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 (한국회화사를 돌아보다)

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 (한국회화사를 돌아보다)

$23.00
Description
명화와 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정선, 강세황, 최북, 김홍도, 신윤복, 김정희, 장승업, 그리고 위작의 세계
한국회화사의 ‘명화’와 ‘대가’, 그 ‘만들어진 전통’ 다시 보기
정선, 김홍도, 김정희, 신윤복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이에 더해 강세황, 최북, 장승업이라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어쩌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 회화사, 아니 한국회화사에 한 획을, 그것도 아주 굵직하게 그은 대가와 명화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간 한국회화사 연구자들은 안휘준의 『한국회화사』(1980)에서 배운 대로 대부분 양식사에 기반한 미술사학의 초기 방법론과 시대구분론에 연구의 근본을 두었다. 하지만 서구 학계에서는 관점과 관심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미술사 방법론이 등장했다. 작품 내용은 물론 사회경제적·정치적·문화적 배경, 의례, 여성 등 작품을 둘러싼 문화와 사유방식에 다각도로 밀착하려는 관점이 그것이다. 이에 이 책의 글쓴이들은 회화사 연구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양식사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회화사를 볼 필요가 있다며 의기투합했다.

‘동아시아 회화사 연구1’로 출간된 이 책은 한국회화사를 공부하는 7인의 연구자들의 의욕이 낳은 첫 결실이다. 글쓴이들은 달항아리, 석굴암, 신사임당의 초충도 등 유명한 작품과 화가의 명성이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다며, 서구의 연구방법론을 적용하기에 앞서 한국회화사가 한국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내면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이유는, 서구적 근대화의 추구와 민족주의의 의지를 안고 만들어진 우리 역사 속에 그림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상 작가는 겸재 정선, 표암 강세황, 호생관 최북,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오원 장승업 7인이고, 명작 못지않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위작(僞作)의 세계를 함께 조명하여 연구의 의의를 더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작가’가 어떻게 ‘대가’가 되는가를 추적한 성과이다. 작가가 예술세계를 구축하면서 대가의 지위를 부여받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일 것이다. 그러나 그 창조적 역량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가치를 평가받아야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의 창작 활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작가의 명성을 구축하는 데에는 여타의 요인이 작동하게 마련이다. 자기 작품을 객관화하여 설명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를 대신해 의미를 부여할 비평가, 작가가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을 해줄 후원자, 전시를 통해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는 기획자 등은 작가의 명성과 위상을 높이는 대표적인 조력자이다.”(199쪽)

지은이들은 각 작가들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역사를 조명함으로써 한 작가가 어떻게 대가가 되는가를 톺아본다. 특히 작가들이 생전에 예술가로서 무엇을 하였으며, 사후에 누가 왜 그들을 추숭했는지를 통시적으로 살핀다. 연구는 쉽지 않았다. 앞선 연구에 딴죽을 건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한국회회사의 척추를 잇고 있는 명화와 대가들의 정체를 진단하는 작업은 그 자체가 한국미술계의 스승과 선배의 논고를 근본부터 검토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7쪽) 연구자들은 2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2019년 12월에는 학술대회(‘명화의 발견, 대가의 탄생’)를 가졌고, 이번에 그것을 일반인과 공유할 수 있게 수정 보완했다. 그 결과, “독자들은 아주 쉽게 근현대기 서구 지향적, 근대 지향적, 그리고 민족주의적인 관점이 과거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는 점을 알게” 되고,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의 한계, 과거를 미화하려는 다각적 욕망의 속성에 대하여 성찰하게”(12쪽) 된다.

각 글 뒤에는 글쓴이의 ‘후기’를 더했다. 지극히 사적인 진술로, 해당 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고연희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과교수.이화여자대학교국문과에서겸재정선을주제로박사논문을쓴뒤,같은대학교미술사학과에서영모화초화의정치적성격을주제로박사논문을썼다.영모화초화를주제로한다수의논문이있다.한국문학과회화를함께연구하고강의하면서,민족문화연구원(고려대),한국문화연구원(이화여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서울대)연구교수,시카고대학교객원연구원을지냈으며,지금은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과에재직하고있다.지은책으로『고전과경영』『조선시대산수화』『그림,문학에취하다』『화상찬으로읽는사대부의초상화』등이있다.

