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새벽 - 현대시 기획선 153

푸른 새벽 - 현대시 기획선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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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옥

저자:김정옥
1980년전남곡성출생.한국방송통신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고,2021년「시사사」로등단했다.시집으로「풀잎」(2022년문학나눔선정)이있다.예띠시낭송회회원이며,글길문학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응고10
목덜미13
물이젖어요16
사막18
만찬22
얼음사다리25
진주목걸이28
환희30
생명을만나요32
하얀주머니34
얼음집36
소금밭38
귓속41

제2부

가림막46
회색거품48
낡은집50
세상의굴52
생쥐54
입술가위56
푸른새벽58
파편60
팻말62
욕망64
허한비늘들이반짝이게될거야66
미끼68
생쥐와나69

제3부

빈방74
아버지의이삿날76
꽃잎78
안부80
안개82
손톱84
홍시86
오디나무88
독사과90
생감자92
날개를말려요94
눈이랑구석97
되새김질100

제4부

엄마104
푸른여치109
나무눈망울110
가시고리111
기다란수염112
미나리114
여든아홉116
노을118
빨간꽃120
철조각122
야물어124
파란문126
오빠129
상추꽃필무렵갈게요132
아버지135

김정옥의시세계|이형권138

출판사 서평

추천사

이형권(문학평론가,충남대교수)
감각을통해세계를인식하는방식은김정옥시의도드라지는특징가운데하나이다.세계를이처럼관념이아니라감각으로인식하는것은,감각이몸을통해세계와능동적으로교차하는실천적과정이라는메를로퐁티의지각현상학을연상케한다.몸의감각으로대상을인식하면서의미를창출한세계는,정신이나관념만으로이루어진세계보다더핍진하고생생하다.그곳은삶과죽음의욕망,에로스와타나토스와욕망이혼재하는,인간의근본적존재양식과맞닿아있는세계이다.

시인의말

빈털터리나뭇가지인줄알았는데속이가득차있습니다
새싹과꽃잎열매를품에안고속이터질듯합니다
봄이옵니다겨울은지나갑니다
피어나는시기는다르므로나의꽃을피워내는때를조용히기다립니다
때에맞게피워내려잠시숨을고릅니다
기다림으로마른나뭇가지를지켜내기를
품에안고사는우리의꽃이피어나고열매맺기를…

2026년3월
김정옥

책속에서

<낡은집>

허름한나의내면을보려고기웃거립니다

양쪽나무문사이문을잠그는쇠고리가
둔탁하게달려있습니다
녹슨쇠와못이문을지탱하고깨진슬레이트지붕아래서까래등은부서져갑니다
그래도제법벽돌기왓장이가운데를튼튼하게일직선으로늠름하게잡고있어제법입니다
담쟁이넝쿨이문틈을지나볕이잘드는벽을타고손바닥을짝펼치고있네요

죽어버린것같은줄기를따라가보면
초록잎사귀가보입니다벽에딱붙은회색
줄기에초록색이뻗어나와뒤엉켜있습니다

작은거미들이군데군데사는헐거워진
거미줄옆담쟁이꽃이단아하게피어있네요

뒤꼍에는커다란거미가지붕밑으로거미줄을
촘촘하게쳐놓았지만갈색나뭇잎만말라붙어있어요그래도거미는커다랗고씩씩해보입니다

문을열면그럴듯한무언가기다릴것만같아
조심스레열어봅니다조그마한몽당빗자루가누워있습니다
안에는청소만하면깔끔할것도같습니다
과자봉지에빈병들이오랫동안잠을자다
문여는소리에깜짝놀라실눈을뜨고
쳐다봅니다
오랫동안빗장을질러닫아놓았는지
먼지쌓인빨간색노란색이섞인비단방석
피곤하면쉴수도있을것같은오래된돗자리가접혀있습니다

