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숭고에서배우기
브뤼노라투르는“존재하기위해서는타자성을통과해야한다”고말한다.존재는매개,번역,전환이라는긴우회의궤적속에서매번새로이‘창설’되는것이다.이책이출발하는문제의식도여기에있다.근대화가분리와정화의비대칭성으로세계를환원해왔다면,저자는그환원의폭력에맞서연결과혼합의대칭성,즉‘생태화’의길을더듬는다.저자에따르면존재를가능케하는타자성의내재적경험이중요하며그경험은언제나위험을감수하는우회의시간을요구한다.
그우회의역량이어떤방식으로인간의삶을바꾸는가를저자는양영희감독의다큐멘터리를통해읽어낸다.조총련계자이니치가족사,북송사업,4.3의상흔같은이념과폭력의기억은한개인의몸과감정에‘현전’하는규제로각인되지만,그규제는완전한장악이아니라틈과잉여를남긴다.일본인사위를끝내받아들이며수프를내어주는어머니를보여주는장면은그러한틈이환대로반전되는극적인순간이다.고통의기억을‘함께나눔’(분유/partage)으로써타자의관점을감내하고통과하는그시간속에서가족은민족,국가,이념의경계를넘어서로를새롭게겹쳐보게된다.
저자가『취약함의정신사,숭고함의서사들』에서하려는일도이와닮아있다.양영희의영화에서가족은타자의시간을통과하며,상처의기억이만든경계를잠시느슨하게만들고마침내환대라는몸짓에이른다.식민주의는힘의격차와문명의위계를근간으로식민자와피식민자의관계를비대칭적인것으로만들어차별하고착취하는체계이다.그비대칭성의폭력은물리적인폭력이상으로강력한상흔을남기고지속적인영향력을미친다는점에서‘식민지트라우마’라불리기도한다.‘취약함의정신사’는바로그트라우마적주체들을가리키는말이다.이책은한국의지성사를사로잡고있는그식민의트라우마에주목하고,그것에서벗어나기위해몸부림쳤던‘포스트식민주체들’의정신사적투쟁의궤적을따라간다.요컨대그트라우마에서벗어나기위해그들이구축했던막대한학술적담론들은,서구적근대성과의쟁투속에서벌인탈식민의정신사적궤적을반영하는‘숭고함의서사들’이다.그들은식민과냉전,격렬한근대화과정이만들어낸비대칭성의분열을아우르는거대한대칭성의종합을학술적으로담론화하였으며,그것이곧‘숭고함의서사’를세우는일이었다.
예컨대이어령의기호학과우물파기,김윤식의초인적읽고쓰기,김용운의원형과중립,조동일의생극과대등,최원식의회통과겹눈,정재서의해체신화학,백영서의동아시아와사회인문학,김종철의공생공락,김지하의화엄역학과흰그늘,김용옥의번역(동양학),정수일의문명교류학과범지구적보편문명,백낙청의변혁적중도,함재봉의전통과현대의융합은분열과파열,어긋남과결여라는그비대칭성을극복하기위한대칭성의관념적장치들이었다.그러나세계의균열을봉합하려는그필사적도약은봉합의불가능성을드러내는실패의증례이기도했다.숭고한대상은정신의결핍과결여를채우는관념의대체물이자환상이다.그것은모순과간극,구멍과틈새를견딜수있게하는것이기에숭고하다.숭고는결핍을봉합하려는도약이었지만,바로그봉합의자국에서취약함이새어나온다.저자는그누출을흠결로만판정하지않고,타자를통과한흔적이자다시관계를배치할여백으로읽는다.또저자전성욱은그실패한숭고를비평하며그들이통과했던타자성의흔적속에서‘마침내’자신의취약함또한마주하게된다고고백한다.즉이책은타자들을매개하는긴우회끝에숭고를좇는욕망이어떻게취약함을드러내고또갱신의여백으로전환되는지를보여준다.그런의미에서이책은,타자와의마찰이남긴상처를지워버리기보다그것을견디고공유하는길(양영희의다큐가환대로보여준그방식)을비평의언어로옮겨오는작업이기도하다.
