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위

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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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이후 전개된 사태를 계기로, 저자는 한국 민주공화국이 맞닥뜨린 궐위 상태를 과도기적 공백의 시간으로 규정하고, 이 시간을 새로운 헌정 질서의 정치철학적 실험실로 삼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궐위는 단지 대통령이나 권력자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오래된 질서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데 새로운 질서가 아직 도래하지 못한 사이,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에 열리는 정치적 공백의 시간을 가리킨다.
이 책은 특히 ‘아직 아닌’(not yet)주의적 통치공학이 어떻게 정의의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며 위기의 책임을 희석하는지 폭로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통치공학을 거스르는 힘이 이미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음을 보고, 그 근원을 “이미(already) 도래중인” 시간의 선재성에서 찾는다. 이 힘은 통치공학의 폭력을 무위로 돌리고, 규범과 예외·법과 폭력의 위계를 잠시 정지시키며, 궐위라는 공백 속에서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여는 힘으로 그려진다. 장갑차 앞에서 멈춘 시민의 이미지가 책 전반을 관통하는 것도 이러한 힘의 출현을 시각적으로 응축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어 국가이성(레종데타)과 친위쿠데타(셀프-쿠)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보적으로 교차하며 내전적 통치를 구성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또한 후기에서는 ‘물민주권’과 ‘무주공산’의 개념을 도입해 12·3 이후 주권의 재구성을 사유한다. 사물-인간이 함께 주권의 주체로 등장하는 물민, 그리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의 삶이 공생하는 무주공산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저자는 국민주권을 넘어 물민주권·생태주권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헌정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일지-단편의 형식을 취한 이 책은, 궐위의 시대를 관통하는 병적 징후와 저항의 힘을 함께 기록하며, 광장 이후의 정치철학이 마주해야 할 근본 물음을 제기한다.
저자

윤인로

YoonInRo1978~
비평가.『신정-정치』『묵시적/정치적단편들』을지었고,『로마가톨릭교와정치적형식』『국가와종교:유럽정신사연구』『이단에대해:주술제의적정통성비판』『정치학강의:마루야마마사오1960년강의록』『트랜스크리틱:칸트와마르크스』『유동론:야나기타쿠니오와산인』『나쓰메소세키론집성』『윤리21』『세계사의실험』『사상적지진』『일본헌법9조와비폭력사상』『일본이데올로기론』『선의연구』『파스칼의인간연구』『출판제국의전쟁』『정전과내전』을번역했다.2010년창비신인평론상을받은이후,도합10년간여러비평잡지의편집위원및편집주간으로협업했다.2014년부산을떠나현해탄을건넜고,교토대인문과학연구소공동연구원,무사시대학종합연구소객원연구원으로체류했다.동아대기초교양원조교수를거쳐한국연구재단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로있었고,2025년현재동서대동아시아연구원중국센터연구교수,리츠메이칸대학코리아센터협력연구원으로있다.

목차

서론:계엄치하의레종데타--『계엄령』이라는쿠데타극9

1장궐위상태의추체험21
2024.12.3.「계엄사령부포고령제1호」22
2024.12.4.필요의왕국:여기의왕정복고친위쿠데타24
2024.12.5.익명의시민이계엄군의차량을가로막고제기한(궐)위기의과제26
2024.12.6.다시,궐위속에서30
2024.12.9.궐위상태에서의더나은실패를위하여33

2장쿠데타와레종데타의상보적치환관계41
2024.12.12.국가의구원즉공백의법:셀프-쿠하는레종데타(1)42
2024.12.13.영속적통치의보장이라는국가이유:셀프-쿠하는레종데타(2)48
2024.12.15.주권면책의근거조달:“비상계엄은고도의정치적판단”55
2024.12.18.비선권력의축적술,‘포어라움’에서의역주술화61
2024.12.22.‘현자들의협력’으로발현하는폭력:셀프-쿠하는레종데타(3)66
2024.12.25.“이미되어질길”:정치적인것의고유명으로서,혹은갈채-게발트의분광기로서“남태령”72
2024.12.28.“제-외-례”의통치:여기계엄령의간략한역사80
2025.1.1.관저커튼뒤에서설정되는직접-민주-내전의적:셀프-쿠하는레종데타(4)85

