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환대 (사유에서 행위로)

급진적 환대 (사유에서 행위로)

$20.00
Description
환대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는 분별과 결단, 내기를 요구한다. 환대란 손님을 안전한 범위 안에서 관리하는 기술이기보다는 자신의 확신과 안전지대를 일부 내려놓고 타자가 들어올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 실천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급진적 환대』의 저자들은 철학자이면서도 직접 환대의 장을 만들어 온 실천가들이다. 리처드 카니는 북아일랜드 분쟁의 경험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해 온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게 하는 게스트북 프로젝트, 그리고 분열된 기억을 병치하는 트윈섬 마인즈 프로젝트를 통해 환대를 갈등 완화의 실제적 방법으로 실험해 왔다. 멜리사 피츠패트릭은 이 프로젝트의 국제 디렉터로서 국경 지역과 소외된 공동체에서 게스트북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한편, 청소년들이 자신의 도덕적 확신을 잠시 멈추고 타자의 관점을 감내하도록 훈련하는 교육자로 일해 왔다. 이 책이 말하는 환대는 바로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다듬어진 개념이다.
이 책은 급진적 환대가 무엇보다 이야기의 교환 속에서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서로의 생애와 기억을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경계(국가, 정체성, 신념, 세계관)를 이전과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두려움, 독단, 확실성에 대한 강박이 우리를 적대로 몰아갈 때 저자들은 그 반대편에서 우리가 여전히 품고 있는 욕망, 즉 예기치 않은 것에 도약하고 새로운 것을 환영하려는 욕망을 포착하고 훈련할 수 있다고 본다. 『급진적 환대』는 현상학과 해석학, 해체론, 신칸트주의 윤리 비판, 덕 윤리학에 이르는 다양한 논의를 토대로 국경 불안과 난민 위기, 생태 재앙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환대가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과 관계의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

리처드 카니

Richard Kearney, 1954~
아일랜드 코크 출신의 철학자. 현 보스턴칼리지 석좌교수. 유니버시티칼리지더블린을 졸업, 캐나다 맥길대학 석사,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르본대학, 호주 가톨릭대학, 니스대학의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유럽대륙철학의 다양한 분야, 특히 현상학, 해석학, 종교철학 분야에서 25여 권의 저서가 있고 20여 권의 책을 편집, 공동 편집하였다. 2000년대 이후 재신론으로 대변되는 독창적인 종교철학 사상을 구축하여 가장 탁월한 종교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일랜드 예술위원회, 고등교육청의 일원, 더블린대학 아일랜드 영화학교 학과장, 왕립 아일랜드 아카데미의 회원, 아일랜드의 공공지식인으로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종교, 인종, 역사 갈등으로 점철된 지역에서 서로 대화하고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화해와 치유의 장을 여는 〈게스트북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저서로 The Wake of the Imagination, Poetics of Imagining,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 『이방인, 신, 괴물』, 『재신론』, 『터치』, 『급진적 환대』(공저)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공동 저서와 논문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왜 지금 환대인가? 7

1부 환대의 네 얼굴 : 언어, 이야기, 신앙고백, 육 (리처드 카니)

1장 언어적 환대 : 번역의 위험 44

2장 이야기 환대 : 세 가지 교육학적 실험 60
게스트북 : 이야기 교환하기, 역사를 바꾸기 64
트윈섬 마인즈 : 분열된 역사에 관한 교차적 이야기 71
아일랜드 기근 기념비, 뉴욕 : 트라우마의 수용 85
보론 : 윤리, 이야기, 그리고 기억 99

3장 신앙고백적 환대 : 신앙 문화들을 서로 번역하기 106

4장 육의 환대 : 아파르트헤이트를 넘어선 몸짓 121
결론적 언급 138

2부 환대와 도덕 심리학 : 이론과 실천 사이의 경계 탐구 (멜리사 피츠패트릭)

5장 경계 너머의 환대 : 칸트의 경우 146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149
타인과 세계를 공유하기 158
자유와 욕망 165

