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하는감상에서글쓰기로완성하는감상으로
“미술은쓰는만큼더잘보입니다.미술에관한글쓰기는미술을깊이사랑하기입니다.글쓰기는사람을정교하게만듭니다.미술품수집이미술을사랑하는열정의표현이라면,미술에관한글쓰기는어떨까요?작품에표현된세계를자기것으로만드는최고의감상법입니다.작품을보고또보며,한자한자쓰는행위는작품을가슴에상감(象嵌)하는경건한의식입니다.”(같은곳,79쪽)
이책은미술잡지기자와출판사편집자를거쳐,20년째미술출판일을하고있는저자가자신의경험을바탕으로쓴미술로하는글쓰기가이드북이다.저자는2019년에그림을구성하는소재나물성,인물,사물같은다양한요소중어느한요소에집중하는감상법인『원포인트그림감상』(2020세종도서우수도서)을출간한바있는데,이책은그이론편이라할수있다.먼저실전편이출간되고,이론편이뒤에나온셈이다.그간저자는출판계에30년넘게몸담으며,미술대중서의기획노하우를밝힌『정민영의미술책기획노트』,편집자와북디자이너간의소통관계를다룬『편집자를위한북디자인』,대중미술서를리뷰한『미술책을읽다』등을펴냈는데,이번에는‘미술에관한글쓰기는누구나할수있다’라며,풍부한예시로미술작품감상후자기이야기를써보기를제안한다.
저자는미술잡지기자시절,기사를쓰는과정에서겪은시행착오를통해미술에관심있는독자들에게도움을줄수있는미술글쓰기책의필요성을절감했다고한다.그미술글쓰기책이란미술의특성과미술글쓰기에필요한요소를바탕으로,그것을적용한구체적인사례를확인하는가운데응용할수있는것이어야했다.따라서이책은미술의특성과풍부한사례를통해미술에대한글쓰기(writingaboutArt)가아닌미술로하는글쓰기(writinginArt)에방점을찍는다.즉미술작품감상으로자기이야기를하는미술글쓰기에집중한다.
각장말미에는5편의‘팁’과1편의‘보론’을실었다.팁은「방명록과서명」「왜제목이‘무제’인가?」「그림은왜원작으로감상해야할까?」「알아두면좋은,작품도판저작권사용료」「전시장벽은왜흰색일까?」등미술작품감상과관련글쓰기를하면서알아두면좋은,한번쯤궁금할법한내용을짚어준다.
보론인「빼면비로소보이는것들」에서는작품의조형미를감상할수있는색다른노하우를공개한다.이를테면김두량의「월야산수도」에서보름달이있을때와없을때를,신윤복의「단오풍정」에서는호기심어린사미승이있을때와없을때를,이인성의「여름실내에서」에서는이국적인실내풍경에서색동고무신이있을때와없을때를가정(‘빼기감상’)하고보면,누구나작품의조형미를확인할수있다는것이다.
그림감상,‘의미찾기’에서‘의미짓기’로
1장은작품을감상할때무의식적으로작동하는‘정답맞히기’의고질적인강박부터짚는다.미술감상을둘러싼통념깨기의장이자본격적인글쓰기에들어가기전에마음을스트레칭하는코너다.
음악글쓰기든,연극글쓰기든,미술글쓰기든좋은글을쓰기위해서는기본적으로비슷한조건이필요하다.그렇지만이책은미술을소재로글을쓸때알아야할,미술이갖는고유한특성파악은물론작품감상의병폐인‘의미찾기’나‘정답찾기’,‘의미맞히기’나‘정답맞히기’를직시한다.또정답같은착각을주는남의시각―미술사가나미술평론가같은전문가의시각―에신경쓰지말라고강조한다.왜냐하면작품에는정답이없고감상에도답이없으므로,자신의시각으로작품을감상하고쓰는것이중요하기때문이다.
“그림은표정으로말합니다.거칠거나부드럽게,화려하거나소박하게,사실적이거나추상적으로자신을드러냅니다.감상자가말을걸어야합니다.표정을보며말을걸되,답은스스로찾아야합니다.질문에대한가장좋은답은질문을떠올린자신에게있습니다.남의말(해석)을그대로따르는것(감상의외주화)이어서는곤란합니다.설령처음에는남의해석에의지하더라도마지막에는자기생각을피워야합니다.화분에물을주듯이자료의도움을받으며,늘새로운질문과새로운해석으로작품을살아있게해야합니다.답은감상자의질문만큼제각각입니다.”(「감상은스스로묻고스스로답하기」,68쪽)
감상을하는데미술사(美術史)가도움을주기는하지만미술사가의고정된시각이나관점이감상에방해가될수도있으니주의하라는조언도잊지않는다.감상할때에도스스로묻고스스로답하는습관을들이는게글쓰기에도도움이된다.‘이게뭐지?’‘왜이럴까?’등의의문으로낯선대상을들여다본후질문으로생각의초점을잡는다면,질문이뜻밖의발견을낳게된다.예를들어저자는특별할것없는이중섭의「길」을보면서유난히짙푸른바다색과하늘이황토색으로채워진점에의문을표한다.“하늘과달리바다색만파랗네?”라는의문은곧“바다색이왜짙푸를까?”라는질문으로바뀐다.이질문은발견으로이어진다.당시이중섭의처지와그림을그린지역이나시대상등이고스란히글쓰기의재료로녹아들며,짙푸른바다색에서일본으로보낸가족을향한그리움을찾아낸다.이처럼감상은감상자스스로의미를짓는일이다.의미는각자의마음속에있다.