목차

머리글

1.정선,명성(名聲)의부상과근거-고연희

사랑방감상물에서국가적문화유산으로
‘진경산수화’의발견
조선시대,엇갈리던평가혹은비난
근대기,‘진경(眞景)’을택한민족화가와사생(寫生)으로그린근대화가
현대기,정선은자주의식의으뜸화가
‘진경’이무엇이길래?:근거검토1
조선중화사상(朝鮮中華思想)을그렸다?:근거검토2
정선은‘화성(?聖)’이다?:근거검토3
가상(假想)과역사

2.시서화삼절에서예원의총수로
-수응과담론으로본강세황의화가상형성과변화의역사-이경화

오늘날과다른평가를받았던화가
시서화삼절의명성과「표옹자지(豹翁自誌)」의아마추어화가
강세황의회화수응과묵죽화
회화수응과사회적명망의상호관계
18세기예원의총수
미완성의화가상

3.최북,기인화가의탄생-유재빈

최북,시대에따른화가상의변화를추적하다
최북,재능과일복을타고난화가
최북사후,기인전기의주인공으로재탄생하다
근대기의최북,그림보다기행으로기억되다
최북,기록의빈자리를상상력으로메우다

4.‘풍속화가김홍도’를욕망하다-김소연

김홍도는어떤화가일까
못그리는그림이없는최고의화가
근대기‘조선적인것’의프로젝트와김홍도
근대적·사실적·혁명적그림으로서의풍속화
상반된가치,헛된그림신선도
‘풍속화가김홍도’를향한시대적열망

5.신윤복,「미인도」의부상-김지혜

신윤복의「미인도」,대중에처음선보이다
「미인도」에대한기록의부재
신윤복,무명의화가에서풍속화의거장으로
「미인도」,신윤복의대표작이되다
미인도감상의역사,문방의미인도에서전람회의미인화로
「미인도」,한국을대표하는미술품으로해외에전시되다
국내전시를통한「미인도」의명작화
미인의신원,기녀에서미인으로
조선미인도의전형이되다
명작의명작화,신윤복「미인도」의대중성
6.누가김정희를만들었는가
-김정희명성형성의역사-김수진

김정희에대한세간의평가
‘작가(作家)’에서‘대가(大家)’가되기까지
김정희에게작품을구한이들은누구였나
김정희유배기의서화수응과중인거간(居間)
김정희작품의유전(流傳)과해배(解配)
김정희초상과소동파(蘇東坡)이미지
김정희사후허련의추숭활동
김정희전시의역사
김정희시장의형성
대가의탄생과신화화

7.오원장승업,흥행에이르는길-김소연

뜬구름같은삶의흔적을더듬다
장승업신화의서막을열다
근대기최고감식안오세창과의인연
김용준의장승업론:예술가의애주와기행은무죄
인민적격앙의시대가낳은반항정신을읽다
중국냄새나는그림에대한시선
대가와명작의상관관계

8.조선후기서화시장을통해본명작(名作)의탄생과위작(僞作)의유통-서윤정

명작과위작의탄생
명작,그림을평하고내력을논하다.
위작은누가어떻게만들까
화보와화론서:명작의교과서,위작의지침서
조선후기서화감식론의선구자들
서유구의『임원경제지』:조선후기서화감식론의새로운지평
조선시대에만들어진위작
조선에전해진중국의가짜그림
명작과위작의관계
위작,상상과가정(假定)의역사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한국회화사는거듭다시집필되어야한다!”

