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팽이 - 현대시 기획선 111

프로이트의 팽이 - 현대시 기획선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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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천길 벼랑의 다랑밭에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블랙홀과 화이트홀이라는 상반된 두 공간을 이으며 ‘바깥’으로의 ‘웜홀’ 여행을 떠났던 이초우 시인은 문학적 ‘바깥’에서 ‘헤맴’을 통해 ‘낯섦’과 문학의 현실을 갈파한 바 있다. 시적 ‘신대륙’ 발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그는 유고 시집이 되어버린 세 번째 시집 「프로이트의 팽이」에서 인간의 의식을 상반된 무의식과 연결 지으며 ‘결여(缺如)’한 ‘나’를 찾아 ‘내면’으로 긴 여행을 떠나고 있다. “남극의 끝자락에서 인사동 쌍끝의 양화점을 지나 에스파냐의 세비야 언덕을 가로지르는 활달한 우주의 상상력”을 펼치며 유목적 상상력을 통해 독창적인 시적 세계를 창조해 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비가시(非可視)의 세계인 내면으로 여로를 떠난다.
“시인이란 존재는 인간에 의해 병든 나무를 돌봐주고 다시 살리는 수의사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인은 무수한 ‘나’와 ‘하나’가 되어 완전한 ‘나’를 통해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다. 시인에게는 “사유와 삶이 개별적 우주가 아니라 연통관(vasos comunicantes)”이기에 그는 최종적 동일성에 이르려는 것이다. 한 곳을 파고드는 팽이처럼, 고통과 공포를 반복함으로써 완화에 이르는 ‘포르트-다’처럼, 눅진 곳에 선 ‘나’를 내면에 열린 공간으로 초대하는 시인은 ‘나’의 잔존하는 고통과 욕망, 부재를 성숙하게 마주하고 위무하며 큰 ‘나’에 이르고 있다.
저자

이초우

저자:이초우
경남합천에서태어나부경대학교해양생산시스템공학과를졸업했다.2004년『현대시』로등단했다.시집으로『1818년9월의헤겔선생』『웜홀여행법』이있다.현대시회회장을역임하였으며,2023년12월5일별세했다.2024년10월유고시집『프로이트의팽이』가출간됐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이면도로10
퀸12
불가사의14
발의과거16
닭발위의오두막집19
뭉개진사과22
이기적사물들24
K교수의자화상26
같은고양이28
비신30
알수없는벽32
알약34
빨강음색36

제2부

농한샘물38
프로이트의팽이40
또하나의,너의신42
구멍44
황홀한도넛46
그여름밤의축제48
어머니와아버지50
여름52
J의자화상54
엉겅퀴56
반고흐의산월(産月)58
빨강바이러스60
밤의딱지61
그나마62

제3부

우물64
튤립향66
그녀의자아들68
그날이후70
오류난정삼각형72
초록74
시냅스의잦은오류76
E.S?78
내가날어디에뒀는지몰라80
쉽게떠나지않아82
호프집의굿판84
무서운파장85
모색86
포켓에내가있는지물어봤냐88
보이지않는울타리90

제4부

체중계94
오디세우스96
하나되는시간98
계절의마디100
아직나는진화중101
잃어버린바위104
또다른나106
백년간의독재자108
같은이름들111
이명(耳鳴)114
아듀,2018116
그의속118
돌을데리고집으로가는소녀120

이초우의시세계|염선옥121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구멍>

나의구멍은언제나시린맛이있어

정장을하고화장실거울앞에섰는데,갑자기거울의미간찌뿌둥했어헐거웠던실매듭그만명치단추를놓쳐버리고,실눈같은단춧구멍어찌나날시리게노려보는지보는이의석연찮은시선,나는더이상머물지않고얼른행사장을떠버렸지

포동포동5월의비목나무,열네살내여린이파리에쓰린구멍이뚫렸어하긴그때울아버지세상뜨시고,그해5월의내구멍,때아닌냉해로얼마나시렸는지
검고흰얼룩등에업고,초록으로잔뜩배를채운광대노린재가내구멍난몸에서툭떨어졌어

부르주아아들내친구에게들켜버린양말구멍,흠집난한겨울문구멍처럼어린내마음참시리게했지자주날허물어지게한,동그란눈동자같은구멍으로애처롭게밖을내다본엄지발가락살점지금난,
양말구멍같은,구멍이란구멍을보기만하면나도모르게온몸이시려견딜수가없어

<하나되는시간>

어떨땐내육신,영혼을옆구리안쪽독방에꼬깃꼬깃날을죽여가두어놓고는,한동안전전긍긍하게했다오

그러다때론복수를한건지
내영혼먼눈팔다,거구의내육신을패대기칠때가있었지
그럴땐메추리알보다작은영혼눈만멀뚱멀뚱멍든내육신에게
두손비벼용서를구하기도했어요

젊은날범퍼에받힌허벅지,어쩔수없이내영혼에게통증이란칼이주어져,미간가운데굵은세로줄하나그어놓기도했지요

한때우울증에허우적거린영혼,육신에게피해입히지않으려새벽잠대신,온종일서너번씩쪽잠으로내육신편하게도,그러다정말
새벽한시만되면어김없이내육신과영혼몸을섞는화해로,남들이알수없는서너시간,
낮에는도무지떠오르지않는,
살아움직이는답펄떡이고,실뭉치같은갈등들술술술

하지만연민으로터오는먼동,제몸보이지않으려내육신과영혼에게서둘러잠옷입히려화들짝애를쓰곤했어요

<그여름밤의축제>

진득진득열대야로치장한,밤만되면허물허물
이집저집,껍데기만남기고
잠의소장품을도굴해가버리는원귀들
노인들은하나둘세상을뜨고

깊은산고찰찾아떠나려던전날밤
곡괭이삽으로무장한마군(魔軍)들,내잠의봉분속으로
들어와,내눈속이려
가물가물옆모습만보여준,

검은상복의고개숙인여자잰걸음으로어딜가는지
잠시후들판에는
늙은허수아비들빙글빙글날아가고
나무란나무는무녀들의손에머리채를잡혀
출렁출렁헝클어져춤을춘다
온누리에벌어진큰굿판
징징징소리울리며춤을춘다
산어귀를오르던나는대나무숲으로몸숨기고
더위쫓는무당되어
대나무를붙잡고마구잡이춤을춘다

한바탕굿판을벌인세찬비바람,식은땀흠뻑
흘러내린내잠의봉분
갑자기멈춘굿판에놀라줄행랑을쳐버린원귀들

아수라장이된봉분안
그만산사여행을포기,마군쫓는알약배로넘기고
한풀꺾인더위모양고개숙인채
온종일소장품들제자리에,그래도두근두근
조신중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