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

$17.00
Description
“요동치는 글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큼의 무게를 견디며 썼는지.”

삶과 문학을 오가며 맥진하는 문장들
제4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인 박참새 첫 산문집 출간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정신머리』에서 첨예한 시적 감각을 보여준 시인 박참새의 첫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은 시인이 오랜 시간 응축해온 “활화산처럼 들끓는 에너지”를 시집에 분출한 뒤 처음 선보이는 단독 신작이다. 책에는 수상과 시집 출간 이후 쏟아진 온갖 종류의 관심, 그럼에도 여전한 생활의 고단함, 사회 현안에 대해 침묵하며 느끼는 수치심, 자고 떨고 울면서 보내는 무딘 나날, 스스로를 지켜줄 유일한 장치인 책으로의 도피 등 젊은 시인의 초상이 면면이 아로새겨져 있다.
박참새에게 출처 없는 슬픔은 사는 동안 이고 지고 가야 할 숙명과도 같다. 유별한 정동이라기보다는 ‘정신’과 ‘머리’에 덕지덕지 엉겨 붙은 감정의 디폴트값에 가깝다. 시인은 자신부터 가족, 타인, 세상, 시, 급기야는 ‘살아 있음’ 자체에 이르기까지 삶을 건너가며 조우하는 슬픔을 고백한다. 젊음을 관통하는 이러한 침잠은, 그러나 종내에는 글쓰기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일러두기*
본문 27,35,42,43,53,79,91,114,115,125,141,148,159,168,182,189,194,199 쪽의 글자가 번지는 효과는 저자가 의도한 것이다.
저자

박참새

저자:박참새
집필노동자.주로시를쓴다.지은책으로는시집『정신머리』,대담집『출발선뒤의초조함』과『시인들』,그리고산문집『탁월하게서글픈자의식』이있다.제42회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책머리에

서글픈자의식
몸에묶인
간지러운비명
시(달리는)
종이무덤

부록

출판사 서평

손이떨릴때도,너무많이떨려서도무지이것이글자인지글자가아닌지분간이안될때도,쓰이는그것을보고있으면서도,나는쓰기를멈추지않았었다.그렇게지낸시간이모두여기쌓여있다.(…)요동치는글자를보면알수있다.내가얼마큼의무게를견디며썼는지.견디면서도상관없다는식으로얼마나써내려가고싶었는지.글자는많은것을말한다.어렵게쓰인글자들은더욱많은것을말한다.필요이상으로._본문에서

거침없이투명하게이어가는글들은때로광폭한외침으로도들린다.시인은일견세상과,나아가자기자신과불화하는듯보이지만계속해서골몰하고쓰고읽는행위는외려불화와정면으로마주하겠다는몸짓에다름아니다.

책안으로숨어낡아진마음을어루만지고
자신만의빗금이가진무늬를말하기

‘탁월하게서글픈자의식’이라는제목에서바로보이듯박참새는첫산문집에서서글픔을양분삼아시를짓는시인의정체성을기입해나간다.“내가나를허락하잔마음으로”시인이라자칭하던시절을거쳐마침내‘제도권의승인’을얻었음에도애매한존재에머물러있다는감각은떨쳐지지않는다.항상바쁠것같다는오해,예전처럼쓰이지않는시,생존과벌이라는문제는등단과상관없이늘발목을잡는다.시인은그렇게웅크림을고수하면서도“앞으로도글을쓰고싶고시도더많이쓰고싶다”라는희망어린다짐을조그맣게읊조린다.

내가기어코무언가를썼다는사실을받아들이면이런기분이든다.내몸은텅비었고,나는그저받아적었을뿐이다,성실히남의것이되어서.그러면그글은나의갑옷이된다.튼튼하고남다른.그어떤공격에도살아남을수있을것만같다._본문에서

문학적레퍼런스가풍부하기로정평난이답게쓰는사람이전에읽는사람으로서의박참새를엿볼수있다는점도흥미롭다.『실비아플라스의일기』를읽으면서그의양면성과,죽음으로가는과정에서그에게글쓰기란무엇이었는지분석하고,버지니아울프의『파도』는“관찰의미학과도식화할수없는화자가여럿등장한다는점에서”소설이아닌장시로읽힌다는독창적인관점도내비친다.특히다와다요코의『글자를옮기는사람들』을통해‘번역’이라는행위를항해와선적에비유한대목에서는시인특유의기민한통찰력이느껴진다.

언어는머무르지않는다.영원히떠다닌다.항해하고선적된다.여행하며옮겨진다.그리고기꺼이,그것을추적하는사람들이있다.언어를횡단하는사람들이있다._본문에서

시인이놓은낱말의징검다리를건너며
멍든마음에위안을얻다

“내용과형식을구분짓고싶지않”다던인터뷰처럼박참새는이번산문집에서도정형화된틀을벗어난다.시인은책을크게다섯개장으로구획한뒤,각장안에서글을쪼개지않고꼬리에꼬리를물듯잇대어간다.긴호흡으로배치된글은각각의덩어리안에서유기적으로연결되며독자의몰입도를높인다.한편으로읽는이의여운과쉼을위해글쓴이가마련해둔장치와마주치는것또한톡톡한재미다.
인간은부서지기쉬운존재다.늘타자와의이격을가늠하며만사를예민하게감각하는시인은더욱그러할것이다.우리가시인의문장을찾아읽는이유는모종의동질감을자신만의언어로꿰어낸글에서안심감을느끼고위안을얻기때문이다.아슬한균열을나날이감지하면서도오로지쓰는일에몰두하고싶다는젊은시인의바람은창작의곤경을아는이들에게자못미덥다.끝끝내“넘실대는서글픔”을기꺼이끌어안는시인의품에서쏟아져나온문장들이독자에게진득한위로가되어줄것이다.

저자의말

나는슬픈사람이다.이유없이슬픈사람이다.그어떤시절도사람도내가슬픈이유가될수는없었다.그렇지만모든슬픔에이유가필요한것은아니며아주많은슬픔이이유없는채로우리사이를배회하고있다.갈곳잃은슬픔들이매일매일산책한다.

그리고당신또한슬픈사람일것이다.이유없이슬픈사람일것이다.우리바깥세상의가깝고먼일들을보면서자주퇴출당한듯한기분을느끼고,그리하여모두와영원히불화할것만같단생각에또괴로워하는.나로인해울다가도세상의울분소리가들려오면또정신이혼미해지는.삶이,삶이너무길다는사실을알아버린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