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울음을 필사하는 하얀 밤 (문지아 시집)

당신의 울음을 필사하는 하얀 밤 (문지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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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지아 시집 「당신의 울음을 필사하는 하얀 밤」을 펼치면 새하얀 불면과 함께 밀려드는 백광(白光)의 입자가 온몸을 포박하듯 달려든다. 마치 오래된 세계에서 뛰쳐나온 요정이 몰고 오는 빛무리처럼, 잊고 있었지만 언제든 되살아나 자신을 통째로 들어 올려 향하게 하는 세계 이면의 형식 속으로 성큼 들어선 사실을 생각하곤 소스라치며 놀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어째서 생겨났을까. 왜 아름다움은 둔중한 걸음걸이처럼 지나가는 언어의 세례를 받고 나서야 찾아오는 눈물 같은 것일까. 시간이 멈춘 듯 영원히 잠기어 있을 것만 같았던 바다가 바람의 결을 따라 움직이면서 마침내 쓰나미 되어 요동치듯, 울음은 말을 긷는 몇 번의 자맥질과 여러 번 헛디딘 발걸음이 지나간 자취에 비로소 떠미는 밀물 같은 것이리라. 이런 과정은 시인이 느끼는 세계와 현실이 경험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의 지난한 힘겨루기 끝에 반점처럼 번져 신열(身熱)을 앓게 된 풍경화와 다를 바 없다는 자각과 관계한다.
저자

문지아

저자:문지아
1973년제주출생.연세대학교대학원독어독문학과석사과정을졸업했으며,2023년『시사사』로등단했다.‘시다’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서시의반대말도모르는서시15
당신의울음을필사하는하얀밤16
리허설18
오늘의물집20
오늘의풍선22
백야24
유빙의온기26
백야29
가라앉지않는파동32
묘연杳然34
로그인36
가위38
일가족40
암실과레퀴엠42
닻45
닻46

제2부
상심의위력50
흔痕의연혁52
태동55
사라졌습니까56
수몰지구58
수몰지구60
석류62
석류의안색64
커튼66
80년동안의분만68
예보하지않은걸음70
보온72
어느날,나는73
목각안개76
페이드아웃78
장마80
마트료시카딜레마82
나무는천국속에서자란다84
피와시86

제3부
봄비91
GhostTown92
드라이클리닝94
심장위에서96
증명의오차98
손오공이근두운이라면100
엄마는참치의화석이아니다102
스토커104
수세권이라는말106
13주후107
냉장고와치매의100분토론108
소문처럼흩어져떠도는한사람110
비의성별112
중심잡는시계114
통증116
나선117
야광118
회전문에낀염낭거미120

문지아의시세계|정훈123

출판사 서평

추천사

울음을옮겨적는시인의통각은따뜻한맥박으로가슴에스며든다.문지아의실존적자아는고통과기쁨의크레바스에서열정적으로솟아오른다.시인에게는상처가쓰는동력이며그런슬픔의세계를운명적으로받아들인다.문지아의시는물집이심장이되기도하며,떠도는빙하에서도맥박을듣는귀를가진다.문지아의변신과파동의감각은태동을찾는모성의마음처럼오래남아깃든다.
-이재훈(시인,문학평론가)

시인의말

희망은태어난적이없으며
절망은철마다다시자랐다
죽음을조는새벽이
뿌옇게퍼진후에야
발없이추락하는고백과
토해낼수없던사연들로
울먹임만자꾸뛰어오르는그날
맥박을가지기시작한새날이었다
조용히안아올리는내일이었다

책속에서

당신의이목구비가비로소서사를갖기시작하였다

특이점없는무혐의속오늘의날씨에서
의지를가지고바라보는너는
가만히가만히나를계산하고있었음이라
발화되기도전표정들과함께다잠겨버린소식들의혀를
더이상구해내지않음으로써이해를포기하며
각자구기다놓아버린무용의종이컵들처럼
사연은점점멀어져간다

오직한사람의표정으로만성큼거리던저녁
소용이다되어떨어져나가는포스트잇처럼
이제‘세월’에서의오늘이곧떨어져나갈뿐

당신의울음을옮겨적는밤
열정은좀처럼뜨거워지지않는그런
내눈에이미가득차오르는것이계절임을모르고
자꾸만자꾸만봄으로뒷걸음질치는나는

드문드문

있다

건너갈수없는하나의몸을오래오래쫓는다

아무런기억도기억해내지않은채

그저전속력으로

지나쳐야만했던
---「당신의울음을필사하는하얀밤」중에서

절망은사람의목발이라네
맨앞에서발목이슬어더이상나아가지못하는
그사람의꿈들이떠나간자리엔,
베개처럼눕는슬픔들이물속으로가라앉고있어

통곡은리허설조차없이매혹적이야
누구의가슴에도각주로달수없는슬픔,
어느기도문에도퇴고되지않는기도들이
범람하고또범람하지

계절마다되풀이되는건
삶을구원한다는사제들의말뿐,
그러나그말마저얼어붙어가는것을보았네
무겁게언강물위로는
시간이부서지며흘러가고,

떠난자들의흔적은빛을잃은채
물결속으로잊혀가고있지
물속깊은곳에서조차
여전히들려오는건한숨같은물결소리.

희미한희망조차녹아내린땅,
그러나그곳에도아픔을감싸안은봄이
언젠가는찾아올까
아니,그저얼음이녹아흐르는일만남았을까
---「수몰지구」중에서

반고리관에서떨어진발자국을따라
꽃잎들을모조리짓밟으며걸어가면
절대사라지지않을영원에도달하겠지

그러나나는허물어진집앞에멈추었다
그두꺼운입방체는무언가말하려는듯
한번은관성처럼기울어졌다

비의냄새는바깥으로흘러가지않았다
눅눅한8월의어느구간
유지를받은복제인간처럼순응해도좋았다

누수된베란다에도서를몇날며칠띄웠다
글자로이룬바다위종이배가떠다니듯
나는엮인아버지의시집을날마다회수했다
---「나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