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주체 (한국 회화사의 에이전시(agency)를 찾다)

예술의 주체 (한국 회화사의 에이전시(agency)를 찾다)

$25.83
Description
예술작품 너머의 주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이전시’를 통해 본 한국 회화사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듯이, 『예술의 주체』도 다른 곳에 서서 ‘한국 회화사’라는 풍경을 다르게 보여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영국의 인류학자 알프레드 젤(Alfred Gell, 1945~97)의 이론이다.

일찍이 젤은 예술이라는 매체 혹은 물성이 가지는 시각적 매력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천착한 바 있다. 젤의 이론은 사후에 출판된 『예술과 에이전시: 인류학적 이론(Art and Agency: an Anthropological Theory)』(1988)을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예술작품 너머에 있는 예술의 사회성이나 예술을 둘러싼 정치성, 예술가를 지지하는 후원자와 소비자 등의 요소에 주목했다. 젤은 이들 요소야말로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기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관계망으로 보았다.

사회적 관계망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감상하고 사용하는 과정에 일종의 ‘힘’이 있다고 상정하고, 이 ‘힘’을 ‘에이전시(agency, 행위자성 혹은 행위력)’로, 에이전시를 발휘하는 주체를 ‘에이전트(agent, 행위자 혹은 동작주)’라고 정의했다. 에이전시를 발휘하는 주체로서 에이전트를 찾고 에이전시를 표현하는 관계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지표(index)’, ‘예술가(artist)’, ‘원형(prototype)’, ‘수령자(recipient)’라는 네 가지 요소 간의 인과관계에 주목했다.

『예술의 주체』는 ‘동아시아 회화사 연구’ 시리즈의 두 번째 결실이다. 한국 회화사의 ‘만들어진 전통’ 다시 보기를 시도한 첫 책 『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고연희 엮음, 고연희·이경화·유재빈·김소연·김지혜·김수진·서윤정 지음)은 신윤복의 「미인도」 같은 명화와 겸재 정선, 표암 강세황, 호생관 최북,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같은 대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집중하며 한국 회화사 논의에 굵은 획을 그었다. 이번 책은 9인의 연구자가 한국 회화사를 ‘매체’, ‘왕권’, ‘이미지’라는 세 가지 주체로 나누어, 젤의 에이전시 이론을 적용한 득의의 결과물이다. 먼저 매체라는 주체는 물질지표에 대한 에이전시 연구로, 매체적 물질이 연구 대상이다. 둘째, 왕권이라는 주체는 조선의 왕권을 둘러싼 힘을 발현하는 에이전시가 연구 대상이다. 셋째, 이미지라는 주체는 특정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에이전시가 행사한 경우가 연구 대상이다.
저자

고연희

이화여자대학교국문과에서겸재정선을주제로박사논문을쓴뒤,같은대학교미술사학과에서영모화초화의정치적성격을주제로박사논문을썼다.한국문학과회화를함께연구하고강의하면서,민족문화연구원(고려대),한국문화연구원(이화여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서울대)연구교수,시카고대학교객원연구원을지냈으며,지금은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과에재직하고있다.저서로『조선시대산수화』『그림,문학에취하다』『화상찬으로읽는사대부의초상화』등이있고,공저로『명화의탄생대가의발견』등이있다.

목차

머리글

매체

1.그들의시축(詩軸)을위하여붙여진「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_고연희

ㆍ‘시축’이예술제작의주체였다?
ㆍ세종시절의시축문화
ㆍ『몽유도원도시축』계획에서완성까지
ㆍ‘시축’이발휘했던에이전시

2.청록(靑綠):도가의선약,선계의표상
-조선중기청록산수화의제작에대한소고_유미나

ㆍ청록,신선세계를나타내는색채
ㆍ청록계열의다채로운색채와안료
ㆍ청록의석약(石藥)이지니는불로장생의효능
ㆍ조선중기도교의부상과청록에대한관심
ㆍ조선중기청록산수화의활발한제작

