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속할것인가,가속할것인가?
세계자본주의는감속중이다.현재지구어느곳에서나사회적쟁점이되고있는‘긴축’이자본주의의감속경향을보여준다.긴축은흔히사회서비스,의료,교육,교통,복지등다중의삶과직결된공공예산을삭감하고공공기관,공공프로그램을민영화하는것으로나타난다.이런조치로이득을보는것은자본이며,위험은다중에게전가된다.긴축은사람들의삶의질의급격한저하와소득격차의심화로이어진다.설상가상으로나날이심각해지는기후재난,생태재난은지구상의모든생명체의생존을더욱위태롭게만든다.
어떤사람들은늦추어야,멈추어야우리가처한어려움을해결할수있다고말한다.생산력의발전을감속시켜야한다고주장하면서맑스의이른바‘생산력지상주의’와결별하는‘탈성장론’이이런경향에해당한다.혁명은기관차를정지시키는것이라고했던벤야민처럼이들은자본주의가속기계를멈추어야한다고본다.이는“정보같은디지털자동언어에대한거부와아날로그적인시적언어에대한찬미,빠름에대하여느림을대치시키기,감성의공동체적가능성에대한긍정,지역과유기체적공동체로돌아갈필요성에대한강조,도시에서농촌으로의회귀,발전보다생태계의보존을우위에놓기등등의양상”(조정환,『개념무기들』,327쪽)으로나타난다.
반대방향에서‘가속주의’를주장해온사람들이있다.2008년글로벌금융위기의여파속에서2013년에영국의정치이론가알렉스윌리엄스와캐나다인정치연구자닉서르닉이「#가속하라:가속주의정치선언」(이선언문은이책『#가속하라』에수록되어있다)을발표한이후감속적이거나복고적인해법이아닌방식으로미래를구상하는것을목표로삼는이론적기획들이‘가속주의’로불리게되었다.이책의공동엮은이인로빈맥케이는2014년의인터뷰에서현재세상에는다양한가속주의가있다고말하면서『#가속하라』라는독본을엮은목적에대해다음과같이밝힌다.이책의목표는첫째로가속주의의“계보학을추적하는것,하나의포괄적인가속주의입장내에서가능한모든상이한뉘앙스와차이점을인식하는것,그리고무엇보다도각단계에서새로운가속주의들이어떻게해서그선행입장들의어떤면모들은채택하고어떤면모들은거부하는경향이있는지이해하는것”이며,둘째로는“지금가속주의가무엇을뜻할수있는지묻는것”이다.
무엇을가속할것인가?
‘긴축’이세계자본주의의감속을나타낸다고말할때의감속은‘경제성장의속도’가늦춰지고있음을의미할것이다.『#가속하라』독본은‘좌파가속주의자’들의계보학을추적한다.좌파가속주의자들은자본주의의성장을가속하자고말하는것일까?
알렉스윌리엄스와닉서르닉의「#가속하라:가속주의정치선언」은이른바‘좌파가속주의’의신조를공식적으로표명한글이었다.『#가속하라』라는이독본의제목역시이선언문의제목에서비롯된것이다.「#가속하라:가속주의정치선언」에서지은이들은플랫폼과인공지능을비롯한현재의사이버네틱스적하부구조를“분쇄되어야할자본주의무대가아니라포스트자본주의를향해도약할발판”으로사고한다.이들에따르면자본주의에서출구를찾는사람이라면자본주의사회에서가능해진모든기술적·과학적진보에대한지식을가져야할뿐만아니라그것을적극적으로이용해야한다.
좌파가속주의자들은우리시대가자본주의라는낡은체제를넘어서다른삶으로구체적으로이행하기위해서는그체제의요소들중에서무엇을취하고무엇을버릴지를결정해야한다고말한다.이들은감속주의흐름이이질문을회피하는오류에빠져있다고본다.이책의공동엮은이로빈맥케이는한국어판서문에서“우리사이에는감속주의자와운명론자가있음이확실하지만,그중실제로인터넷연결을끊고전화기를팽개쳐버리고서숲속오두막에살러가는사람은거의없다”(8~9쪽)고말한다.자본주의의가속경향을비판하는많은사람들이말하듯그누구도완전히이해하지도통제하지도못하는기계적네트워크들에대한우리의종속이심화된것은사실이다.사람들은규모를가늠하기힘든기계적네트워크들에“경제적으로,정치적으로,인격적으로,그리고심지어감정적으로,성적으로”의존하게되었다.그렇지만“가속주의자들은혼란과두려움속에서단순히아래로질주하기보다는오히려가장가파른경사면들을적극적으로찾아내어서한경사면을오르는”(9쪽)선택을한다고맥케이는설명한다.
