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브뤼노라투르와만나다
애덤S.밀러의『사변적은혜』는브뤼노라투르의저작을활용해전통적인유신론적세계관바깥에서신학에접근하려고한다.라투르의선구적인작업은일상적인우주를구성하는객체들의힘,제한성,상호작용을분석한다.그분석은객체의행위성을무대뒤혹은아래에서작용하는힘이나무대의외부에서무대를설계하는시계공으로환원하지않는다.라투르의작업은무대의바닥을연기하는어떤익명의힘의장이나시계공을연기하는초월적인신에의지하지않는비신론적연극을연출한다.밀러는라투르의이러한비신론적연극을활용하여역설적인방식으로신학의연극을펼친다.
특히밀러는은혜라는개념을유신론적플랫폼에서객체지향플랫폼으로이식한다.컴퓨터프로그래밍에서프로그램이나애플리케이션을이식한다는것은다른플랫폼혹은다른운영체제에서사용하기위해프로그램이나애플리케이션을수정한다는것을의미한다.이를수행하기위해서는체제-특정적코드구간을다시작성한다음새플랫폼에서프로그램을재컴파일해야한다.컴파일은간단히말해서한언어로작성된프로그램을다른언어로번역하는행위이다.그렇다면어떤개념을한플랫폼에서다른플랫폼으로이식한다는것은그플랫폼에서사용하기위해그개념을둘러싼코드를수정한다는것을의미한다.밀러가‘은혜’라는개념에수행하는작업이바로이러한컴파일이다.
밀러는은혜가초월적인신의무조건적선물이아니라모든객체에내재하여있다고말하면서,라투르주의적인컴파일을수행한다.밀러는모든물질적사물을비롯한모든객체로부터은혜가방출된다고상상한다.모든객체에은혜가내재하여있는상황속에서,작업과고난,행위성과악의표현은객체들의민주주의속의동등한객체들이연출해내는상호작용으로부터발현된다.
객체의두얼굴:저항적이용가능성
그러나밀러가은혜를이식하려는플랫폼을특정하지않는다면이식작업을수행하기는어려울것이다.플랫폼에맞춰은혜개념의코드를수정하기위해서밀러는그플랫폼을탐색해야한다.밀러가탐색할플랫폼의이름은‘객체지향플랫폼’으로,은혜를이식하는작업을달성하기위해밀러는객체지향플랫폼안팎을넘나들며플랫폼에내장된다양한개념과조우한다.이여정을통해객체는두얼굴을가진존재자라는점이밝혀진다.
객체는다른객체와연결하기위해“이용가능한”동시에다른객체와의관계에“저항적”이다.어떤객체도다른객체로완전히환원될수없는한,객체에는다른객체와의관계에저항하는측면이있다.그런데어떤객체도다른객체로부분적으로환원되는일을피할수없는한,객체에는다른객체와의관계를위해이용할수있는측면이있다.라투르는다음과같이말했다.“어떤것도그자체로는다른어떤것으로환원가능하거나불가능하거나한것이아니다.”객체의두얼굴은브뤼노라투르의이비환원의원리(principleofirreduction)에따라도출된것이다.밀러는이두얼굴을객체의“저항적이용가능성”이라고정식화한다.밀러에따르면은혜에대한나의개방성,그리고죄는이저항적이용가능성에대한나의개방성으로부터흘러나온다.은혜를이식하려면객체의“저항적이용가능성”에충실하고자해야하며,그과정에서은혜가흘러나온다.
종교와과학
이책이보여주는또하나의예상밖전개는종교와과학사이의뒤바뀐관계이다.밀러는라투르에게서차용한놀라운격언을통해“종교는떠나려는우리의의지를꺾는것”이라고말한다.종교는현실에서물러서려는우리의의지를꺾고우리발밑의일상적세계로우리를돌려보내는것이다.반면에,과학은우리의일상적세계에서멀리떨어진지역으로우리를보내는것이다.종교는너무나이용가능한객체,망가지기전까지는볼수없는하이데거의망치처럼이용하는것이너무쉬워서보이지않게된객체로우리의주의를돌리려고한다.과학은너무나저항적인객체,이용하는것이너무어려워서보이지않는객체로우리의주의를돌리려고한다.흔한전개와는반대로,과학은초월적영역으로,종교는내재적영역으로우리를인도한다.
밀러에따르면,과학과종교는모두도덕성을배양할수있다.과학과종교는모두,안정된관점을흔들수있는교란을,안정된공동체를어지럽힐수있는의심을원칙적으로추가한다.관점이체계라면,과학과종교는체계가포함하는것들이정렬된전경에체계가배제하는것들을끌고온다.과학과종교는수단이되어보이지않게된망치,우리의일상과무관한것으로배제된백상아리의지각적우주를통해의심을배양한다.애덤S.밀러가참조하는과학철학자브뤼노라투르는이것이생태위기가“수단들의일반화된반란으로나타나는이유”라고설명하면서“고래,강,기후,지렁이,나무,송아지,소,돼지,새끼새등어떤존재자도더는‘단순히수단으로’취급받는데동의하지않고‘언제나목적으로도’대접받기를주장한다.”고말한다.
책의구성:객체지향존재론의용어사전
이책은저자의한국어판서문과레비브라이언트의서문,40개의장,결론으로구성되어있다.본문을구성하는40개의장은신학적주제뿐만아니라객체지향존재론과철학을둘러싼여러소주제를다루고있다.은혜뿐만아니라형이상학적민주주의,방법론,평평한존재론,비환원의원리,초월,행위성,번역,표상,인식론,구성주의,고난,블랙박스,실체,본질,형상,주체,참조,진리,해석학,믿음,진화,도덕,현전등수많은소주제를다루는애덤밀러의『사변적은혜』는애덤밀러의신학프로젝트로서뿐만아니라브뤼노라투르의철학에대한친절한안내서,그리고객체지향존재론을위한용어사전으로도읽을수있다.
『사변적은혜』는형이상학적으로동등한객체들이서식하는객체지향우주에서종교와과학이가질수있는제한성,강점,문제점을탐구한다.과학대종교에관한밀러의분석은형이상학에관한현대의여러경합하는주장들을이해하고자하는종교독자와비종교독자들이주목할만하다.밀러의논증은과학과종교의영역을재고할필요성을느끼게만든다.브라이언트의말처럼밀러의신학은신(theos)없는신학일지도모르지만,그신학은“아직은”현존하지않을수도있는신에관한신학,무력한(powerless)신의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