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는오직한가지바람만간절했다,
꼭그모습을직접볼수있기를……
지중해에서가장큰섬,마피아의고향,메두사의얼굴을한섬,시칠리아
그곳에피어난한잎의여자와산하나를찾아가는뜨거운인문기행!
한여자와산하나
여행에는여러가지가있다.되도록저렴한비용으로되도록많은나라들을돌아보는것이목적인배낭여행,오로지쉬는것만을목적으로휴양지에머물다오는여행,그리고가슴이뻐근해지도록배움을채워오는여행…….『신화의섬,시칠리아』의지은이가떠난여행은,고르라면세번째종류라고할수있겠다.지은이는여행에관해이렇게이야기한다.
“여행은인생에서가장많은것을만날수있는기회이며,평생토록간직할순간을맛볼수있는축복이자,지워지지않는추억의문신을새기는과정이다.그러기에여행을하는동안에보고느끼고즐기고먹고자고생각하고깨닫는모든것이무엇과도바꿀수없는소중함으로빛난다.”
지은이는어느날시칠리아행비행기에몸을싣는다.‘한여자’와‘산하나’를자신의눈에담아오겠다는강렬한소망에이끌려.옛연인이라도만나러가는걸까싶겠지만,여기서‘한여자’란15세기이탈리아르네상스시대의시칠리아출신화가안토넬로다메시나가그린「성모영보의마돈나」이다.그렇다면‘산하나’는?아직도뜨거운불을품고그것을분출할기회를호시탐탐엿보고있는활화산,에트나이다.
귀중한것은쉽사리만날수없는것인지,간절하게만나고픈마음은아랑곳하지않고마돈나와에트나산은쉽사리그모습을보여주지않는다.덕분에독자들은두주인공을만나기위한지은이의여정에서시칠리아섬의매력을흠뻑맛볼수있다.
시칠리아섬의매력
괴테는『이탈리아여행기』에서“시칠리아를보지않고서는이탈리아를보았다고할수없다”고썼다.도대체어떤매력을갖고있는곳이기에?이탈리아남단에위치한시칠리아는본토와는사뭇다른고유의분위기를간직하고있다.또한과거에는그리스문명권에속했던곳이기에고대그리스ㆍ로마문명을곳곳에품고있어,시칠리아여행을그리스ㆍ로마신화여행이라고바꿔말해도손색이없다.
시칠리아의상징인머리에다리가셋달린메두사도상을만나면서여행은시작된다.섬의형태가삼각형모양인시칠리아를옛그리스사람들은‘세개의다리’를뜻하는‘트리나크리아’라고불렀는데,다리셋달린메두사는여기서유래한다.지은이는더나아가메두사가시칠리아의상징이된이유를궁금해하면서메두사를벌한아테나여신이야기로,메두사를죽인페르세우스와그의어머니다나에이야기로신화이야기보따리를펼친다.이처럼이야기가하나의실마리에서시작해사방으로뻗어나가는것이이책의매력중하나이다.지은이의풍부한지식은여행지의사소한사물하나를만나면서꽃을피우고풍성한이야깃거리를만들어낸다.
신화뿐만이아니다.르네상스시대그림에서튀어나온것같은얼굴을한어물시장의장사치,해산물과농산물이풍요롭게진열돼있는부치리아시장,가족사진이잔뜩걸려있는구멍가게,이층집에서끈을달아아래로드리운장바구니,시칠리아의주요교통수단인스쿠터,노천카페에서만난에스프레소와마키아토의향기……유난히사람사는향기를진하게풍기는이모든장면이시칠리아의매력을담뿍전한다.
한여인과의만남,「성모영보의마돈나」
몇번의여행에서꼭직접보리라다짐한그림을,순회전시나보수중이라는등의이유로만나지못한적이있는지은이는이번에도그런불운을겪게될까조마조마하다.그런초조한마음에도불구하고「성모영보의마돈나」가소장돼있는팔레르모지방미술관을찾은첫날,미술관은육중한닫힌문으로지은이의마음을애태운다.별다른설명도없이그저이틀동안특별히문을닫는다는무심한종잇조각이달랑붙어있을뿐이다.세월아네월아,원하는만큼머무를수없는여행자의마음은가뜩졸여지게마련이다.하지만이여행은바로그림속여인을만나기위한목적이팔할.꼬박이틀을기다려지은이는그토록바라던그림과직접만날기회를갖게된다.
