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포옹(큰글자도서)

고요한 포옹(큰글자도서)

$28.39
Description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간직할 수 있다”

마음의 균열을 끌어안는 몸짓
슬픔을 사랑으로 보듬는 날들
박연준 시인의 신작 산문 『고요한 포옹』이 출간되었다. 『소란』 『모월모일』 『쓰는 기분』 등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시인의 여섯 번째 산문으로,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일상의 크고 작은 균열을 온전히 수용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번 책에서 시인은 가족과 나, 글쓰기와 나, 생활과 나, 사랑하는 많은 것과 나 사이의 결렬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끔찍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금 간 것을 계속 살피고 보호”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 책에는 수많은 금이 들어 있다. 금 간 영혼을 수선하느라 골똘히 애쓴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되고 싶은 나’와 ‘되기 쉬운 나’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금을 간직한 내가 되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_10~11쪽
저자

박연준

순하게빛나는것들을좋아한다.세상모든‘바보이반’을좋아한다.1980년서울에서태어나동덕여대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2004년중앙신인문학상에시'얼음을주세요'가당선되어문단에나왔다.시집『속눈썹이지르는비명』『아버지는나를처제,하고불렀다』,『베누스푸디카』,『밤,비,뱀』과장편소설『여름과루비』,산문집『소란』,『쓰는기분』,『고요한포옹』등을썼다.

목차

책머리에│금을간직한채나아가는일

1다른사람
도착
도착 ̄당주에게

2씨앗으로견디기
아욱국을끓이는가을아침
나의첫책이야기
고양이발톱깎기
예술을가질수있어?
‘나’라는안식처
구름은균형을몰라도아름답다
연두의노력
보여도될것만올립니다
나무는푸르렀고,그저나무였다
어른의공부법
눌린돌,작은돌,튕겨져나간돌
밤의가장자리를걷는사람
소비의기쁨과슬픔

3열리고닫히는마음들
추억의비용
초보운전자를사랑합시다
귀얇은노인이되고싶다
술이라는열쇠
우리안에머물러우리를만드는것들
은둔자
괴팍한디제이의음악일기
내사랑은작은조약돌같아서
집이라는우주

4우리는타인의슬픔을간직할수있다
기다림의순정에머무를수있다면
우리는타인의슬픔을간직할수있다
나오고싶지않은방
호의
언니들의시
미친말들의슬픈속도

출판사 서평

시인의이러한태도는깨진장식물과컵을내버리지않고정성스레이어붙인뒤그것들을전보다아끼고귀히여기는모습에서도나타난다.“타인의슬픔을다알순없겠지만내슬픔의방한쪽에그의슬픔을간직”하겠다는말처럼자신을넘어주변의아픔까지끌어안는성숙한자세를보여준다.그러므로『고요한포옹』은슬픔을사랑으로보듬으려는이의사려깊은통찰로가득하다.벌어진간극을잇대며함께나아가려는시인의다정한온기를전해준다.


당신이나로인해부서지지않도록
가만가만다가서는포옹

포옹은애정과격려의몸짓이다.상대를맞아들이는행위이자마음을나누고지지하는소통의방식이다.책의첫번째글「도착」에서시인은남편과상의하지않은채반려동물을집에들인다.파양과임시보호상태를전전하는고양이를차마모른체할수없었던탓이다.남편은의논도없이입양을결정한시인에게화가나고양이에게눈길조차주지않는다.그러나하룻밤만에장난감낚싯대를흔들며새로운식구를받아들이려노력한다.무릎을꿇고앉아고양이를쓰다듬거나간식을챙기며점점변해가는모습을보여준다.
이러한수용과이해의과정은「추억의비용」에서도찾아볼수있다.이글에서시인의남편은책을너무나사랑한나머지집에만8천권정도를들여놓는다.다른2만여권은파주에사무실을임대해따로보관한다.책을위한월세를지불해야할때마다남편은시인의눈치를본다.매번시인은마음이복잡해지지만“당신을이룬한세월이라면같이품어요.일단품어봅시다”하며수긍한다.무릇사랑이란“도를벗어난것,선을넘는것”이고상대가“사랑하는걸참고품어주는일”임을알기때문이다.이렇듯『고요한포옹』은서로를있는그대로인정하고존중할때에만관계가지속될수있음을보여준다.간혹상대를이해하기어려운순간에도그곁을지키며‘우리’가되는일에대해한번더생각해보기를독려한다.

타인의고통을알수없다는말은타인의고통을‘그처럼’은알수없다는말일게다.당장은늙은사람의마음을‘늙은사람처럼’알수없을테지만그래도……‘그래도’다음에올말을찾기위해애쓰고싶다._143~144쪽


“괜찮아,정말괜찮아”
실패를무릅쓰며살아가는일

『고요한포옹』에는시인이겪은곤경과그것을감내하며얻은사유들이곳곳에눈에띈다.「눌린돌,작은돌,튕겨져나간돌」에서자신의학창시절을돌멩이처럼지냈던시기로털어놓는대목이그렇다.시인은성인이될때까지사회와학교의강압적통제를견디며“내처지의비루함,모멸감,부당함”에대해오랫동안저항하지못했던나날을상기한다.그러면서오늘날의아이들이자신과같은처지에놓여있다면조심스레그들의안부를묻고싶다고쓴다.

어른들이오랫동안수갑처럼채워놓은죄의식을풀어버리렴.‘마땅히’라는말을바다에던져버리렴.걱정과불안때문에현재를달달볶는일은그만두렴.나아갈때는전진만있는게아니란다.지그재그로춤추듯깡충거리며나아가도되고,멀리돌아가도괜찮아.시간은얼마든지많단다.후진했다다시나아가도아무일도일어나지않아.부디나처럼걱정이많은어른이되지않았으면좋겠구나._106쪽

시인의깊고원숙한시선은마흔이되어서야운전대를잡게된이야기에서도드러난다.「초보운전자를사랑합시다」에는여성운전자에대한편견에맞서좌충우돌하는시인의분투가자못경쾌한어조로그려져있다.주차를순전히운에맡기던시기에시인은차로기둥을들이받거나단골카페의유리창을깨는등의사고를겪는다.그럼에도의기소침해지기는커녕도로에나서기를주저하지않는다.

여성운전자가많아진건사실이지만아직도여성운전자의실력을미덥지않게생각하는분위기는남아있다.세상에위험을수반하지않고성취할수있는가치가있던가?처음부터운전에능숙한사람은없다.수많은위험과크고작은사고를겪어내며,모르던감각을익히고,시행착오를경험한뒤에야능숙한운전자가된다._136쪽

이렇듯시인은실패를품은채로만성장할수있다는생의진리를몸소실천한다.“못하는건잘할때까지계속하면된다”는다짐으로새로이시작하기를멈추지않는다.불안과위기를딛고나아가는시인의모습은그자체로독자들에게뭉근한위로를준다.살아가는데나쁜일만일어나는것은아님을,얼마든지좋은일이일어날수있음을넌지시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