먼저느끼는만큼보고쓰기,그다음에정보더하기
2장은글쓰기에관한직접적인레시피와스타일을소개한다.독자의심리로본‘처음’‘중간’‘끝’의구성원리에관해언급하면서몇개의키워드로하는글쓰기를실제사례로자세히설명한다.이어서수미상관한글쓰기,대화식과행갈이형식의글쓰기로실용성을높인다.
글의구성은‘몸통’인본문부터설명한다.구상단계에서먼저만드는것이본문의내용이므로,본문만들기를한다음에서두와꼬리를구상하면효율적이라는것이다.그리고본문만들기는몇개의포인트잡기로시작한다.메시지의핵심이되는키워드를1~3개뽑아서,그것을중심으로단락을만들면,막막함에서벗어날수있다.이해를돕기위해쓰기단계를표와사례로구체적으로보여준다.
“키워드를중심으로한본문쓰기는“나는그림을이렇게감상했다”라는뜻으로,“내가생각하는이작품의마음은이들키워드에있다.그래서나는이키워드를통해내소감을펼친다”라는의미입니다./본문을키워드로구성하면,횡설수설하고삼천포로빠지는글쓰기를미리차단할수있습니다.이때한걸음더나아가작품들간의공통성에주목하거나,사회현실과작품간의관련성,동일한소재의특성과차이등을찾아보면확장된글쓰기도가능합니다./키워드중심의몸통만들기는이야기의범주를좁혀서주제를선명하게살리는일입니다.”(어떻게‘몸통’을만들것인가」,106쪽)
서두는본문에설계한각단락의내용을바탕으로구상하되,본문과관련된내용으로글의방향을암시하는것만으로족하다.예를들어서두는작품의이미지를묘사하면서시작할수있고,알려진평론가의말을인용하는것으로시작할수도있고,독자가흥미를끌만한사적인이야기혹은작가의독특하거나기구한삶을묘사함으로써독자의호기심을자극한내용으로시작할수도있다.
마무리는논문처럼본문의내용을정리하기보다독자에게번뜩이는통찰이나깨달음을줄수있는것이좋다고조언한다.끝인상이곧글인상이라는지적이다.
독자의입장에서본작품묘사와작가정보
3장은글쓰기에대한구체적인이야기로,어떻게써야할까의문제를다룬다.작품묘사―여기서설명과묘사는다르다―와작가정보,작품명과시대배경,작가의에피소드등의의미와요령을알려준다.저자는작품을묘사할때그림그리듯이쓰라고조언한다.표현하려는대상―글을쓰려는대상―을마치붓으로그리듯이말이다.어떤대상을묘사하느냐에따라혹은묘사하는순서등에따라글의인상이달라지기때문에,묘사대상과범위,방향과순서는전적으로글쓴이의의도에달렸다.작품의묘사는소재를구체적으로보여줄수도있고,재료와기법의특징을보여줄수도있으며,구도의묘를보여줄수도있다.만약글에서작품을묘사하지않는다면어떻게될까?저자는신윤복의「미인도」를작품의묘사를생략한글과그렇지않는글을비교해싣고있다.
“혜원신윤복의「미인도」는당시‘섹시스타’이자‘패션리더’였던기생의고혹적인자태를그린걸작이다.조선시대후기미인의전형으로거론될만큼아름답다.게다가단아한모습과달리에로틱하기까지하다.”(「작품을묘사하자」,159쪽)
“단정하게빗은가체에둥근얼굴,가느다란실눈썹과쌍꺼풀없는초승달같은눈,다소곳한콧날과앵두같은입술./어린태가물씬풍기는청초한모습이다.게다가수줍은듯매만지는삼작노리개와옷고름,짧은저고리에펑퍼짐한치마가상체를더욱작아보이게한다.”(같은곳,160쪽)
앞의글은「미인도」를묘사하지않고‘섹시스타’‘패션리더’라고하지만독자는그것에공감하지못한다.작품묘사가빠졌기때문이다.이때뒷글의묘사를더하면,앞의글은비로소단단해진다.
