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도시,사회의최전선에서자유공동체를위해헌신한아나키스트이문창과국민문화연구소의70년
국민문화연구소는발족은했으나한국전쟁으로인해더이상의활동은못하고회원들각자가나름대로운동을하던시기(환력학원,근로청소년단등)를거쳐다시1950년대말부터조직을재정비하기시작했다.폐허가된나라,전세계에서가장가난한나라중의하나였지만여기서주저앉을수는없었기때문이다.
국민문화연구소는농촌청소년들을계몽하는운동부터시작하여이를점차농촌자치운동으로확대하여1960년대부터1990년대까지문고ㆍ문화반및자주학습운동,국민수산授産운동,국민문화교양강좌,대학생농촌활동(농활)지도,전국농촌운동자협의회(전농운)창립및활동,생활협동조합운동,국제교류,교육문화활동,재일동포인권투쟁연대,한국자유사회운동국제학술회의,민족문고보급운동등자유공동체운동을지속적으로추진하였다(국민문화연구소는언필칭‘사회단체등록번호제1호’다.왜냐하면1964년3월11일문교부로부터‘사회단체등록제1호’로정식등록허가를받았기때문이다).이때국민문화연구소에는1920년대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창립맹원인이정규회장(청주대학장,성균관대총장)을중심으로YMCA에서협동조합운동을오랫동안해온목양홍병선목사,수곡유정렬선생,성균관대손우성교수,서울대농대최응상교수,서울대상대최문환교수(서울대총장),서울대사대김기석교수,한양대한태수교수등당시의지도급인사들이참여하여주요활동을지도하고,일제강점기부터활동해온아나키스트선배들이활동을뒷받침하는가운데,이책의지은이이문창과청년학생들,현장활동가들이언제나활동의최일선을지켰다.이시기의주요활동중에서대표적인것들을아래에요약한다.
문고ㆍ문화반및자주학습운동
4ㆍ19를겪은학생들이일제히자발적으로향촌으로들어가농촌청소년들을계몽하고조직화(문고ㆍ문화반)하는한편인격수련과교양증진을위한자주학습운동을전개하였다(1960년겨울방학에조직된문화반만전국적으로24곳이었고비치된책이1,000여권이었다).이는농촌청년들이내마을문제를보다근원적인자아의정체성과결부시켜생각하게함으로써공동체의식에눈뜨게하고,이런공동체의식으로단련된청년들의공동생활의리더십을지역공동체로,온나라로뻗어나가게하는것이었다.
국민수산授産운동
1960년대에우리나라는가난했다.농촌은일이없어노는유휴노동력으로넘쳐났다.이러한농촌의방대한유휴노동력을지역사회내에서가내공업쪽으로돌림으로써농공병진,도농균형발전의자주협동적국민산업체제를갖추자는운동이국민수산운동이다.국민문화연구소는이를남양주진건면오룡골의문화반을중심으로시범실시하여많은성과를거두고자신감을얻었으며(새끼공동판매,예술염색기술지도,문화교양강좌,편직공업),이후이운동은전국으로확산되었다.
진건수산授産센터건립과금곡수산기술훈련원
국민문화연구소는농촌청년들의공동생활훈련장인동시에공동작업장인진건수산센터설립을지원했다(1965년).오룡골문화반청년들은국민문화연구소회원들의도움을받아스스로의힘으로이센터를만들었다.여기서편직기술교육에착수하여스웨터등을생산했고,이는각마을로퍼져갔다.그리고이러한국민수산운동은곧전국적인규모로뻗어갔다.진건수산센터는본격적으로스웨터편직공업발전의기초를닦게하였을뿐아니라훗날국민문화연구소부설의금곡수산기술훈련원(1968-1972년)을설립하여남양주스웨터공업단지조성의기반을마련하는데크게기여하였다.
