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오래 죽어 있었다 - 현대시 기획선 144

나는 너무 오래 죽어 있었다 - 현대시 기획선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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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화성

저자:서화성

목차

시인의말

제1부

갈대10
집착11
중독14
명륜동16
나와어울리지않는나의색다른취향18
씨발,씨발20
탯줄23
얼었어요24
등26
매화꽃이피다28
말랑한잠30
문신32
기다리는내내34

제2부

나일거라는생각38
나무들41
거미44
비온뒤,K47
환승역50
기상청은맛집이다53
발의천국56
저녁의이유58
광장60
핑계62
키스64
키가자라서66
지난날68

제3부

나귀72
비워둔집73
y에게76
찰나79
무인도82
달력85
동지86
글냄새88
손톱90
당신은93
눈맛94
피카소m과M96
밥을먹는다100

제4부

생각을더듬다104
상상나무미술관105
합성동행복대합실108
정오110
구겨진엽서112
이상한중국집115
소년과J118
때121
좁은방124
그런데126
빨래129
시간을죽이는여러가지방법132
다시아침이온다134
유령들136

서화성의시세계|임봄139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밖은햇살이장렬하게내리친다
야호,여름이다
아닌가겨울이다
대문앞에쌓여있는신문같은것
산더미처럼밀린독촉장같은것
압류딱지같은것
그래도나는시를쓰고있다

2025년어느가을날
서화성

책속에서

그사이에웃는일이가끔있었다
아주가끔은그랬다.일단그일은좋은일이라고하자

반갑지않은손님처럼
추위만큼이별은매서운것
그동안살았던너와이별했다아니다,내가버렸다
그날부터슬픔으로덮었던이불을차곡차곡개는버릇이생겼다
너와가는내내눈이쌓이고쌓여서눈사람이되는슬픔
추위에못이겨슬픔이달아날까봐문고리가꽁꽁얼었다

너는언제나그렇지아니다,그랬다
날씨가무던히도뜨거운날
당신을업고벚꽃이만발하던벚꽃동산에올라가기도하고
동해바다가구름처럼밀려오는데도너는달렸어
개나리와해바라기가피고국화와동백이지고
어디든갔었지아니다,갔었다.너는

아주가끔은다리하나가빠지기도했지만
그래도행복했어아니다,행복했지라고웃었다

용광로처럼펄펄끓는변두리대학병원응급실
갈때마다돌아오는길은너무나멀었다
가끔은해가뜨고있었지,그랬어

내몸에질긴부적처럼붙어다녔다
당신손을잡은그때는세상살이가수월하지않았어
바람같았다아니다,순간이었지아니다,청춘이었어
당신은벚꽃을찾아아주멀리떠났고
눈물을짜내는일이두번은있었고아니다,있었다
일단그일은좋은일이아니라고하자

매일같이먹던밥솥도버렸다
밤이면피가거꾸로돌아몇번이나잠에서깬적이있었고
우두커니바닥에엎드려어둠이지나가는것을지켜보았다
---「명륜동」중에서

돌고돌아서간집
얼마동안살겠다고각서를썼던집

한때집은차갑고쓸쓸했다
집이보내온온도는먹다버린과자봉지처럼중요하지않았고
아침에먹는밥은단단하고돌처럼굳어있었다

구렁이처럼냉기가스며드는집
수국이어울리는집
천사가살았다는집
집,여전히집,아직은집

즐겨보던뉴스는반갑지않았고
기쁘거나슬프지않았다
언제썼는지한문장중간이비어있었고
끝을몰랐고계속해서문장을만들고있었다

일월과십이월사이

사월은외로운집

까마득한추억
열일곱살
해가저물어찾아간집

한때밤을지새우던책상에나는없었고
쓰다만시
먼지가된시
눅눅한시
병들은시
......

지난겨울은너무길었나보다
겨울잠을자듯집은고요했고냉정했다
집에왔는데집이아니었다

개미한마리가문턱을넘어간다
읽었던소설이생각나지않는다는사실만으로
집을학대할명분은아니었지만
몇번째소설인지궁금하지않았다

바뀌지않는비밀번호
익숙하지않은집
여전히집이라니까집

다시어디에있을집
돌고돌아간집이었다
---「비워둔집」중에서

당신은길쭉한목구멍이특징이에요
그렇다고목소리가좋다는말은아니고요
다시말해불고기를목전에두고목구멍이넓어져요
커다란눈속에맛이가득하네요
모나리자같아요
최후의만찬을즐기는건가요
고기가익는동안눈으로맛을보아야해요
눈맛,눈맛,눈맛……
그림에눈맛
살살다루어주세요
거기가너무아파요,거기말고거기요
우리는뜨거운사이잖아요
눈맛이오고가고군침이도네요
두눈이오른쪽과왼쪽으로
사랑이뭐별건가요
제발이러지마세요
당신이맛볼차례인걸요
처음먹어본맛인가요,싱싱하고달콤하다고요
야릇한맛은아닌가요
눈맛이요동치기시작했어요
이글거리는눈맛
군침이도는눈맛
당신은눈맛인가요
이번달이지나당신과헤어질까해요
어금니를뿌리째뽑는고통만큼아플까요
매달리기연습을했어요
서서히몸이익어가요
눈이타버린불판
보상이라도하듯연기가살아나네요
한번쯤은그집을지날때면
빠진어금니가많이그리울거예요
아참,당신이뒤집어볼래요
---「눈맛」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