3장석열보나파르트89
2025.1.2.“그날우리는연결되어있었습니다”90
2025.1.5.당사자내각VS.국민=개돼지론92
2025.1.6.커먼즈-오병이어:전적으로다른‘나눔’94
2025.1.9.반공청년단과통치의간지,혹은“한번은비극으로,다음번은희극으로”:유령적셀프-쿠(1)97
2025.1.10.룸펜화된삶의가속자·모조구원자:유령적셀프-쿠(2)101
2025.1.12.“국민의은총”과“명령적위임”:유령적셀프-쿠(3)110
2025.1.15.반공백골단의부활,혹은“너사람아,이백골들이살아날것같으냐?”:유령적셀프-쿠(4)120
2025.1.18.계급적계엄령의사회이성,혹은“사탄만이가톨릭교회를구원한다”:유령적셀프-쿠(5)125

4장내전정체너머133
2025.1.19.서부지법난입:‘씨빌워’의폭력비판134
2025.1.20.“1·19혁명”VS.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5·18:‘마치법의소멸과정과도같은법의완성과정’이라는시금석145
2025.1.21.“우리가국가야!”의폭력-이성:셀프-쿠하는레종데타(5)152
2025.1.23.“헌법위의권위”VS.역사적저항권의색인155
2025.1.28.국민저항권의아나키-크리틱:신적인비폭력을위하여158
2025.2.4.십자가-궐위:세이브코리아의국가비상기도회와케노시스의정치기독학165
2025.2.10.“오직아나키만이세계위로풀려난다”171

5장“텅비울것”,그리고“광장을창출할것”175
2025.2.16.궐위를만드는증언:의인이라는제헌의조건
2025.2.17.진실위조의체제VS.파레시아스트즉파루시아스트182
2025.2.22.전광훈과손현보의광장,헌금자본의일반공식185
2025.2.25.‘계몽령’의계몽비판:다시,“과감히알고자하라”190
2025.3.1.제7공화국헌정의한가지조건:비-주권과자가-공동-면역194
2025.3.6.‘해체적성격’의어셈블리:광장을넘는깃발혹은물활력205

6장법의공백에대한해석과결정217
2025.3.7.내란수괴구속취소라는예외적결정의근거218
2025.3.9.미래의선지자검찰:법조의임의재량적(무)해석과결정(포기)223
2025.3.12.법복입은귀족정의공안주의225
2025.3.16.유물론적+메시아적헌정의상황구축228
2025.3.21.끝날의날끝:김건희의파울클레236
2025.3.26.헌법재판소“5:3데드락”의수치:사법형식적타협의‘폴리크라티’비판238
2025.3.28.도래중인총파업의네가지이념244
2025.3.30.“헌법재판소의주인”이설정한적대:‘악’의미결정력VS.‘예’냐‘아니오’냐257
2025.3.31.대통령의헌법수호선서:“맹세하지말라”라는그리스도의말260
2025.4.1.“헌법재판소에콘클라베를적용하라!”:헌재재판관의법복에새겨진법의정신265

7장궐위의크리틱267
2025.4.4.만장일치파면결정직후,어떤위화감에서시작하기268
2025.4.9.〈내란의밤〉과구제의색인들270
2025.4.18.“내가‘깃발’인지깃발이‘나’인지알수없는”:여성-되기의생성적아노미274
2025.4.26.“봄[=법]은만인에게평등했는가”라는근본물음:유사-이소노미아의스펙터클을탈구하는말279
2025.5.1.대법원파기자판,혹은친위쿠데타의법학적가발관리사조희대대법원장285
2025.5.6.개헌초안:“법률가들아,어째서너희들의직무책임에침묵하고있는가?”290
2025.5.12.“압도적정권교체”라는함구령,광장을닫아거는다른계엄령295
2025.5.13.“페이퍼공화국”혹은천년왕국이라는민주주의자들의어음할인권299
2025.5.20.12·3의광장이5·18의광장에보낸편지301
2025.5.26.헌법의대체보충력과맑스적“헌법의수호자”:유령적셀프-쿠(6)305
2025.6.3.(비상)대권의예정된머리가광장의수뇌가될때309