3.일제강점기,유리건판사진은어떻게고미술을재현했을까?_김계원

ㆍ유리건판,지식의생산에매개하다
ㆍ카메라,유물앞에서다
ㆍ사진,촉탁연구자의조사체계를만들다
ㆍ사진,모사도와협력하다
ㆍ사진가,유물촬영의테크닉을개발하다
ㆍ사진,유물을가치중립적인이미지로연출하다
ㆍ유리건판,현해탄사이에맴돌다

왕권

4.왕의이름으로
-이성계(1335~1408)의삶과자취를따라본관련유물과예술_서윤정

ㆍ행위자성:예술을둘러싼다양한존재의활동
ㆍ어진:왕과같은존재,물건-행위자
ㆍ함경도:이성계의이름으로성역화된풍패지향(豊沛之鄕)
ㆍ함흥본궁소나무와이성계유품:신령한물질적매개체,물건-행위자
ㆍ금강산출토이성계발원사리장엄구:예술의후원자,행위자성의발현
ㆍ건원릉,전설이된태조

5.움직이는어진
-태조어진(太祖御眞)의이동과그효과_유재빈

ㆍ조선초기태조진전의성립과어진의이동
ㆍ선조연간태조어진의피난과포상
ㆍ광해군연간태조어진의입성과영접
ㆍ인조연간태조어진의소실과위안제
ㆍ이동을통해강화된어진의행위력

6.병풍속의병풍
-왕실구성원의지위·서열·책무를위한표상_김수진

ㆍ연향에놓인병풍,연향을기록한병풍
ㆍ연향에참석한왕실구성원과병풍
ㆍ의궤에기록된왕실구성원의자리와병풍
ㆍ왕실여성을위해펼쳐진병풍
ㆍ연향에놓인십장생병과서병의다양한용도
ㆍ왕관의무게를견뎌라,왕세자와왕세자빈을위한병풍
ㆍ계병속장병의기능과의미
ㆍ병풍을소유한이들,병풍을본이들
ㆍ장병·의궤·계병의삼부작(三部作)

이미지

7.와전을그리다
-와당과전돌은어떻게예술이되었는가_김소연

ㆍ오래된건축재료를예술로재현하다
ㆍ와전을옮겨그리다
ㆍ먼저와전을그린책이있었다
ㆍ와전을두드리고본뜨다
ㆍ우리와전으로눈을돌리다
ㆍ와전을비단에수놓다
ㆍ깨진기와도다시보자

8.연출된권력,각인된이미지
-에도시대(江戶時代)조선통신사이미지의형성과위력_이정은

ㆍ조선통신사의행위력(agency):일본에서조선통신사는어떻게수용되었을까
ㆍ행렬의연출:통신사를둘러싼다양한사회적주체
ㆍ삽입된조선통신사행렬:에도초기시각화된조선통신사와도쿠가와막부
ㆍ통신사의닛코‘참배’와「도쇼다이곤겐엔기」
ㆍ이미지의소유와과시:도쿠가와막부에서교토조정으로보낸선물
ㆍ이미지의유포와명성의확산:센뉴지가이초
ㆍ축제가된이국인행렬

9.신사의시대
-근대기광고로읽는남성이미지_김지혜

ㆍ1920년대신사의하루
ㆍ신사라는용어
ㆍ신사의탄생
ㆍ신사만들기,광고속신사이미지
ㆍ양복이없으면신사가아니다:신사의유행복,의복광고이미지
ㆍ남자도화장하는시대:신사의미용법,화장품광고이미지
ㆍ신사의취향,기호품광고이미지
ㆍ꼴불견의신사들,현실속의신사이미지
ㆍ양복신사라는못된유행,사치와허영의신사이미지
ㆍ식민지신사의한계
ㆍ불완전한근대의신사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시축에붙여진‘조연’로서의「몽유도원도」

