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이탈리아출신의철학자이자행동하는지식인,마우리치오랏자라또가지난10년동안각종사회적ㆍ정치적현안과이론적문제에개입한흔적을모은글이다.저자는탈산업화이후의자본주의의궤적을구체적으로추적하고,신자유주의에서배제된사람들(비정규직노동자,청년실업자,빈민층등)의처지와그들이촉발한투쟁과운동을적극적으로옹호한다.이를위해서랏자라또는들뢰즈ㆍ가따리에서바흐친등을거쳐푸코에이르는이론적자원에의지하며,이들사상가를계승하고극복했다고알려진비판이론가들(지젝,버틀러,비르노,바디우,랑시에르등)의주장을하나씩비판하고있다.
4차산업혁명:유토피아?디스토피아?
바야흐로기계의시대다.작년에는알파고의충격으로사람들이두려움에떨었다면,올해부터는테슬라의전기차와자율주행차에열광하고곳곳에서‘4차산업혁명’을노래한다.인공지능이인간과노동을대체한다고호들갑을떨다가,어느새그런두려움은거대한산업전환과새로운사업기회,새로운일자리창출에대한막연한기대감속에사라진것같다.
인공지능과‘4차산업혁명’에대해서사람들은두가지반응을보이고있다.하나는새로운기술을찬양하는유토피아적비전이다.더정확히는인공지능과‘4차산업혁명’이전지구적금융위기이후좀처럼회복기미를보이지않는자본의수익(그리고금융의이윤)을만회하기위한새로운혁명이라는것이다(그러나일부지역의경기회복은다른국가나지역으로위기를떠넘기는것에불과하다).인공지능과‘4차산업혁명’은새로운성장동력으로인식된다.새로운기술로어느누구는손해를보지만경제전체로봐서는새로운직업과고용이창출되기때문에고용절벽도극복될수있다는것이다.
긍정적인반응이면에는그런혁명이란존재하지않는다는디스토피아적비관론이존재한다.이것은‘4차산업혁명’이란자본주의가탄생한이래늘있어왔던기계에의한인간의대체에불과하며,따라서자본과기득권층에‘독점적’이윤을보장할뿐이지,평범한노동자,소비자,시민들에게착취와실업,저임금,불평등,파편화되고지루한노동을가져올뿐이라는비판이다.심지어어떤사람들은금융자본의성장이보여주듯이인공지능과‘4차산업혁명’은실물경제의생산성증가와고용의증대에는거의영향력이없을것이라고비판한다.
세계는기계로구성되어있다
4차산업혁명에대한두입장은일견어느정도현실타당성이있으며그나름대로의과거경험에기대고있다.그런데여기서우리는이렇게질문을던질수있지않을까?과연기계와인간은대립하거나구분되는존재인가?기계는인간의노동을대체하는존재일뿐인가?이책의저자에따르면,인간과기계는반드시대립하지않으며그럴필요도없다.오히려인간과기계는상호접속하며,심지어는서로구분되지도않는다.문제는우리의인간중심적사고와실천에있다.저자에따르면적어도근대자본주의이래인간보다는기계가인간을이용했으며,더정확히는인간자체가기계이고기계자체가인간이었다.
이런시각에는기계와인간에대한관점전환이내포되어있다.저자가말하는기계는기술적기계만이아니라,자신의‘환경’과상호접속하는모든존재,예를들어화학적결정체를이루는분자들에서부터언표들을거쳐가족,교육등의사회적시스템까지포함한다.이런측면에서기계와‘환경’(또는인간)이따로있는것이아니라수많은복수의기계들이존재하고,이들사이의다양한접속들이존재하는것이다.저자는들뢰즈ㆍ가따리의표현을빌려이런접속들의연결,분리,통합을기계,또는기계적배치라고부른다.
랏자라또에따르면아직기계에대한이론화는너무나부족하다.무엇보다우리는주체/대상,자연/문화의대립을의심하고무효로만들어야한다.그럴때“기계는기술의부분집합이아니라인간본질에참여한다.실제로기계는기술의전제조건”(116쪽)이라는통찰이가능해진다.이런관점에서면“공공기관,미디어,복지국가등의장치도…인간,절차,기호계,기술,규칙등”(117쪽)을배치하는기계이다.예술도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의주체성생산:사회적복종과기계적예속
랏자라또에따르면“자본주의아래에서주체성의생산은…사회적복종(socialsubjection)과기계적예속(machinicenslavement)”이라는두가지방식으로작동한다.