시칠리아를대표하는르네상스시대의화가안토넬로다메시나가그린이그림은당대에매우자주그려졌던주제인‘성모영보’의장면을다루고있다.성모영보란천사가마리아에게찾아와신의아들,예수를잉태하게될것임을알리는내용이다.그런데보통의성모영보그림에마리아와천사가함께등장하는것과는달리,메시나의이그림에는오로지성모마리아만그려져있다.
그림속마리아는후광도두르지않고있어서언뜻보아서는성모영보를그린것인지조차알아차리기힘들다.더구나가로34.5센티미터,세로45센티미터정도의,매우작은크기의그림이다.그런데도성모는범접하기어려운분위기를풍긴다.푸른빛옷감이감싸고있는성모의얼굴은뜻을가늠하기어려운신비로운표정으로큰매력을풍긴다.“그얼굴을보고있노라면누구도다가갈수없는차가운신성함”이느껴지고“애써감추려해도어디선가스미어나오는관능의아름다움”이보인다.바로이러한미묘함이지은이를시칠리아로이끌었고,이그림이시칠리아를대표하는상징이되도록한힘이되었다.
그림앞에서꼬박30분을보낸지은이는못내아쉬운마음으로발걸음을돌린다.그림을직접보기만하면자신을애태웠던그매력의비밀이풀릴것이라믿었지만,작은그림이발산하는힘은그저한번의방문으로는채워지지않는다.
시칠리아신화여행
팔레르모에서성모를만나고난후지은이는에트나산으로발걸음을돌린다.시칠리아의북서쪽에위치한팔레르모에서「성모영보의마돈나」를만난후동쪽끝에위치한에트나산까지는200킬로미터의거리이지만,지은이는그리로가는길에아그리젠토,카살레,시라쿠사를거쳐가고,그곳에서고대그리스와로마제국의문화를만난다.바다에면한아그리젠토와시라쿠사에는해상문화를꽃피웠던고대그리스의흔적과마주하고,내륙깊숙한곳에자리잡은카살레에서는화려했던로마제국의유적이고스란히남아있다.
아그리젠토에는열개가넘는그리스신전들이바다를맞는언덕을따라줄지어서있다.신전들은아침첫햇살을맞이하기위해서모두동쪽을바라보고서있는데,여기서지은이는토함산높은곳에세워져아침첫햇살이본존불에닿도록지어진석불사를떠올린다.아그리젠토의신전들은그리스신전하면으레떠올리는하얀대리석으로지어져있지않다.이곳을구성하고있는지질이화산활동의결과로만들어진응회암으로이뤄져있기때문이다.그래서아그리젠토의신전들은뜨거운불의기운을간직한붉은빛으로빛난다.
아그리젠토의유적지에천년의세월을간직하고서있는올리브나무들도지은이의특별한관심의대상이다.아테나여신이전해주었다는전설을간직한올리브나무는“할아버지가심어아버지가가꾸고아들이거두어들인다”는말이있을만큼오래도록키워야실한열매를맺는다.수많은신전과함께세월을이겨온올리브나무들은“은빛머리칼을휘날리는현자”처럼길게는3천년에까지이르는세월을제몸에새기고여전히새잎을피워내고있다.
지은이의발걸음이멈추는다음장소는로마제국의화려했던문화가그자취만을쓸쓸히남기고있는카살레의빌라로마나이다.기원전300년경에지어진것으로추정되는빌라로마나는건물면적만1천평이넘는대단한규모를자랑한다.특히공중목욕탕터와건물곳곳에아직도벽을장식하고있는모자이크장식에서대단했던로마제국의영화를엿볼수있다.모자이크는사냥장면,전차경주,신화등다양한이야깃거리를품고있지만그중단연관심을끄는것은‘비키니를입은미녀들’이다.가슴과아랫부분만을가린,그야말로‘비키니’를입은여인들이아령을들거나원반을던지는등운동을하고있는모습으로그려져있는모자이크를보고있으면,이것이과연기원전에만들어진것인지두눈을의심하지않을수없다.