국민문화교양강좌
국민문화연구소는1964년5월부터일반시민의교양향상과불특정다수의회원모집을목적으로‘국민문화교양강좌’를개최하기시작했다.이공개강좌는집회가금지된계엄시기를제외하고는1980년대초반까지무려220여회에걸쳐연면하게계속되었다.초기에는연구소임원들을비롯하여최상수,이종진,유상근,이병일,최인,정일형,주석균,홍승면,조동필,성인기,오종식등사계의전문가들이강사로초빙되어봉사해주었고,그후에도대학교수,언론계중진들이동참해주어성황리에개최되었다.강좌의주제는정치,경제,산업,사회,문화등제분야를다루었으며후기로갈수록농촌문제,청년문제,여성문제,아나키즘,사회사상등청강자의요망에따라보다심층적인내용을다루었다.
대학생농촌활동지도
1960년대부터1970년대초반까지는대학생농촌활동(농활)의전성기였다.국민문화연구소는오랫동안농촌운동을해온전문단체로서포괄적인농촌활동매뉴얼을가지고농촌활동을지도해왔기때문에대학생단체들의농촌활동지도요청이굉장히많았고,이들과자연스럽게깊은유대를가지게되었다.이때함께한학생단체로는서울대총여학생회,서울대사범대경암회,향토개발회,유네스코학생회(KUSA),공대향토공학회,치대TTC,약대소모임,농대농촌문제연구회등각단과대학의9개서클,고려대의농어촌문제연구회와4H연구회등3개서클,연세대의기독학생회(SCA),한국문제연구회,아가페회,도서관학회등4개서클,이화여대의중앙계몽대,아가페회등2개서클,서강대의향토연구회,성균관대의농촌문제연구회,동국대의농어촌연구부,서울농업대의개척농학회,한양대의기독학생회,건국대의유네스코학생회와이스라엘문제연구회,경기공전의향토봉사반,경희대의바인클럽,중앙농민학교학우회,중앙신학교학우회등10여대학의수십개농활서클들이다.또한국민문화연구소학생회가농촌활동의맥을이어왔고,모든활동의전위에서서견인차역할을도맡아했다.국민문화연구소는(긴급조치로인해연구소활동을제약받기전인)1970년대초반까지명실공히한국학생향토활동중심기구의역할을하였던것이다.
전국농촌운동자협의회창립및활동
유신정권의비상계엄이해제된후인1973년3월16일에이화여대다락방강당에서전국의농촌활동가들이모여‘전국농촌운동자협의회(전농운)’창립대회를개최했다.전농운은“농촌의경제적몰락과문화적퇴폐를걱정하는농촌인들이모여우리농촌본연의자주협동적저력을소생시키는가운데농가스스로의생존권을수호하고촌락공동체의자치능력을신장하여도농간의균형발전을이룩함으로써국민사회구조의안정기반을확립하는데기여함을목적”으로창립되어농촌ㆍ농업ㆍ농민이당면한문제를중심으로지속적으로활동을했다.특히1980년4월17일에는전농운이중심이되어전국농민단체가공동주최하는‘헌법및농림관계법령개정공청회’를개최하여전국적인주목을받았다(이날행사에는훗날대통령이되는김영삼,김대중도참석하여축사를했다).
실험소비조합,출하조합,남서울주민생활협동운동
국민문화연구소는‘농촌인의자주협동적생산ㆍ출하활동을고무하고도시인의건전한소비생활을도모할수있는농산물공동구매활동을전개해보자는’목적으로1974년에실험소비조합을발족했고,이어신용협동조합을발족(1977년)했다.또한전농운은출하조합을조직하여운영했다(1977년).그리고1980년대초반에국민문화연구소남서울지부가출범하면서남서울주민생활협동운동을시작했다(남서울지역소비자공동구매조직을개척하는사회봉사활동).이운동에는국민문화연구소에끝까지남아농촌운동의맥을지켜온청년동지들이중심에서서직접적인역할을했다.
한국자주인연맹창립및자주인연맹제2차대표자대회
한국자주인연맹창립총회는정화암,이정규등원로아나키스트들을좌장으로재경동지50여명이참석한가운데1972년6월22일진관사에서거행되었다.이총회에서는“우리는각자자기를주재하는자주인이다.자주인의자유의사로연합한자유로운사회를우리는건설한다”등6개항의강령과규약을통과시켰다.그리고그후15년만인1987년에자주인연맹제2차대표자대회를대구와경남안의에서개최했다.이대회는각대표가각각서클,연구그룹을조직해서활동할것과세계평화를위한국제세미나개최등을결의하고,원로아나키스트최갑룡,하기락과함께이문창등을사무국간사로선임했다.
