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 충무공 이순신이 직접 쓴 그 치열했던 전쟁의 기록 (개정2판)

난중일기 : 충무공 이순신이 직접 쓴 그 치열했던 전쟁의 기록 (개정2판)

$15.00
저자

이순신

원저:이순신
이순신(1545-1598)은1643년(인조21년)3월'충무(忠武)'란시호가내려진조선중기의무신이다.그의본관이덕수德水이며서울건천동(을지로4가와충무로4가사이),넉넉하지못한양반가에서태어나22세때처음으로무예를배우기시작했다.그는1576년32세에무과시험에합격하여,함경도동구비보권관,훈련원봉사,충청병사군관,발포수군만호,함경도건원보권관등주로함경도등지에서관직생활을했다.1589년한때정읍현감이되어지방관생활을했으며임진왜란직전에당시재상유성룡의천거로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임명되어48세때임진왜란에서의활약으로그이름이널리알려지게되었으며중요한해전을치루며왜선320척을격파했다.49세때그는한산도로진을옮겨삼도수군통제사가되었으나53세때원균일파의모함과상소로서울로압송되어투옥되던중우의정정탁의변호로출옥하게되었다.
정유재란이발발하여칠천량해전에서원균이대패하자삼도수군통제사로재임명되어남은12척의배와120명의군사로130여척의왜선과맞서싸웠고(명량대첩),54세때명의수군과연합해왜선500여척과싸우다노량해전에서11월19일새벽에전사하였다.6년후선무공신1등에녹훈되었고,덕풍부원군에추봉됨에이어좌의정에추증되었으며,15년뒤에는영의정에추증되었으며'충무(忠武)'란시호가내려져역사에충무공이순신이라는나라를구한영웅으로영원히기억되게되었다.

편저:김경수
현재청운대학교교양학부교수로재직하고있다.경화임용순(任龍淳)선생으로부터유교경전을익혔다.연구의주요관심분야는한국사학사와사상사,정치사및지방사와지방문화다.강의실이나교과서에서배우는암기지식으로서의역사,흥미를위해극화된가십거리로서의역사를넘어,일상에서생생하게살아숨쉬는삶의지침으로서의역사만들기를위해노력하고있다.이러한문제의식을바탕으로연구를거듭한결과『조선시대의사관연구』,『언론이조선왕조500년을일구었다』,『테마로읽는우리역사』,『한국사테마전』,『조선왕조사전(傳)』,『왜조선왕조실록은왕이볼수없었을까?』,『(내포의중심)홍성학』,『이순신의난중일기읽기』등의연구물을내놓았다.

목차

임진년(1592년)17
계사년(1593년)41
갑오년(1594년)91
을미년(1595년)161
병신년(1596년)211
정유년1(1597년)273
정유년2(1597년)323
무술년(1598년)355

부록363
--이순신참전주요해전정리364
--『난중일기』에대하여372
--임진왜란이전의이순신376
--『난중일기』로본이순신380
--『난중일기』체제와국내주요사건일지388

출판사 서평

임진왜란당시치열했던전장의분위기를
가장구체적이고생생하게전달한사료

『난중일기』는임진왜란당시의상황과충무공이순신의삶을조명해볼수있는뛰어난작품이다.

‘죽으려고하면살고,살려고하면죽는다!’

죽음을두려워하지않고전쟁에임했으며,단한번의패배도허락하지않았던조선수군의명장충무공이순신.탄환에맞아죽음에이르는순간까지도강인한정신력과불굴의의지를보여준그는400여년이지난지금까지도우리의가슴속에위대한영웅으로남아있다.

1592년(임진년)부터1598년(무술년)까지그가전장에서몸소체험한일들을기록한『난중일기』는왜군과의치열한접전,긴박했던전장의분위기,전투를승리로이끈전략과전술등전란의상황을가장구체적이고생생하게기록한사료로평가받는다.또한지휘권을둘러싼갈등,명나라와일본사이에서흔들리는조정의분위기와그와중에전국토를휩쓴전란으로삶의터전을잃고고통받는민중들의모습까지도아주생생하게기록되어있다.

영웅이기이전에인간,이순신의고뇌와갈등이담긴기록

한편『난중일기』에는전란의기록외에인간이순신의내면이진솔하게기록되어있어,성웅으로추앙받아온충무공이순신의인간적인면을엿볼수있는중요한자료이기도하다.

『난중일기』에서볼수있는이순신의모습은일반의기대와는사뭇다르다.강철같은체력과정신력을겸비한무장이었을것이라는이미지와는달리,거의매일과로와육체적고통으로시달리거나,밤새식은땀을흘리는날이많이기록되어있다.또한앞날에대한불안감을떨치지못해간밤에꾼꿈을풀이하거나자주점을치기도했다.전장에서늘침착하고의연한모습을보였지만,사적인심정을기록한일기에서는인간으로서쉽사리물리칠수없는불안과두려움의그늘을숨길수없었던것이다.

『난중일기』에는한집안의가장이었던이순신의자상하고애틋한면모도잘드러나있다.그는늘멀리있는가족들의안위를걱정했고,틈날때마다어머니의안부를묻는효성지극한아들이었다.아들의죽음을전해듣고오열하는대목에서는그역시한국가의장수이기전에뜨거운부정을가진아버지였음을느낄수있다.이뿐만아니라부하의죽음에애통함을감추지못하고,고생하는병사들을위해술잔치를벌이는등군졸들에대한따뜻한관심과배려를잊지않는모습에서그의넓은아량과자애로운인품을알수있다.

