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론:세계는인간의마음,인간의실천으로부터독립적으로실재하는것이다
『실재론의부상』이라는이책의제목은‘대륙철학’에뿌리를둔몇가지철학사조의최근의추세를가리킨다.21세기이후대륙철학에서는‘사변적실재론’,‘신실재론’,‘신유물론’,‘객체지향존재론’,그리고‘평평한존재론’등의철학적기획들이나타났다.이런기획들은세계의존재자및현상과관련된이런저런종류의‘실재론’에대한확고한신념을공유하고있다.
일반적으로,19세기와20세기대륙철학의입장들과방법들을특징지었던것은다양한판본의관념론과반실재론이었다.최근의실재론들은이러한과거의경향을비판적으로바라본다.예를들어서최근의실재론들은포스트칸트주의적인관념론들과더최근의사회·언어·문화구성주의들로대표되는인간중심주의적인반실재론에적극적으로반대한다.새로운‘대륙’실재론들이공유하는하나의출발점은‘인간의마음및실천과독립적인’세계의실재를단호하게긍정하는것이다.그래서존재자와현상의본성들과관계들은어떤주관적이거나언어적인,또는사회적인형태의인간지각,인간인지,인간표상등에의거해서는결코이해될수없는것이다.오히려그것들에대한‘우리의’지식이나접근에관한물음과는전적으로무관하게독자적으로이해되어야하는것이라고실재론자들은주장한다.
실재론부상의원인:인류세,기후위기,생태위기
최근의대륙철학에서인간과독립적인사물의실재성,사물의물질성,사물의행위성을강조하는사조인‘실재론’들의부상이나타난까닭은무엇일까?기후위기와생태위기로특징지어지는인류세시대는폭염,초강력폭풍,홍수,기근,팬데믹,멸종등을일상적인조건으로만들었다.이것은인간이자연의주인도아니고세계가인간을위해존재하는것도아니라는사실을절감하게한다.그래서우리는이제일상에서비인간의실재성과행위성을고려할수밖에없게되었다.
그런데새로운실재론자들에따르면대륙철학의전통을대표하는포스트칸트주의적관념론과구성주의이론들은근본적으로인간중심주의적인기본도식을채택하고있다.인간중심주의는인류세시대의기후위기에서비롯된문명적위기를성찰하고해결하는데필요한철학적,윤리적,정치적질문들을제기하기어렵게만든다.이런현실이인간중심주의관점에반기를드는실재론적존재론이전세계적으로설득력을얻고있는배경이다.
책의구성
이책은대담의주제에따라구분된다섯개의부로이루어져있다.
1부「실재론과유물론」에서데란다와하먼은실재론의역사를논한다.주로대륙철학전통에서실재론에부여된지위,실재론과유물론의관계를주제로삼는다.데란다는유물론을“물질적세계를초월하는모든존재자를거부하는일종의실재론”으로정의하면서“강렬히실재론적인동시에강력히유물론적인”철학,이른바‘신유물론’을견지한다.한편,하먼은유물론이객체를그것의구성요소들로환원하거나그것의효과들로환원하는경향이있다는이유로유물론을철저히거부하면서이른바“유물론없는실재론”을견지한다.데란다와하먼의실재론적존재론들은실재론을사이비문제로치부하거나실재론을고려대상에서제외하면서유물론적구상에전념해온대륙철학적전통에선전포고하는급진적인철학들로간주될수있다.
2부「실재론과반실재론」에서데란다와하먼은실재론과반실재론이라는두개념사이의차이를논의한다.두대담자는리브레이버의저작에기반하여실재론과반실재론의핵심테제들을명료하게표현한다.여기서데란다와하먼은실재론/반실재론논쟁의쟁점들을분명히밝히고,반실재론이대륙철학의전통에얼마나깊이뿌리내리고있는지를보여준다.그리고대륙철학의최신사조들이근본적으로다른방향으로진전하고있음을서술한다.특히,두대담자는관계와관계주의의개념들을가능한한정확히규정하려고노력한다.하먼은화이트헤드,라투르,버라드가관계들을그것들에선행하는관계항들을적절히고려하지않은채로개념화한다는이유로비판한다.하먼은그들을반실재론자들로규정한다.한편,데란다는“어떤관계항의바로그정체성을구성하는내부성의관계들”은수용하지않고단지외부성의관계들만수용해야한다고강조한다.