세계평화를위한국제세미나
1988년10월28일부터31일까지광화문세종문화회관대회의실에서자주인연맹주최로‘세계평화를위한국제세미나’를개최했다.전세계14개국에서온아나키스트들과단체들이참석하여‘전쟁의원인과영향,세계의군비현황,발발가능한전쟁을어떻게막을것인가’등을주제로열띤발표와토론을했다.세미나가끝난후각국단체의대표들은모여서반전ㆍ평화를호소하는결의문을작성발표하였다.이국제세미나에서이문창국민문화연구소부회장이영어로사회를보았다.
재일동포인권투쟁연대
국민문화연구소는1970년대부터해외동포의디아스포라Diaspora문제에관심을갖기시작했다.연구소는사단법인개편당시김환(후일나고야한국학교교장),김자산(재일동포)두사람을법인임원으로영입하기까지하였다.그때교양강좌를통해김환이사는‘재일동포의민족교육’(71.3.21.)을강조하였고김자산이사는‘재일동포의법적지위문제와실태’(70.4.9.)를호소하여해외동포에대한회원들의관심을유도한바있었다.그런끝에국민문화연구소는1980년대말에내외관계인사20여명을초치하여재일동포’91년문제대책간담회(1989.11.11.)를열고재일동포의’91년문제를집중토의하는자리를만들었고,결의문을채택하여각계에호소했다.
광복50주년기념한국자유사회운동국제학술회의
국민문화연구소는1995년8월10일에동숭동우당기념관에서‘광복50주년기념한국자유사회운동국제학술회의’를개최했다.아시아아나키즘운동과한국아나키스트들,한국아나키즘운동의회고와전망을주제로개최된이날회의에서는‘20세기를풍미하던공산주의도자본주의도더이상인류사회를이끌고갈지도이념으로서는부적합하다는것이판정이난이상이제대안으로서의아나키즘사상을재점검해야할필요성이무엇보다도중요한과제로떠올랐다.그동안우리가실험했던자유공동체운동이이제부터진가를발휘하기위해서는무엇보다도그실천을담당할주역들의사상적재각성이요구된다’는결론을얻었다(이회의에는1920년대말중국에서이정규선생과아나키즘운동을함께했던전상해노동대오극강교수가참석하여옛동지들을추념했다).
민족문고보급운동
국민문화연구소는‘200만재중동포와의연대를통해그들의2,3세자녀들로하여금모국의말ㆍ글ㆍ뿌리를되깨우치게하는길을열어주자’는취지에서책보내기운동을실시했다.민족문고사업이언론을통해소개되자수많은개인과단체가참여하여책을기증해왔다.국민문화연구소는45개재외동포교육기관(중국44개처,우즈베키스탄1개처)과결연하여민족문고활동을전개했다.이에따라국민문화연구소는1989년부터1996년까지8년동안매년지속적으로책을고루배송했다.민족문고사업으로책을받은재외동포기관들이감동적인반응을보내왔다.
한국아나키스트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
국민문화연구소는2014년8월12일독립공원(서대문)강당에서아나키스트독립운동가후손,후학들이대거모인가운데한국아나키스트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회장이문창)를발족시켰다.국민문화연구소가아나키스트선열기념사업회를출범시킨목적은그간완전히잊혀졌거나산발적으로진행되어오던아나키스트선열사업을보다미래지향적연대관계로발전시켜나가려는데있었다.국민문화연구소는이런연대활동을통해고인들의유지유훈을계승해나갈수있는자발적인조직망을확대발전시키고자하였다.
회원들의회비와후원,봉사로운영되는독립단체,국민문화연구소의청년학생들,활동가들,아나키스트들의발자취이자사회운동의한역사
사회단체는자율성과독립성이중요하다.국민문화연구소는1947년4월발족이래2022년현재까지정부를비롯한외부지원은일체받지않고오로지회원들의회비와후원,봉사로만단체를운영해오고있다(9번의이사끝에입주한지금의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