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
대한민국임시정부의전역사를한눈에보는대한민국임시정부사
2019년4월11일,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기념하여기획출간된이책은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발행한『독립신문』의사장및육군주만참의부참의장을지낸독립운동가김승학선생의손자인역사학자김병기박사(대한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위원장)가독립운동사와임시정부에대해더많은대중에게알려야겠다는일념하에집필한역사교양서이다.오롯이대한민국임시정부의역사에집중한정통‘대한민국임시정부사’로서이책은기존의대한민국임시정부사들이학술적성격이강해일반독자들이읽기쉽지않았던점을감안해쉽고평이하게서술하는데중점을두었으며,핵심적인사건과역사적흐름을일목요연하게정리함으로써임시정부수립의배경에서부터1948년8월15일대한민국정부가수립됨으로써임시정부의역할이다하기까지대한민국임시정부의전역사를일별할수있도록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이동경로를표시한지도에서부터시작되는이책은임시정부의복잡다단한여정속에서독자들이길을잃지않도록임시정부를둘러싼수많은인물과단체,당시의급변하는세계정세와복잡한조직내의갈등과변천과정,지난한투쟁의서사와다양한좌절과성취의기록등을평이한서술로차근차근꼼꼼하게짚어나가는한편본문중간중간다양한자료사진을곁들임으로써독자의이해와관심을높인다.또한부록으로대한민국임시정부사와세계사를일별할수있도록‘대한민국임시정부사연표’(부록1)를실었으며,1948년제헌헌법의기본바탕이되었으며대한민국임시정부가광복후어떠한국가를세우려했는지를밝혀주는중요한자료인「대한민국건국강령」(부록2)전문을현대국문법에맞게정리해실었다.독자들은이책을통해대한민국임시정부의시작부터끝까지전역사를일관하는귀중한경험을할수있을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대한민국정부의뿌리이자기원이다
특히이책은기존의대한민국임시정부사들이임시정부의역사를1919년부터1945년까지로한정함으로써1945년8월15일광복과함께임시정부의역할이끝난것으로본축소적관점을넘어서1948년8월15일대한민국정부가수립될때까지임시정부의역할이지속되었다는입장을견지하며임시정부의역할과시기를보다적극적으로확장한다.즉광복당시충칭에있던임시정부는비록한반도에주둔해있던미군정의반대로정부자격이아닌개인자격으로환국했지만국내로들어와1948년8월15일대한민국정부가수립되는시점까지임시정부를자임하며‘정부’로서과도정권을수립하기위해다양한활동을전개한것이다.따라서이책은임시정부사를상하이시기,이동시기,충칭시기로구분하는기존의일반적인임시정부사기술과달리마지막에환국시기를더하여임시정부사를네시기로나누어살펴본다.이러한이책의시도는1948년에수립된대한민국정부가임시정부를계승하고재건한것임을명백히하는동시에대한민국임시정부가대한민국의뿌리이자기원임을확고히하는것으로서여전히계속되는건국절논란에종지부를찍을수있게해주는또하나의전거가될것이다.
[주요내용]
[대한민국임시정부의수립]
대한민국임시정부는잃어버린나라를되찾아당당한독립국으로바로서고자한대한민국전인민의꿈과염원과실천의결집체였다.그러나대한민국임시정부가출범하기까지는쉽지않았다.1911년신해혁명,제1차세계대전,1917년러시아혁명,1918년윌슨의민족자결주의원칙,파리강화회의와같은대외정세변화와,만주,간도,노령등에서의교육과독립투쟁,상하이를중심으로모인독립운동가들이결성한동제사,신한혁명당,대동보국단,신한청년당등의대내활동이결합되어1919년에이르러서야무오독립선언(2월1일),2.8독립선언,그리고3.1독립선언(3.1만세운동)등이이어지며임시정부를만들어야한다는요구가일어나기시작한것이다.이러한거족적인독립선언과만세운동이임시정부수립요청으로이어짐으로써1919년3월과4월사이에국내외에서총8개의임시정부가수립되었다.그중실제적인조직과기반을갖춘것은연해주의대한국민의회,상하이의대한민국임시정부그리고국내의한성정부였으며,이들세임시정부는1919년9월대한민국임시정부로통합하였다.
1919년4월상하이에자리잡은임시정부는1932년의이봉창의거,윤봉길의거로빛나는의열투쟁끝에고난의대이동을시작한다.자싱,하이옌을거쳐1932년5월부터항저우에서3년을보내고1935년에는전장으로이동하여그곳에서2년정도지낸뒤난징,한커우를거쳐1937년에창사에도착한다.그리고광저우,우저우를거쳐1938년에는류저우에잠시머물고다시구이양,쭌이를거쳐1939년에치장으로간다.치장에서몇달을보낸후1940년9월에충칭에자리잡고해방때까지머물다가1945년11월과12월에서울로환국한다.임시정부가이렇게이리저리옮겨다녔다는사실자체가임시정부를둘러싼국제정세가변화무쌍했고임시정부의기반이취약했으며임시정부의투쟁이험난했음을증명한다.