취약함은갱신을가능하게하는생성의여백
『취약함의정신사,숭고함의서사들』은취약하지않은사람은없다고말하면서,취약함을“단지고통스런결핍”이아니라“갱신을가능하게하는생성의여백”이라고정의한다.하지만근대화의시간속에서많은지식인들은그결핍을채우는것을진보로,그고통에서벗어나는것을해방으로오해해왔다.특히식민과냉전,개발근대화의역사에서비서구의주체는“서구적근대화로서의문명화”라는성장서사속으로끌려들어가세계로부터의인정을갈구하게되었다.그인정은유럽이라는문명화의척도,즉그대타자로부터자기존재를승인받는정신적과정이다.이는생존을건필사적인도약이었고,한국의근대는파국적생존위기를벗어나려는생존의꿈으로특징지어진다.저자에게취약함은바로이처럼비교와인정투쟁,열등감과모멸감,‘뒤처짐’의수치가만들어내는상흔의조건이며,그상흔이담론을통해어떻게봉합되려하는지,그리고왜그봉합이다시균열을생산하는지를드러내는낱말이다.
취약함은곧바로숭고함의서사를호출한다.“주체의결핍은때때로자기증명의욕망으로비등”하고,“취약함의주체는숭고함의서사를통해서자기의결핍을메우려고”한다.민족,국가,아시아,세계같은거대한기표들은“남근의결여를대리해서보충하는형이상학적인생산물”이된다.이는“이데올로기의숭고한대상”(지젝)처럼어떠한본질적인것도있을수없다는그형이상학적인구멍과결여를그럴듯하게봉합해놓은환상이다.저자는숭고함의환상을‘극복’하려는체계화된거대서사대신,일상생활의구체적삶과접속하는방향을강조한다.이책에서취약함은근대화의분리나정화를넘어생태화의연결이나혼합으로나아가게하는문턱(liminality)이자,지름길의유혹을뿌리치고오직겪어냄으로써만견뎌낼수있는우회의힘을요구하는조건이기도하다.
동아시아란무엇이었고무엇일수있는가
저자에따르면이어령,김용운,김윤식,조동일,김지하,최원식,백영서등한국의포스트식민남성엘리트들이동아시아를말했던것은,그것이“정체성의명명들이흔히그러한것처럼”행위자의욕망과정치적무의식이투사되는장소였기때문이다.그래서저자는이책의부제를“한국동아시아담론의정치적무의식”이라고달았다.식민과냉전,개발근대화와분단의시간을통과한포스트식민주체에게‘세계’는경험가능한물리적현실이라기보다취약한주체가만들어낸일종의환상으로작동하기쉬웠다.그세계로부터의‘인정’을향한집착은늘비교,열등감,모멸감의상흔을남겼다.그래서이들은‘민족’이라는로컬만으로도,‘세계’라는글로벌만으로도감당되지않는그어긋남을매개할중간항을필요로했다.동아시아(리저널)는글로벌과로컬사이의자리로호출되었다.그렇게동아시아담론은모든불화와충돌을너그럽게포괄하고끌어안는중도,즉대칭성의사상으로서,대립과모순의급진적지양을강조하는헤겔식사유형식에대한극복의모색이기도했다.
그러나동아시아담론의구축에는구조와체계라는관념의집을세우겠다는남근적인강박이작동하고있었다.민족,동아시아,세계라는거대한대상을향한체계화의욕망은유독남성(적인)학인들에게서집중적으로나타난다.거대한이론을세우려는그근대주의적의욕은마치남근의우악스러운발기처럼가부장적인힘을과시하는것으로여겨질수있다.따라서여성적관점과생태적관점은동아시아담론에있어그런과시적체계화의의욕을비판적으로비평하는중요한시각이될수있다.예컨대김혜순의‘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근대화의폭력에대응하는생태화의한방식으로서아시아를새로운시각으로볼수있게해준다는것이다.
저자는동아시아가하나의실체나정합적이론이기보다생생한피부감각이나생활감정으로여겨지기를바란다.저자가요청하는동아시아는모호함을명료함의결여로취급하며순수한체계로환원하는근대적욕망을거부하고,오히려분리및정화의‘근대화’를넘어연결및혼합의‘생태화’로가는문턱으로서의동아시아,즉“모순과갈등으로가득찬탈영역적인교통의장”을정직하게직면하는자리에가깝다.동아시아는타자와의마찰과균열을통과하며스스로를갱신하는우회의장소여야한다.동아시아를‘해결된이름’으로쓰는순간그것은숭고의봉합이되지만동아시아를‘하기’로,우발적접속과책임의윤리,그리고커뮤니케이션의배치속에서끊임없이생성되는관계로붙들때그것은취약함을갱신의여백으로바꾸는사유의거점이될수있다는것이다.
