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적인관점으로,민화의‘어떻게’에주목하다
저자는‘민화는회화다’라는관점으로20년넘게민화를수집해온컬렉터다.민화외의고미술수집경력까지치면40여년간컬렉터의길을걸어왔다.2018년에는자신의민화수집품으로예술의전당서예박물관과세종문화회관미술관(전관),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6개월여동안순회전〈김세종민화컬렉션ㅡ판타지아조선〉을가지며,민화수집의진수를보여준바있다.
저자는민화를민예가아닌순수회화로감상한다.그동안의민화감상이화폭에‘무엇을표현했는가’하는상징성찾기에쏠려조형적인측면을등한시해왔다면,저자는소재를‘어떻게표현했는가’에주목한다.그러면서작가의창작품으로서민화의조형미를탐닉한다.
“민화예술의근본은무엇을그렸냐가아니라어떻게그렸냐가아닐까한다.역사적인연구나상징성에대한논의에편중되면,민화가아름다운미술로,회화적인관점으로감상하는데그것이걸림돌로작용할수있다.지금은아직도미지의영역으로남아있는,어떻게그렸는지에주목할때다.내용에서형식으로,상징성에서회화성으로관점의이동이필요하다.그래야만민화에대한균형잡힌,입체적인이해가가능해진다.”(61-63쪽)
저자가두명의천재작가를발견한것도,집요한수집체험과진득한감상의결실이다.민화는야나기가특색으로언급한‘무명화가’의그림이라는논리에갇혀,우리나라에서조차푸대접을받고있다.그런데미국3대미술관의하나인시카고미술관의주요컬렉션도록에는폴세잔(1839~1906),빈센트반고흐(1853~90),조르주쇠라(1859~91)등의작품과책거리가나란히실려서놀라움을안겨준다.이는무명화가의작품일지언정,해외에서는저자처럼조선민화책거리를회화로보고작품성으로평가한다는뜻이다.이책거리작품이바로자자가발견한책거리천재작가의작품이다.
호랑이는사후에가죽을남기지만작가는사후에작품을남긴다.‘작가’가작품으로말하는존재라면,작품은곧작가가된다.민화는흔히무명의떠돌이작가가그린것으로알려져있다.민화작가들이작품에낙관같은일체의흔적을남기지않았기때문이다.혼신을다해서그린작품만주인잃은강아지처럼남았다.저자는이들중작품성이뛰어난일부는익명이아니었을까한다.작가가피치못할사정이있어서자신을감추었다고말이다.동양미술사에서는작가의익명성이예술적인가치를떨어뜨린다고보지않았다.오히려익명성으로인해,작품을시대나민족적미감이깃든조형의보고로여겼다.도자사(陶瓷史)가‘인명없는미술사’로는대표적인데,민화도이런시각으로볼수있다.한결같은솜씨와수준의작품들은익명성에무게를싣고,시대의미감을한차원승화시킨작가의존재를당당하게증언한다.
작품은작가의생각이자조형적진술이고,사상(思想)이다.익명성의조선민화는작가를통해작품으로나아가기보다작품을통해작가로나아가야한다.이제조선민화는상징물의집합체로보는데서벗어나회화로,작품성으로감상할필요가있다.답을찾듯이소재의상징성을좇다보면,풍부한회화성을놓칠수가있다.
조선민화의현실과두천재작가와의인연
조선민화의미스터리천재작가두명을소개하는이책은전체3부로구성되어있다.
1부격인「나는조선민화의천재작가를찾았다」에서는조선민화에대한생각과수집이야기를들려준뒤,두명의조선민화천재작가와의인연을밝힌다.2부격인「조선민화의책거리천재작가를만나다」와3부격인「조선민화의모든장르를그린천재작가를만나다」에서는두천재작가의다양한작품들을보여주고조형적인동질성을자세히짚어준다.책의비중은2,3부에실려있다.
먼저,1부는조선민화와궁중민화(궁중화),민화의영문표기문제,수집철학,조선민화대중화의걸림돌,민화의세계화등에관한생각을피력한다.그리고두천재작가와의우연한만남과경이로움을들려준다.
이책에서저자는19세기말에서20세기초의민화를,오늘날의‘현대민화’와구분짓고화려한‘궁중민화’와구별하기위해‘조선민화’로지칭한다.그리고현재까지‘한지붕두가족’꼴로어정쩡하게묶여있는조선민화와궁중민화를서로독립시켜제자리를찾아줄필요가있음을역설한다.
천재작가의발견은기이한책거리병풍과의만남이시작이었다.완전기하학적인추상으로조형된문제의책거리는저자가한번도같은유형을본적이없는불가사의한작품이었다.홀린듯이구입하고서도확신이서지않아서한달후에병풍을펼쳐보고,수많은민화도록을뒤졌다고한다.동일한유형의책거리를찾기위해서였다.그결과,프랑스기메동양박물관소장품에서같은종류의책거리를접하고,이걸출한책거리천재작가의작품을눈에띄는대로수집하고도판을모은다.
조선민화의모든장르(畵目)에서재능을보인천재작가와의인연도운명적이었다.그의‘화조도’를마음에둔지18년만에,작품스타일이전혀다른이작가의‘문자도’와만난다.비록그림의유형은화조도와다른문자도였지만저자는직관적으로같은작가의솜씨임을알아본다.그리고다양한자료를바탕으로두작품의조형적인동질성을비교해보니,분명조형유전자가같은혈육이었다.저자는이를계기로,자신이소장한민화와민화도록에서열댓점의작품을찾아낸다.