젤의이론으로조선시대전기의걸작「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보면,안견(安堅,?~?)의「몽유도원도」는예술작품으로서의평가가아닌시축(詩軸)을제작하는데기여한측면에시선이가닿는다.다시말해,시축이라는매체가그것을계획하고기여하고향유한사람들에게끼친에이전시측면에서바라보게된다.이렇게되면「몽유도원도」는『몽유도원도시축』의중심에서비켜서서시축의격조를도와주는보조장치로전이한다.그동안“시축속시문의위상보다그림의위상을더욱높았다고보았던관점은,순수예술품의가치를높이보고자하는근현대기의선입견(先入見)”(45쪽)이었음이동시에드러난다.시축을구성하는시문들중에「몽유도원도」를칭송한부분은매우적고칭송에도인색하다.이는당시선비들의안중에「몽유도원도」는없었음을의미한다.그래서이주제의제목도「그들의시축(詩軸)을위하여붙여진「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지은이는“조선전기의‘시축’문화의이해속에서「몽유도원도」가포함된『몽유도원도시축』의제작과정을논하고이를통하여「몽유도원도」의속성을파악”(23쪽)하고자한다.

시축은조선전기왕실을중심으로만들어진,문사들의시가적혀있는두루마리,즉시권(詩卷)에축(軸)이장식된물건이다.보통시축은계획하는사람과여러사람의협업으로이루어진다.여기서의문점하나.조선조세종연간에「몽유도원도」라는그림뒤에하필이면시축이라는두루마리라는매체를선택하여그림이아닌시와글로서안평대군의꿈과사람됨을칭송했을까하는의문이든다.백과사전을예로들면시대에따라매체가종이책으로,시디(CD)로,지금은웹으로이동해갔듯이,두루마리는당대인이선호한매체에불과할뿐이었다.여기서지은이고연희는“시대마다선호하는매체가있으니그매체의속성을이해하는것은그시대의문화를이해하는통로”라고귀띔한다.

“세종조왕실에서시축제작에적극적이었던안평대군은자신의행위와인격을미화하는주제의시축을만들기위해‘몽유도원도시축’을고안한것으로보인다.시축을만들기위해서는기념할만한사건으로문인의공감을이끌어내시를받아야한다는것을그는잘알고있었다.여기서안평대군은스스로‘꿈(夢)’을꾸어‘도원(桃源)’을다녀왔다는행위를기념비적사건으로제시했다.실제로아무것도하지않은행위인‘꿈’,실체를확인할수없는공간‘도원’의두가지주제를조합하여내세운주제다.이는당시문인의관심을이끌고그들의넉넉한호평을받아내기에적절하고효과적인주제였고,안평대군은그것을알고있었다.안평대군은이시축의권축에놓을자신의글「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에서,1447년음력4월20일에꿈을꾸었고,안견에게그림을명(命)하여꿈을꾼지사흘후에(夢後三日)그림이완성되었다고했다.그림이완성된후곧자신의「몽유도원기」를지었다는뜻이다.그다음에안평대군은무엇을했을까?안평대군은박팽년을찾아서「서(序)」를부탁했다.”(39쪽)

시축이라는무생명체가의지를가진존재로어떤‘힘’을발휘한다는현실적모순은,젤의이론처럼누군가의소망과의도가특정매체에반영되면그매체의에이전시가발휘한다는것이다.이글에서고연희는시축의에이전시속에서「몽유도원도」가피동적으로제작되고감상되는양상을다루고있는데,이방법론을통해조선시대예술문화가어떻게제작·유통되고감상되는지의과정을짚고있다.


안료인‘청록’으로본청록산수화의비의

동아시아회화안료의하나인청록(靑綠)을대상화한지은이는청록이라는색채가지닌속성이발휘하는에이전시에주목한다.「청록(靑綠):도가의선약,선계의표상-조선중기청록산수화의제작에대한소고」는청록의색채와안료가선계(仙界)를상징한다는점에초점을맞추어그연결고리가이어진내력에대해살펴보고,그것이미술작품의제작과관련된사회적관계망에서능동적행위력(agency)을발휘했음을이야기한다.