발견된그림,정선의진경산수화

고연희의「정선,명성의부상과근거」에서는그간정선(鄭敾)의세간의평가에대한위상이높아지는과정을그리고있다.정선의산수화는정치적으로는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문화사적으로는근대화를맞이하면서우리민족의자랑스러운문화유산으로발견된그림이었다.진경산수화의대가로불린정선은금강산의장면을그린화첩으로주목을받기시작했는데,일제강점기를거치며진경은빼앗긴국토의사생(근대적스케치)으로의미화된민족적·근대적가치였다.이후정선은미술사학자최완수의노력으로1980년대를거치며학계에서‘조선중화사상’이라는자주성의현현으로그가치를인정받아‘화성(?聖)’으로일컬어지기에이른다.정선이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진경의화가로주목받기시작한것은민족주의적연구자오세창의역할이컸다.

하지만고연희는18세기의진경은국토를사생한것이아니었고,정선의후원자인18세기학자들은조선중화사상을주장하지않았으며,당시정선은화성으로불린적도없었음을밝힌다.그리고우리가알고있는정선의평가는근대적·현대적산물이라며,정선은살아생전윤두서,강세황,심사정보다저평가된사례를제시하고있다.

“이때남인계학자들은정선의산수화에별관심이없었다.그들은윤두서(尹斗緖,1668~1715)의학습적이고실험적인다양한회화및그림실력에가치를부여하며동시대의윤두서를가장뛰어난화가로평가하였다.정선보다한세대뒤에는심사정(沈師正,1707~69)과강세황(姜世晃,1713~91)이활동하기시작하였고,사람들은이들과정선을비교하곤하였다.심사정은정선에게그림을배우고또금강산도그렸지만문학적내용과중국풍의그림을많이그렸고,강세황은정선이‘진경(眞景)’을잘그렸다는화제를남겼지만,……정선을비평했다.”(24쪽)

“조선시대의화가정선이우리산천을주제로그린그림들은그시절유람을즐긴일부문인들이즐겨감상한그림이었지만,지금은한국회화사에서진경산수화라는특별한이름으로불리는문화유산이되어그자리가우뚝하다.조선시대문헌에서살펴보면18세기의정선은유람산수의기이한경치를잘표현하여칭송되었다.실재하는산수경,즉‘진경’을대상으로그렸다는특성이언급되었으나정선의급한필치에대한우려가한편지속되면서윤두서·심사정·강세황보다저평가된경우가많았다.19세기에이르러서는김정희등에게비난을받았다.그러나일제강점기를기점으로현대기에이르기까지정선은높은평가를받기에이른다.”(48쪽)

겸재정선을압도한18세기문인화가강세황

강세황(姜世晃)하면개성을비롯해그부근의명승지를그린『송도기행첩』이나자화상을떠올릴것이다.하지만당대에강세황은실경산수나초상화,인물화에대해서는인색한평가를받았다.강세황의평가에대한오늘날과동시대의시각차이는어디에서비롯되었을까?

「시서화삼절에서예원의총수로」에서글쓴이이경화는강세황의화가이미지가구축되는과정을살피면서여러사회문화적ㆍ정치경제적요소중에화가와사회를직접연결해주는수응(酬應)이라는행위에주목했다.수응은주위의요청에응하여서화를제작하는행위를말한다.강세황은사대부로서그림에능한자신의모습에갈등하였고,그에게묵죽화를요청한이들에게가장문인다운그림인묵죽화로서수응한조선의사대부화가였다.20세기초강세황은대중에게화가보다는서예가로기억되며근대미술사에서거의주목받지못했다.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조선의문인화와문인화에대한외면이가져온시대적상황을반영한결과였다.

그런데1970년대미술사학자최순우가‘강표암(姜豹菴)’이라는3쪽짜리논고에강세황의『송도기행첩』과『정춘루첩』을소개하면서강세황은혁신적화가로그간의평가에반전을보인다.이두화첩에서보이는원근법과그러데이션기법은전통회화에서는볼수없었던화법으로서,서양화의시점과표현방식을빌려와산수화에적용한기법으로평가받기에이른다.강세황은바로서양화풍수용의선구자라는것이다.

