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바이러스

철조망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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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터벅터벅 50년 세월
내가 쓴 글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처음 발표된 것이 1971년 5월이었다. 내 희곡 〈일설 호질〉이 극단 〈상설무대〉의 정기공연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암 박지원의 〈호질〉을 오늘의 현실로 옮긴 마당놀이 형식의 풍자극이었다. 의욕은 대단했지만, 제대로 된 극장도 아닌 아현동 고갯마루에 있는 허름한 공간에서, 친구들과 함께 창단한 신생 극단이 공연한 소박한 무대였다.
대학교 연극반에 미쳐 지낸 세월의 연속이었지만, 나를 극작가로 세상에 알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무튼 그 작품 덕에 세상이 나를 글쟁이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50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글쟁이가 된지 50년이 된 것이다. 어느새…
이어서 모노드라마 〈어스름 달밤〉, 공해 문제를 다룬 2인극 〈별따기〉 등을 써서 공연했고, 1974년 탈놀이 〈서울말뚝이〉가 극단 〈민예극장〉의 인기 공연 작품이 되면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극작가가 되었다. 탈춤, 판소리, 굿 등 우리 전통 연희의 현대화라는 깃발 아래 극단 민예의 허규 선배를 비롯해 연출가 손진책 등과 죽이 잘 맞아 신바람 나게 놀던 정말 좋은 나날이었다. 내 평생의 스승 극작가 김희창 선생님을 만난 축복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유학이네 이민이네 하면서 바다 건너 떠돌이 나그네로 살면서도 줄기차게 글을 썼다. 광고문안, 신문 잡지 기사, 칼럼부터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 공연대본, 미술책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써서 여기저기에 부지런히 발표했다. 그러니까, 나는 글을 써서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가정을 건사하고 아이들을 키운 ‘생계형 글쟁이’였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책을 25권 넘게 발간했고, 50편의 희곡을 공연하거나 연극잡지에 발표했다. 딱히 내세워 자랑할 만한 책도 없고, 대단한 화제작도 못 낸 허름한 글쟁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하늘이 주신 복이려니 여겨 허리 꺾어 절한다.
물론,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없을 리 없다. 가득하다. 특히, 희곡을 계속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크다.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나그네 타향살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나는 희곡을 문학작품이라기보다 공연대본이라고 생각하며 써왔기 때문에 현실과 밀착하지 않은 글을 쓸 수도 없었고, 공연되지 못할 희곡도 쓰기 어려웠다. 항상 급하게 써야할 글이 밀려 있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도 이민 초기에는 상당히 많은 희곡을 써서 공연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때는 미주 한인연극계도 제법 활발하고 공연도 많았다.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생동감 넘치게 꿈틀거렸다. 그래서 나도 신나게 써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동네 연극판이 메말라가기 시작하더니, 속수무책으로 모래바람 황량한 황무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국 무대를 떠난 지는 너무 오래 되었고, 내가 사는 동네에는 무대가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공중에 떠버린 ‘왕년의 극작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계속 부채의식을 느끼지만, 뾰죽한 방법이 없다. 물론 멋진 작품을 쓰고야 말겠다는 희망은 살아있다.
저자

장소현

-서울대학교미술대학졸업
-일본와세다대학원문학부졸업
-극작가로〈서울말뚝이〉〈한네의승천〉(각색)〈김치국씨환장하다〉〈민들레아리랑〉
〈오!마미〉〈사막에달뜨면〉〈사또〉등50여편을한국과미국에서공연
-시인,미술평론가,언론인등으로활동
-〈고원문학상〉〈미주가톨릭문학상〉수상

