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노을을 두고 내렸다 - 현대시 기획선 83

버스에 노을을 두고 내렸다 - 현대시 기획선 83

$12.00
Description
이 시집은 “깊이 어둑한 숲속에” 지은 ‘화사한 집’이다. “염원하는 마음으로”, “높이 쌓아 올린 꿈같은 것”으로서의 시집. 하지만 ‘환몽’ 속에서 지은 집이어서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 집이다. 만지려고 하면 사라지는 신기루 또는 구름 같은 집. 환(幻)으로 만들어낸 꿈속의 집. 이병관 시인에게 자신의 시집은 이러한 집 아니겠는가. 이 시집은 환으로 만든 집이어서 자유로이 떠다닐 수 있는 집이며, ‘이웃들’이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는 집이다.
또한 환몽의 집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방 안에 있는 시의 화자는 “상자에 모아놓은 사진을 꺼내” 본다. 그리곤 “시간이 통과하는 그늘을 자르”기 위한 가위를 찾는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드리운 그늘들을 오려 압정으로 꽂아놓기 위해서다. 그 그늘에는 환을 통해 “날아오르려는 새들”이 잠재해 있다. 시인이 꽂아놓은 그늘들이 하나의 집을 만든다.
저자

이병관

None

목차

●시인의말

제1부벗은이슬의행적은나무에맺힌새의연혁도모르고

환몽10
평행11
모조시간14
빈틈없이텅빈어떤투명의단면16
시작하는잠시18
통과하는온갖19
저기유리너머에,우리22
누누25
우리가모르는빗소리의일부와28
구름무렵30
404NotFound33
반복되는손34
얕은밤의물고기36
잠시의모형37
증발하는정말38
해부대위에서잠시누구인가하면서40
반토막45
무반주46

제2부그래도여기가아니면어디서꿈꿀까싶어

분홍무렵48
빗소리의정원49
벚꽃이지는속도52
새가창업한바다는섬을탕진하였다54
모조맥박56
가히캠프적인종류58
입없는밤의소수의견60
오래된잠시62
버스에노을을두고내렸다65

제3부우리같이구름할래요?

종결어미68
구름연대기70
구름하실거예요?76
구름셈법78
비形미래80
루틴83
어떤밤의방문84
반향실86
어느겨를88
과도기적거울91
구름痛92
미세투명94

제4부당신은정량으로슬퍼질수있나요

비탈96
영구적잠시97
버스에노을을두고내렸다98
某某100
某요일102
버스에노을을두고내렸다104
난반사108
거울나비110
유리우리111
시작되지않기위해끝나지않는112
존재하려는만약117
무향실118
잇120
행인0의행방122

▨이병관의시세계|이성혁124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어떤마지막엔
하지만어떤구름이
거기서시작하면어떨까

