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표 상상력 공작소 (김홍조 시집)

살바도르 달리 표 상상력 공작소 (김홍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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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토포스(topos)는 사건과 공간이 자리하는 장소 혹은 논거의 장소를 의미한다. 시적 토포스는 공간의 의미로 사용하지만, 시에서의 공간은 시적 화자와 긴밀히 연관되는 의미체계를 지닌다. 시적 주체가 드러내는 세계관의 일면은 시인이 바라보는 공간의 특성을 통해서 수합되기 때문이다. 김홍조의 퍼소나처럼 여겨지는 ‘늙은 아메리카 인디언’은 이 세계를 관록과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다. 설령 인디언의 시각이 새롭지 않더라도, 그 속에는 섬세한 삶의 기율이 잠재되어 있다. 시인이 직조해내는 언어의 공방은 장인이 빚어낸 묵은 질그릇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품위와 깊이가 있다. 쉬운 방법을 찾지 않고 “단어와 단어 사이 좁아터진 단칸방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고단한 시간을 감내하고, “행과 행, 연과 연을 수십 번 전전하면서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직수굿했던 페르소나”와 함께 한 땀씩 수놓은 언어의 질감과 질곡이 빼곡히 잠겨 있다.
저자

김홍조

출간작으로『살바도르달리표상상력공작소』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가을소나타12
구월이오는소리14
신곡강부(新曲江賦)16
나에게묻는다19
뇌경색20
뇌경색222
백사마을24
하늘카페의동백아가씨26
출가28
그냄새30
또랑또랑낭랑한32
어머니의나라34
근황39

제2부

우리곁의성자42
부소산에서44
개기월식47
밤의플랫폼48
남도기행50
수선화를위하여52
장마54
고해성사56
고해성사257
밤에쓰는이력서58
마지막꽃잎에게60
인사(人事)62
만원과많원사이64
금풍이불면66
물좀주소70

제3부

랜덤으로살다74
괜찮아76
보이스피싱79
귀뚜리를수소문함82
백조의노래84
그여름85
개망초88
정신과육체91
마음에이런감옥있다니94
얼쑤96
사소한건망증98
꽃잎100

제4부

2021년7월9일생104
산은산,물은물107
자연을보호해야하는이유110
김추자112
젊은날의초상114
두문포엘레지116
살바도르달리표상상력이도발한잠재의식해방을위한몇개의이미지120

▨김홍조의시세계|이재훈126

출판사 서평

신곡강부(新曲江賦)


생전의구상시인은한강이내려다보이는여의도관수재(觀水齋)에서집필을하면서손님을맞았다어느날결혼을앞둔내가방문해청첩장을불쑥건네자서로존경하고사랑하되사르트르와보부아르커플처럼구속하지말라고신신당부하였다공손해진나는그렇게살겠노라고다짐했으나자리에서일어나자마자잊어버렸다이후수십년긴장과이완이갈마드는타협이이어지면서특별히반전이랄것도없는맹물같은다큐멘터리가엮였다드물게대형사고라도터지면예쁘게올라온꽃대궁을뎅강잘라놓고나도예수를몇번이나부인할수있노라고씩씩거렸다

우물쭈물하는사이장강의앞물은뒷물에밀리고
참나무와삼나무는서로의그늘속에서자랄수없다고핏대를세웠으나
운명의역린만은건드리지않기로
저산너머뭐가있는지는궁금해하지않기로마음먹었다

개울을건너던여우의꼬리가마지막순간물에젖은것처럼
완전하지않고결론도없는삶
더기다릴것없이
광교산자락펼쳐진베란다창가한켠에
관수재(觀樹齋)라는마음의현판하나걸어두고
훌륭한덕담무수히필사해
새연을맺는사람들에게팔고또팔면서
구시인의정신불밝히며사노라고사기나칠까
그럴만한배짱은있는것일까

뒤늦게발동한서푼짜리분별심이변죽만울리느라
등뒤해지는줄몰랐는데

겨울노을은
조금만더기다려달라는내손을뿌리치고
기어이산등성이를넘는다
쌀쌀맞기가동짓달서릿발이다

상심한오늘밤은
우주의어느이도(異度)공간에들어
인생칠십은고래로드문일이라고흥얼거리는이국옛시인의노래장단맞추는
봄꿈이라도꾸어볼까

꽃덤불에숨었던호랑나비팔랑팔랑날갯짓에
선잠깨어나면
아름다운그이모습보이지않고
가슴저미는절창만남아
곡강의눈시울을굽이굽이적실지라도

우리곁의성자


중림동옛합동시장터
도로변에서야채파는할머니
소나무껍질같은손으로
대파,실파,상추,깐마늘,풋고추
곱게다듬는다손자손녀단장시키듯
굽은어깨에서미끄러진여름햇살이
안쓰러운지속삭인다
예쁘게한숨주무세요
자리펼것도없이
영정사진들머리에서끄덕끄덕졸다가
정오의성당종소리에화들짝
오메,내정신좀봐.그거?오백원에가져가
백원깎아줘요.사백원!
옜다!못이기는척거스름돈건네는
우리들의넉넉한빈자해거름되자
거둔좌판십자가처럼끌고좁은골목오른다
쪽방문턱넘어몸눕히면그대로광야
내일의복음이
독거노인의헛기침을받아내고있다

늦은밤날선바람부는서울역
광장으로향하는계단에앉아
직각으로고개떨군노숙자
지상한켠에자신의망명정부세웠다
소주한병오뎅국물한컵이면오케이
과거를묻지마세요
수상한관심도노땡큐
다만도시의부처란부처는
모두죽였다는건밝힐수있어요
사리가나오든말든
나무든돌이든가리지않았지요
기적이울리네요
소주라도한병사면더들려줄말있어요
언제든떠나고어디서든돌아오는
기차편이있음을하지만
동쪽으로동쪽으로가본들
결국은제자리로돌아온다는것을….
도무지알쏭달쏭한자유인은퀭한눈
그대로동안거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