기하학적인추상의책거리천재작가
2부는앞서언급한,책거리에서발군의솜씨를보여주는천재작가(이하‘책거리천재작가’로약칭)편이다.저자는기하학적인선묘구사에한치의오차도허용하지않는책거리작품을수집하며,국내외에흩어져있는동일한스타일의책거리를모아서자세히관찰한결과,같은작가의작품을밝혀낸다.그렇게찾아낸책거리가18점이다.이들작품은여러곳에흩어져있는탓에,같은작가의작품임에누구도주목하지않았다.개인,갤러리,조선민화박물관,가회민화박물관,삼성미술관리움,시카고미술관,기메동양박물관등이주요소장처이다.관찰방법은한작가의특성이담긴조형유전자를추출하여비교하는식이었다.마치유전자감식으로친자를확인하듯이동일한조형유전자를찾아서제시한다.
“나는작가의고유한손맛이담긴이미지를‘조형유전자’라고일컫는다.익명성을표방했더라도작가는지문처럼화면곳곳에자신의조형적취향과습관을흘린다.그흔적을찾아대조하고비교해보면,특유의표현방식이낳은조형적동질성을확인할수있다.”(398쪽)
저자는자신이찾아낸조형적인특징을조목조목짚어준다.구구절절설명하기보다독자가직접보고확인할수있게같은유형을모아서수많은도판으로편집했다.단한점도동일한작품이없는정교한선묘와문양의현대적인감각과구성력에거듭감탄하게된다.
“이들책거리는이천재작가의천부적인창의력과구성력,표현력,그리고투철한작가정신으로일궈낸조선민화의기하학적인조형유토피아다.”(191쪽)
이책에서저자는기하학적인바둑판문양과세련된조형구성의비교,화병,과일과채소쟁반,새,문양,깃털,대나무같은표현의동질성을구체적인도판으로비교해볼수있게했다.독자는이를통해자연스럽게책거리천재작가의작품세계를확인할수있다.
조선민화의전장르에만능인천재작가
3부는조선민화의전장르에능한만능천재작가(이하‘만능형천재작가’로약칭)편이다.이작가는화조도,문자도,구운몽도,산수화조,산신도등작품의화목과표현의스펙트럼이대단히넓다.조형어법에서도꼼꼼하게그린작품이있는가하면,도저히같은작가의솜씨로보이지않는어눌한작품도있다.그럼에도저자는제각각으로보이는이들작품에서동일한조형유전자를찾아서,한작가의작품으로묶는다.지금까지발견한작품이,『이조의민화』(일본고단샤,1982)에실린유명한화조도병풍을포함하여15점이나된다.
“이작가의작품에서동질성을찾으려할때중점적으로관찰한것은꽃이다.꽃의표현이특이했다.꽃을그냥꽃으로그리지않는다.꽃과꽃을연결하되그중심을선으로꿰거나꽃을반으로나누어,하나의가지에그반쪽짜리꽃을좌우로어긋나게붙여서묘한리듬을만든다.꽃을추상화하여자신만의회화세계를구축하고있다.”(422쪽)
작가는저마다특유의취향이나조형어법이있어서,작품에무의식적으로표출된다.작가는타인이흉내낼수없는개성적인‘수적(手跡,manner)’으로,비로소작가로등극한다.이름을숨기거나이름이없더라도조형어법을보면,해당작가의정체를짐작할수있다.수많은민화를수집해온저자는직관적으로동질성을지닌작품들의조형유전자를찾아냈다.만능형천재작가만이표현가능한모티브나선과색,구성에깃든조형유전자를뽑아서작품과작품의연결고리를찾아조형적핏줄을증명했다.그래서독자는화조도와문자도,문자도와문자도,꽃과꽃잎,새그림사이의동질성,토대위에꽃과나무를그리는동질성을비교하며,다채로운작품세계를즐길수있다.
‘책거리천재작가’와‘만능형천재작가’의걸출한작품세계
이들책거리천재작가와만능형천재작가는작품스타일이대조적이다.책거리천재작가가하나의화목을깊게파고드는스타일이라면,만능형천재작가는여러화목을넘나들며넓게펼치는스타일이다.책거리천재작가가심화형이라면,만능형천재작가는확장형이다.책거리천재작가의필치가정교하다면,만능형천재작가는자유분방하다.그럼에도두천재작가의작품세계에는공통적으로,같은작품이하나도없다.두작가는새로운작품을시작할때마다편안한길을답습하기보다도전하듯이기존의작품과다른작품을창작한다.이는이들이투철한작가의식의소유자임을의미한다.
민화컬렉터로서천부적인재능을지닌두천재작가의존재를찾아낸저자는,관련학자들의적극적인관심과연구를기대하며이렇게밝힌다.
“만약작품의조형적유전자를통해작품성을확인하고,그들을작가로인정한다면,조선민화는강고한민예의감옥에서벗어날수있고,회화로거듭날수있다.그렇게작가의회화작품으로당당히자리매김하는것,그것이내가이책을쓰는목적이고희망이다.”(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