후기:“물민의주권”과광장이후의이정표317
다른서론:연옥-궐위333
표지이미지에대해343
참고한것들345
추천사351

출판사 서평

12·3계엄과궐위
안토니오그람시는“오래된것이이미죽어가고있는데새로운것이아직탄생하지못하고있는때야말로위기이다.그런궐위의공백기에대단히다양한병적증상들이나타난다”고말한바있다.궐위(인테레그눔)라는말은전임황제와그뒤를이을후임황제사이의틈,교황과그뒤를잇는교황간의간극,신성한통치의권위와그권위의정당성이부재하는공백의시간을뜻하는정치적,신학적개념이다.
저자에따르면12·3비상계엄이후의사태는이개념을다시불러내게하는계기였다.저자에게‘궐위’라는낱말은단지대통령같은결정권자의부재를의미하는것이아니라결정적위기를사유할수있는하나의관측점이며질문의좌표였다.비상계엄직후부터감지되었고,국회의탄핵결의이후더욱선명해진이궐위의상태를정치적·윤리적힘을시험하는실험실로정립하기위해이책을썼다고저자는말한다.

‘이미(already)’와‘아직아닌(notyet)’
저자는내란청산이급선무이니정의로운체제전환은‘나중에’해도된다는주장속에서,특정한정치의논리를본다.이러한‘나중에’의정치는“정의로운전환은아직시기상조”라는판단을반복하며작동하는,이른바‘아직아닌(notyet)’주의적통치공학의기반을이룬다는것이다.그러나내란청산과정의로운체제전환은선택의우선순위문제가아니라,동시에맞물려해결해야하는연동된과제다.그럼에도‘아직아닌’주의를실행하는이들은긴급성을희석시키고,지금당장다뤄야할정의의문제를미루며,그결과를불가피한것으로포장해면책하려한다.저자는이러한반복을“대체보충적이며결국유혈적인‘나중에’의계산법”이라고부른다.
이에맞서는힘이있다고저자는말한다.그것이이책에서“이미(already)도래중인”이라는시간적형식으로표현되는힘이다.2024년12월3일밤,계엄을막기위해국회앞으로달려간시민들은“아직움직이지않아도괜찮다”는식의자기기만을거부했다.저자는이즉각적행동을가능하게한것이무엇인가를질문하며,그답을“이미도래중인”힘의선재성에서찾는다.이는‘아직아닌’주의적통치공학에역행하고,그폭력적작동을드러내무위로돌리며,대의체제의연장술을넘어광장의응원봉·의사봉·법봉을다시하나의선위에접합시키는힘으로묘사된다.
비상계엄당일장갑차앞에서멈춰선한시민의사진은책전반을관통하는핵심이미지로반복된다.저자는이장면을낡은질서를확정짓고새로운질서를분만하는일종의산파적형상으로읽는다.그멈춤은단순한저항의순간이아니라,법과폭력,규범과예외의위계를잠시정지시키는사건적계기이며,궐위상태의병적징후를무위로돌리는힘의단초를이룬다.

