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의황금시대와잡색부대
해적의“황금시대”(1650~1730년)가운데서도이책이주목하는시기는18세기초,특히1716년부터1726년까지약10년이다.이시기는해적이대서양세계전역에서가장강력한세력으로부상한때로,저자는이시기를단순한모험담의배경이아니라,노동과제국,전쟁과저항이집중적으로교차한역사적순간으로본다.
당시해적의규모는결코작지않았다.1716~1726년사이기간에4천명내외의선원들이검은깃발아래집결했다가흩어졌다고추정되며,특히바살러뮤로버츠가활동하던1720년~1722년무렵에는상선항로와식민지무역,나아가노예무역까지위협할정도로세력이확장되었다.
해적선은다양한인종과국적이뒤섞인공간이었다.잉글랜드,아일랜드,스코틀랜드출신선원은물론,카리브해지역사람들,네덜란드인과프랑스인,아프리카계흑인선원과탈주노예까지함께생활했다.인종과국적,언어와종교가뒤섞여있었고,그때문에해적선은당시제국질서가요구한민족적충성이나국가적경계를거스르는공간이되었다.레디커가이들을‘잡색부대’(motleycrew)라부른이유가여기에있다.이말은서로다른출신과피부색,서로다른노동경험을가진사람들이제국의바다에서만나기존질서바깥에서새로운연대와규칙을만들어낸집단이었음을뜻한다.“잡색”은혼란의표시이기도하지만동시에새로운사회적가능성의표시이기도했다.
해적:범죄집단인가낭만적모험가들인가?
레디커가이책에서새롭게제시하는해적의의미는,해적을단지범죄자나낭만적모험가로보는두가지통념을동시에넘어서려는시도이다.그는해적을가난한선원,착취당한노동자,제국질서에서밀려난사람들,그리고그들이만든급진적인사회적실험이라는관점에서재조명한다.
대중문화속해적은보통두방향으로그려진다.자유롭고대담한모험의화신,혹은약탈과살육만일삼는잔혹한괴물이그것이다.레디커는이두이미지가모두부분적으로는맞지만,둘다역사적현실을충분히보여주지못한다고본다.
레디커가복원하는실제해적은훨씬더복합적이다.당시상선과군함의선원들은매우낮은임금,잔혹한구타와체벌,임금체불,강제징집,거의무제한에가까운선장의권력아래놓여있었다.이런삶이너무나견디기어려웠기때문에많은선원은차라리불법의바다로건너갔다.따라서레디커에게해적은착취와억압속에서기존질서를거부하고다른삶의방식을실험한사람들이다.해적은자유를꿈꾸었지만폭력을썼고,평등을지향했지만모순을벗어나지못했다.이복잡성이야말로오늘날까지해적들이사람들을매료시키는이유이다.
해적은인류모두의적인가?
레디커는분명해적을단순하게미화하지않는다.해적은폭력을썼고잔혹한행위를저질렀다.그러나그가끝까지묻는것은이것이다.그들을“인류모두의적”(라틴어로‘호스티스후마니제네리스’)으로부른사람들은누구였는가,그리고그말은누구의이해관계를대변했는가?
국가와자본은자신들의적을종종“인류모두의적”으로확대해서말한다.식민지권력은반란자를폭도라고부르고,마녀사냥은특정여성을공동체전체의적으로만들고,제국은저항하는집단을야만인이나테러리스트로부른다.특정집단을“인류모두의적”으로만들면,그들을향한극단적폭력과절멸이정당화되기때문이다.
이책에따르면해적은실제로모든사람의적이라기보다,훨씬더구체적으로는상인,노예무역자본,식민지정부,왕권,선장과군함질서의적이었다.그들을“인류모두의적”이라부른것은지배권력이자기적을보편적악으로포장한방식이었다.레디커의문제의식은분명하다.수많은사람을노예로만들고선원을혹사하며강제노동으로부를축적하면서도,자기질서에저항하는자들만“야만”이라고부른권력이야말로오히려더근본적인폭력을행사해왔다는것이다.
만국의악당들의“즐거운삶,짧은인생”
해적을“인류모두의적”으로부른것은객관적진실이라기보다,권력을가진자들이자신들의적을보편적악으로규정한방식이아니었는가?이질문이이책전체를관통하고있다.
