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덜 띄는

눈에 덜 띄는

$16.80
Description
“어쩌면 당신이 날 볼 거다.
나를 찾길 잘했다고 여길 만큼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 거다.”
언어와 이미지, 모국어와 외국어의 경계를 횡단하며
시인의 감수성으로 써 내려간 디아스포라 산문

이훤 시인의 산문 『눈에 덜 띄는』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그간 시집 『양눈잡이』, 산문집 『아무튼, 당근마켓』 등 여섯 권의 책을 펴내고, 『끝내주는 인생』『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에 사진으로 함께하며, 문학과 사진을 애호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넓혀왔다. 신작 산문집에서 그는 이국에서 이방인이자 소수자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존재들을 사려 깊게 응시한다. 소설 『파친코』와 영화 〈미나리〉,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한국계 디아스포라 서사가 주목받는 가운데, 시인만의 감수성으로 써 내려간 새로운 디아스포라 산문으로 자리매김할 책이다. 비단 사전적 정의의 ‘디아스포라’가 아니더라도, 경계를 섬세하게 감각하는 이라면 누구나 폭넓게 공감할 수 있다.


“눈에 덜 띄는 것들은 비밀을 품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몇 개의 비밀을 나눠 갖게 될 거다.”

책의 첫 장은 국경을 통과하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의 사유가 단지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이훤 시인은 자기 내면의 외로움과 상처로 침잠하기보다는, 그와 닮은 슬픔을 느끼는 이들을 다정한 힘으로 일으켜 세운다. 타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이별의 순간을 경유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의 곁으로 나아간다. 「내가 잘 안 보인다는 감각」에서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선 배우 키 호이 콴과 양자경의 모습을 지켜보며 세계 어디서나 소수자가 일상적으로 겪기 쉬운 미세 차별(microaggression)을 떠올린다. 「크고 작은 나의 집」에서는 오래된 정릉 언덕을 지켜온 원주민 노인들과 이 골목에 찾아온 이주민 유학생의 삶을 포개어 본다. 그는 눈에 덜 띄는 존재들을 손쉽게 뭉뚱그리지 않고 하나하나 이름을 호명하며, 그들의 비밀을 기꺼이 나누어 안는다.


“보이지 않아도 연결돼 있다는 믿음을,
나 또한 여러 번 연습해왔다.”

이국의 삶에서 비롯한 시차(時差)는 그에게 경계를 감각하는 남다른 시차(視差)를 선사한다. 덕분에 그의 연대감은 국적과 인종, 성별과 세대, 인간과 비인간 너머로까지 확장된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모국어에 대한 감각을 갱신하며, 익숙하다 믿었던 가족의 몰랐던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인간과의 반려 생활을 가늠하는가 하면, 바다거북과 채소의 입장에서 지구의 미래를 헤아려보기도 한다. 일련의 사유가 그에게는 독자의 자리에서 시를 읽는 것,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서로 공감하려는 행위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타인을 배척할 근거가 된다면, 시인에게는 시야를 넓히는 매개가 된다.

타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익숙한 질서를 포기하는 일이다. 세계를 부르는 순서도 리듬도 감각도 달라진다. 무의식보다 의식에 의지해야 한다. 존재하기 위해 조금 더 정성스러워져야 하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기 위해 더 많은 수고를 치러야 한다.
근데 언어가 원래 조금은 수고스러워야 하는 거 아닌가?
_본문에서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삶의 태도는 창작에도 투영된다. “타국어로 존재하는 동안” 시인으로서 언어를 마주하는 그의 눈빛은 더 천진하고, 한결 진지해진다. 이슬아 작가와의 영어 수업 이야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두 사람이 함께 언어를 탐구한 “특수한 우정”이 스며 있다. 그 우정의 기록인 「우주에서 가장 감자적인 인간이 되어」는 2023년 출간된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 수록작 「픽셀 속 영어 교사」와 나란히 읽을 때 더욱 빛난다.


언젠가 한번쯤, 눈에 덜 띄는 감정을 느껴본 당신에게 건네는
우정의 초대장

명사로 맺어 단언하지 않고, 문장의 마지막 자리를 열어둔 제목 ‘눈에 덜 띄는’에는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경계 바깥에서 독자가 아직 ‘눈에 덜 띄는’ 존재들을 함께 발견해나가기를 청하는 그의 바람이 담겼다. 에필로그에서 시인은 “눈에 띄지 않는 상태일 때 더 중요한 진실”이 있음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펼치는 것으로 그 믿음에 동참할 수 있다.

