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이스리글과『홀란트단체초상화』
알로이스리글은1858년오스트리아제국의린츠에서태어나빈에서학문적생애대부분을보낸미술사학자이자문화재전문가이다.빈대학에서철학과역사,고고학을공부한그는1886년부터10년간오스트리아미술공예박물관에서재직하며본격적으로미술사연구를시작했다.박물관재직기간후반부에리글은직물담당부서의책임자로일하게되었는데,당시의경험은첫저서『고대동방의양탄자』(AltorientalischeTeppiche,1891)로이어졌다.이시기리글은회화나조각처럼전통적으로‘순수미술’로분류되는작품장식문양과공예품을직접다루었고,이러한실무경험이미술사를보는그의문제의식을형성하는데결정적역할을했다.1897년빈대학교수로임용된이후연구와강의를병행하며고대,중세,근세를아우르는야심찬이론적구상을전개했지만,1905년마흔일곱의나이로요절하면서많은기획을미완으로남겼다.『홀란트단체초상화』(1902)는리글이생전에출간한마지막저작이다.
리글이혁신적인미술사학자로서의명성을확립한것은그의두번째저서인『양식의문제:장식사의기초』(Stilfragen:GrundlegungenzueinerGeschichtederOrnamentik,1893)였다.이책에서리글은장식문양이외적조건에종속되지않는,연속적이며자율적인‘장식의역사’를지니고있음을기술하려했다.이를위해리글은아라베스크와같은특정장식모티프들을고대‘근동’에서고전고대,나아가초기중세와이슬람미술에이르기까지추적했으며,그과정에서‘예술의욕’이라는개념을발전시켰다.
예술의욕(Kunstwollen)
알로이스리글은예술의욕개념을정식화한미술사학자로널리알려져있다.이는예술을개인천재의표현이나단순한모방으로이해하기보다는한시대의사회문화적조건속에서형성된집합적의지가조형적형식으로드러난결과로파악하려는시도였다.리글에게예술은특정한시대와사회가세계를어떻게인식하고어떻게세계와관계맺고자하는지를형식으로조직한결과이다.
예술의욕개념에대한가장분명한정의는1901년에출간된리글의『로마말기의미술산업』의마지막장에서제시된다.그책에서리글은다음과같이말한다.“인간의모든의욕은개인의내부에서그리고개인을넘어서서인간과세계와의관계를만족스럽게형성하는방향으로향한다.조형적예술의욕은감각적으로지각가능한사물의외양과인간의관계를규율한다.시적인예술의욕은인간이사물을어떻게상상하고자하는지를드러내듯이미술은사물의형상과색채를인간이어떻게보고자하는지를표현한다.인간은단지수동적인감각적수용자에그치지않고,욕망을지닌능동적존재로서,세계를자신의욕망에가장명확하고도순응적으로부합하는방식으로해석하고자한다(이러한해석방식은민족,지역,시대에따라서로다르게나타난다).그리고이러한의욕의성격은우리가(가장넓은의미에서)세계관이라부르는것속에담겨있다.즉종교,철학,과학,나아가국가운영과법에까지담겨있다.”(위키피디아https://en.wikipedia.org/wiki/Alois_Riegl)다시말해서예술의욕은곧세계관이미적형식으로드러난결과라고도볼수있다.
단체초상화가보여주는17세기홀란트의예술의욕
알로이스리글은『홀란트단체초상화』서문의24쪽에서다음과같이말한다.“미술작품에서현대의취향에들어맞는요소를찾는것이아니라,그작품을탄생시키고바로이와같이만들어낸예술의욕을규명하는것이미술사의과제임을인식하는즉시,우리는단체초상화야말로다른어떤것보다홀란트의예술의욕을드러내는고유한성격에가장적절한영역임을깨닫는다.”『홀란트단체초상화』에서리글은예술의욕의규명을미술사의과제로규정하면서단체초상화야말로홀란트의예술의욕을잘보여준다고보았다.
