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비키니를 꺼냈다 (김뱅상 시집)

냉장고에서 비키니를 꺼냈다 (김뱅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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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뱅상의 시 앞에서 어떤 독자들은 자신의 기대가 배반당하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의 시는 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그 특유의 추상적인 묘사로 인해 상당한 이질감을 선사하며, 그 목적 또한 모종의 이유로 추상화되어 좀처럼 표면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김뱅상의 시가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 목적은 치유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부분적인 진술을 수행하더라도 그것은 보편적인 성찰의 자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종종 그의 화자는 자기의 내면을 온전히 언어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모습은 서정적 풍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존재론적 침묵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못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더불어, 무수히 출몰하는 도형과 선들, 그로 인해 새롭게 구획화되는 시적 풍경들과 그 속에서 출현하는 단색들. 여타의 서정시와 궤를 달리하는 그의 작법 속에서, 우리는 그가 주목하는 ‘시’의 역량이 전통적인 의미와는 다른 지점을 노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

김뱅상

저자:김뱅상
경북안동출생.2017년「사이펀」으로등단하였으며,시집으로「누군가먹고싶은오후」「어느세계에당도할뭇별」이있다.2019년문학나눔우수도서에선정되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검은사각형10
이집션블루,8/812
옆자리가비었다16
쏟아버리고싶은,오후20
카페베네2층,혼자둘이서23
교집합26
실루엣,18:0929
이중으로닫힌창에대한풍크툼32
사물이비치는것보다가까이있음35
구성Ⅲ*,속의카페풍경38

제2부

수요일의빛깔44
냉장고에서비키니를꺼냈다47
삼각형의눈빛50
5시28분,53
굴뚝이비좁아서목마를만들었죠56
낯선,낯익은풍경60
첫눈62
내가수평이라말했던64
현악삼중주66
도로를가로지를때가있다68

제3부

무대에오르다72
모놀로그,낯선요일의74
삽화가된휴지통77
3시17분,바지랑대끝의80
지붕이붉은겨울82
수수께끼85
캐러멜은녹아내리는성질이있다88
저녁엔압생트한잔을91
사각지대94

제4부

나는98
온도가낮을수록색깔이진해진다98
박제그림자100
테이블에놓아둔얼굴을끕니다104
대합실풍경107
화요일의식탁110
가끔은그림자라도찌르고싶다114
오늘입맛,내성적입니다116
액자속서른즈음118
가장자리쪽으로굴러가는120
탄젠트122

김뱅상의시세계|임지훈124

출판사 서평

추천사

새롭게구획화된구도와색채속에서더욱강한빛을발하고야마는존재의고독.때로는쏟아지고기울어지며새롭게그어진선에따라직조되는이슬픔의문제또한독자들이오래도록고민하며곱씹어보아야할요소이다.일련의탈맥락화라부를수있는그시적과정에서우리가궁극적으로만나게되는것이너무나인간적인요소라는사실과함께말이다.
-임지훈(문학평론가)

시인의말

안과밖의슬픔들
제혼자중얼댑니다

낯선요일의,모놀로그

멈추지못하는낱말들
낮별로뜹니다

희미해서다시불러보면
……만남아서

2025년가을
김뱅상

책속에서

선들은어둠속으로들어가도형이된다아니사각의블랙홀

너와헤어진골목,
어둠한줌머리끝까지끌어당겼지

블랙은나를또다른벽속으로끌고가고
간절하다는것,겨울화분에물을주는일

겨울은스며들지도않아
떡잎이돋아날즈음이면내튕겨나간검정따위찾을수없을지도몰라

팔이없어질까,몸은젤리가되고
어디든굴러갈수있는도형은없을지도

녹턴은틀지말아줘뻣뻣해진내몸엔블랙이필요할뿐이야
터널속,난언제나벽에기대살거든

오래햇빛을보지못한도형들도
날아오르면나비가될까?

나비가바닥에떨어진다
무슨어둠을핥으려던것이었을까,어둠이도형안쪽을채우는

블랙은사각으로,또는
동그랗게

기다리지않았는데블랙은너를빨아들인다

이불을당기자더듬거리는밤의겹쳐짐에대해
---「검은사각형」중에서

내가비키니를처음입은것은겨울이었죠속을다비워내고
옷을거꾸로벗는일이었어요눈썹을치켜그렸다니까요

그가새애인이생겼다고집을나가서는위스키냄새를풍기며들어왔어요
어둑어둑해져있었고,아니캄캄한밤이었죠

그런저런것들을삼키고있었어요나는방안에서가장큰그림자로있었고
두려움따윈없었어요그는나뭇등걸로처박혀있었거든요

두번째로비키니를벗은날은그로부터사흘이지난밤이었어요
반쯤죽어있었죠밤에도비키니를입을수있네,

천둥소리로덮인세상하나를열어젖혔죠
소리들은환하게빛났어요
나는서있었고그는구석자리에앉아있었던

안경을챙겨끼고나는사라지는쪽으로걸어갔어요
아랫배가차가웠죠머리가없었고어깨가자꾸만퍼져나갔어요

맞은편에서눈사람이걸어왔어요
녹지마,옆구리에눈덩이하나를더붙여주었죠

몇번비키니를입을기회가있었죠까만색이었습니다
허벅지사이엔늘검은빛이돌았거든요

그런날은하얀도깨비들이출몰하곤했어요놈들은늘붉은뿔을달고있었죠

그를다시만난건내가막마지막비키니를벗는찰나였어요
그의눈빛이내배꼽에닿을때쯤오지마,
귀를쫑긋하였죠

냉장고에서비키니를꺼냅니다블루입니다
나는드디어차가운물에수영을할수있겠다

비키니에혈흔이묻어있어요
이런,해바라기
---「냉장고에서비키니를꺼냈다」중에서

바지랑대에달랑거리던햇살흘러내린다
옥상난간벽에그림자한폭자라다흔들린다데생작업중인가?

누가그리는묵화일까?바지랑대,그림속으로고개를내밀자
화폭엔비스듬,웬不자?

그림자,마지막획하나여태찍지못하고
저자리,새한마리앉으려나?

그림속에서빠져나오지못하는바지랑대,짧은그림자를낙관인양뭉개는데
그새,한발만으로도이계절견딜수있다는걸까?

세상엔마음대로되는게,있다
새한마리앉았다간그림속자꾸만자라나고

새한마리또,날아와점을찍고간다
흔들리다사라지는획,不
누군가자꾸만쓰다가지우는

그림자한계단내려서고나,그림속으로흘러내려
아니다아니다,자꾸날지워가는
---「3시17분,바지랑대끝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