누구도 영원히 눈에 띌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다수의 눈에 띄지 않는 상태일 때 더 중요한 진실을 품는다고 믿게 되었다. (…) 존재 방식을 옹호받는 것만으로 많은 것이 바뀐다.
_본문에서
저자

이훤

저자:이훤
시인.사진가.조지아공대에서기계공학을,시카고예술대학에서사진학을전공했다.두언어를오가며생겨나는뉘앙스와작은죽음에매료되어시를쓰기시작했다.시집『양눈잡이』『우리너무절박해지지말아요』,산문집『아무튼,당근마켓』등여섯권의책을쓰고찍었다.단절감이오랜화두였고,자연스럽게연결에관심이많아졌다.북미와유럽,동아시아에서
PoetHwon.com
@__leeHwon

목차


―프롤로그:비껴가는시선옆에서

―국경에서
공항검색대에서
국경의이름들
우주에서가장감자적인인간이되어
멀리가는친구에게
내가잘안보인다는감각
눈뜨면몸과마음이텅비어있는

―보폭의세계
왜냐하면나는지금아무런방어기제가없다
모든아침은밤에서시작된다
크고작은나의바다
숙희와남희의영역
채소감상문
낮보다밤이길어지기시작할때

―눈에덜띄는동네
크고작은나의집
이집의질서

―눈에덜띄는사람
좌표를옮기는사랑
고요한밤거룩한밤
거기우리가있었음
엄마우리다른이야기하자

―당신은시도사진도모른다고말하지만
너무많은언어를이해하는기계
증언
눈안에무언가를넣는다니
연결과믿음

―에필로그:옆에서바깥들로
―사진목록

출판사 서평

“눈에덜띄는것들은비밀을품고있다.
어쩌면우리는몇개의비밀을나눠갖게될거다.”

책의첫장은국경을통과하는개인적인경험에서출발한다.그러나그의사유가단지사적인영역에머무르는것은아니다.이훤시인은자기내면의외로움과상처로침잠하기보다는,그와닮은슬픔을느끼는이들을다정한힘으로일으켜세운다.타국으로떠나는친구를배웅하는이별의순간을경유해,한국에서살아가는이주민의곁으로나아간다.「내가잘안보인다는감각」에서그는아카데미시상식무대에선배우키호이콴과양자경의모습을지켜보며세계어디서나소수자가일상적으로겪기쉬운미세차별(microaggression)을떠올린다.「크고작은나의집」에서는오래된정릉언덕을지켜온원주민노인들과이골목에찾아온이주민유학생의삶을포개어본다.그는눈에덜띄는존재들을손쉽게뭉뚱그리지않고하나하나이름을호명하며,그들의비밀을기꺼이나누어안는다.

“보이지않아도연결돼있다는믿음을,
나또한여러번연습해왔다.”

이국의삶에서비롯한시차(時差)는그에게경계를감각하는남다른시차(視差)를선사한다.덕분에그의연대감은국적과인종,성별과세대,인간과비인간너머로까지확장된다.외국어를배우는과정을통해모국어에대한감각을갱신하며,익숙하다믿었던가족의몰랐던모습을뒤늦게발견한다.고양이의입장에서인간과의반려생활을가늠하는가하면,바다거북과채소의입장에서지구의미래를헤아려보기도한다.일련의사유가그에게는독자의자리에서시를읽는것,타인의언어를이해하고서로공감하려는행위와동떨어져있지않다.차이가누군가에게는타인을배척할근거가된다면,시인에게는시야를넓히는매개가된다.

타국어를배우는과정은익숙한질서를포기하는일이다.세계를부르는순서도리듬도감각도달라진다.무의식보다의식에의지해야한다.존재하기위해조금더정성스러워져야하고,말하고듣고생각하기위해더많은수고를치러야한다.
근데언어가원래조금은수고스러워야하는거아닌가?
_본문에서

경계를허물어뜨리는삶의태도는창작에도투영된다.“타국어로존재하는동안”시인으로서언어를마주하는그의눈빛은더천진하고,한결진지해진다.이슬아작가와의영어수업이야기에는시간과공간의경계를넘어,두사람이함께언어를탐구한“특수한우정”이스며있다.그우정의기록인「우주에서가장감자적인인간이되어」는2023년출간된이슬아작가의산문집『끝내주는인생』수록작「픽셀속영어교사」와나란히읽을때더욱빛난다.

언젠가한번쯤,눈에덜띄는감정을느껴본당신에게건네는
우정의초대장

명사로맺어단언하지않고,문장의마지막자리를열어둔제목‘눈에덜띄는’에는작가가상상할수있는경계바깥에서독자가아직‘눈에덜띄는’존재들을함께발견해나가기를청하는그의바람이담겼다.에필로그에서시인은“눈에띄지않는상태일때더중요한진실”이있음을믿는다고고백한다.독자들은이책을펼치는것으로그믿음에동참할수있다.

누구도영원히눈에띌수는없다.그리고나는인간이다수의눈에띄지않는상태일때더중요한진실을품는다고믿게되었다.(…)존재방식을옹호받는것만으로많은것이바뀐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