[상하이시기(1919-1932)]
상하이시기의임시정부는대외외교에힘을기울이고각종법령과제도등정부조직을정비하면서국내외동포를관할하는연통제를실시하고,교통국을설치하며,거류민단을운영하고,독립전쟁을위한군사계획을수립하고자했으나인력과자금난등으로소기의성과를거두지못하였다.또한이시기의임시정부는임시정부의대표성문제,임시정부의개조혹은창조문제,임시대통령탄핵및지도체제개편등복잡다단한내무문제로활동이위축되기도하였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시기는한인애국단이주도한의열투쟁으로일본군국주의와세계제국주의에정의의경종을울림으로써임시정부가한국독립운동의중심으로서활기를되찾은시기이기도하다.
[이동시기(1932-1940)]
이동시기는임시정부가100여명의노소대가족을이끌고일본군의공습을피해가며이동한고난의시기였지만전시체제를확립하고각당의정당활동이활발하게이루어진시기이기도하다.이시기에중일전쟁과제2차세계대전이발발함에따라임시정부는광복군의원형을갖추었고,만주와중국관내의독립운동세력의통일체인통일동맹(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민족주의와사회주의세력이함께참가한민족혁명당,우파의광복진선(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좌파의조선민족전선연맹등이결성되어활발하게활동하였다.
[충칭시기(1940-1945)]
충칭시기는임시정부가한국광복군을창설하여대일항쟁과국내진공작전을준비하고,광복후의정식정부수립준비(「대한민국건국강령」)를하고,군사부문뿐만아니라정치부문에서도좌우합작의통일연합정부를실현한중요한시기였다.1940년9월창설된광복군은아나키스트중심의독자무장세력인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좌익진영의무장조직인조선의용대를편입시킴으로써좌우파의군사통일을이루고영국군과의공동작전을위해인도,미얀마전선에공작대를파견하고,미국OSS와의국내진공훈련을준비했다.이러한광복군창설을바탕으로임시정부는1941년에대일선전포고,1945년에대독선전포고를하였다.한편1942년선거에서아나키스트와공산주의자를포함한좌파인사14명이임시의정원의원으로참여하고,1944년에는조선민족혁명당3명,조선민족해방동맹1명,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1명등좌파인사5명이국무위원으로선임됨으로써임시정부는중국관내의좌우파인사를망라한통일연합정부가되었다.임시정부를중심으로한독립운동세력의통일노력이실질적인성과로나타나기전에해방이되고말았지만,이시기에임시정부는명실상부한민족의대표및독립운동의중심기관으로서의역할을하였다.
[환국임시정부(1945-1948)]
환국임시정부는중국교포들의생명과재산을보호하고,국민들과함께반탁운동을전개하고,정치공작대와행정연구위원회를조직하여국민적기반을확보하기위해노력했다.나아가임시정부는과도정권을수립하기위한비상국민회의,국민의회(대한국민회)등을결성하고남북협상을추진하였으나1948년에남북한에서각각단독정부가수립됨으로써그역할을마쳤다.
좌우연합의대한민국임시정부,또다른의미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맞이하면서우리는임시정부의30년역사중에서임시정부가제2차세계대전으로긴박하던시기에좌우합작의통일연합정부를수립했다는사실을무엇보다도중요하게조명할필요가있다.이시기에오랜시간동안우파민족주의자중심으로운영되던임시정부에공산주의자와아나키스트등좌파가참여함으로써이제독립운동은명실상부하게대한민국독립투쟁의3대세력인민족주의,공산주의,아나키즘이힘을합쳐투쟁하는체제로혁신하게된다.
이러한혁신의기초가된것이「대한민국건국강령」이다.임시정부는1941년11월28일에광복후우리가수립할정부의기본이념과실천을담은「대한민국건국강령」을발표하였다.이강령의기본이념은정치,경제,교육의균등과개인,국가,민족의균등을핵심가치로삼은삼균주의다.삼균주의는정치적으로는민주주의,사회경제적으로는대토지와중요산업의국유화,교육적으로는국비교육등평등주의를추구하였다.그리고사회주의의평등주의요소를민족주의를바탕으로수용하였다(삼균주의는1920년대좌우파의이념대립을지양하고독립운동진영을통일하려한민족유일당운동의전개과정에서탄생하였으며,1930년대임시정부의중심정당이던한국독립당과한국국민당뿐만아니라좌파세력의조선민족혁명당의정강정책에도반영되었다).「대한민국건국강령」에는좌우파의이념대립을지양하는민족통합의정신이담겨있는것이다.이것이바로좌우연합정부가성립될수있는바탕이되었다.
우리역사에서좌우연합정부가성립된것은충칭시기의임시정부가유일하다.이때모든어려움을극복하고좌우연합을실현해낸임시정부의정신과실천을오늘우리는깊이되새겨볼필요가있다.남과북이미래에하나가될때1940년대독립투쟁의최전선에서우리의독립운동가들이,대한민국임시정부가만들어낸좌우연합의정신이그토대가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