6장 불가능한 환대 : 레비나스에서 아렌트로 179
원초적 환대 181
‘감성’으로서의 주체 189
탄생적 환대 202

7장 목적론적 환대 : 현대 덕 윤리의 경우 212
욕망과 ‘자기-비움’ 214
선은 환대이다 225

8장 교실에서의 환대 231
소크라테스식 학습 모델 233
공통 세계의 재갱신 239

후기 - 환대의 새로운 개척지 : 비인간 타자 249

감사의 말 262
옮긴이 후기 263
참고문헌 269
인명 찾아보기 280
용어 찾아보기 284

출판사 서평

“내가 당신에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던 이유는”
리처드 카니는 이 책을 자신이 이끄는 국제 비영리단체 ‘게스트북 프로젝트’와 나란히 놓인 철학적 작업으로 설명한다. 2009년에 시작된 ‘게스트북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야기 교환 행위를 통해 적의가 어떻게 공감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폭력의 순환을 이방인을 환영하는 상상력을 급진적으로 발휘하는 순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게스트북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터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이 금기시된 욕설을 공유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학생들이 상징물들(다윗의 별과 히잡)을 교환하며, 콩고와 르완다 난민들이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방갈로르의 무슬림들과 힌두교도들이 교차 의례를 가지며, 한국과 일본 청년들이 역사적 갈등의 기억을 나누고, 시리아 이민자들과 그리스 호스트들이 탈출과 환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단체의 활동들은 책에 일부 소개되어 있으며 더 자세한 내용은 단체의 웹사이트 guestbookproject.org에서 볼 수 있다.
‘게스트북 프로젝트’를 설립한 이유에 대해 카니는 파리에서 만난 스승들 폴 리쾨르, 에마뉘엘 레비나스, 자크 데리다 등으로부터 배운 환대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카니의 이러한 노력 이면에는 북아일랜드 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카니는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분쟁이 가장 심했던 1960~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분쟁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에 그는 북아일랜드의 도시 데리(Derry)에서 왕당파 및 공화파 수감자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수감자 한 명이 증언한 이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한 수감자가 말하기를 자신은 왕당파에 납치되어 데리시 외곽의 헛간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할 위험에 처했었다. 총살이 집행되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 대 피우게 해달라고 했고, 눈이 가려진 채로 담배를 피우며 공화파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영국 경찰에게 살해당한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문과 투옥, 어머니의 신경쇠약, 영국 경찰의 총에 맞아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된 형제의 이야기까지.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고 20여 분이 지나도록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안대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를 죽이려 했던 이들이 떠나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공화국군 수감자의 증언이 끝나자 “내가 당신에게 담배를 준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뒤편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났다고 카니는 전한다. 왕당파의 일원이었던 그 남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곧 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당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었다고 증언했다.
‘게스트북 프로젝트’는 이처럼 이야기가 폭력의 손을 멈추게 한 순간에서 출발했다고 카니는 말한다.

호스트는 적대와 환대 모두의 어원이다
‘게스트북 프로젝트’의 또 다른 출발점 중 하나는 대부분의 인도유럽어에서 “손님”과 “적”을 나타내는 단어가 동일하다는 사실이었다고 카니는 설명한다. 예를 들어 라틴어의 호스티스(hostis)는 ‘적대’(hostility)와 ‘환대’(hospitality) 양자 모두의 공통 어원이다. 그리스어의 ‘제노스’(xenos) 역시 마찬가지로, 외국인 혐오를 뜻하는 제노포비아와 외국인에 대한 호감을 뜻하는 제노필리아라는 두 방향으로 갈라질 수 있다. 독일어의 ‘가스트’(Gast) 역시 손님을 뜻하지만(이로부터 영어의 ‘게스트’가 파생되었다) 동시에 ‘기괴한 것’, ‘유령’, ‘괴물’, ‘외부인’을 연상시키는 의미로도 확장된다.
『급진적 환대』의 저자들은 이처럼 ‘host’(호스트, 주인), ‘hostage’(호스티지, 볼모), ‘hostis’(호스티스), ‘hospitality’(호스피탈리티, 환대), ‘hostility’(호스틸리티, 적대), ‘hostipitality’(호스티피탈리티) 등 ‘host-’ 계열 어휘들의 어원적 연쇄를 통해, 환대와 적대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드러낸다.

주인(Host)과 볼모(Hostage)
한국어에서 ‘주인’은 통상 주권을 행사하며 대상을 통제하는 강자, 혹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지닌 존재로 표상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규정하는 ‘호스트’(host)로서의 주인은 오직 손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지위가 승인되는 상대적 존재이다. 여기서 주인은 손님의 도래와 그에 따르는 환대의 당위 그 자체에 볼모(hostage) 잡힌 주체로 묘사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관계적 수동성이 주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단순한 속박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에게 진정한 ‘주인됨’의 자유를 부여하는 기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주인은 타자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타자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책임을 지닌다.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강조하듯, 환대의 순간 주인은 타자의 고통과 요구에 사로잡힌 인질이 된다. 즉, 인간은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수락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참된 ‘주인’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존재론적 역설이 이 ‘host-hostage’의 연결망을 통해 구체화된다.