“『송도기행첩』에서개성시가의전경을한폭에포착하기위하여사용된원근법,영통사(靈通寺)입구의바위의독특한양감을표현한그러데이션기법은이전의회화에서볼수없었던화법으로서서양화의시점과표현방식을빌려와산수화에적용한것이었다.근래에강세황이학계에서높은평가를받는가장중요한이유는바로서양화풍수용의선구자라는사실에근거하였다.최순우는이화첩의발견을계기로강세황이서양화법의‘혁신적인표현법을정립’했음을알수있게되었다고했다.”(86쪽)

기인으로유명세를떨친최북

당연하게도미술사학자와국문학자의학문을연구하는방법은다르게마련이다.일례로미술사학자는화가의삶을고증하기위해서,생몰년을비롯해교유관계를추적하는용도로사료를이용하는반면,국문학자는문헌속에등장하는한개인의기인적삶을그개인에국한된것이아닌당대의문화현상으로바라본다.이러한과정에서기인화가로알려진최북(崔北)이재조명받기에이른다.「최북,기인화가의탄생」에서글쓴이유재빈은기인예술가로기억되는최북의예술가상을그리고있다.

최북은살아생전에는일반적으로알려진기행보다는회화적역량으로평가받은화가였다.최북의후원자라고할만한성호이익은안산시절최북의회화를높이평가했을뿐만아니라정밀하고고아한작품을그린화가로그의화업에적극적인지지를보냈다.그러나19세기전반남공철의「최칠칠전」과조희룡의「최북전」등에서최북을일탈적행위의예술가로묘사하면서그를기인화가로받아들이게되었다.이러한문학작품속의행동거지가역사기록처럼후대에인용되면서,최북에게세상을조롱하고호탕하게바라본기행적이고낭만적인화가상이덧씌워졌다.

“세상사람들은최북을술꾼이라고도하고환쟁이라고도하며심지어는그를가리켜미친놈(狂生)이라고도했다.그러나그의말은때때로묘한깨달음을주거나쓸만한것도있었으니위와같은것이그렇다.이(단)전은,최북이『서상기(西廂記)』나『수호전(水滸傳)』등의책읽기를좋아하고,지은시도기이하고고풍스러워읊조릴만했지만그것을감춰두고는세상에내놓지않는다고했다.최북은서울의여관에서죽었는데나이가얼마나되었는지모른다.”(124쪽)

‘국민화가’김홍도

김홍도(金弘道)는살아생전에도당대를대표하는화가로서의마땅한지위를누린만큼탁월한그림솜씨는물론이고도화서화원으로서최고의광영을누렸다.「‘풍속화가김홍도’를욕망하다」에서글쓴이김소연은김홍도를풍속화가의대가로인정하고,그의풍속화를근대적·사실적·혁명적사유의그림으로해석한근대의인식과정을추적하였다.김홍도가생전에이룬작품제작의양상을비롯해그에대한조선후기의평가를미루어보아김홍도의정체성을풍속화에만제한하는것은타당하지않다.왜냐하면실제과거의기록과오늘날남아있는자료로보아김홍도는풍속화는물론이고진경산수,도석인물화,화조영모화에이르기까지모든장르에서최고의작품을남겼음이분명하기때문이다.

그러나해방이후미술사학계에서는김홍도를근대적인간상으로평가하고“가장한국적인화풍을풍속화부분에서창출한”기여자로강조함으로써그흐름이오늘날까지계승되고있다.여기에서간과된부분이김홍도의풍속화만큼이나김홍도의신선도에대한평가가다변하다는점이다.20세기초까지칭송하던김홍도의신선도는,풍속화를욕망하는근대의안목에서‘헛’된것으로비난받았다.

조선미인도의전형,신윤복의「미인도」

신윤복(申潤福)의「미인도」는현전하는미인도중에서도가장이른시기의제작되었을뿐만아니라발견시기도다른미인도보다빠른것으로알려져있다.「신윤복「미인도」의부상」에서글쓴이김지혜는오늘날조선을대표하는명화이자조선의여인상을대표하는,조선의최고미인을담은미인도로인정받는신윤복「미인도」의공개에서부터오늘날대중적인인기와명화의지위에오르기까지의과정을논하고있다.「미인도」작품한점에대한관련사료를통하여,신윤복「미인도」의부상을추적하는과정에서시대적가치관과미감의변화도함께다루고있다.

