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당신에게방아쇠를당기지못했던이유는”
리처드카니는이책을자신이이끄는국제비영리단체‘게스트북프로젝트’와나란히놓인철학적작업으로설명한다.2009년에시작된‘게스트북프로젝트’의목표는“이야기교환행위를통해적의가어떻게공감으로번역될수있는지를탐구하고,폭력의순환을이방인을환영하는상상력을급진적으로발휘하는순간으로변화시키는것이었다.”게스트북프로젝트를통해“젊은터키인들과아르메니아인들이금기시된욕설을공유하고,이스라엘과팔레스타인학생들이상징물들(다윗의별과히잡)을교환하며,콩고와르완다난민들이트라우마를털어놓고,방갈로르의무슬림들과힌두교도들이교차의례를가지며,한국과일본청년들이역사적갈등의기억을나누고,시리아이민자들과그리스호스트들이탈출과환영의이야기를들려”주고있다.이단체의활동들은책에일부소개되어있으며더자세한내용은단체의웹사이트guestbookproject.org에서볼수있다.
‘게스트북프로젝트’를설립한이유에대해카니는파리에서만난스승들폴리쾨르,에마뉘엘레비나스,자크데리다등으로부터배운환대를실천하기위해서였다고말한다.카니의이러한노력이면에는북아일랜드분쟁이라는역사적배경이있다.카니는아일랜드와영국사이의분쟁이가장심했던1960~1980년대아일랜드에서성장했다.분쟁이절정에달했던1980년대에그는북아일랜드의도시데리(Derry)에서왕당파및공화파수감자들과함께하는워크숍에참여했는데,〈아일랜드공화국군〉(IRA)수감자한명이증언한이후놀라운일이일어났다고전한다.
한수감자가말하기를자신은왕당파에납치되어데리시외곽의헛간으로끌려가총살을당할위험에처했었다.총살이집행되기직전그는마지막으로담배를한대피우게해달라고했고,눈이가려진채로담배를피우며공화파에참여하게된이유에대해털어놓게되었다.영국경찰에게살해당한할아버지,아버지의고문과투옥,어머니의신경쇠약,영국경찰의총에맞아평생장애인으로살게된형제의이야기까지.그런데이야기가끝나고20여분이지나도록총성은울리지않았다.안대를벗고주위를둘러보니,그를죽이려했던이들이떠나고아무도남아있지않았던것이다.
공화국군수감자의증언이끝나자“내가당신에게담배를준사람이었다”고말하며뒤편에서갑자기한남자가일어났다고카니는전한다.왕당파의일원이었던그남자는“당신의이야기를듣고그것이곧나의이야기라는사실을깨달았기때문”에당시방아쇠를당기지못했었다고증언했다.
‘게스트북프로젝트’는이처럼이야기가폭력의손을멈추게한순간에서출발했다고카니는말한다.
호스트는적대와환대모두의어원이다
‘게스트북프로젝트’의또다른출발점중하나는대부분의인도유럽어에서“손님”과“적”을나타내는단어가동일하다는사실이었다고카니는설명한다.예를들어라틴어의호스티스(hostis)는‘적대’(hostility)와‘환대’(hospitality)양자모두의공통어원이다.그리스어의‘제노스’(xenos)역시마찬가지로,외국인혐오를뜻하는제노포비아와외국인에대한호감을뜻하는제노필리아라는두방향으로갈라질수있다.독일어의‘가스트’(Gast)역시손님을뜻하지만(이로부터영어의‘게스트’가파생되었다)동시에‘기괴한것’,‘유령’,‘괴물’,‘외부인’을연상시키는의미로도확장된다.
『급진적환대』의저자들은이처럼‘host’(호스트,주인),‘hostage’(호스티지,볼모),‘hostis’(호스티스),‘hospitality’(호스피탈리티,환대),‘hostility’(호스틸리티,적대),‘hostipitality’(호스티피탈리티)등‘host-’계열어휘들의어원적연쇄를통해,환대와적대가분리될수없는관계임을드러낸다.