3부「실재론적존재론」에서데란다와하먼은신유물론과객체지향존재론의주요언표들에집중하면서실재론적존재론을논의한다.여기서그들의대담은본질(essence)과성향(disposition)이라는개념들을둘러싸고이루어진다.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존재론에의지하는하먼은‘본질’이없다면객체를정합적인존재자로해석할수없을것이라고주장하는반면에,들뢰즈주의적존재론에의지하는데란다는본질이라는개념이비합법적이고불필요하다고주장한다.한편,두대담자는영향을주고받을수있는역량으로서의성향에대하여열띤논쟁을벌인다.하먼은성향을사물에귀속시키기를거부하면서일종의관계적양태로간주하는반면에,데란다는객체의정체성을현실적특성들과잠재적성향들의조합으로규정한다.
4부「인지와경험」에서데란다와하먼의대담은인지와경험에관한물음을둘러싸고이루어진다.두대담자는,‘인식론’이라는용어가인간과그밖의모든것사이의관계에특권을부여하는이원론적존재론을수반한다는이유로,“존재론적의문은인식론적의문과분리되어야한”다는것에동의한다.하먼은,객체의본질적양태들이필연적으로물러서있다는논점과객체에대한접근이언제나‘번역’과정에의해매개된다는논점을강조함으로써인지에대한그의접근법을설명한다.데란다의이론은객체와경험적패턴사이의‘변환’메커니즘을중시하는한편,체화된인지와선택적주의집중과정의생물학적기원에주목한다.여기서두학자가공유하는통찰은,객체의근본적인물러섬에서기인하든자연의개방적특질과과거의추적불가능성에서기인하든간에,절대적지식은불가능하다는것이다.
5부「시간,공간,그리고과학」에서데란다와하먼은시간,공간,그리고과학과관련된개념적딜레마들을논의한다.하먼은‘실재적시간’을객체들의배치의공간적변화와등치시키고‘감각적시간’을“객체들의상태들의비가역적인순서열”의파생물인관계적존재자로규정한다.요컨대,하먼은“우리가시간을실재적인것자체에속하는것으로간주한다면,저는제가시간에대한실재론자가아니라고생각합니다”라고진술한다.반면에,데란다는시간에관한이런비실재론적철학에강하게반대하면서실재적시간의비가역성을강조한다.또한,데란다는‘강도’(intensity)개념에대한매우유용한분석도제시한다.여기서두대담자는라투르에대하여열띤논쟁을벌이면서지식,의미론,반증,그리고진리규정을논의한다.
데란다의‘신유물론’과하먼의‘객체지향존재론’:수렴과발산
『실재론의부상』에서데란다와하먼은지난20여년간여러권의저서를통해발전시킨자신들의독특한철학적신념들에관해논의한다.멕시코출신의세계적인철학자이자『강도의과학과잠재성의철학』의저자인마누엘데란다는‘신유물론’(neo-materialism)의입장을견지하는학자이다.얼마전한국EBS방송국의‘위대한수업’프로그램에출연했던미국의철학자그레이엄하먼은사변적실재론의한갈래인‘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ontology)을창시한사람이다.
데란다의실재론
데란다가추진한실재론적기획의철학적근거는2002년에출간된데란다의저서『강도의과학과잠재성의철학』에서제시되었다.데란다의실재론은역동적과정들에관한들뢰즈의미분적존재론과그과정들의발생,진화,전개,그리고변환을위한형식적·구조적조건들에대한들뢰즈의‘실재론적’태도에기초한다.데란다는동역학적체계들을,쌍갈림,끌개,그리고그밖의독특한위상수학적양태들로특징지어지는위상공간에서나타나는그것들의비선형적움직임에의거하여서술하고자한다.이러한틀은인간-비인간의구분에구애받지않을뿐만아니라,다양한규모,영역,체계에걸쳐생겨나는시간에따른변화와창발의역동적인과정들도설명할수있다고데란다는말한다.