17세기홀란트에서단체초상화가집중적으로제작된배경에는정치,종교,사회조건의급격한변화가놓여있다.스페인합스부르크왕가로부터의독립전쟁과종교개혁이후형성된네덜란드공화국은군주나귀족이아닌시민공동체를중심으로운영되는사회였다.특히17세기네덜란드공화국에서정치,경제,상업의중심지였던서부연안지역,즉역사적으로‘홀란트’라불린지역에서암스테르담과하를럼은상업과행정,시민조직이밀집된도시로기능했으며,공공적단체들의활동이두드러졌다.단체초상화는바로이러한시민사회의구조속에서등장한시각적형식이었다.
『홀란트단체초상화』의부제는“자경단시대의예술의욕”이다.자경단은17세기홀란트에서흔한단체형태였다.자경단은정규군과달리도시의시민들이스스로조직한방위조직으로,17세기홀란트에서는주로상업과행정을담당하던부르주아계층의남성들로구성되었다.이들은사비로무기를마련하고단복을갖추었으며평상시에는도시공동체의일원으로살아가다가필요할때치안유지와방위를맡았다.단순한군사조직이아니라시민공동체가공공의책임을스스로수행한다는자치적시민의식의표현이었고리글에따르면이러한성격은단체초상화에서평등한병렬구성과집단적정체성의시각화로나타난다.
단체초상화속인물들은가족이나사적친분으로묶인존재들이아니라,자경단이나길드,자선기관과같은공공적목적을지닌조직의구성원들이다.이들은각자독립적인개인이면서도,특정한사회적기능을수행하기위해한시적으로결합한집단으로서재현된다.따라서단체초상화는개인초상화처럼한인물의위신이나개성을강조하지도,역사화처럼영웅적서사를중심에두지도않는다.시선과몸짓은과도한서사적행위를지양한채,서로를의식하거나관람자를향해열려있는상태를취한다.단체초상화는17세기홀란트의시민사회가스스로를어떻게보고자했는지를보여주는이미지다.이러한이유에서리글은단체초상화를17세기홀란트예술의욕을가장선명하게드러내는장르로평가했다.
리글과현대사상가들:발터벤야민,안또니오네그리
리글의예술의욕개념은이후오랫동안논쟁의대상이되었고,동시에많은이론가들에게영향을미쳤다.그대표적인사례가발터벤야민이다.벤야민은리글이이른바‘데카당스’나‘야만주의’로폄하되던영역을예술발전론의틀에서해방시킨점에주목했다.벤야민의초기작『독일비애극의원천』에서리글의영향이거론되는것도이와무관하지않다.벤야민에게리글은중심에서밀려난형식과장르를통해근대이전의세계관과정동을사유할수있게한선구적이론가였으며,이는벤야민자신의역사철학과미학적방법에중요한단서를제공했다.
프린스턴대학교독일어과부교수토머스레빈에따르면“리글의작업중에서도특히예술의욕이라는개념은벤야민의초기저작들에‘결정적인영향’을미쳤다.리글과마찬가지로,벤야민역시자신의작업을‘예술작품을하나의시대가지닌종교적,형이상학적,정치적,경제적경향들의완전한표현으로간주하는분석을촉진하려는시도로이해했으며,따라서그러한분석은특정한학문분야로한정될수없다’고보았다....후기로마공예에대한리글의재평가는,이전까지폄하되었던17세기독일비애극장르를벤야민이재평가하는작업의하나의유비로기능했다.”(레빈의논문https://tylevin.scholar.princeton.edu/sites/g/files/toruqf3671/files/tylevin/files/levin-benjamin_and_theory_of_art_history.pdf)
이러한계보는21세기에이르러안또니오네그리에게서또다른방식으로이어진다.네그리는리글의“예술의욕”개념이“예술을만들어내는특이한의지”(네그리의글https://www.radicalphilosophy.com/article/metamorphoses)를포착했다고본다.네그리는저서『예술과다중』에서리글의예술의욕개념을직접언급하며다중의생산성과창조력이조직되는방식이자사회적힘과정치적가능성이응축된장으로해석한다.정치철학자조정환의『예술인간의탄생』에따르면네그리는예술의욕이“기존의형식들을초과하는다양한예술적시도들을일관되고지속적인기획으로조직하면서,그때그때의예술사적문턱과경계를넘어서,새로운예술활동의양식을창출하는구성적힘”이라고말한다(228쪽).
