가로인식된다.또,당대가장영향력있는작가였던이탈로칼비노를번역의관점에서연구하며,그에게서“두개의텍스트,두개의목소리를연주하는번역가의감성”을발견한다.
『나와타인을번역한다는것』은어느새번역을자신의소명으로삼게된줌파라히리가‘번역가’로서의정체성을가장앞에두고써내려간글들을엮은것이다.수년간글쓰기와번역과언어에천착해온그는,자신의기원을돌아보며“늘번역하는사람이었음을거듭말하고”싶었다고이야기한다.번역의열렬한옹호자이자지지자인그의풍부한사유를따라가다보면문화와문학의중심에놓여있던번역의존재,그리고언어의생생함을깨닫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