「미인도」는1957년을전후하여워싱턴등지에서의해외전시를통해한국의명화로위상을갖게된이후1970년대에본격적으로회화사에편입되었다.신윤복의「미인도」는아이러니하게도해외에서먼저소개된것이다.글쓴이는1957년이전까지「미인도」를공개하기에쉽지않았던이유를화가신윤복에대한평가의변화와미인도라는화제가가진특수성속에서살펴보았다.「미인도」는오래도록남성만의공간인문방(文房)이나사랑방의감상물로여겨졌다가현대에들어와대중적공간에걸렸고,그림속기녀라는신분은한국의미인으로격상되었다.이는신윤복을대가로만들어주기에충분한조건이었다.

‘조선의소동파’김정희

추운겨울에도김정희(金正喜)의글씨는얼지않았으며밤에도빛났다고한다.과연신필이라는말이수사에머무는것이아님을알게하는대목이다.「누가김정희를만들었는가」에서글쓴이김수진은김정희가한작가에서한국서화사의태산준령(泰山峻嶺)같은대가로평가받기까지자신의창조적역량외에어떤외부요인이작동했는가를살펴보고있다.여기서외부요인이란비평가,후원자,기획자,조력자등이되겠다.

김정희에게작품을구한이들은누구였나,제주유배시절신간서적을구해준이들은누구였나,‘추사체’라는개념은어떻게형성되었나,위리안치에처한죄인이어떻게국왕의주문에응할수있었나,제자허련(許鍊)은어떤방식으로스승의브랜드를팔았나,김정희는어떻게‘조선의소동파’로이미지메이킹을할수있었나,현대미술경매시장에서김정희작품의위상은어떠한가등에이르기까지,대가가탄생하고신화화되는일련의과정을균형있는시각으로평가하고있다.

예술가의애주와기행은무죄,장승업

장승업(張承業)은글도몰랐고,정식으로그림을배운적도없다.따라서그에대한기록또한별로없다.하지만서화창작에서문자를읽고씀에자유롭지못한장승업이지만그의화맥이안중식,조석진에게로이어짐에따라한국근대화의시발점으로보는시각도있다.「오원장승업,흥행에이르는길」에서글쓴이김소연은장승업의뜬구름같은삶의궤적을추적하고있다.그출발점은대가장승업의명성은존재하되그의작품이명작으로서위치가모호하다면그간극을어떻게메울수있을까에서시작한다.

장승업은산수,화조,영모,인물,기명절지까지모든장르에뛰어난화가이자,흔히조선의3대거장으로알려져있다.그의사후장지연,최남선,오세창,김용준등이한국회화사에서의장승업의위상을기술하면서,특히오세창의안목으로만들어진간송미술관의컬렉션과특별전이이어지면서대가의명성이유지되고있다.하지만장승업은지금까지도그의작품중국보나보물급문화재가한점도없을정도로그의명성에걸맞은근현대의인정을받지못했다는점이아쉽다.아직까지화명(畵名)을호색(好色),호주(好酒)로특징지은영화「취화선(醉畵仙)」(2002)의이미지로장승업은그대로머물러있는것은아닌가!

명작과위작의차이

「조선후기서화시장을통해본명작(名作)의탄생과위작(僞作)의유통」에서글쓴이서윤정은명작의대칭적위치에존재하는거대한문제,‘위작’을다루고있다.명작이란무엇이고,어떻게정의할수있으며,위작은누가제작하는것인가?명작의정의와작품에대한평가는시대에따라달라지고명작이탄생하고그명성을유지하는데에는사회문화적이유와경제적가치뿐만아니라심미적철학적기준이복잡다단하게작용한다.

글쓴이는명작의조건과의미,위작의제작과유통,서화애조풍조와수장,감식활동이활발했던18세기조선후기의서화시장을통해중국명작들이유통되고기록된상황속에군림했던위작,위작이지만상당한작품성을인정받고있는경우등다양한예를제시하면서,명작못지않은위작의존재감을제시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