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과 인류의 무능력
최근에 그 실상이 극명히 드러난 대로,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의 무능력은 서구의 근대성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체제와 그 체제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정치철학의 유효기간이 끝나버렸음을 시사한다. 주지하다시피, 서구의 근대성은 문화/자연, 사회/자연, 혹은 인간-주체/비인간-객체 사이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적 구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런 근대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정치철학은 국경을 넘어서는 정치적 쟁점들, 특히 생태 문제, 전염병 문제, 이주 문제 등과 관련된 쟁점들을 다루는 데 필요한 이론과 해결책을 결코 제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들 정치철학은 정치가 전적으로 인간 행위자들의 영역에 속한다고 상정하고서 시민과 국민국가 사이의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를 실존적 위험에 처하게 한 정치적 쟁점들은 비인간 객체의 행위주체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분석조차 되지 않는다.
비인간 객체들이 포함되도록 ‘정치적인 것’을 다시 회집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는 책의 제목이 명시적으로 나타내는 대로, 라투르는 서구의 근대적 이항 구조에 바탕을 둔 세계상이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세계는 인간과 비인간이 동맹을 결성한 회집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줄곧 견지하고 있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공동세계의 구축’이라면, 라투르에게 공동세계란 인간과 비인간의 공동세계(코스모스)이고,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비인간 객체들이 포함되도록 다시 회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라투르의 정치는 언제나 ‘코스모폴리틱스=코스모스+폴리틱스’이기에 라투르의 정치철학은 자연과 과학, 정치가 서로 관련된 방식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인 그레이엄 하먼에 따르면, 라투르 정치철학의 독특한 비근대성은 “인간의 결정이 어떤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우리가 연루된 비인간 존재자들의 네트워크가 우리의 정치적 운명을 궁극적으로 결정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라투르는 정치가 인간을 중심으로 공전하지 않고 정치적 쟁점, 즉 정치적 객체를 중심으로 공중들을 공전하게 하는 ‘객체지향’ 정치(라투르는 이를 “급진적인 의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일컫는다)를 내세운다.
객체지향 존재론의 정치이론은 어떤 모습일까?
“라투르의 고유한 정치철학에 대한 해설서”로서 제시되는 이 책에서 하먼은, 이전의 저작 『네트워크의 군주』에서 시도한 대로, 브뤼노 라투르를 본격 철학자로서 고찰한다. 이 책에서 하먼은, 존재론과 정치철학의 관련성에 의거하여, 라투르의 사상적 단계를 세 단계로 구분하며 초기 라투르, 중기 라투르, 후기 라투르를 각각 대표하는 세 가지 저작, 즉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자연의 정치』, 『존재양식들에 관한 탐구』를 정치철학적 견지에서 주의 깊게 검토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권의 책은 현재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기에 라투르의 주저의 내용을 약간 음미하는 기회도 될 것이다. 덧붙여, 라투르의 정치철학과 관련하여, 마키아벨리, 홉스, 슈미트 같은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들을 비롯하여 푸코, 지젝, 울리히 벡, 샹탈 무페 등의 정치 이론에 대한 흥미로운 논평도 제시된다. 이 책 전체에 걸쳐서, 하먼은 라투르의 정치철학에서 객체가 수행하는 역할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이런 객체지향적 인식이 라투르를 여타 정치철학자들과 변별하는 요소가 된다고 예증한다. 결과적으로, 하먼은 라투르의 이론적 작업이 “정치철학의 미래라는 표제 아래서 수행된 대다수의 더 잘 알려진 이론적 작업보다 그 미래에 더 가까이 있다”라고 단언한다. 한편으로, 이 책을 통해서 독자는 객체지향 존재론(OOO)의 정치 이론이 어떤 모습을 나타낼지에 대한 실마리도 포착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 책은 브뤼노 라투르에 관심 있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인간주의에 기반을 둔 우리 시대의 근대성을 성찰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발흥한 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 존재론 등의 새로운 철학적 경향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권력 정치’에서 ‘코스모폴리틱스’를 거쳐 ‘객체지향 정치’로
이 책에서 하먼은 근대의 전통적인 좌익 정치 대 우익 정치 이분법을 진리(하익) 정치 대 권력(상익) 정치라는 두 번째 이원론과 결합함으로써 ‘네겹’의 근대적 정치 유형을 제시한다. 진리 정치는 “정치가 진리의 형상대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관념”으로 특징지어지고, 권력 정치는 ‘힘이 곧 정의’이기에 옳고 그름의 초월적 기준이 없는 권력 투쟁으로 특징지어진다.
1991년까지 이어지는 ‘초기 라투르’는, 행위자들의 동맹 결성과 ‘힘겨루기’로 특징지어지는 존재론을 배경으로 하여, 진리 정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힘이 곧 정의’라는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권력 정치를 옹호한다. 그리하여 ‘초기 라투르’는, 정치에 있어서 초월적 원리에의 어떤 호소도 불신하는 한편으로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1991~2007년에 해당하는 ‘중기 라투르’는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권력 정치’에 대한 이전의 승인을 재고하면서 “자신의 관심을 모두를 위한 공동 공간의 취약한 조성으로 이행한다.” ‘중기 라투르’에게 정치는 “인간들과 비인간들의 어떤 집합체를 하나의 공동세계”로 조성하는 것, 즉 ‘코스모폴리틱스’가 된다.