사회적복종은“개체화된주체”를생산한다.사회적복종은우리에게성,신체,직업,민족성등을할당한다.사회적복종은노동의사회적분업내에서,그런분업에어울리는개개인의위치와역할을생산하고분배한다.(32쪽)신자유주의시대에우리에게“인적자본”과“기업가형자아”가강요되었던것,그리고그명령이차츰‘부채인간’으로변형되었던것이사회적복종의예이다.
주체성생산의다른축인“기계적예속”에서개체는“경제적주체”(예를들어서인적자본,기업가형자아,시민)가아니라“기업”“금융시스템”“복지국가”“미디어”등의배치속에있는하나의부품으로간주된다.(34쪽)랏자라또에따르면프랑스의철학자질들뢰즈가이런이중적권력장치를정확히묘사하였다.“복종은개체들을생산하고지배하지만,예속을통해서는‘개체들이…‘분할가능한것’이되고대중들(masses)이표본ㆍ데이터ㆍ시장ㆍ[자료]‘은행’이된다.”(35쪽)
“사회적복종”과“기계적예속”은랏자라또가자신의논지를전개하기위해사용하는핵심개념들이다.그는이두가지권력장치가교차하는지점에서주체성생산이일어난다고말한다.그리고이책『기호와기계』가두장치의차이와상보성을검토하고“복종의양식들과예속의양식들에관한지도제작을추적”함으로써“자본주의가장악한주체성,그것의생산양식,삶의양식들에서벗어나그것들과무관한자율적인과정을개시”하는것을목표로한다고쓴다.
기표적기호계와비기표적기호계
사회적복종과기계적예속은서로다른기호계와관련된다.사회적복종은기표적기호계,특히언어적기호계를동원하며,의식을겨냥한다.그와달리기계적예속은비기표적기호계를동원한다.비기표적기호계는예컨대“주가지수,통화,방정식,다이어그램,컴퓨터언어,국민계정,기업회계”같은것들이다.“비기표적기호계는의식과재현에관여하지않으며주체를준거대상[지시대상]으로삼지않는다.”(55쪽)
우리가사는세계자체가기계들로구성되어있으며인간(의부분들)도일종의기계들이접속된산물이다.이런기계들이서로를끌어들이고밀어내고결합하는힘들의작동방식,그러니까일종의코드가기호(기호계의기능)이다.여기서기호는언어적표현뿐만아니라비언어적표현들,예를들어소리,냄새,느낌,전자,분자등의신호들을포괄하는광범위한개념이다.그것들은비기표적으로,우리의의식이의미로인식하기도전에작동한다.
예를들어보자.운전할때우리는의식적으로차를몬다기보다는발과팔이자동차의일부처럼‘무의식적으로’,즉의식을우회해서작동한다.우리의의식적주체는수많은부품들로분해되어자동차의부품들과어느정도자동적으로작동한다.개체화된주체의의식은운전중어떤예상치못한돌발상황이발생할때다시작동하기시작한다.이런사례에서우리는“주체성의이중화과정을최초로경험”한다.이것은가따리가『분열분석적지도제작』(SchizoanalyticCartographies)이라는책에서제시한사례인데,가따리는이런이중화과정이오늘날“모든기구와제도가작동하는방식”(130쪽)이라고본다.오늘날의자본주의에서는비기표적기호계와기호적기호계를다양하게흡수한‘혼합적기호계’가작동한다.이점을이해하는것이,특히언제나기표적기호계에정복당해잘보이지않는비기표적기호계의성격을이해하는것이,현대자본주의를분석하고실천적대안을모색하는데반드시필요하다.
