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공통장 (창조도시 전략 대 커먼즈로서의 예술)

예술과 공통장 (창조도시 전략 대 커먼즈로서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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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임금 노동이 숙명처럼 부여된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임금 없이 잘 곳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임금에 의존하는 삶은 우리를 일의 늪에 빠뜨린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일하는 데 바치며 어떤 의미에서 삶을 포기한다.
이 책은 노동에 속박된 삶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고 자율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기 위해 쓰였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에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기댈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다른 무언가가 이 책에서 공통장(commons)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용할 수 있는 물질 자원이 거의 없는 도시에서도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공통장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살피는 도시 공통장은 예술가들이 점거한 공간, 스쾃(squat)이다. 예술가 공동체는 스쾃을 통해 공동의 터전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공간의 공통화), 예술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으며(예술의 공통화), 상호부조하는 관계를 형성했다(네트워크의 공통화). 예술가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지역 사회에서 공유되는 문화적 환경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부를 생산한다. 다른 한편 도시 경쟁력 향상을 위해 예술을 차용하는 도시 정부가 있다. 문제는 창조도시 전략으로 대표되는 그 과정에서 예술가의 활동이 도시 정부에 의해 왜곡되거나 흡수된다는 점이다. 다른 삶을 위한 욕망으로 시작했던 스쾃-공통장은 이제 도시를 ‘문화적으로’ 치장하는 투어리즘의 명소가 되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의 동력이 된다.
이처럼 이 책은 다른 삶의 기반으로서 공통장이 지닌 의의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자본의 공통장’이 될 위험에 빠져 있음을 함께 지적한다. 집 안에서 비임금 노동을 통해 남성 노동자의 노동력을 생산하는 여성들처럼, 예술가들은 도시에서 ‘문화적 풍경’을 생산하는 비임금 노동자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공통장이 대안 담론으로 부상하는 오늘날 그것이 처한 위험에도 주목할 것을 요청하며, 공통장을 기초로 한 대안적 삶을 꾸릴 방안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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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범철

Kwon Beom Chul, 1978~
집 안의 연구자,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생태적지혜연구소 협동조합 부소장, 동아대 융합지식과 사회연구소 연구원, 한신대 생태문명원 연구위원,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강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도시 예술가들의 공통장에 대한 연구로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프로젝트와 연구를 했다. 공통장, 돌봄, 생태, 예술을 함께 엮어서 사고하며 활동하는 데 관심이 있다. 저서로 『예술과 공통장』(2024), 공동 저서로 『돌봄의 시간들』(2023), 『지식을 공유하라』(2022), 『서울의 공간경제학』(2018)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역사의 시작』(2019), 『로지스틱스』(2017), 『빚의 마법』(2015), 『텔레코뮤니스트 선언』(2014)이 있다. 스쾃-공통장에 대한 또 다른 연구를 구상 중이다.

목차

서론 6

1장 공통장에 대한 논의들 37
제3섹터로서의 공통장 49
반자본주의적 공통장 56
체계로서의 공통장 81

2장 도시, 공통장, 예술 91
신자유주의와 공통장 92
창조도시라는 공장 121
도시 공통장을 둘러싼 갈등 : 전술 공통장 대 전략 공통장 158

3장 전술 공통장 : 오아시스와 문래예술공단 171
공통화의 배경 172
공통장의 생성과 변화 190
공통장의 성격 208
전술 공통장의 함의 268
전략 공통장의 출현 282

4장 전략 공통장 : 창의문화도시와 서울시창작공간 285
서울시의 전략 공통장 286
공통장을 둘러싼 갈등 316
자본의 요인으로서의 공통장 342
전략 공통장의 함의 354