흥미로운것은오늘날의대중문화가이질문에매우직관적으로반응하고있다는점이다.최근태국시위깃발에등장한『원피스』의루피는세계정부가규정한악당이지만독자들은그를자유를위해싸우는저항자로읽고,『캐리비안의해적』의잭스패로역시관객들에게체제의위선을꿰뚫어보는인물로받아들여진다.현대의해적콘텐츠는단순히해적을낭만화하는데그치지않고,누가규칙을만들었는가,그규칙은누구를위한것인가를슬그머니묻는방식으로작동한다.이처럼현대사회에서‘Villain’의이미지는점점재조정되고있다.악인의자리에“악당이될수밖에없었던저항자”라는새로운해석이자리를잡아가고있는것이다.
이러한문화적감수성은레디커가역사속에서발굴한것과정확히맞닿아있다.18세기의실제해적들도처음부터악인이었던것이아니라,가혹한노동조건과제국질서속에서다른선택지를빼앗긴끝에악당이라는낙인을기꺼이받아들인사람들이었다.우리가해적을사랑하는가장큰이유는그들이반역자였기때문이다.그들은어떤방식으로든계급,인종,젠더,그리고국가의관습에도전했다.그들은가난하고사회적처지도낮았지만,고귀한이상을표현했다.상선선장들에게착취당하고자주학대를받았던그들은임금을폐지하고다른규율을세웠으며자신들만의민주주의와평등을실천했고대해의함선을운영하는대안적모델을만들어냈다.사신의그림자가드리워진가운데,그들은그상징을훔쳐와그의면전에대고비웃었다.해적들은당대의높고고귀하신분들에맞섰고그들의행동으로인해스스로만국의악당이되었다.그들은그역할을기꺼이받아들였고,이는해적들의모토인“즐거운삶짧은인생”에서잘드러난다.
졸리로저가오늘날에도호출되는이유
졸리로저는단순한해골깃발이아니다.해골,엇갈린뼈,모래시계,피흘리는심장같은도상은모두“시간이얼마남지않았다”,“우리는죽음을두려워하지않는다”같은메시지를전했다.이깃발은상대에게는공포였고,해적자신들에게는집단적결의의표식이었다.레디커는졸리로저가해적을포식자로드러내는동시에,해적자신이이미죽음의세계에깊이들어와있는존재라는자의식을드러낸다고말한다.그래서졸리로저는“죽음을휘두르는상징”이면서도,죽음그자체에대한도전의표식이기도했다.
이상징이오늘날에도살아있는이유는,그것이단순한옛문양이아니라기존질서를거부하고다른규칙을상상하는깃발이기때문이다.“우리는당신들의질서안에있지않다”는선언으로서,해적기는여러시대에반복해서저항의상징으로호출되었다.오늘날해적기가상징하는저항은꼭폭력적반란만을뜻하지않는다.기존권력의정당성을의심하는태도,국가나자본과위계가절대적이지않다고말하는태도,억압적인질서바깥에서다른공동체를상상하는태도를함께담고있다.한국독자들에게도이상징은충분히살아있다.누가법을만들고,누가질서를정의하며,누가‘범죄자’와‘폭도’를규정하는가를다시묻게만드는기호이기때문이다.
어떤사람들이어떻게해적이되었는가?황금시대이후해적들은어떻게되었는가?
이책의가장중요한주장가운데하나는,해적의대부분이원래부터범죄자가아니라평범한선원이었다는점이다.상선,군함,노예선,사략선에서일하던노동자들이어떤계기를통해해적이된경우가많았다.
가장직접적인이유는가혹한노동조건이다.선장은거의절대적인권력을갖고있었고,선원은구타와체벌,임금체불,장기항해,병과굶주림을감수해야했다.이렇게보면해적이된다는것은단순히“범죄의선택”이아니라,다른형태의바다노동과생존전략이기도했다.해적들이재판정에서“내가한일은굶어죽지않기위해서”라고증언한이유다.두번째이유는제국무역구조이다.특히전쟁이끝난뒤일자리를잃은사략선선원들,노예무역과상업항해를경험한선원들이해적선으로많이흘러들어갔다.해적행위는제국과무역의바깥이아니라,오히려그한복판에서생겨난역설적산물이라고할수있다.