수묵화가발달했던조선중기의화단은절파화풍의산수인물화가지배하고있었는데,수묵과대비되는채색화가유행한배경으로,지은이는조선중기를조선시대회화사에서청록의행위력이돋보였던시기로지목한다.실제로화단에서는수준높은청록산수화가다수그려지기도했다.예를들면신선들의잔치인요지연도(瑤池宴圖)와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양식의계회도병풍이유행하기도했다.또한청록산수화의안료를이루는남동광·공작석이도가의단약에들어가는약재이기도하며,청록의색감이선계의표상이된사회적관계를분석한다.즉청록의색채가도가의선약이자선계의표상임을문화사적맥락에서다루고있다

“사상과문학에서도교에대한관심이갑자기확대된것을청록산수화와바로연결짓기는어렵지만청록색조로상징되는선계의이미지가형성되는데기여했을것으로여겨진다.문학부문에서선경을묘사한수사(修辭)중에는유독‘벽(碧)’·‘취(翠)’·‘창(蒼)’·‘청(靑)’·‘녹(綠)’의색채어가적극사용된점을주목할만하다.예를들어신선이사는도관(道觀)을벽동(碧洞)이라했고,선계의복숭아를‘벽도(碧桃)’,그꽃을‘벽도화(碧桃花)’라고했다.신선은‘녹발옹(綠髮翁)’,선동(仙童)은‘청동(靑童)’,신선이나도사가타고다니는소는‘청우(靑牛)’라일컬었다./예를들어문신정온(鄭蘊,1569~1641)의시문중에한무제의고사를주제로지은부(賦)「자리를펴놓고신선을기다리다(設坐候仙官)」에서는곤륜산을‘비취색(翡翠色)’으로묘사했고,‘벽옥’·‘청하’등의시어를사용했다.”(73~74쪽)


일제강점기고미술을재현한유리건판사진

지은이들의시선은일제강점기의유리건판사진에도미친다.「일제강점기,유리건판사진은어떻게고미술을재현했을까?」는일제강점기지식을생산하는데매개역할을한유리건판사진의에이전시를다룬다.일제강점기고적(古蹟)조사를할당시유리건판사진은유물을새로운방식으로기록하고조사하는수단이자,그결과물을체계화하는과정에능동적으로개입했다.여기서사진은행위력,즉에이전시가된다.20세기초유리건판사진은실증주의적객관성을추구하던역사주의의지식정보수단이라는시대적매체로등장하였으며,유리건판은당시세키노다다시(關野貞,1867~1935)로대표되는일본의식민지유물조사의수단이되었고,이후미술사담론과제도를구성하는물질적매개가되었다.또한고구려벽화가근현대의연구자와예술가에게전달되는과정에서벌어진굴곡진역사에대하여촉탁연구자,모사도,촬영자라는세축이유리건판사진을통해연결망이이어진다.

“1910년한일병합조약이체결되자,총독부관할하에전국토를망라하는고적조사가본격화되었다.고구려벽화고분에서경주의천마총까지한반도의고대사를구성하는유물과미술품이일본을경유한서구의학문체계속에서발굴ㆍ조사ㆍ평가되기시작했다.이는한국의고미술과고건축이최초로카메라앞에노출되어기록된순간이기도했다.1941~45년까지총독부박물관주임(관장)을역임한고고학자아리미쓰교이치(有光教一,1907~2011)는식민지에서의발굴조사가권력이나이데올로기와무관한,그저“필드가한국이었을뿐”인일반적인조사활동으로회고한다.그러나연구자에게있어학문의중립성여부를떠나,제도와정책의실행권을제국이가진이상,식민지는제국을위한실습장이될수밖에없었다.지리적근접국인조선이가진장점은다양했다.사람의이동이어렵지않았고,각종조사도구및카메라와유리건판을비롯한사진기자재,그리고결과물로서의이미지의이동(모사본,스케치,사진등)또한비교적수월하게진행되었다.”(87쪽)

조선의왕권과태조어진,그리고병풍을둘러싼에이전시

조선의창업군주이성계.그의잠저(潛邸)시절부터군주로서의태조,왕위에서물러나함흥본궁으로돌아갈때까지그의굴곡진삶을회화,사적,각종유물에에이전시로발현되는양상을다룬글도있다.「왕의이름으로-이성계(1335~1408)의삶과자취를따라본관련유물과예술」은역사,회화,도자,공예등의분야에서개별적으로다루어진이성계와관련한유적과예술품을이성계의행위자성이라는관점에서바라본다.여기에서시각적지표로서이성계는인간-행위자가되고,이성계와관련한어진,역사,회화등의지표는물건-행위자가된다.