에필로그 : 도시 공통장과 ‘우리’의 삶 371
감사의 글 375
참고문헌 378
인명 찾아보기 391
용어 찾아보기 394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예술가들의 활동과 그것에 개입하는 도시 정부의 전략을 사례로 도시 공통장(commons)의 생산과 전유라는 문제를 다룬다. 우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통장이 무엇이며 그것의 생산과 전유가 가리키는 상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을 팔지 못하는 사람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노동을 강제하는 시스템이며 따라서 우리에게 노동력을 팔지 않을 자유는 없다. 즉 임금노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자유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노동력을 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조조정으로 일터에서 쫓겨난 실직자, 거리의 노숙인, 극심한 취업 경쟁을 이기지 못한 이른바 취업준비생, 은퇴한 노인, 아직 어린아이들 등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임금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물론 이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사적·공적 제도들이 있다. 실업 급여, 쉼터, 각종 구직 지원금, 부모의 돌봄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형태들이 각각의 주체에게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면, 이와 다르게 아래로부터 구성된 다른 무언가를 통해 삶을 재생산하는 이들이 있다. 이 다른 무언가가 바로 이 책에서 공통장으로 부르고자 하는 것이며, 이것은 임금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이 비참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의 발현으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러한 주체들 중에서 특히 예술가에 주목한다.

예술, 예술가와 도시
도시의 예술가와 예술의 관계는 매우 기묘하다. 예술가가 제도적 환경이 거의 부재하다시피 한 까닭에 비공식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데 반해, 예술 그 자체는 도시의 ‘재생’, ‘발전’ 혹은 ‘경쟁력’을 위해 요구되며 각광받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변화된 예술가와 각광받는 예술이라는 대조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예술의 주요 생산자라는 점에서 둘은 연결되어 있고, 그런 까닭에 도시 정책상의 예술은 예술가를 계속 불러낸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주목하는 지점 중 하나는 이 과정에서 예술가의 활동이 도시 정부에 의해 왜곡되거나 흡수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도시 공통장의 생산과 전유라는 문제다. 즉 한편에는 다른 방식으로 삶과 예술을 꾸려나가는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있고(공통장의 생산), 다른 한편에는 도시 발전 전략을 위해 예술을 차용하는 도시 정부가 있다(공통장의 전유).

전술 공통장 : 아래로부터 대안적인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실천
이러한 문제에서 공통장은 두 가지 수준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이 책에서 전술 공통장이라고 정의한, 도시의 틈새에서 아래로부터 대안적인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실천들이다. 이 책은 스쾃(squat)을 그 주요한 사례로 살핀다. 그곳의 예술가들은 ‘정상적인’ 삶의 경로를 거부하고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 그에 따라 예술가들은 임금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기대야 했고 그것은 이들이 공통장을 형성한 중요한 계기였다. 이들은 공통장을 통해 필요한 자원을 공유하면서 삶과 예술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문래예술공단(예술가들의 네트워크)의 사례에서 그 공통장은 각자의 재생산에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했지만 임금에 대한 의존을 줄여 주었고, 그만큼 각자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또한 그들의 활동은 사적인 작업실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들은 공간과 예술을 공통화하면서 문래동 내·외부를 오가는 다양한 흐름을 생성했고 이는 그곳이 ‘새로운 예술의 발신지’로 부상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재생’은 도시 정부가 그들의 활동과 잠재력에 주목하는 계기가 된다.

전략 공통장 : 공통의 부를 흡수하거나 모의하는 행동 체계
그 지점이 이 책에서 전략 공통장이라고 부른,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공통의 부(common wealth)를 흡수하거나 모의(simulation)하여 경제 발전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행동 체계가 개입하는 곳이다. 문래동에서 그 개입은 창의문화도시라는 도시 정부(서울시)의 계획에 따라 시작되었다. 이 계획의 모태가 된 창조도시 담론을 먼저 살펴보면, 그 전략은 오늘날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동원되는 공동체의 활동을 보다 ‘생산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창조성을 경제 발전의 토대로 삼고자 하는 창조도시 전략은 창조성이라는 비물질적 특질이 오늘날 경제에서 점점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전제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양할 것인가에 관심을 둔다. 이러한 창조도시 담론은 사회 전체가 생산의 계기가 되었다고 이해하는 사회적 공장 및 삶정치적 생산 개념과 유사한 지점을 공유한다. 그러나 창조도시 담론은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계열의 논자들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실질적 포섭의 상황(사회적 공장)을 오히려 긍정하면서 ‘생산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두 관점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창조도시를, 삶 활동을 노동으로 통합하는 삶정치적 기계, 즉 ‘생산적인’ 안전장치로 이해한다.

