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양장)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양장)

$16.80
Description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영혼의 반짝임을 발견하는 시인,
진은영의 신작 산문집
등단 후 24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감각적이고 치열한 언어와 예리한 사회인식으로 사랑받아온 진은영 시인이 신작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을 펴낸다. 시인은 책의 서문에서 “내 빨간 수첩과 내 머릿속은 이렇게 어디서 왔는지 불분명한 타인의 문장들로 가득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과 죽고 싶었던 순간마다 자신을 살렸던 문장들이 있었고, 시인은 쉴 새 없이 그것들을 읽고 밑줄을 그으며 힘든 시간을 견뎠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고통과 회복의 기억이 희미해진 후에도 자신을 살게 했던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진은영이 호명하는 작가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카프카, 울프, 바흐만, 카뮈, 베유, 플라스, 아렌트…… 삶은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하고, 아무리 애써도 승리는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전력으로 글을 썼던 작가들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 고유함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했던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들의 책도 낡지 않고 살아남아, 현대 독자들의 영혼에도 균열을 낸다. 시인은 사랑하는 작가들의 책과 문장들을 살피며,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속에서도 끝까지 단 한 사람을 걱정하는 문학의 안간힘에 대해서도 쓴다.

좋은 작가는 아첨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처럼 우리에게 진실의 차가운 냉기를 깊이 들이마시라고 무심한 얼굴로 짧게 말한다. 카프카, 울프, 카뮈, 베유, 톨스토이, 플라스, 니체, 아렌트…… 여기서 다룬 저자들은 다 그렇다. 그들에게 삶은 계속되는 소송이거나 400년 내내 분투한 뒤에야 겨우 이룰 수 있는 소망,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윗돌, 보상 없이 행하는 사랑, 끝없이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겨울 숲 같은 것이다. (…)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 읽는다.
_「책머리에」에서

저자

진은영

저자:진은영
이화여자대학교철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2000년『문학과사회』봄호에시를발표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문학상담전공교수로가르치며시를쓰고있다.시집『일곱개의단어로된사전』『우리는매일매일』『훔쳐가는노래』『나는오래된거리처럼너를사랑하고』를냈고,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천상병시문학상,백석문학상등을받았다.실비아플라스의소설『메리벤투라와아홉번째왕국』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책머리에|나는세계에꼭들어맞지않는다―포기하지않는읽기

체포됐어도자유로운K……차별금지법없는한국은?―프란츠카프카『소송』
‘올랜도’도버지니아도성별제약없는다양한삶을원했다―버지니아울프『올랜도』
진리의담지자를자처하는지도자여……그것은카리스마아닌망상―한나아렌트『인간의조건』
유대인을두려워한철학이유대인천재들을낳았다―마르틴하이데거『존재와시간』
번번이죽고태어나는경험으로붐비는곳,문학―모리스블랑쇼『문학의공간』
피해자의슬픔을응시하는문학적용기―잉에보르크바흐만『이력서』
삶도,시도중단할수없었던러시아국민시인―안나아흐마토바『레퀴엠-혁명기러시아여성시인선집』
비극적삶으로만조명되기엔황홀하고치열한실비아의시―실비아플라스『에어리얼』
‘자기자신’으로존재했기에사후에야세상과만난디킨슨―에밀리디킨슨『고독은잴수없는것』
예술가의삶아닌냉철한지성으로성찰을준‘할머니시인’―비스와바쉼보르스카『끝과시작』
자식이어디선가비명을지르고있기를바라는부모……시로쓴참혹한희망―아리엘도르프만『싼띠아고에서의마지막왈츠』
평범한사람들의목소리로군국주의를경계하다―이바라기노리코『처음가는마을』
하나도잊지않고모든것을호명하는다정함이빚은시―백석『백석시,백편』
삶의가시는시로새이야기가된다……버스운전사패터슨처럼―윌리엄칼로스윌리엄스『패터슨』
너를밀어내고나를드러내야이기는세계……시인은‘사라짐’으로답했다―라이너쿤체『은엉겅퀴』
공정은정말공정한가……막연함에저항한‘디디온식글쓰기’―조앤디디온『베들레헴을향해웅크리다』
카뮈가말한다‘비극은자각해야할운명’―알베르카뮈『시지프신화』
인간을운명의중력에서뜯어내영원으로들어올리는것……시몬베유의‘사랑’―시몬베유『중력과은총』『일리아스또는힘의시』
자유로운집이여오라……힘없는이들에던지는희망의몽상―가스통바슐라르『공간의시학』
폭력적현실에띄우는절박한안부―존버거『A가X에게』
사진,과거와현재가함께하는공존의신비에대하여―롤랑바르트『밝은방』
먼저떠난오빠를위한192쪽의기록……사랑은기억이다―앤카슨『녹스』
예술을‘선물’하는일,그저옛인류의순진한발상일까―루이스하이드『선물』
삶의습관으로타인을구원하는인간……여우의눈으로포착하다―레프니콜라예비치톨스토이「주인과하인」
돈과행복을신성화하는조급한현대인이여……“신은죽었다”―프리드리히니체『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젊은릴케는스승이아닌동료였기에멘토가되었다―라이너마리아릴케『젊은시인에게보내는편지』
진정한스승은설명하지않는다―자크랑시에르『무지한스승』
후배학자의비판적인용을통해생명얻은그리스철학자들―『소크라테스이전철학자들의단편선집』