이미안을들여다보았고무엇이있는지알것도같은데잘열리지않는좁은문틈으로
몇번이고안을기웃거려봅니다
좁고낡은집그안에서나는늘숨을쉬니까요

<푸른새벽>

나뭇잎이우수수비를뿌립니다

사과씨를깨물었습니다
깨물어버린사과씨를삼킵니다
사과를먹다가씨앗은빼내려했는데
그만먹어버리고말았습니다

당신의이야기가씨앗까지넘어옵니다
껍질째맛있게씹어먹었는데씨앗에서느껴지는
알갱이들이까끌까끌거리며혀를만지고
목젖을지나넘어갑니다
단단한당신의언어가씨앗이되어
잠자던나를일어나라고싸리비로쓰윽쓰윽
새벽공기를마시며마당을쓸어줍니다
나는잠만자고있는데당신은벌써깨어있네요
나는게으르게새벽을보내는데
당신은분주하게하루를시작하며
늦게까지잠못이루네요
직접소리내깨우지않고슬쩍
이슬바람불어놓고갔는지촘촘한이슬들이
내앞에서성거려요속살들이떠다녀요
나는거친나무껍질만보여주는데
당신은나무속부드러움을살포시꺼내어
나의부끄러운민낯이내얼굴에부딪혀와요
나는진실을잘알지도속살을
어떻게내어놓아야할지도모른채걸어요
그런데당신은아무렇지않게살포시뿌려놓았어요
눈이커다랗게부풀어올라요
이슬들이곱게쓸어둔마당가에앉아요
이제당신에게씨앗을꺼내는법을배우려
종종당신을만나진실을꺼내볼게요

나는저아래로떨어져있어요그래도언젠가
언젠가는그씨앗을깨물어먹고싶어요

싱그런사과,당분이촘촘한당신의언어를
깨물어먹습니다

<날개를말려요>

검은형체가덮쳐버리고
안에서줄줄흐르는액체를멍하니바라보는데
손가락끝이움직여지지않아넋놓고있다가
약을챙겨먹고떨어지는빗물을받아요

또르륵또르륵둥그런원을그리며떨어져요

내아이의이마눈동자손끝에서
지독한물들이쉴새없이흘러요

바람처럼이리저리흩어질까요
여기앉았다저기쉬었다갈수있을까요

어둠이내려앉은방안에앉아공부를하고지친몸을누여요내일은학교공부를마치고쪽잠을
자고일어나일하러가야해요새벽5시에일을
마치면버스가없어요걸어서30분

똑똑잘도떨어지는돈은늘배가고프고
주머니는늘비어있어요채워주지못해나는늘
빗물을받아놓고살지요

어릴때부터늘구멍이뚫린어두운방안에
내려놓고꺽꺽울다가잘키워보겠다고
책도사고일도쉬지않았지만멈출수없네요

잘컸다잘했다그러나늘아프고
진정되었다싶으면또솟구치는어두운방안이
목덜미를잡네요
이끼가방안에덮인것처럼습하죠고인물이
빠져나가지못한것처럼마르지않은방
곰팡이들이쥐를불러오고습한바람들이
덜컹거리는창문을닫게하네요

벽지는들뜨고들뜬벽지사이로검은곰팡이들이번져나가고오래된에어컨바람은곰팡이를
오래오래살게했어요담벼락에피어난이끼들은고인물을마시고미끄러질수있으니바닥을
조심해야겠어요

오래된낡은집사이로새끼고양이가배가
고프다고야옹거려요츄르를하나사서먹여주곤돌려보냈어요곰팡이가피어난방안에차마둘수없어서가라고손짓했죠비어있는마음한편에는
늘걱정의방이자리하고삭막한도시에홀로
배고픔을라면이나간단한일회용으로때우는데
기댈곳이라고는겨우이끼가득한벽과들뜬벽작은침대가전부

벗어날수있겠죠환한방에새들이지저귀고
햇살이날갯짓을멈추지않을날

마음한편바람이잠을자다깨어날그날

푸른바람이벽지사이에들락일날내아이의
가슴이뜨거워질그날

나를덮어버린먹구름은사라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