”어진이훼손되거나소실되었을때,어진을다른곳으로이송할때에는실제국왕이상을당한것처럼애통해하거나,실제로이별하는것과같은슬픔을의례로표현하기도했다.인조9년(1631)집경전화재로태조어진이진전과함께불타사라지자조정에서는이를매우중대한손실로여기고인조를비롯하여자전,내전빈궁모두3일동안소복을입고지냈으며,숭전전에서망곡례(望哭禮)를거행했다.”(125쪽)

또한조선태조이성계의어진(御眞)은한양을비롯해전국5곳,즉영흥의준원전,개성의목청전,전주의경기전,경주의집경전,평양의영숭전에모셨기때문에한반도전역으로이동했다.이른바태조어진은조선전시기에걸쳐40여차례나움직였다.목적은초상화의보존이었다.여기에서태조는원형(prototype),어진은지표(index),국왕은제작자(artist),어진을접하는모든이는수용자(recipient)가된다.「움직이는어진-태조어진(太祖御眞)의이동과그효과」에서자세히다루었다.

이성계의태조어진은자체로왕실의권위를강화하는수단이었고,양란전후어진을이동하는의례를통해세자승계에활용하는등정치적효과를노리는목적도있었다.반면어진행차가지체되면왕권이흔들리기도했으며,어진이소실되면어진에대고3일동안소복을입고곡(哭)을했으며어진을이송하는담당관리는처벌을받기도했다.

병풍도에이전시의관점으로보면의미심장해진다.「병풍속의병풍-왕실구성원의지위·서열·책무를위한표상」이그것.조선왕실에서는경사에는으레연향((宴享)을베풀었고행사장에는병풍을둘렀다.왕실연향은기록화형식으로그려진계병(稧屛,契屛·禊屛,행사를기념하기위해꾸민병풍),즉행사장을의장하는장병(裝屛,粧屛)과그내용을기록한의궤를통해서도알수있다.연향에놓인병풍의위치에따라왕실구성원의존재와위상이다름을알수있으며,이는왕실연향을받는이와바치는이의상대적위치를강화하는역할을한다.병풍에는왕실여성만을위한것과왕세자와왕세자빈을위한것등이있는데,여기서병풍이원형(prototype)으로기능하고,행사의주인공은수령자(recipient)가된다.


‘와전’이라는매개물의힘과에도시대조선통신사의행위력

고대건축재료인와당(瓦當)과와전(瓦塼)은가옥의외부를장식하던기능적인용도에서그후평면적인예술작품이라할수있는‘와전임모도’와‘와전탁본도’로재현되었다.와전은기와와전돌을말하는데,문자가새겨진와전은수천년전도공의손에의해만들어진후,그것을모사하고금석학적인해석이덧붙여졌다.여기서서예가이기도한위창(葦滄)오세창(吳世昌,1864~1953)의존재를간과할수는없다.오세창은1920년대초부터와전임모도를제작한것으로알려져있는데,화면에여유가있고구획이분명해배열이반듯한점이특징적이다.그는단지와전이라는형상을임모하고탁본하는데머물지않고,와전과와전문의연원을밝혀냄은물론그림속에서이미지와글씨체가조화와균형을이루는감상물로서,조형미를갖춘예술품와전임모도를그려냈다.「와전을그리다-와당과전돌은어떻게예술이되었는가」의내용이다.

“주로진한와당과전문(塼文),금문(金文)을한화면에구성하여6폭내지12폭까지의병풍을꾸몄는데,각화면은상단-중단-하단의3단구성,혹은상단-하단의2단구성을보인다.이경우와당은화면상단이나중단에배치하고,하단에는종정의명문을배치하는경우가일반적이다.윤곽선이두드러지는원형와당이시각적으로부각되기마련이므로화면의무게중심을안정적으로구성한때문일것이다.”(247쪽)

다음은「연출된권력,각인된이미지-에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