주인(Host)과볼모(Hostage)
한국어에서‘주인’은통상주권을행사하며대상을통제하는강자,혹은자신의소유물에대해배타적권리를지닌존재로표상된다.그러나이책에서규정하는‘호스트’(host)로서의주인은오직손님과의관계속에서만그지위가승인되는상대적존재이다.여기서주인은손님의도래와그에따르는환대의당위그자체에볼모(hostage)잡힌주체로묘사된다.
흥미로운지점은이러한관계적수동성이주인의자유를억압하는단순한속박이아니라,오히려주인에게진정한‘주인됨’의자유를부여하는기회로작용한다는점이다.진정한주인은타자를위해자신의자리를내어주고,타자의요구에무조건적으로응답해야하는책임을지닌다.에마뉘엘레비나스가강조하듯,환대의순간주인은타자의고통과요구에사로잡힌인질이된다.즉,인간은타자에대한무한한책임을수락하는순간에야비로소참된‘주인’으로거듭나게된다는존재론적역설이이‘host-hostage’의연결망을통해구체화된다.
호스티스(Hostis)와적대(Hostility),환대(Hospitality)
라틴어‘호스티스’(hostis)는‘적’과‘이방인’이라는상반된의미를동시에내포하고있다.그래서호스티스는현대라틴어계열언어들에서적대와환대라는두단어의공통조상이된다.이러한어원적사실은적대와환대가본질적으로매우인접해있음을시사한다.타자없이는자아를구성할수없는인간은필연적으로수많은‘호스티스’,즉낯선존재와조우해야한다.
이때주체는그낯선존재가‘나를찾아온반가운손님’인지,혹은‘나를위협하는탈취자’인지사전에결정할수없는극도의긴장상태에놓인다.그를손님으로영접할것인가(환대),아니면적으로간주하여방어할것인가(적대)의기로에서주체는결코자유로울수없다.결국인간존재의뿌리에는타자를향한근원적인‘불안’과‘기대’가분리불가능한상태로공존하고있음을이어휘적계보는증명하고있다.
카니는책에관한강연(https://faculti.net/radical-hospitality-from-thought-to-action)에서디트로이트나뉴욕할렘등에가난한이들과소외된사람들을위한‘환대의집’들을세웠던도로시데이라는인물을예로든다.도로시데이는이렇게말한다.새벽세시에누군가문을두드리며들어오게해달라고요청하는상황에서“내가어떻게알겠는가?그사람이살인자인지,아니면예수그리스도인지.”이것이바로환대가‘내기’인이유이다.
호스티피탈리티(Hostipitality)
자크데리다는환대(hospitality)와적대(hostility)를결합한합성어‘호스티피탈리티’(hostipitality)를만들었다.데리다가이형용모순적인단어를고안한이유는“적대적인환대”혹은“환대에잠재한적대”와같은수식어적표현으로는환대와적대의본질적인불가분성을온전히담아낼수없다고판단했기때문이다.데리다적관점에서‘순수한환대’는그정의상불가능에가깝다.환대의개념자체가이미주인의권리와공간적주권을전제하고있기때문이다.
데리다가보기에환대는손님을맞이하기이전에“나의것”,“나의거처”라는경계설정을전제한다.그런데이러한경계설정행위는그자체로이미“나의것”을특별히여기고,수호하는행위자체를포함할수있으며이는이미타자를배제하거나억압하는잠재적폭력을내포하게된다.주권을지키려는본능은필연적으로적대의씨앗을품게되며,이는완벽하게이타적인무조건적환대가인간의실존적한계바깥에있음을시사한다.
그러나데리다는이러한불가능성에서멈추기보다는,오히려바로거기에서출발해야한다고역설한다.냉소에빠지거나허무에빠지는대신,오히려이한계를직시함으로써비로소‘조건적이지만급진적인’환대가가능해진다고보기때문이다.데리다의이러한해체구성은환대의윤리를당위적인미덕으로손쉽게설파하지않는다.그보다주체의한계와환대의아포리아(aporia)를인정하는태도,즉적대와환대사이의위태로운줄타기를수용하는태도야말로다가오는이방인을철저하게환영할수있는가장정직한출발점이된다.