따라서‘가속주의’는자본주의이전시대를복원하거나더자비로운자본주의체제로되돌아가자고주장하는것이아니다.오히려유일한출구는외부를지향하는자본주의요소들의‘가속’을감행하는것이다.현대자본주의는기술발전,과학발전을자신의성과로선전하지만,사실자본주의아래에서기술과학은자본주의적목적에예속되어그것이어떤잠재력을가졌는지아직누구도알지못한다는것이좌파가속주의자들의입장이다.자본주의는택배노동자들의고통을경감하기위한손잡이구멍조차이윤을핑계로해내지못할만큼무능력하다.질병을앓는사람들은지적재산권과약값때문에약을구하지못해죽어간다.정부들은계속해서사람을살리는의료와복지예산을깎고사람을죽이는군수산업에천문학적금액을안겨준다.상자제작기술,의약품제조기술,군수산업의첨단기술이포스트자본주의미래기획을위해사용된다면어떤결과가일어날지아직우리는알지못한다.
가속주의자들은우리가기술적,과학적에너지를다른세계를향해재정향한다는목표를갖고지성과정동을연결하고협력한다면,다른세계를위해필요한기술을선별할수있고,방향성을정해가속할수있으며,미래를설계할수있다고본다.현대자본주의의생산관계를변혁함으로써그잠재력을온전히실현하는포스트자본주의체제를구축할길을찾을수있다는것이다.미국의철학자스티븐샤비로는이러한이들의주장을“자본주의를벗어나는유일한길은관통하는길이다”라고압축해서표현하기도했다.
복고와체념과냉소가아니라가속을!
미국의문화이론가프레드릭제임슨,슬로베니아의철학자슬라보예지젝같은이론가들은우리가“자본주의의종말을상상하는것보다세계의종말을상상하는것이더쉬운”시대를살고있다고진단한다.영국의작가마크피셔의표현에따르면자본주의가유일하게존립가능한정치·경제체계일뿐만아니라이제는그에대한일관된대안을상상하는것조차불가능하다는“자본주의리얼리즘”의감각이사람들사이에팽배해있다.
실제로우리는현재의자본주의체제가초래한두가지긴급한위기,‘부의불평등’과‘기후변화’가지속적으로심화되는가운데‘세계의종말’은아닐지라도‘인간의종말’혹은‘문명의종말’이도래할가능성이점점더커지고있다는것을피부로느끼고있다.이때가속주의자들은복고적해법으로퇴행하거나체념과냉소에휩싸이는대신,자본주의를초극하는포스트자본주의체제의미래가능성을추구하자고제안한다.
‘좌파가속주의’정치는자본주의체제아래서발전한과학기술을기반으로하는잠재적생산력을자본의이윤증식이아니라‘인간해방’의모더니즘적기획을달성하기위해재전유함으로써포스트자본주의체제를지향한다.이런관점에서‘가속주의’는,미학적으로는실험적모더니즘과과학소설에경도되며,철학적으로는자연과학과사회과학을존중하고분석철학과대륙철학을융합하고,“자기비판과자기지배라는계몽주의적기획의제거보다는오히려그기획의완수”에대한프로메테우스주의적욕망을표명한다.
책의구성
「#가속하라:가속주의정치선언」이발표된지일년후인2014년에출판된이독본은두가지과업을시도한다.그것들은가속주의관념들의역사를밝히는것과현시대에등장한몇몇조류를참신한정치적배치체로서제시하는것이다.『#가속하라:가속주의자독본』에실린글들은‘예견,’‘발효,’‘사이버문화,’‘가속’이라는네개의부로나누어져있으며,미래에대한구상에서정치이론,인공지능의가능성,인간/기계관계의양상,그리고지구자체를넘어선인간생명의가능성에이르기까지다양한측면을탐사한다.
1부예견
1부‘예견’에는‘가속주의’의기원을이루는19세기와20세기초엽에발표된저작들에서발췌하여편집된텍스트들이수록되어있다.이텍스트들은생산과정에서의기계의역할과인간과기계의관계에관한성찰을담고있다.원가속주의적텍스트로여겨지는칼맑스의「기계에관한단상」이라는1858년의텍스트뿐만아니라1872년에발표된새뮤얼버틀러의「기계의책」역시주목할만하다.버틀러의텍스트는원래풍자적인글로서구상되었지만,버틀러는놀랍게도인류가미래기계에의해길들여진동물의지위로전락하게되는상황을예상한다.또1906년에발표된「공동과업」에서니콜라이표도로프는우리가기술을동원하여항성으로탈주하기위한‘공동과업’에연루되어있다고주장한다.주지하다시피우주여행의야망은가속주의와의중요한접점이다.베블런의「기계과정,그리고영리기업의자연적쇠퇴」(1904)는“기계과정이인간문화의근본적인전환으로,그리고인간문화의우발적인원인보다오래갈것으로”단언한다.