에트나화산에도착하기전마지막기착지인시라쿠사에서는고대그리스시대의원형극장이눈길을끈다.파란하늘과드넓은바다를배경으로고대그리스의야외극장‘테아트론’이모습을드러낸다.
“유럽을돌아보려고여행을나설때사진기는두고오더라도꼭지녀야할것이있다면성경과그리스로마신화의기본지식”이라고말하는지은이의안내를따르다보면어느새여행과배움이다른말이아님을알게된다.
신화의용광로,에트나산
변덕스러움으로이름높은에트나산은그높이마저시시때때로바뀐다.여전히활동하고있는화산이기에,한번폭발할때마다높이가바뀌기때문이다.변덕스러움은그뿐만이아니다.에트나산은좀처럼여행자들에게그모습을드러내지않는다.높은산봉우리는곧잘구름속에숨어있게마련이어서,요행히날씨가맑다해도운이좋아야산의전체모습을눈에담아갈수있다.
에트나산은그야말로신화의용광로이다.어떤이야기에서는대장장이신헤파이스토스의아궁이로도알려져있고,또다른이야기에서는제우스에대항했던괴물티폰이갇혀있는감옥이다.이괴물이화를억누르지못하고뿜어내는사납고세찬불덩이가에트나화산이되었다는이야기이다.에트나산과관련된또다른그리스로마신화이야기는대지의여신데메테르와그녀의딸페르세포네,그리고지하의신하데스와관련돼있다.이이야기가바로지은이를시칠리아로,에트나산으로이끌었다.
에트나산을보고자하는마음은루브르박물관에서마주친한점의그림에서싹텄다.니콜로델아바테가그린「페르세포네의납치」가바로그것이다.지하의신하데스가데메테르의딸페르세포네를납치하여지하세계로데려가는장면을담은이그림에서,지하세계로통하는입구가바로에트나화산이었던것이다.루브르박물관에서그림한점을바라보며시칠리아섬을꿈꾸던지은이는,이제에트나산에직접서서다시예전에마음속에품어둔그림을되새긴다.
어린시절의앞산
에트나산을마지막으로여행을정리하면서,지은이의생각은어린시절로줄달음질친다.바닷가에서자란지은이의어린시절마을에는산이하나있었다.자라서다시가보았을때는나지막한앞산에지나지않았지만당시에는그저신비롭고크게만보였던산이었다.그너머를알길이없었던그앞산을바라보며지은이는“수많은상상과동경의시간”을품었다.어린시절의앞산과똑같이햇살을되쏘는바다를배경으로우뚝서있는시칠리아의거대한산에트나가잊고있었던동경의시간을지은이에게되살려준다.어린시절과비교할수없을정도로많은것을알게되었어도,여전히꿈꿀것과경험해야할것이남아있음을,그림한점이,산하나가,시칠리아여행이알려주고있는것이다.
지은이에게여행은그저사진첩에추억의사진한장을늘리기위한것이아니다.그에게여행이란‘배움’이다.“모난구석을깎아내고,고정되어있는좁은시야를넓히고,새로운것과부딪히면서생각의깊이를파고들어가고,자신과다른것도받아들일줄알게되고,어리석음의정체를보게되고,삶의흐름을절절히느끼게되는과정”인것이다.
반드시제눈으로보기를바라는열망을가슴에품고떠난여행자가전하는이기행문에서,지은이는진정한배움의여행이무엇인지,여행이우리에게줄수있는최상의것이어떤것인지를보여준다.
중간중간별면에서보여주는예술작품의도판과그에감춰진내력은이책을더욱풍성한읽을거리로만들어준다.‘곁가지’코너에서는여행의여정에서살짝벗어나‘메두사와페르세우스’이야기,중세부터서양인의정신세계에서큰자리를차지해온‘죽음의승리’주제,올리브나무이야기,그리스신화에서월계수로변한다프네이야기,그리고그리스신화에등장하는에트나산이야기등이다채롭게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