주인은타자를맞이하는순간자신의주권을유예하며,환대는언제나적대의위험을동반한다.데리다의‘호스티피탈리티’개념은환대의불가능성을인정하면서도,바로그불가능성속에서조건적이지만급진적인윤리의가능성을모색하게한다.카니는호스티피탈리티개념이독자에게하나의희망을만들어준다고말한다.세상을둘러보면선전적이고편견에찬이야기들이사람을상처입히고해치며악의와배신,적대를퍼뜨리는것을볼수있지만,호스티피탈리티라는조건은그이야기들이다시사용되고,새롭게쓰이고,환대의이야기로변형될수도있음을보여준다는것이다.
왜‘급진적’환대인가?
저자들은왜‘환대’앞에‘급진적’(radical)이라는단어를붙였을까?영어단어radical은뿌리를의미하는라틴어radix에서기원했다.이책에서저자들은주체의근원적구조가본질적으로이미타자를향해개방되어있음을규명하기위해급진적이라는표현을사용한다.저자들이보기에인간은자기완결적이고고립된근대적주체이기보다는타자의부름에응답하고그를영접할숙명을지닌‘주인’(host)으로재규정되어야한다.우리는태어날때부터타인과관계를맺으며살아가도록되어있고,낯선사람을만나고그에응답해야하는상황을피할수없다.그렇다면환대역시주체의주관적선택사항이아니라,인간존재를지탱하는존재론적토대이자원초적관계성으로정립될수있다.
둘째로이책에서‘급진적’은해체구성적맥락에서의‘무조건성’(unconditionality)도함의한다.우리가일상에서흔히말하는환대에는대부분조건이붙어있다.신분이분명한지,위험하지않은지,규칙을지킬사람인지,나에게이득이되는사람인지먼저확인한뒤에야문을연다.조건적이고계산적인환대이다.반면급진적환대는그러한모든전제조건을유예한다.환대란원래부터위험을전혀동반하지않는행동이아니라는점을받아들이자는것이다.급진적환대는타자가잠재적적대성을지닌위험요소일지라도그불확실성을감내하며문을여는해체론적결단과관련이있다.
책의구성
이책은리처드카니가쓴1부‘환대의네얼굴:언어,이야기,신앙고백,육’의네개의장,그리고멜리사피츠패트릭이쓴2부‘환대와도덕심리학:이론과실천사이의경계탐구’의네개의장으로구성되어있다.
리처드카니가쓴이책의1부는환대의네얼굴(언어,이야기,신앙고백,육의환대)에대해이야기한다.언어적번역에서시작해이야기의교환과종교적화해를거쳐육체적접촉에이르는과정은,주체가고립된자아의감옥에서벗어나타자와연결될수있는단계별경로를제시한다.환대라는사건이발생할수있는다양한경로에대한자세한서술은현대인이처한침묵,단절,배제,고립으로부터탈출하는방법에대한상세한매뉴얼처럼읽히기도한다.낯선언어를나의언어로번역해내는과정은나의언어에새로운겉옷을입히는행위이고,이야기를나누는과정은나의적과나의고통을함께치유할기회이다.이처럼번역과‘언어적환대’가타자의차이를승인하는지적인작업이라면,‘육의환대’는그승인을실제적돌봄과현장의실천으로옮기는수행적완성이다.
멜리사피츠패트릭이집필한2부는환대를둘러싼서구근현대철학의거대한흐름인칸트,레비나스,아렌트를비판적으로횡단하며,우리시대에실천가능한‘환대의사잇길’을매우정교하게구축하고,이를교실이라는교육학적맥락에서어떻게구체화할수있을지다룬다.피츠패트릭이묘사하는사잇길은의무론과권리라는형식(칸트)과무한한책임이라는압도적숭고(레비나스)사이에서,인간이어떻게구체적인정치적,심리적주체로서타자를맞이할것인가를묻는작업이다.
급진적환대를구축하는첫번째단계는환대를근대적의미의‘권리’로정초한칸트이다.칸트에게환대란이방인이타국의땅에도착했을때적대적으로대우받지않을법적권리(Besuchsrecht,방문할권리)를의미한다.이는당시로서는매우진보적인기획이었으나,타자가‘평화롭게행동하는한’이라는전제를둔‘조건적환대’에머문다는한계가있다.즉,주권자의통제권안에서만작동하는환대다.
두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