2부발효
2부‘발효’에는가속주의사유의1970년대발효상황을엿볼수있는텍스트들이수록되어있다.여기서핵심적인것은‘탈영토화’와‘재영토화’의운동으로자본주의를서술한들뢰즈와과타리의1972년작『안티오이디푸스』의발췌문이다.자본주의가탈영토화와재영토화라는두운동을필요로한다는사실에기초하여들뢰즈와과타리는혁명적전략이탈영토화로부터물러서는것이아니라탈영토화를재영토화될수없을만큼밀어붙이는것이아닌지를묻는다.“시장의움직임,탈코드화와탈영토화의움직임속에서더욱더멀리가는것...경과에서물러서지않고오히려더멀리가야하는데,‘경과를가속하라.’”이는가속주의사상에핵심적으로영감을준대목이다.
장-프랑수아리오타르의텍스트들은맑스주의를철저히전복한다.“우리는자본의똥,그재료들,그금속덩어리들,그폴리스티렌,그책들,그소시지파이들을삼키는것을...즐길수있다...그리고물론우리는,자본화된우리는고통받고있지만,이런사실이우리는향유하지않음을뜻하지도않고,당신들이스스로우리에게치유책으로제시할수있다고생각하는것에우리가진저리를내지않음을더욱더뜻하지않는다.”이텍스트들에서리오타르는자본의체계에대한전복보다는오히려그것의급진적인리듬을완결하는것을추구한다.
3부사이버문화
3부‘사이버문화’에는1990년대영국의<사이버네틱스문화연구단>(이하CCRU)이생산한텍스트들이취합되어있다.닉랜드와세이디플랜트를중심으로결성된“불량학자들”의느슨한집단인CCRU는워릭대학교철학과의산물이었다.그집단의방법론은다량의약물을복용하고사이버네틱스,프랑스이론,사이버펑크소설,괴기소설을읽으면서정글음악을듣는것이었다.그결과탄생한실험적인텍스트들은포스트모던적인것처럼보이지만,사실CCRU는포스트모더니즘의숙적이다.그들은스스로를철저한유물론자로여겼고“인간주체의결핍과인공적인기술권으로의통합”을추구하였다.결국그들은자본주의기계류의진정한혁명을수용하여그것을“최대의슬로건밀도”로가속시켰다.이독본에실린그들의산문은거의섬망상태에서작성된것처럼혼란스럽지만,당시영국문화와향후가속주의의전개에미친영향력은가속주의역사에서중요한자리를차지하고있다.특히,이독본의편집자로빈맥케이를비롯하여마크피셔,이에인해밀턴그랜트,루치아나파리시,그리고레이브라시에는그당시에워릭대학교의대학원생이었다.(CCRU활동당시의분위기와필자들의활동양상에대한간략한스케치는가속주의에대한앤디베켓의글을참고할수있다.)
4부가속
4부에수록된현시대의가속주의텍스트들은CCRU의산문에비해상대적으로차분하고분별있는어조를띤다.「가속주의정치선언」(이하MAP)에서표명된‘좌파가속주의’기획,즉포스트자본주의미래를구축하기위해자본주의사회의특정한요소들의용도를변경하는기획은1990년대의텍스트들에서표명된전망에비하면상당히온건한기획인것처럼보인다.여기서혁명가안토니오네그리의글은‘포스트오뻬라이스모’의견지에서MAP에대하여성찰한흥미로운결과를제시하면서MAP가주창한생산가속화와생산계획화보다투쟁가속화와투쟁계획화가우선한다고주장한다.티지아나테라노바와루치아나파리시의텍스트들은MAP를추상적정치이론에서‘레드스택’형태의실제실험으로이행시킬수있는실용적인방안을제시한다.‘인간성’을수정하고인간의능력을향상시킬수있다는프로메테우스주의적계몽주의기획을옹호하는레이브라시에와레자네가레스타니의본격적인철학적시론들은MAP와직접연계되지는않지만,현시대가속주의의주된정취를느낄수있다는점에서그자체로매우흥미롭다.마지막으로퍼트리샤리드의텍스트는가속주의의지지자들과비판자들이모두“불행하게도그내용을알기어렵게하는”‘#가속하라’라는“명칭의소문”에사로잡혀있다고지적하면서‘재정향하라’를비롯한일곱개의처방을가속주의에제시한다.
요컨대,이책은신자유주의라는자본주의적합의의그늘에서2013년에발표된「가속주의정치선언」으로촉발된포스트자본주의가속주의충동의계보를제시하고있다.포스트자본주의정치이론에관심이있는독자모두에게일독을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