호스티스(Hostis)와 적대(Hostility), 환대(Hospitality)
라틴어 ‘호스티스’(hostis)는 ‘적’과 ‘이방인’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호스티스는 현대 라틴어 계열 언어들에서 적대와 환대라는 두 단어의 공통 조상이 된다. 이러한 어원적 사실은 적대와 환대가 본질적으로 매우 인접해 있음을 시사한다. 타자 없이는 자아를 구성할 수 없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호스티스’, 즉 낯선 존재와 조우해야 한다.
이때 주체는 그 낯선 존재가 ‘나를 찾아온 반가운 손님’인지, 혹은 ‘나를 위협하는 탈취자’인지 사전에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인다. 그를 손님으로 영접할 것인가(환대),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여 방어할 것인가(적대)의 기로에서 주체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인간 존재의 뿌리에는 타자를 향한 근원적인 ‘불안’과 ‘기대’가 분리 불가능한 상태로 공존하고 있음을 이 어휘적 계보는 증명하고 있다.
카니는 책에 관한 강연(https://faculti.net/radical-hospitality-from-thought-to-action)에서 디트로이트나 뉴욕 할렘 등에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환대의 집’들을 세웠던 도로시 데이라는 인물을 예로 든다.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한다. 새벽 세 시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 사람이 살인자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인지.” 이것이 바로 환대가 ‘내기’인 이유이다.

호스티피탈리티(Hostipitality)
자크 데리다는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를 결합한 합성어 ‘호스티피탈리티’(hostipitality)를 만들었다. 데리다가 이 형용모순적인 단어를 고안한 이유는 “적대적인 환대” 혹은 “환대에 잠재한 적대”와 같은 수식어적 표현으로는 환대와 적대의 본질적인 불가분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데리다적 관점에서 ‘순수한 환대’는 그 정의상 불가능에 가깝다. 환대의 개념 자체가 이미 주인의 권리와 공간적 주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보기에 환대는 손님을 맞이하기 이전에 “나의 것”, “나의 거처”라는 경계 설정을 전제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계 설정 행위는 그 자체로 이미 “나의 것”을 특별히 여기고, 수호하는 행위 자체를 포함할 수 있으며 이는 이미 타자를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잠재적 폭력을 내포하게 된다. 주권을 지키려는 본능은 필연적으로 적대의 씨앗을 품게 되며, 이는 완벽하게 이타적인 무조건적 환대가 인간의 실존적 한계 바깥에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러한 불가능성에서 멈추기보다는, 오히려 바로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냉소에 빠지거나 허무에 빠지는 대신, 오히려 이 한계를 직시함으로써 비로소 ‘조건적이지만 급진적인’ 환대가 가능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이러한 해체구성은 환대의 윤리를 당위적인 미덕으로 손쉽게 설파하지 않는다. 그보다 주체의 한계와 환대의 아포리아(aporia)를 인정하는 태도, 즉 적대와 환대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수용하는 태도야말로 다가오는 이방인을 철저하게 환영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출발점이 된다.
주인은 타자를 맞이하는 순간 자신의 주권을 유예하며, 환대는 언제나 적대의 위험을 동반한다. 데리다의 ‘호스티피탈리티’ 개념은 환대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바로 그 불가능성 속에서 조건적이지만 급진적인 윤리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한다. 카니는 호스티피탈리티 개념이 독자에게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세상을 둘러보면 선전적이고 편견에 찬 이야기들이 사람을 상처 입히고 해치며 악의와 배신, 적대를 퍼뜨리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호스티피탈리티라는 조건은 그 이야기들이 다시 사용되고, 새롭게 쓰이고, 환대의 이야기로 변형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왜 ‘급진적’ 환대인가?
저자들은 왜 ‘환대’ 앞에 ‘급진적’(radical)이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영어 단어 radical은 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radix에서 기원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주체의 근원적 구조가 본질적으로 이미 타자를 향해 개방되어 있음을 규명하기 위해 급진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저자들이 보기에 인간은 자기 완결적이고 고립된 근대적 주체이기보다는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고 그를 영접할 숙명을 지닌 ‘주인’(host)으로 재규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에 응답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환대 역시 주체의 주관적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존재론적 토대이자 원초적 관계성으로 정립될 수 있다.
둘째로 이 책에서 ‘급진적’은 해체구성적 맥락에서의 ‘무조건성’(unconditionality)도 함의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환대에는 대부분 조건이 붙어 있다. 신분이 분명한지, 위험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