황금시대이후해적들의활약은1720년대중반부터대대적으로탄압당하며빠르게막을내린다.국가와상인,특히서아프리카노예무역에얽힌상업자본과해군력이해적소탕에본격적으로나서면서,공개처형과군함파견,항구감시가강화된다.주요무역항에는교수형당한해적들의시체가경고와위협의표식처럼내걸렸다.저자는이과정을단순한범죄진압이아니라,대서양자본주의질서를지키기위한절멸캠페인으로보았다.
해적공동체의운영원리
이책이가장인상적으로보여주는부분중하나는,해적선이무법상태가아니라매우분명한규칙과절차를가진공동체였다는점이다.해적은국가의법을거부했지만,기존상선과군함의폭력적질서에맞서다른종류의질서를만들었다.
가장대표적인것은선장선출방식이다.상선과군함에서는선장이위에서임명된절대권력자였지만,해적선에서는선원들이직접선장을뽑는경우가많았고,평의회나전체선원들의의사가평상시운영을좌우했다.전리품분배도중요했다.완전한평등은아니었지만,상선처럼선장과선원이극단적으로갈라지는구조가아니었으며,저자는이를두고위험을공동으로부담하고이익을함께나누는파트너십이라고본다.부상자보상역시주목할만하다.다친동료에게일정한보상을지급하는규칙이있었는데,이는오늘날의사회보장제도와비슷한측면이있었다.처벌규칙도선장의자의가아니라공동규약위에서이루어졌다.
이런점들을종합하면,해적공동체의원리는선원전체의참여,선출된권력,비교적평등한분배,위험의공동부담,내부규약에따른질서유지로요약된다.바로이런이유로해적선은단순한범죄의현장이아니라,당대의상선,군함체제에맞서는대안적사회실험장으로읽힌다.그렇기때문에인류학자데이비드그레이버는“아마해적들에대해가장잘말하는방법은,그들의잔인함은당대의기준에서전혀이례적이지않은것이었지만,그들의민주적관행은거의전례가없는것이었음을지적하는것”(『해적계몽주의』,56쪽)이라고보았다.
여성해적들:앤보니와메리리드
6장「여성해적들:앤보니와메리리드」는이책에서매우특별한장이다.레디커는앤보니와메리리드를단순한호기심의대상으로다루지않고,이두인물을통해해적세계와젠더질서가어떻게교차했는가를묻는다.
당시바다노동은거의전적으로남성의영역이었기에여성해적은역사속에서낯선존재처럼보인다.이책의6장은바다노동과폭력,자유와위장의세계속에실제로진입한역사적인물들인여성해적앤보니와메리리드를조명한다.앤보니와메리리드는남장을하고배에올랐고,전투에도참여했으며,법정기록속에서도실제해적행동을한인물들로확인된다.
레디커는이들의삶을더넓은하층계급여성의역사속에놓는다.보니와리드는갑작스럽게출현한기이한존재가아니라,경제적필요와생존,계급적제약을넘어남장을감행했던근대초기여성들의전통위에서있었다.이런맥락에서이장은여성해적의일대기를소개하는데머물지않고,해적선이기존성별질서에균열을내는공간이었음을보여준다.동시에그것이완전한해방의공간은아니었으며,여성에게허용된자유역시제한적이고불안정했다는점도놓치지않는다.
6장은보니와리드가후대에남긴문화적흔적도추적한다.이들의삶은민간발라드,소설,연극,삽화속에서반복적으로재현되며여성성과자유에대한상상을뒤흔들었다.레디커는이두인물을통해,해적의역사가단지바다의범죄사가아니라젠더와계급,상징과문화의역사이기도하다는점을설득력있게보여준다.
이책의서술흐름과각장의내용소개
이책은단순한해적열전이아니라,매우치밀하게짜인역사서이다.전체흐름은대체로등장→형성→조직→사회관계→탄압→기억과상상력으로이어진다.
1장「두가지테러이야기」는해적과국가의폭력이어떻게서로를강화하며맞물리는지를보여주며,책전체를관통하는“테러의변증법”을제시한다.2장「해적행위의정치산술」은전쟁의종결,선원의실업과불안정,제국무역의확대등해적등장의역사적조건을다루고,3장「누가“해적질”에나서는가?」는해적을상선,군함,노예선에서일하던평범한바다노동자집단으로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