예술 공장(아트 팩토리)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요컨대 도시 정부는 도시를 바꾸어 가는 예술가들의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끌어안으려고 한다. 도시민의 삶이 아니라 각종 도시 지표의 순위에 집착하는 도시 정부에게 예술가들의 잠재력은 경쟁력 향상에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도시 공간에 “문화의 품격”, “문화의 이미지”를 입혀 서울만의 “매력”을 만드는 것은 관광객과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로 여겨졌다. 그 일에 예술가들은 필수적인 인력이었지만 그들의 활동은 외부에서 조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 즉 생산 과정 자체에 개입할 수는 없으므로 - 그들이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창의문화도시 마스터플랜의 첫 번째 핵심 사업은 서울시 곳곳에 예술 공장(아트 팩토리)을 짓는 것이었다. 그 공장은 레지던시와 기금이라는 두 가지 방편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도시 곳곳에 예술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 두 방편은 노동 유연화의 극대화된 형태로서, 예술가들을 경쟁하는 주체로 만들고 그들의 불안정함에 의존하며 그것을 지속시킨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공통장은 자율적 삶의 기반에서 도시 경쟁력 향상의 도구로 흡수되고 있다.

공통장이라는 전장
이러한 지점은 오늘날 공통장이 복합적인 상황에 처해 있음을 말해 준다. 신자유주의의 위협과 더불어 대안으로 부활한 공통장에 주목한 것은 운동하는 주체들만이 아니었다. 축적 전략으로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의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공통장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되기 시작했다. 이때 공통장은 (자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자본이 선택한 출구였다. 공통장은 국가와 시장의 대안으로서 굳건한 담론이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의 다른 많은 언어들처럼 오염되고 있다. 사회적 재생산이 위기를 맞은 오늘날 공동체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호명되는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포섭은 일방적인 과정일 수 없다. 이 책에서 다룬 예술가들의 활동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그들이 그러한 전유의 전략들을 재전유하는 실천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략 공통장의 성격이 도시 정부나 자본의 의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충하는 가치 실천들의 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유 메커니즘의 포섭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재전유하는 힘을 고찰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통장과 자본의 상호작용을 포섭이나 탈주라는 양극단이 아니라 끝없는 교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각 장의 내용
1장 「공통장에 대한 논의들」은 먼저 역사상의 공유지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살핀 뒤 현대의 공통장 담론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서 검토한다. 공통장을 제3섹터로 바라보는 관점과 반자본주의적인 대안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그것이다. 첫 번째 관점에서는 주로 볼리어와 바우웬스가, 두 번째 관점에서는 네그리와 하트, 데 안젤리스, 페데리치 등이 중점 대상이 된다. 이들은 공통장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와 공통점을 드러내는데 이 책에서는 이들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도시 공통장 분석에 필요한 이론적 자원들을 취한다. 특히 페데리치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는 이 책에서 도시의 예술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예술가를 사회적 공장의 노동자로 이해하는 이 책의 관점은 여성을 노동자로 재발견한 이들의 논의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도시의 예술가를 집 안의 여성과 유사한 존재로 이해한다. 두 주체 모두 사회적 공장의 비임금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2장 「도시, 공통장, 예술」은 플로리다의 창조도시가 어떻게 사회적 공장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인지 분석한다. 이 새로운 공장에서 예술가들이 수행하는 노동과 그들이 생산한 공통장이 전유되는 과정을 이론적 수준에서 검토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여기서 창조도시 전략은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예술가들의 공통장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것의 생산양식을 차용한다. 이 책은 이 두 수준을 구별하기 위해 미셸 드 세르토의 전술과 전략 개념을 빌려 공통장에 적용한다. 전술 공통장이 아래로부터 공통의 부를 생산하는 자율적인 집단의 행동 양식이라면 전략 공통장은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를 흡수하거나 모의하는 행동 체계다. 전술 공통장이 사회주의의 쇠퇴와 신자유주의의 위협 속에서 새롭게 주목받았다면, 전략 공통장은 전술 공통장의 저항에 대한 대응으로 출발했다. 또한 노동의 비물질화 경향에 따라 생산과정이 사회로 확장되면서 자율적인 그 과정을 관리하고 흡수하는 것이 자본의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한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전략 공통장은 이러한 자본의 관심사에 따라 출현한다. 그것은 전술 공통장의 대안적 삶을 위한 가치들을 경쟁력 강화의 마디로 절합하려고 시도한다. 공동체의 협력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저렴한 방편으로 전유하고, ‘대안적인 삶과 예술’ 활동을 도시의 스펙터클로 흡수한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