출판사 서평

한없이다정하고,비명이나올만큼끔찍한
위대한문학들이끌어올리는진실

진은영이사랑하는시인헤르베르트는항상책을읽던사람이었다.그는책읽기의무용함에대해서도이야기했으며,“그저삶을연명하고있을뿐”이라고고백했다.진은영은헤르베르트에게공감한다.자신역시읽을수있어서살아갈수있었던시절이있음을떠올리고,시인의일부가된수많은문장에대해이야기한다.피할수없는고통을직시하는문장들,실패하는것이결코어리석은게아니라고증언하는문장들,그저인간으로살기위해패배할지도모를싸움을시작하는이를사랑하게만드는문장들이다.카뮈,바흐만,베유등이러한문장을쓰는작가들은독자들을쉽게위로하지않는다.다만서늘한진실을말함으로써비정한세계속에서자신의고유성을확보하기위해싸우는이들이얼마나고귀한지깨닫게한다.

우리가무엇을꿈꾸며싸우든그꿈을이루는일은어렵다.조금전진한기분이었는데도로제자리라는걸깨닫게된다.인간은실패하려고태어난‘훼손된피조물’인지도모른다.그러나카뮈덕분에,우리는어려운싸움을계속이어가는이들을어리석다고말하는대신위대한용기를가졌다고말할수있게되었다.또한우리가진정사랑하는이들은승리하는이들이아니라진실과인간적품위를지키기위해어쩌면패배할지도모를싸움을시작하는이들이라는것도알게되었다.
_본문에서

진은영은삶이곧소송과정임을깨닫게하는카프카의『소송』을읽으며,여성이글쓰는것을허락하지않았던시대에작가이자‘피고’로살아야했던브론테자매를생각한다.소수자성이드러나는순간일상을억압받는한국사회의소수자들을이야기하며차별금지법제정이미뤄지고있는현실에대해서도쓴다.울프의『올랜도』를읽으며400년동안남성으로도여성으로도,외교대사로도집시로도살다가나중엔열망했던‘시인’이되는올랜도를통해그저모두가자신이살고자하는모습으로사는사회를기원하기도한다.아리엘도르프만의시「희망」을읽으면서는한국에서벌어진참사와희생,그후여전히지속되고있는유가족들의고통도떠올린다.탁월한작가들과작품들은시대와장소를뛰어넘는다.강력하고유효한질문을던지고,다수가애써외면하려던불의를드러낸다.또한시인의말대로용감한독자들은이용감한작품들을알아본다.작품을통해자신의고유한위치를가늠하고,정확한위안을받으며삶을쉽게포기하지않으리라마음먹는다.

“우리의사랑이사소한일에서시작되듯
구원도혁명도그럴것이다”

김소연시인은진은영을두고“인간이회복될수있는힘이어디에서발현되는지를정확하게이해하고있는시인”이라고썼다.진은영은슬픔속에서도힘껏삶을견디는존재들의작은몸짓과낮은목소리에주목하고,신중한문장으로그아름다움에대해적는다.톨스토이의「주인과하인」에나오는욕심많은주인브레후노프가미세하게달라지는순간을포착하고,롤랑바르트와앤카슨이기록한애도의문장들을섬세한눈으로읽는다.자신을드러내지않음으로써타인을배려하고체제에저항했던라이너쿤체가얼마나용감한시인이었는지구체적으로써내려간다.

위대한책을읽는다고혁명을일으키거나인류를구원하지는못했지만,다만살아갈수있었다는진은영시인.시인이되기전부터늘좋은독자였을그가아껴온작가와작품의목록을보다보면,시인이깊이몰입했을주제,영혼에흔적을남겼을문장에대해상상하게된다.다만한사람을살게하는일은결코사소하지않다.누군가의삶에끊임없이빛을비추는일은실로대단하고,우리는책을읽으며그빛을쬘수있다.‘도끼’같은문장들을발견하는행운을누리고,자신이세상과맞지않는다고느끼더라도포기하지않고나아가기도한다.진은영시인의아름다운산문을읽으며,읽기가진정한구원으로이어지는삶이있음을깨닫는다.

이것은개인적고백인동시에문학적고백이다.인간으로서감당하기힘든고통과위로할길없는슬픔을한사람에게서감지하고그를마지막순간까지지키려고안간힘을쓰는것이바로문학의일이기때문이다.그런안간힘이사라질때문학은끝난다.
_본문에서

진은영(지은이)의말

작가들은진심으로독자를믿는다.그들에게그런믿음이없다면,어떤슬픔속에서도삶을중단하지않는화자,자기와꼭들어맞지않는세계속에자기의고유한자리를마련하기위해부단히싸우는주인공을등장시킬수없을것이다.그런목소리가이해받을수있다는믿음,그런삶을소망하는사람이이세계에적어도한명은존재하고그가분명내책을읽을거라는확신이있어야만작가는포기하지않는인물을그리고,희망없이도포기하지않는능력에대한철학을펼칠수있다.그렇다면포기하지않는삶을말하는책이포기하지않는독자를만드는게아니라그반대이다.혹은용감한독자와용감한책이서로를알아보는것이다.릴케의시구처럼우리는책에서자신의그림자로흠뻑젖은것들을읽는다.
-「책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