이순신은뛰어난공적을쌓은대가로오히려모함을당하거나좌천당하는일이많았다.특히정치적으로라이벌관계에있던원균과갈등을빚으면서조정대신들의미움을받았다.이에대해이순신은원균을‘흉인’‘흉악한자’라고거침없이칭하며좋지않은감정을자주드러낸다.이처럼사적이고감정적인부분까지솔직하게기록한『난중일기』을통해충무공이순신의인간미넘치는모습도들여다볼수있다.

이책은이순신이직접쓴친필초고본을바탕으로하되,초고본에빠져있는부분은1795년(정조19)에간행된전서본을참고하여한글로쉽게풀어쓴것이다.보충설명이필요한곳에는꼼꼼히주를달고,다양한자료들을추가하여『난중일기』에대한이해의폭을넓혔다.책의말미에는『난중일기』속에그려진인간이순신의모습을분석한편저자의해설을수록해작품을더욱깊이있게감상할수있도록하였다.


책속으로

전쟁에관한기록들

-임진왜란-
해질무렵에영남우수사원균의통지문이왔는데“왜선90여척이와서부산앞절영도에대었다”고하였다.이와함께경상좌수사박홍의공문이왔는데“왜선350여척이이미부산포건너편에도착했다”는내용이다.이에즉각임금께장계를올리고순찰사와병사,전라우수사이억기에게도공문을보냈다.영남관찰사의공문도왔는데동일한내용이었다.
---p.33,「임진년(1592,선조25년)4월15일」중에서

:밤열시쯤영남우수사원균의공문이왔는데,“부산진이이미함락되었다”고했다.분하고원통한마음을이길수없었다.곧임금께장계를올리고삼도에도공문을보냈다.
---p.33,「임진년(1592,선조25년)4월16일」중에서

-명량해전-
맑음.조수를타고여러장수들을거느리고가우수영앞바다로진을옮겼다.벽파정뒤에명량이있는데,적은수의수군으로는명량을등지고진을칠수없기때문이었다.여러장수들을불러모아약속하되“병법에이르기를‘죽으려고하면살고,살려고하면죽는다(必死則生必生則死)’하였고,또이르되‘한사람이길목을지키면천명도두렵게할수있다’는말이있는데,이는모두오늘우리를두고이른말이다.너희여러장수들이조금이라도명령을어긴다면군율대로시행해서작은일일망정용서치않겠다”고엄격히말했다.
---p.332,「정유년(1597,선조30년)9월15일」중에서

맑음,이른아침에특별정찰부대가보고하기를“수효를알수없을정도로많은적선이명량을거쳐곧장우리가진을치고있는곳을향해들어온다고”했다.곧여러배에명령하여닻을올리고바다로나가니330여척이우리배를에워쌌다.
여러장수들은적은군사로많은적을대적하는것이라스스로낙심하고모두도망갈꾀만내는데,우수사김억추가탄배는벌써2마장밖에나가있었다.
내가노를바삐저어앞으로돌진하며지자,현자등각종총통을마구쏘니탄환이마치폭풍우처럼쏟아졌다.군관들이배위에총총히들어서서화살을빗발처럼쏘니,적의무리가감히대들지못하고나왔다물러갔다했다.그러나우리배가여러겹으로둘러싸여서형세가어찌될지알수없었으므로,온배에있는사람들은서로돌아다보며안색이질려있었다.나는조용히타이르되“적선이비록많다해도우리배를바로침범하지는못할것이니조금도흔들리지말고다시힘을다해서적을쏘아라”하고명하였다.
---pp.332-333,「정유년(1597,선조30년)9월16일」중에서

-어머니,가족들에대한애틋한마음-

11일:어머니께가니아직주무시고계셨다.웅성거리는바람에놀라깨셨다.기운이가물가물해앞이얼마남지않으신듯하니,애달픈눈물만흘릴뿐이다.그러나말씀하시는데착오는없으셨다.적을토벌할일이급해서오래머물지못했다.
12일:맑음.아침을먹은뒤어머님께하직을고하니“잘가거라,나라의치욕을크게씻어라”하고두세번타이르면서도헤어지는슬픔을말하지않으셨다.선창에돌아와서는몸이불편한것같아바로뒷방으로들어갔다.
---p.93,갑오년(1594,선조27년)정월11~12일」중에서

저녁때천안에서온어떤사람이편지를전하는데미처봉함을뜯기도전에뼈와살이먼저떨리고정신이혼미해졌다.겉봉을대강뜯고둘째아들열의글씨를보니겉면에‘통곡’두자가씌어있어면의전사를알고간담이떨어져목놓아통곡했다.하늘이어찌이다지도인자하지못하신고.간담이타고찢어지는듯하다.내가죽고네가사는것이이치에마땅하거늘,네가죽고내가살았으니이런어긋난일이어디있을것이냐.천지가캄캄하고해조차도그빛이변했구나.슬프고슬프다.내아들아,나를버리고너는어디로갔느냐.
---pp.339-340,「정유년(1597,선조30년)10월14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