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테이블 : 시詩로 풀어낸 인도네시아 - 현대시 기획선 143

불멸의 테이블 : 시詩로 풀어낸 인도네시아 - 현대시 기획선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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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공경

저자 : 사공경
시인으로서의 삶에서 시는 시인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그려내는 최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어쩌면 시의 삶보다 시로 드러내고자 하는 문화와 역사를 더 사랑하는 듯하다. 시가 목적이 아니라 방편일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해외 교민들은 자신의 생업을 고민하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의 내력이나 역사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사공 경 시인은 여느 교민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구분, 혹은 구별은 문화의 증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쓰는 인도네시아에 관한 시편들이 기획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문화가 꽃핀다는 말은 거짓이거나 가식이다. 문화는 어디에서도 꽃핀 적 없다. 여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는 문화를 말한다. 문명이 아니다. 문화다. 이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이다. 두께다. 시인은 삶으로 시를 쓴다. 바틱은 옷이지만 문화를 온전히 간직하고 유지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런 노력이 시집으로 집약되었다. 의미는 생성되는 게 아니라 이미 있었다. 시인의 시는 밝힘이 아니라 확인이다. 이 확인은 가치보다 더한 의미를 지닌다. 지향이다. 어제를 확인하는 일은 오늘을 내일로 가는 계기가 된다. 시인의 시집은 한 나라의 역사를 문화적으로 바라본 결과물이다. 이 가치에는 바다가 놓여 있지만 인류는 바다를 건넌다. 시인의 인도네시아가 곧 우리가 되는 이유이다. 문화를 통해 화해와 통섭을 소통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이 시집을 낳았다. 이해가 아니라 동감이다. 이는 이 시집이 갖는 값진 이유이기도 하다.

목차

● 시인의 말

제0장

서시 12
승리의 땅, 자카르타에서 14
자카르타 연가 16
여행에 부쳐 17

제1장 파타힐라 광장에서

바타비아의 오래된 항구 20
올라가지 않는 도개교 22
삐니시 1 23
삐니시 2 24
루아르 바땅 마을 26
뭍으로 올라온 지느러미들 28
순다 끌라빠 항의 전망대 30
해양 박물관 32
옛 조선소, VOC 갈랑안 34
빨간 상점 36
역사박물관 1 38
역사박물관 2 40
역사박물관 3 42
파타힐라 광장에서 43
카페 바타비아 44

제2장 반쪽 폐로 지킨 나라

슬라맛 다땅 48
꺼지지 않는 불꽃 50
반쪽 폐로 지킨 나라 52
시간이 멈춘 거리, 잘란 수라바야 54
수로빠띠의 이름으로 56
그늘진 기억, 스넨 시장 58
음표로 지은 배 60
묘비 박물관에서 62
이국에 묻힌 병사들의 영혼 64
깨달음의 자리, 스토비아 66
자바의 첫 망명객, 오랑 꼬레아 장윤원 68
독립 영웅, 양칠성 70
바리의 꿈, 버락 오바마 72
성 마리아 대성당 73

제3장 신의 그림자, 와양

바틱 1 76
바틱 2 78
바틱 3 80
앙끌룽 81
옛 노래, 두타 82
도예가, 위다얀토 84
하리 다르소노의 꿈 86
불멸의 테이블 88
보로부두르, 화려한 부활 90
사만가요 춤 92
신의 그림자, 와양 93

제4장 자카르타에서 생의 절반을 살다

뿐짝, 차밭에서 96
해변의 기도 98
안쫄 바다 99
자카르타의 우기 100
바타비아 마리나의 노래 101
쯔짝, 도마뱀 울퉁이 102
오후 3시의 공원 104
부치치 못한 편지 105
자카르타에서 생의 절반을 살다 106
중앙 우체국, 우정의 길 위에서 107
시간을 담은 바꿀 커피점 108
수카르노-하타 공항에서 110
옛 우체국의 시간 112

▨ 해설 | 최준 113
▨ 발문 | 도종환 125

출판사 서평

인도네시아는 바다 위에 길고 넓게 펼쳐진 섬나라일 뿐만 아니라, 밀림의 중심부처럼 아주 깊은 나라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어쩌면 순례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자카르타, 식민의 이름으로는 바타비아. 고통과 식민의 기억, 정치적 폭력, 회복과 기도가 뒤엉켜 있는 도시였습니다. 저항과 존엄, 무너짐과 다시 일어섬이 짙은 초록과 붉은 땅에서 언어 이전의 방식으로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역사의 상처를 보았고 예술을 배웠으며, 무릎 꿇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 예술은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두드리는 가믈란의 리듬 속에서 무대 위의 와양의 그림자에서, 노을 속에 울려 퍼지는 아잔과 성당 종소리 사이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너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신과 인간의 거리’를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시는 나에게 일종의 영적 실천이었습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인 고통과 회복, 아름다움은 언어 이전의 언어로 나를 흔들었습니다.
바틱은 인도네시아 그 자체입니다. 시를 쓰는 일이란 역사를 감싸는 한 조각의 천을 짜는 일이거나 신 앞에서 헐벗은 마음으로 그리는 바틱 문양과도 같았습니다.
바틱 장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 위에 말람(초)으로 쓰고 덮고 염색하고 다시 삶아내듯, 나 또한 언어로 마음을 새기고 덮고 다시 기도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이 시집은 그 물음들 사이에서 내가 듣고 보고 응시하며, 가만히 다가온 목소리들을 담아낸 내면의 사유입니다.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서 낯설음이 주는 열정 속에 뿌리내린 일상에 대한 기록이며 그들의 삶과 예술, 믿음의 기록을 쓴 한 이방인의 언어이자 기도입니다. 그것은 흔들리는 야자수의 그림자이기도 하고, 비 오는 오후의 정적이기도 합니다.

읽는 이의 영혼에도 바틱 문양의 흔적이 조용히 물들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자카르타에서 사공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