그 이후의 ‘후기 라투르’는, 실재 전체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사태로 간주하는 이전의 견해를 수정함으로써 정치를 ‘쟁점’ 또는 ‘객체’를 다루는 일종의 ‘존재양식’으로 제시한다. 이제 정치는 여타 양식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적실성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정치적 ‘진리’란 “집합체를 확대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고, 여기서 정치적 투쟁은 어떤 쟁점, 객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언제나 “정치적 권역에 생명 없는 존재자들을 추가하는” 라투르는 결국 ‘사물정치’를 거쳐 정치적 투쟁이 “외부의 자극물”(쟁점 또는 객체)에 의해 촉발되는 ‘객체지향’ 정치에 이르게 된다. 하먼에 따르면, “기후 정치의 시대가 이미 도래하였기에 라투르의 객체 정치는 ... 현대 정치철학 중 어느 것보다도 가이아로 가는 더 유망한 길임이 확실하다”라고 주장한다.
1. 책의 구성
이 책은 라투르의 삶과 사상에 관한 간략한 단상과 서론, 일곱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짧은 맺음말로 마무리된다.
서론에서 하먼은 좌익 정치 대 우익 정치 그리고 진리(하익) 정치 대 권력(상익) 정치라는 ‘네겹’의 근대적 정치 유형을 제시한다. 좌익 형태의 진리 정치는 바디우와 지젝으로 대표되고, 우익 형태의 진리 정치는 플라톤과 스트라우스로 대표된다. 또한, 우익 형태의 권력 정치의 대표적 사상가로서는 홉스와 슈미트가 거론되는 한편으로 좌익 형태의 권력 정치의 경우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지식인들의 정체성 정치가 거론된다. 여기서 라투르가 근대주의적 이원론을 파괴하는 데 자신의 경력을 바쳤다는 점을 참작하면, 그는 이들 사분면 중 어디에도 위치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지만, 라투르의 정치적 입장은 홉스/슈미트 극에 가장 가깝다고 하먼은 추정한다.
1장 「라투르의 정치를 찾아서」에서 하먼은 라투르의 정치철학을 탐구하기 위한 기초로서 네 가지 위험과 네 가지 실마리를 제시한다. 여기서 하먼은 사회계약론, 특히 ‘자연상태’에 대한 라투르의 견해를 논의함으로써 자신의 탐구를 개시한다. 요컨대, 라투르는 이른바 ‘자연상태’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사회가 인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사회에 안정성과 지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비인간 객체들이라고 단언한다.
2장 「초기 라투르 : 행위소의 한니발」에서는 1991년까지 이어지는 초기 라투르의 정치철학이 서술되는데, 여기서 주로 고찰되는 텍스트는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비환원』이다. 하먼은 초기 라투르가 마키아벨리와 홉스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실재를 끊임없는 권력 투쟁에 연루된 힘들의 집합체로 여김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초기 라투르는 ‘정치=실재’로 간주함으로써 ‘정치가 도처에 존재’하게 되는 ‘정치의 존재론화’를 감행한다고 하먼은 주장한다.
3장 「중기 라투르 : 사물의 의회」에서는 1991~2007년에 해당하는 중기 라투르의 정치철학이 고찰되는데, 여기서 주로 검토되는 텍스트는『자연의 정치』다. 중기 라투르는 정치를 코스모폴리틱스 혹은 사물의 의회에 의거하여 다시 규정함으로써 홉스주의적 권력 정치의 모서리를 완화한다고 하먼은 강조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장은 쉽사리 읽히지 않는 『자연의 정치』를 해설하고자 하는 시도로도 여겨질 수 있다.
4장 「후기 라투르 : 하나의 양식으로서의 정치」에서는 후기 라투르가 2012년에 출판된 대작 『존재양식들에 관한 탐구』에서 포괄적으로 전개하는 새로운 개념적 체계 내에서 드러나는 정치의 위상 문제가 고찰된다. 이제 정치는, 각기 독자적인 적실성(‘진리’) 조건을 갖춘, 법, 종교, 기술 등 여러 존재양식 또는 언명체제 중 하나의 양식일 따름인 것으로 구상된다. 쟁점 또는 객체를 다루는 정치라는 존재양식에서 ‘진리’란 단지 “집합체를 확대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장은 라투르의 현행 프로그램인 『존재양식들에 관한 탐구』를 소개하는 글로 여겨질 수 있다.
5장 「‘유용한 웃음거리’ : 라투르의 왼쪽 측면」과 6장 「‘흥미로운 반동주의자’ : 라투르의 오른쪽 측면」에서 하먼은 노이스, 푸코, 슈미트, 지젝, 그리고 무페에 관해 논의하면서 라투르가 정치적 좌파 및 우파와 변별되는 지점들을 밝히고자 시도한다. 라투르가 근대의 인간주의에서 비롯된 좌익/우익 정치 이론이 근거하고 있는 인간/비인간 구분을 단적으로 거부한다는 사실을 참작하면, 라투르의 정치 이론은 혁명 정치도 지향하지 않고 반동 정치도 지향하지 않는다. 결국 라투르에게 정치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인간+비인간’ 회집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먼은, 최근에 부각된 기후변화 사태와 관련하여 라투르가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의거하여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을 가이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