예를들면,『천년의비선형적역사』에서데란다는지난천년의세계역사의모델링에비선형동역학을독창적으로적용했다.그리하여그는진보또는직접적인역사적발전의어떤선형적인서사도부정하면서인간적·지질학적·생물학적현상들,과정들,그리고사건들사이에서이루어지는상호작용의복잡한동역학을옹호한다.『실재론의부상』에서데란다는,그러한잠재태의비선형동역학이객체들과형태들의외관상안정적인정체성을“그정체성의역사적생성과일상적유지의배후에자리하는창발메커니즘들로설명하는”더넓은틀안에포섭할수있다고주장한다.
그레이엄하먼의실재론
한편,그레이엄하먼은‘객체지향존재론’이하이데거에대한자신의실재론적독해에서비롯되었다고말한다.하먼은『존재와시간』에서제시된하이데거의도구-분석을하이데거철학전체의핵심으로간주하는데,이러한해석은주류하이데거해석에거의영향을미치지못했다는면에서자신의해석은비정통적인것이라고하먼은말한다.하먼은2002년출간한저서『도구-존재』에서하이데거에관한이러한주장을했다.
하먼의‘객체지향존재론’은객체들을그것들이서로맺은다양한역동적인관계에의거하여특징짓는것에반대한다.하먼이보기에오히려객체들은자신이맺고있는그관계들의총체에서‘물러서는’방식에의해특징지어진다.이‘물러섬’으로인해서,객체지향존재론(줄여서OOO라고도쓴다)에서는어떤객체도완전하고포괄적으로이해될수는없다고주장한다.
『실재론의부상』의여러곳에서하먼이강조하듯이이런생각의선례는후설에게서찾아볼수있다.하먼은후설의입장을뒤집어서,유의미한구조를갖추고있을지라도어떤다양한인식적인외부관계에의해서도직접인식되지도않고망라되지도않는‘실체적형상들’또는‘특이한본질들’의현존을승인한다.이런구상에근거함으로써하먼은객체를더단순한구성요소들로환원하려는모든시도(이른바‘아래로환원하기’)를거부할뿐만아니라,객체를더넓은관계적네트워크속에서의그것의위치에의거하여설명함으로써환원하려는모든시도(이른바‘위로환원하기’)역시거부한다.
실재론의다양성:실재론적테제들과반실재론적테제들
철학적논의에서‘실재론’은다양한방식과의미로사용되어왔다.『실재론의부상』에서데란다와하먼은,2007년에출간된리브레이버의책『이세계라는것:대륙적반실재론의역사』(AThingofThisWorld:AHistoryofContinentalAnti-Realism)에제시된실재론테제(R)들과반실재론테제(A)들을확장하여다음과같은아홉가지존재론적목록을제시한다.
R1/A1세계는마음에의존하지않는다/의존한다.
R2/A2진리는대응이다/대응이아니다.
R3/A3세계가어떠한지에관한하나의참된완전한서술은존재한다/존재하지않는다.
R4/A4모든언표는반드시참아니면거짓이다/반드시그런것은아니다.
R5/A5지식은그것이알고있는것에대하여수동적이다/수동적이지않다.
R6/A6인간주체는어떤고정된특질을지니고있다/있지않다.
R7/A7철학의경우에인간주체가맺은관계는특권적인관계가아니다/관계이다.
R8/A8세계는그속에서모든것이밀접하게관련되어있는전체론적존재자가아니다/존재자이다.
R9/A9주관적경험은언어적으로구성되지않는다/구성된다.
실재론적존재론이견지해야하는최소한의것은R1테제,즉마음-독립적인세계의현존이다.그런데데란다와하먼이주고받는대담의직접적인맥락을형성하는‘사변적’실재론과‘신’실재론의경우에가장주요한신념은『유한성이후』의저자퀑탱메이야수가‘상관주의’라고일컬은A7테제를거부하는것이다.예를들어서물자체를가정하고“인간-세계상호작용이세계속객체-객체상호작용과존재론적으로다르다”라고가정한칸트의‘상관주의적’존재론은R1/A7연접으로간주될수있다.독일관념론은“R1물자체를본체가한낱현상의특별한일례에불과한A1입장으로뒤집”은A1/A7연접으로간주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