기계,기구,다이어그램,방정식,비기표적기호계가없다면아마도인간은탈영토화과정들을이해하고그것에개입할수없는“실어증자”가될것이다.즉그들은이런[기계중심적]세계들에대해서“말할”수없을것이다.기계중심적세계에서말하고,보고,냄새맡고,행동하기위해서우리는기계들과같은편이되어야하며비기표적기호계와같은종류가되어야한다.바로이런의미에서비기표적기호계가언표행위의초점을구성하고주체화의벡터를구성하는것이다.(130쪽)
공장이나사무실이나,주식시장에서움직일때우리는의식을가진개인으로서일한다기보다손과팔,우리의눈,우리의두뇌가각종장비,모니터,스크린과접속해서움직인다.예를들어전형적인기술적기계와노동자의상호작용을살펴보자.노동자는자신의의식속에서는기계를하나의대상으로대할수있지만,실제의노동과정에서는기계의보철로기능하고기계를움직이는에너지로변환된다.공장에서인간은독립적이고자율적인행위자가아니라에너지와생리적피로도,동작과시간의독특한리듬으로분절되고변형되어기술적기계(그리고노동조직의사회적기계)의부품이된다.
또우리는빅데이터에서다양한정보더미로분해되고,자신의소비패턴,신용정보,재무상태,정치성향등으로재조합된다.이것은논리적으로금융시장에서파생상품이만들어지는메커니즘과다르지않다.우리의정보는데이터공학의재료가되어,어느순간우량고객이되거나신용불량자가되거나그무엇도아닌어떤주체의형태로표면에서제시될뿐이다.이런점에서우리는사회적ㆍ직업적분업과역할에적응한존재이기보다는기계적으로조합되는존재(데이터로변환된존재)일지도모른다.
자본주의도,저항운동도,주체성발명에실패하고있다
현대자본주의는장기불황에서벗어나지못하고있다.우리가‘신자유주의’라고부르는새로운체제는1970년대이후수익률하락에직면했다.이를극복하기위해위로부터의구조조정에나섰다.하지만2차대전이후처럼급격한생산성증가는없었고,금융자본으로자본내에서분배를옮겨간것에불과하였다.저자에따르면1990년대이후신기술의개발은일시적경기회복을가져오는것처럼보였지만,실제로는‘고용없는성장’으로이어졌다.이런시각은전통적인정치경제학적비판이나최근에대두하고있는소득주도성장론,피케티식의자본주의비판과결론에서는그리다르지않다.
저자고유의새로운시각은자본주의가생산성을높이기위해서,생산력자체를증진하는것도필요하지만주체성의생산,또는사회적관계의변형이반드시필요하다는것이다.예를들어발전주의시기에는국민으로대중을동원할필요가있었고,신경제와정보화시대에는기업가형주체가필요했으며금융화시대에는금융투자자(즉빚을얻어서투자포트폴리오를운영하는주체)인‘부채인간’이필요했다는것이다.이른바‘고용없는성장’은부채를통한금융화된경제를전제할뿐만아니라,부채를통해서자산을증식하는주체성이없이는정당화될수없다.
그런데2008년금융위기이후,대중적동의를획득한새로운주체성은등장하지않았다.전지구적으로위기가확산되자부채인간이라는주체성형태는투자자로서수익을남기기보다는1%소유자집단의수익을늘려주는빚쟁이로판명되었고,심지어는긴축이라는이름으로경제적리스크(risk)를전담하는노예로드러났다.한가지흥미로운사실은‘부채인간’자체도인간중심적인주체성이아니란점이다.부채인간은빚쟁이로서사회적규범을따르기도하지만,금융상품의리스크계산,간단히말해신용등급에따라자신의행위방식이조정되는일종의자동화된기계인셈이다.저자가볼때부채인간이후자본주의는새로운주체성을발명하지못했다.문제는비판이론과저항운동도새로운주체성을발명하지못하고,대중의동의를얻는데실패하고있다는것이다.예를들어과거의공산주의,혹은사회민주주의,급진민주주의의안에서인민,시민적주체,혁명적주체등이수행했던역할이더는존재하지않는다.
새로운주체성의발명이필요하다
오늘날처럼호모에코노미쿠스(경제적인간)가사회체의지배적모델로작동할때,호모폴리티쿠스(정치적인간)의운명은어떻게될것인가?경제가하나의영역으로남아있는것이아니라정치와사회등모든영역으로확장되고,심지어는다른영역의운영모델이될때어떤일이벌어질것인가?여러논자에따르면호모에코노미쿠스의최후판본인‘부채인간’이지배적인주체성이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