정치적무의식의세장면:이어령,김윤식,김영민
이책에서저자는한국지성사의거대한족적을남긴이들을‘포스트식민남성엘리트’라는관점에서비평한다.이어령,김용운,함재봉,조동일,정재서,최원식,백영서,김윤식등이그들이다.이가운데서책의문제의식이응축되어드러나는이어령,김윤식,김영민세사람을사례로,‘취약함’이어떻게자기서사(혹은담론의체계)로조직되고,또어떤방식으로숭고의언어를낳거나비켜서는지차례로살펴보자.
랑가주의자장안에서-이어령의일본문화론
이어령을다루는장「랑가주의자장안에서-이어령의일본문화론」은한개인의연대기와식민과탈식민,전쟁과전후,근대와탈근대가교차하는격동의한국사가어떻게겹치는지를먼저짚으며시작한다.저자는이어령의방대한말과글을단순한업적의규모가아니라,결핍과균열의틈새를메우기위해작동한환상의생산으로읽는다.
이어령에게어머니와외갓집은문학의기원인동시에,가부장적인호적의언어와아버지의언어가강제한규율을우회하려는상상적장치였다.호적상의나이와실제나이의불일치,조선어금지와일본어주입,해방직전어머니의죽음같은사건들은‘실존의인간’을‘행정상의국민’으로등록시키는폭력의흔적으로남고,그틈을이어령은사후적기억을유기적으로재가공해성장서사로봉합한다.그러나그봉합은‘실재’와의조우(라랑그/절대적향락)가아니라,결여를견디기위한“거울상…허상…표상”으로서의랑가주(합법적쾌락)이며,이어령의“펜”은그결여를봉합하는“쾌락의팔루스”로기능한다.
저자에따르면이어령의랑가주는‘근대화’의경로가남긴결핍을외부의권위(서구/기호학/문명론)로메우려는시도이자,그과정에서내부의타자를추방하고세계의균열을연속적이고투명한전체상으로복원하려는봉합의충동이다.서구적근대성의황홀경을좇던이어령이라는포스트식민성의주체는,그것의숨겨져있던무서운실체를맞닥뜨리고서야한국이라는원점으로발길을돌린다.그러나그것은진정한귀환으로서의정신적비약이아니라원래의장소로의회귀였고,랑가주의자장안에서현란한지성의역량을마음껏뽐내는일이었다.확대일로의길을걸었던한문제적개인의기나긴정신사적여정의끝에서확인하게되는것은,내파하고초월하는것의난해함과내재하는자의곤란함이었다.그런의미에서이어령의생애사는곧한국의근현대사위에포개진다고할수있다.
외로움의집념과그변형-김윤식의일본
저자는김윤식이무엇보다읽고쓰는사람이었고,가르치는사람이었다는사실에서출발해,왜그가쉼없이읽고또쓰고말해야만했는가를‘영향에대한불안’이라는개념으로해명한다.불안은두려움의심리가아니라창조적인생산력이며,김윤식은그불안을성실하게감내하며200여권에이르는저술을남긴다.저자에따르면김윤식은비평가가되는데치러야하는대가를끝없이되묻고,자기존재의정당성을확보하기위해삶전체를입체적으로쓰인자서전적서사로조직한다.그때그가선택한방법적개념어가운명이며,헤겔이가르쳐준역사란필연성의전개라는문장을통해자신의한생애를근대(성)의서사로각색한다.이장에서김윤식은근대의동일성을향한지향과그체계바깥으로벗어나려는차이화의열정사이에서,아직“어른으로성숙하지못한채로훌쩍커버린아이”로서흔들리는존재로그려진다.그리고이장에서일본은,김윤식에게단순한연구대상이아니라그불안이구체적인형태를얻는결정적타자이자장소로등장한다.
릴케의개념인‘변형’은타자의것을자기의삶속으로가져와실천적으로재조직하는김윤식의자기사사화방식의하나이다.그는‘변형’의방법을통해일본이라는타자를극복하는기회로삼았다.요컨대‘변형’은포스트식민주체의탈식민주의적담론전략으로,김윤식의자기서사에서각색의주요한도구였다.김윤식이‘근대’를유토피아적환각으로붙잡고,상징적해결책으로서의자기서사화를반복하는모습은이책이추적하는결핍과환상,숭고함의서사가한거장의글쓰기안에서어떻게작동하는지를보여주는유력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