주의와관람자:시선이만드는관계
『홀란트단체초상화』에서리글은‘주의’(Aufmerksamkeit)개념을제시했다.리글의‘주의’개념은그의미술사이론에서의지(Wille)와감정(Gefühl)사이에놓인제3의심적상태를가리킨다.의지가서사적행위와지배,종속의관계를조직하는힘이라면,감정은인물들사이의정서적결속을강조한다.주의는이둘의극단을피하면서,과도한행위나정서에치우치지않은채서로를향해‘집중하되무관심적인’태도를유지하는상태다.리글은이개념을통해단체초상화가왜영웅적서사도,친밀한감정극도아닌독자적장르가되는지를설명한다.
단체초상화에서주의는등장인물들의시선과자세로가시화된다.인물들은하나의공적목적아래모여있으되,각자의초상적자율성을잃지않는다.서로에게주의를기울이지만누구도중심적주인공으로돌출되지않으며,행위는중단된듯고요하다.이균형이바로17세기홀란트단체초상화의미학적핵심이다.주의는인물들을병렬적으로배치하면서도집단의통일성을성립시키는원리로작동한다.
이개념은관람자와대상의관계로확장된다.주의는그림속인물들사이에서만형성되는것이아니라,그림밖의관람자를향해열리는시선을통해외적통일성도만든다.관람자는극적사건을‘보는’대신,인물들이유지하는고요한집중의장에‘초대’된다.이점에서주의는이후의수용미학이나시선이론과연결될여지를갖는다.단체초상화는관람자를배제하지도,감정적으로끌어들이지도않으면서,작품과관람자사이에지속적인주의의관계를성립시키는장르로이해될수있다.
단체초상화는인물들사이의관계뿐아니라,인물-관람자-공간이라는삼자관계를조직하는이미지로이해되며,이는이후수용미학이나시선이론에서본격화될문제의식을선취하는중요한전환점으로평가될수있다.
*책에수록된모든도판의고해상도컬러파일은아래링크에서다운받으실수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_av--ULk10ISFNnLxIEmP7aammg6qAS_?usp=drive_link
역자인터뷰
Q.부제“자경단시대의예술의욕”에대해질문드립니다.먼저자경단이무엇인가요?자경단시대는역사적으로어느시대를말하는지요?
자경단은정규군과는달리시민들이모여자신들의도시를지키고자결성한단체입니다.기본적으로는특정한무기를다루는사수들의길드형태로조직되었기때문에책에등장하는그림들을통해보듯궁병단,석궁병단,총병단등구체적인무기가명칭에들어가있습니다.이들은사비로무장하고단복을마련하는것이가능한부르주아계층의남성들이었고,특히단체의대장은도시공동체내에서상당한발언권을가졌다고합니다.이런형태의사수단길드는중세부터존재했지만,리글은이들이단체초상화를의뢰하여제작하는관습이17세기,특히홀란트지역에서집중적으로형성되었다는점에착안했습니다.여기에는스페인지배하에있던네덜란드의독립전쟁과종교개혁이라는두가지배경이있습니다.매우복잡한역사입니다만네덜란드가80년에걸친전쟁끝에스페인합스부르크왕가로부터독립을성취했으며,이독립전쟁의이면에는종교개혁이후개신교를관용한네덜란드에대한스페인왕실의억압이한가지큰원인으로작용했습니다.스페인치하에남아있던남부네덜란드가가톨릭전통을유지한반면독립한네덜란드공화국은개신교윤리를따랐으며,특히역사적으로홀란트라불린지역,그중에서도암스테르담이그중심에있었습니다.리글은당시홀란트의여러도시가운데암스테르담을해당맥락에대한일종의모델도시로취급하는데,그것은이도시에서종교개혁과더불어일어난변화가매우의미심장하기때문입니다.예컨대전통적으로자경단은교회에소속된일종의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