책속에서

평행

구름에매달려죽은새를상상했다
출구없는통로를상상했다

흔들리는난간에기대어
바람을횡단하는
초록벌레를상상하다가

정량으로슬퍼하라는
식어버린시인선생님을나는슬퍼했다

열살무렵
온누리하얄때
혼자파랗게떨다가별이되어버린-

피어난자리가아물지도않은
한아이를사랑했다
사과처럼빨갛게쏟아져버린아이

내겐많은압정이필요해
날아오르는새들을공중에꽂아두려면

일기를쓰다가쓸말이없어서
비좁은밤자꾸만드물어지는홀로-

앨범에넣지않고
상자에모아놓은사진을꺼내보았다
요행히아직죽은적이없는사람들
다행히이미살아버린사람들

내겐가위가필요해
시간이통과하는그늘을자르려면

층계도없이층층이
아무도아무데도없고고요만이이는,
통로에서태어난아이가
벽을두드린다

투명한속살을가진적막
슬픔은어딘가뉘어놓은자신의몸을찾았다

놀라깨자아직은캄캄한밤
꿈속의아이가아직도벽을두드린다

아무도없는소리
아무리묻어도파묻히지않는구름

식어가는분간을떠는
흔들리는고요

나는막쓸려나가는
자신의잎새를마주하는나무처럼

가장가늘게흔들리고

**

버스에노을을두고내렸다

버스에노을을두고내렸다.아무리살펴보아도두고내린것도없고,혹여나잃어버릴만한마음도가진적없었는데,괜히호주머니를뒤적이게되는것은.
부쩍마르고있는마음탓일지도모르겠다.손에잡히는것도없고표현할어떠한언어도없이마음한구석허전한요즘,자꾸마음이진다.마치수원지를잃어버린강물처럼,셀수없이반짝이는은빛수면같이.
떠나버린버스를한참쳐다보았다.다행히신호등에걸려서있는,마치두고내린물건을가지고있는사람이돌아서서손짓하는,그런모양처럼느껴지는.
마음이지고있다니왜이런생각이드는걸까.생각하면도무지붙잡히지않는마음이내몸안에있다는사실이신기하기도하고,마음이란것이처음과끝을알기어려운,끝과끝을맞잡고펴서잴수없는느닷없이다가오는새벽처럼,그런것이겠거니하고체념하면서도시시각각밀려드는의구심은어쩔수가없었다.퇴근시간이막지나거리는부산하고,북적이는사람들사이에서도언제나외로워보이는가로등처럼,딱혼자만큼어두워지는사람들로거리는가득하고,그들의지친등이괜스레누군가의방문을기다리는빈방처럼쓸쓸하게느껴지고,그러니몰래다가가서가서괜히노크하고싶어져서는.
‘버스에노을을두고내렸다’나는지금왜이런생각이갑작스럽게떠올랐는지되짚어보고있다.버스창밖으로지는노을을바라보았을때무언가오래생각했거나아니면떠올랐던마음이기억나지않아자책하는그런마음도아닌데,별스럽지도않은이문장이왜자꾸맴도는걸까.이제추억해야할기억이더많은나이가되어서일까아니면쌓아놓은추억들이너무많아일일이기억나지않거나떠오른추억들을오래붙잡아다독일만큼다정한마음들이메말라버린것일까하는,이런생각을하면조금은슬퍼지고,
또한편으로생각하면컴퓨터속에오래묵혀놓은조각난파일들처럼조각나버린,금세사라져버리는어떤포말같은,흘러가는구름의어느한구석같이꽤나좁고길게맺혀있는것들로아득한그런장면들,아직살아갈날은많은데무언가정리하고넘어가야할것같은그런막연한생각들로가득한나이,그리고창밖엔누군가의마음을헤아리기엔너무어린내가있던그때,그때를생각하면너무비좁고가늘어지는.
적막.돌연적막하다는느낌이들었다거리는사람들로넘치고시간이멈춘것도아닌데숲속어느구석,낡은벤치에앉아오래도록무언가기다리고있는사람처럼,쓸쓸해보이는누군가의등과,위태롭게바람을견디는혹은야위어떨어지는잎새들-쓸쓸해져서다시시작되는,그런마지막과같이,
한번은넘어져야배울수있는자전거와같이,다시일어나서시작할수밖에없는그런마지막과같이-다시처음을향하는,목적지보다먼출발지로향하듯,그런생의어떤그러니아득해졌다고밖에설명할수없는.
그래,어쩌면나는막시작하려는마지막에대해서생각하고있었을지도모른다.다시처음으로향하는,어느계절의내가,가장빛났던어느순간을향하는,예민하고금세사라져버릴것같고다시는상처주지않고다정함도잃지않는,오래도록추억할,아직남은우리들의시간을향해서그리고결코공유되지않을,지독하게빛나는우리각자의홀로에대해서.
나는지금한참을걷다가다식어버린지하철역사에서막떠나간막차를염원하는,신발속에서다삐져나오지못한그림자처럼여기서있다.

버스에노을을두고내렸다.
이문장을몇시간째생각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