미술글쓰기에서빼놓을수없는요소중작가정보와제작연도가있다.작가정보에는작가가활동한시대적배경을아는데필요한생몰연도와작가의예술적스타일을짐작케하는작품세계,여기에더해작가의극적인개인사를덧붙여묘사하면작품이한결풍성하게보인다.제작연도또한미술사나역사적배경과떼려야뗄수없는관계에있기때문에주의깊게살펴볼필요가있다는이야기다.
사례로배우는에피소드와이슈,비교,엮어서쓰기
4장은글감으로쓸수있는재료와노하우를소개하며,구체적인사례를실었다.가장효과적인글쓰기재료는각종에피소드다.에피소드는작가와감상자,작품과감상자를맺어주는일종의접착제역할을한다.유명작가에게는매력적인에피소드가따라다니게마련인데,작가에관한에피소드,작품에관한에피소드,소재에관한에피소드,감상자의에피소드로나누어소개하고있다.예를들어‘질병이낳고,질병이키운화가’앙리마티스를작가에관한에피소드로소개한다.마티스는맹장염으로인한합병증으로법률사무소를다니지못하게되자화가의길을걷게되었는데,엎친데덮친격으로노년에받은결장암수술로인해작품스타일에변경을가할수밖에없었다.수술후유증으로탈장에손떨림까지생겨더는붓을들수없게되자그의시그니처가된종이콜라주로작품의방향을틀었다.
작품을도구로사용하는것도가능하다.창의력개발과자기계발전략,재테크나경영의비법,연애의기술등작품에서필요한지혜를추출하면된다.서로비교해서써보는것도요령이다.작가와작가,작품과작품,소재와소재,기법과기법등유사한요소끼리비교하면작품의특징이잘드러난다.시공을넘나들며,동일한소재를엮어서쓸수도있다.
이장은다양한글쓰기재료와요령을적용한글들로,읽는재미는덤이다.
독자를춤추게하는제목짓기와용어풀이,고치기
5장에서는미술글쓰기에필요한요소들을다룬다.제목짓기,용어풀이,고쳐쓰기등이대표적이다.제목은글의화룡점정이다.글은제목짓기로마감되기때문이다.독자가글속으로진입하게끔제목과유능한‘삐끼’같은소제목으로유혹해야한다.제목을짓기위해서는글의핵심이되는1~3개의키워드를뽑은후핵심키워드를중심에두고문장을만드는것이다.흥행한영화제목,베스트셀러책제목,유행어와독자친화적인입말로작성한제목은글에대한친화력을높여준다.
또한미술글쓰기에서미술용어를빼놓을수는없다.일반인을대상으로한글쓰기라면미술용어를친절히설명해주어야한다.그렇지않으면독자는미술용어사전을찾아보거나구글링하는번거로움을치뤄야한다.글속에서용어풀이식으로용어의앞이나문장의뒤에서설명해주는방법이있다.
글쓰기에앞서독자를먼저정하는것도중요하다.독자대상이글의체형과체질을결정하기때문이다.독자가다르면내용과표현법이달라져야하므로,먼저독자를정하고나면글쓰기의방향과묘사의수위,용어선정,문장스타일등을어떻게해야할지를가늠할수있게된다.
글쓰기는글고치기다.많이고친글이좋은글이다.처음글을쓰기가어렵다면,생각나는대로메모를해보는방법도있다.메모노트가없다면휴대폰메모장을이용해한두마디,한두줄정도로습관을들이는것으로도충분하다고전한다.메모를토대로초고를쓰고,초고를고치고또고친다.초고는사적인언어여서,수많은고치기를거쳐공적인언어로,즉한편의쓰고싶은글로완성된다.
그림감상이글이되고책이되는
저자는시종일관‘작품감상의완성은글쓰기’라는화두로,미술을도구삼아자신의경험과감정을드러내는감성적인글쓰기에대한노하우를들려준다.미술글쓰기는미술작품을감상한후자신의소감을쓰면서,감상의디테일을더하는일이다.나아가,이과정은미술감상이글을넘어서책이되는것이기도하다.저자는미술에관한책은누구나쓸수있다고자신한다.미술에대한전문지식이없다고주저하지말고당장글쓰기를시도해보기를권한다.현학적이아닌,자신만의시각과느낌을고스란히반영하면된다고말한다.
“글쓰기는자기표현입니다.글이라는매체를통해자기생각을드러내는일입니다.미술글쓰기는‘미술’과‘글쓰기’의합성답게,글을쓰되미술에관해쓴다는뜻입니다.드넓은글쓰기의영역에서한분야에집중하는셈입니다.그러려면미술의특성과미술이글이되기위한요건등에관해알아야합니다.그러면글쓰기의일반적인원리를적용하여나름읽을만한글을쓸수있습니다.미술글쓰기가이드북이따로필요한이유입니다.누구의이야기도아닌자기이야기를하는것이죠.글로미술을소화하면,작품은‘나의것’이됩니다.자신의숨결을불어넣고자신만의색깔을입히면,연인과함께본그림이라도‘나의그림’이됩니다.최고의작품감상은쓰기입니다.”(「마치며」,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