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서문을 쓰는 날이 하필 생일이다. 팔굽혀펴기를 이 나이만큼 할 수 있으면 좋으련
만 세월은 속절없이 힘줄을 앗아 간다. 근육뿐인가, 감수성도 총기도 팔팔할 때에 비
하면 애처로울 정도다. 나이와 함께 세상을 보는 안목이 깊어진다는 말은 허튼소리
다. 더 자주 섭섭하고 쓴소리에 쉽게 발끈한다. 그래도 건진 게 있다면 세상일에 장
담할 건 없다는 깨우침이다.
두 번째 서문을 쓰면서 마지막이라 생각했었다. 더 채울 내용이 없다고 내심 장
담했는데, 채 2년이 되지 않아 새로운 판의 서문을 쓰고 있다. 그 짧은 동안에도
세상은 벼락처럼 바뀌었다. 빙하기 같았던 팬데믹이 지나자 AI가 본격적으로 인
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제 AI에게 야구의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허드렛일
이다. 일부 종목은 AI가 경기를 해설한다. 스포츠 판에서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람(人) 사는 모양(文)이 인문(人文)이라면 스포츠는 인문학이다. 승리에 웃고
패배에 울고, 땀을 숭상하고 자만을 꾸짖는 스포츠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
이다. 거기에 행위의 시시비비까지 가리니 스포츠 윤리학은 인문의 속살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에도 스포츠 윤리학은 지금껏 낯설고 생경하다. 여전히 학
문의 시민권을 얻지 못한 채 홀로 야위고 처량하다.
그래서 이번 판에서는 사람의 무늬와 속살을 더 많이 채워 넣었다. ‘선수 인권’을
새로운 장으로 구성하고, 스포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크게 보강하였다. 이 정
도 라인업이면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다. 복화술처럼 윤리학을 말하되 스포
츠를 이야기하고, 그리하여 스포츠가 깊이 있는 인간 활동임을 전하고 싶었던 초심
도 유지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서문을 궁리하는 내내 헛헛하였다. 내 것인데도 내 것 아닌 책의 생리 때
문인지 모른다. 홀가분하면서 자꾸 뒤돌아보는 별리(別離)가 얄궂다. 지금 읽고 있
는 하루키의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머리 위에 접시를 이고 있을 때는 하늘을 쳐
다보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 나는 ”머리 위에 접시를 얹고 있으면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로 읽힌다. 오랫동안 내 머리 위에 얹혀 있던 접시를 이윽고 내려놓는다.
목을 풀고 이제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
2025년 11월
저 자 김 정 효
만 세월은 속절없이 힘줄을 앗아 간다. 근육뿐인가, 감수성도 총기도 팔팔할 때에 비
하면 애처로울 정도다. 나이와 함께 세상을 보는 안목이 깊어진다는 말은 허튼소리
다. 더 자주 섭섭하고 쓴소리에 쉽게 발끈한다. 그래도 건진 게 있다면 세상일에 장
담할 건 없다는 깨우침이다.
두 번째 서문을 쓰면서 마지막이라 생각했었다. 더 채울 내용이 없다고 내심 장
담했는데, 채 2년이 되지 않아 새로운 판의 서문을 쓰고 있다. 그 짧은 동안에도
세상은 벼락처럼 바뀌었다. 빙하기 같았던 팬데믹이 지나자 AI가 본격적으로 인
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제 AI에게 야구의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허드렛일
이다. 일부 종목은 AI가 경기를 해설한다. 스포츠 판에서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람(人) 사는 모양(文)이 인문(人文)이라면 스포츠는 인문학이다. 승리에 웃고
패배에 울고, 땀을 숭상하고 자만을 꾸짖는 스포츠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
이다. 거기에 행위의 시시비비까지 가리니 스포츠 윤리학은 인문의 속살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에도 스포츠 윤리학은 지금껏 낯설고 생경하다. 여전히 학
문의 시민권을 얻지 못한 채 홀로 야위고 처량하다.
그래서 이번 판에서는 사람의 무늬와 속살을 더 많이 채워 넣었다. ‘선수 인권’을
새로운 장으로 구성하고, 스포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크게 보강하였다. 이 정
도 라인업이면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다. 복화술처럼 윤리학을 말하되 스포
츠를 이야기하고, 그리하여 스포츠가 깊이 있는 인간 활동임을 전하고 싶었던 초심
도 유지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서문을 궁리하는 내내 헛헛하였다. 내 것인데도 내 것 아닌 책의 생리 때
문인지 모른다. 홀가분하면서 자꾸 뒤돌아보는 별리(別離)가 얄궂다. 지금 읽고 있
는 하루키의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머리 위에 접시를 이고 있을 때는 하늘을 쳐
다보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 나는 ”머리 위에 접시를 얹고 있으면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로 읽힌다. 오랫동안 내 머리 위에 얹혀 있던 접시를 이윽고 내려놓는다.
목을 풀고 이제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
2025년 11월
저 자 김 정 효
스포츠윤리학 Sport Ethics (개정판 3 판)
$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