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식물 (김정희 시집)

양치식물 (김정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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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정희의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다른 데서 보지 못한 상실의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시적 개성의 굵은 줄기를 이루고 있다. 시인이 겪은 개인사의 세목을 알 수 없는 우리들은 시의 문면을 통해 감정의 곡절을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탐색의 수행에 두 개념이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문학은 슬픔으로 슬픔을 위로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 때문에 극단적인 그리움이 발생하고 그 그리움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좌절과 슬픔이 발생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양상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 심리 현상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문학 활동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김정희 시의 안쪽으로 여행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김정희의 이 시집은 시인의 체험이 상상과 사유의 굳건한 기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고통으로 고통을 달래고 슬픔으로 슬픔을 위안하는 역할을 한다. 비극이 인간 현실의 연민과 고통의 체험을 통해 그러한 감정의 소실에 기여하는 것처럼, 독일 낭만주의 작품이 동경과 좌절의 순환을 통해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고 자아의 위상을 분명하게 한 것처럼, 김정희의 시도 충분히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저자

김정희

인천광역시에서출생했으며,2019년월간문학으로등단했다.2020년인천문화재단예술표현활동지원출판분야기금을수혜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눈이부시게-----10
아직가을이다-----12
오늘,안녕-----14
국지성폭우-----16
책갈피-----19
오늘-----20
등-----22
늦장마-----24
흔들리는것들-----26
당신의거울-----28
별1-----31
그집-----32
허그-----34
엄마를보다-----36
바다의사랑-----38

제2부

브라이덜피아노-----40
고양이의저녁-----42
삭朔-----44
위로-----45
별2-----46
호스피스병동-----48
칼이웃고있다-----50
달의혀-----52
조기-----55
이층창틀에기대어-----56
빈꽃대궁-----58
6월,어느날-----60
목백일홍-----61

제3부

곤鯤이-----64
롤리키드-----66
노랑-----68
숲속의보보-----70
아무르-----72
붉은꽃을피울줄알았다-----74
키클롭스의눈물-----76
주먹속에는-----78
양치식물-----80
백합칼국수와껌그리고아버지-----82
해학-----85
산수유꽃-----86
사이키델릭-----88
마트료시카-----90
혜정이-----92
율마가떠나고-----94

제4부

해피버스데이-----96
서해-----98
내가장미라고불렀던것은-----100
미스김라일락-----102
비릿한혀-----104
비의손-----106
801호성광자님-----108
사라지는것들속에서서-----110
봄날-----112
악몽-----114
나뭇잎수의-----116
겨울버즘나무-----118
이별-----120
꽃피는얼굴-----121

▨김정희의시세계|이숭원-----122

출판사 서평

[대표시]

양치식물

한남자가공원벤치에앉아여자에게자신의헤드셋을씌워준다두사람의눈길이부딪히자남자의몸속에서푸르게일렁이던물결이여자의귓속으로흘러들어가고여자의반짝이던눈빛이남자의검은눈동자속에서나비가된다

그러자어둡고딱딱한그들의가슴을뚫고올라오는눈부신꽃대하나
그끝폭죽처럼환한수련한송이
허공을가득채운다

저런순간이있었던가
물과빛을나누던순간이

나는습지에서자라는양치(羊齒)
햇빛을곁눈질하며그늘에서빠져나오지못했다
별꽃한송이피워보지도못한재
이제늑골밑안개집에서
꽃씨같은검은포자(胞子)를쏟아낸다

그늘의발끝까지햇귀가퍼지는오후였다


눈이부시게

오늘은네가잠든서쪽귀퉁이가흘러내렸다
일기장속네이름도빗물처럼흘러내렸다
그래서나는서쪽귀퉁이가없는사람
아침마다내굽은어깨위에서지저귀던휘파람새도날아가버렸다

남쪽지평선이보이지않는다
내가지웠는지바람에지워졌는지기억나지않는다
이곳저곳이오래된스웨터처럼올이풀렸거나구멍이나있다
내얼굴이흘러내리는이유다
늙은고양이가내손등을핥는다

눈을뜨고나면세상은한뼘씩줄어들고
시간은다리가길어져담벼락을돌아사라져버린다
어제는분명장마였는데오늘은빈가지에서새싹이돋고있다

안녕하세요
나는뒤통수를잊은사람
눈을가린바람처럼달리던사람
안녕하세요
읽는순간사라지더라도
남은페이지마다줄을긋는다
빈빨랫줄처럼허공에검은줄만넘실거린다

눈이부시게푸른5월
북쪽모서리에서나를보거든
서어나무에걸린동쪽의햇빛한조각
바람의손끝에서풍기는남쪽의냉이꽃향기
너의눈동자를물들인석양한줄기물어다
내가슴팍에꽂아주기를
희미해지는기억으로
너를생소하게보더라도
안녕하세요
웃으며휘파람새처럼인사해주기를
나뭇잎수의


팔랑이는것이눈앞으로날아왔다
나비인가했는데작은잎이다
나뭇가지에서떨어져흙으로가는중
여기서저기로가는길
입고가기딱좋은색
찬란하고가벼운,명랑한노랑

스러지는하루의빛과
첫봄인3월을기억하는색
울지말라고말하는미소가
날개가되어
지느러미가되어
흔들리고싶은대로나풀대는나뭇잎

나뭇가지의손을놓고
나무의푸른옷을벗고
비로소자유롭게한바탕벌이는찰나의축제
바람의손마저도놓고마지막은이렇게,밝게
뜨거움도말고차가움도말고
실없이헤벌레한,기왕이면따뜻한,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