쿠데타와레종데타(국가이성)의상보적치환관계
2025년1월1일윤석열은“저는실시간생중계유튜브를통해여러분께서애쓰시는모습을보고있습니다.국가나당이주인이아니라국민한분한분이주인인자유민주주의는반드시승리합니다!우리더힘을냅시다!”라는신년메시지를발표했다.저자는이메시지가비상대권의상시적·일상적활용을정당화하고,시민전쟁(내전)의발발을암묵적으로인도하는일종의‘암구호’처럼기능했다고분석한다.
왜역사속에서는친위쿠데타가반복적으로등장하는가?통념상국가이성(레종데타)과친위쿠데타(셀프-쿠)는서로분리된것이거나질적으로다른것으로여겨진다.그러나이책은윤석열의신년메시지속에서두개념이서로를보완하며맞물려작동하는‘상보적치환관계’를포착한다.윤석열의메시지는국민한사람한사람을국가의‘직접적주인’으로호명함으로써,사실상시민전쟁을호소했다.저자는바로이지점에서국가이성이친위쿠데타를도모하는방식,즉‘국가가스스로를구제한다’는명목아래내전을정당화하는레종데타의모습을읽어낸다.그과정에서국가이성은내부의적(반국가세력,의회독재세력)을제거하는것을내전적통치의목표로삼고,시민전쟁·내전을정치체를교정·구제하기위한최후의비상수단으로설정한다.
이책에서말하는친위쿠데타·자기쿠데타·셀프-쿠란,민주공화국이자신을보호한다는명분으로국민을직접적주권자로호출하면서,국가와일체화된신민을생산하고,시민전쟁을통치의마지막도구로삼는레종데타의계산법을뜻한다.이러한레종데타-쿠데타의호환관계속에서등장하는것이바로‘내전정체’이다.내전정체는아나키의창출과재량적경찰권을두개의축으로삼아,기존의법·대의·위임·재현이라는매개들을효력정지시키고하나의단일한통치기계로재구성한다.

물민주권과무주공산:12·3이후주권의재구성
후기에서저자는조정환의『빛의혁명183』에서제안된“물민주권”개념을다시호출하며,12·3이후의주권문제를새롭게묻는다.물민이란사람이아니라인간·비인간사물들로이루어진네트워크(깃발,응원봉,꽹과리,은박담요,스마트폰,트랙터,오토바이,방송트럭등)을포괄하는이름이며,물민주권은법률적국민주권의범위를넘어시민의주권,생태의주권,규범적주권을구성적이고동태적인힘으로확장시키는개념이다.
이와함께저자는『빛의혁명183』에서제시된“무주공산”이라는이미지를제시한다.이는누구의소유도아니지만모두의삶이공생하는장소이자조건을가리키는말이다.이개념은2024년전시〈무주0山:이름(NAME)의「작품없는작품」개인전〉에서출발해『빛의혁명183』에서이론화되었고,『궐위』에서는12·3이후주권을다시묻는핵심개념으로재등장한다.국가·자본·전쟁·AI가세계를채굴장처럼만드는“무주공산화기계”로작동할때,12·3내란은국민을무주공산으로만들려는군사폭동,곧국민주권그자체의약탈로이해될수있다.저자는민주주의에서무주주의로,국민-시민-물민으로이어지는확장을광장이후의핵심과제로제시하며,이를생태헌법·생태주권이라는이름으로새로운‘노모스-가이아’를구성하는방향과연결한다.

책의구조
이책은각글에날짜가붙은일지의형식을취하고있다.저자는2024년12월3일이후반복적으로요청되는“증언”의요구앞에스스로응답해야한다는강한압박을느꼈다고말한다.그때가장적절한글쓰기방식은상황적앎을구축할수있는‘일지’,정확히는비평의형식으로재구성된‘일지-단편’이었다.저자는이일지를통해사태를낯설게드러내고,그것을역사적으로자리매김하며,개념적으로다시연결해새로운배치를구성하고,상황과개념이서로의힘을증폭시키도록하는비평의시금석을마련하는것을목표로삼았다고밝힌다.
비상계엄해제직후저자가감지한궐위상태의“약한예감”은개인적통찰이아니라당시여러이들이부분적으로공유하고있던정치적감각이었다.그는일지속기록들이그시기의병적징후를따라잡고,그것을무위로돌리는힘의행로를포착하며,훗날다시돌아보게될날짜들과함께민주정의결단·예외에대한비평의필요성을지속시키는데작은보탬이되기를바랐다고말한다.
일지이후덧붙여진서론·후기·다른서론·표지이미지해설은모두,비상계엄이후예외적결단의여파가잦아들지않고연속되며지속적인앎과개입을요청했기때문에구성된것들이다.저자는이러한요청에응답하는과정이지금의목차구조로이어졌다고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