-그동안펴낸책
시집:〈서울시나성구〉〈하나됨굿〉〈널문리또랑광대〉〈사탕수수아리랑〉〈사람사랑〉
〈사막에서달팽이를만나다〉〈나무는꿈꾸네〉〈그림과시〉
소설집:〈황영감〉
희곡집:〈서울말뚝이〉〈김치국씨환장하다〉
꽁트집:〈꽁트아메리카〉
미술책:〈툴루즈로트렉〉〈에드바르트뭉크〉〈아메데오모딜리아니〉
〈거리의미술〉〈그림이그립다〉〈동물의미술〉〈그림은사랑이다〉
〈그림과현실〉(공저)〈중국미술사〉(번역)〈예술가의운명〉(번역)〈문화의힘〉
칼럼집:〈사막에서우물파기〉

목차

지은이의앞글:터벅터벅50년세월ㆍ3

첫째마당:내친구발명왕
꿈꾸러기잠꾸러기ㆍ12
골라듣는재미ㆍ24
견물생심차단기ㆍ30
철조망바이러스ㆍ36
신조어자동번역기ㆍ45
조금은특수한십자가ㆍ50
인공지능감시인공지능ㆍ55
암탐색기동대ㆍ58
내친구꿈꾸러기ㆍ63
궁금대감ㆍ66
쓸쓸한산술대감ㆍ68
산술대감의숙제ㆍ80

둘째마당:살벌한금
참곱구나,함께보는노을ㆍ106
살벌한금ㆍ117
춘자야연탄갈아라ㆍ120
베벌리힐스의화약냄새ㆍ125
외로운섬ㆍ136
새롭게태어나기ㆍ139
나이많이자신나무ㆍ153

셋째마당:그위에서셨으니
그의하루ㆍ158
그위에서셨으니ㆍ171
애수의어릿광대ㆍ186
전상도사람경라도사람ㆍ194
음력크리스마스소동ㆍ200
달려라하이네ㆍ208
시험타령ㆍ215
유쾌한길길도사ㆍ223
미대가요합창반ㆍ230

넷째마당:삶과죽음은친구
미리부조ㆍ236
슬쓸히잠들지라도ㆍ241
나는결국죽었다ㆍ244
감사하기사죄하기ㆍ256
삶의다른말ㆍ264
곡비춘서리ㆍ267

지은이의뒷글:꿈꾸러기의꿈ㆍ278

출판사 서평

터벅터벅50년세월

내가쓴글이공식적으로세상에처음발표된것이1971년5월이었다.내희곡〈일설호질〉이극단〈상설무대〉의정기공연작으로무대에올랐다.연암박지원의〈호질〉을오늘의현실로옮긴마당놀이형식의풍자극이었다.의욕은대단했지만,제대로된극장도아닌아현동고갯마루에있는허름한공간에서,친구들과함께창단한신생극단이공연한소박한무대였다.
대학교연극반에미쳐지낸세월의연속이었지만,나를극작가로세상에알린것은그때가처음이었다.아무튼그작품덕에세상이나를글쟁이로인정해주기시작했다.50년전의일이다.그러니까,내가글쟁이가된지50년이된것이다.어느새…
이어서모노드라마〈어스름달밤〉,공해문제를다룬2인극〈별따기〉등을써서공연했고,1974년탈놀이〈서울말뚝이〉가극단〈민예극장〉의인기공연작품이되면서제법이름이알려진극작가가되었다.탈춤,판소리,굿등우리전통연희의현대화라는깃발아래극단민예의허규선배를비롯해연출가손진책등과죽이잘맞아신바람나게놀던정말좋은나날이었다.내평생의스승극작가김희창선생님을만난축복의시절이기도했다.

그후로나는유학이네이민이네하면서바다건너떠돌이나그네로살면서도줄기차게글을썼다.광고문안,신문잡지기사,칼럼부터시나소설같은문학작품,공연대본,미술책에이르기까지가리지않고그야말로닥치는대로써서여기저기에부지런히발표했다.그러니까,나는글을써서지금까지먹고살았고,가정을건사하고아이들을키운‘생계형글쟁이’였던셈이다.그러다보니이런저런책을25권넘게발간했고,50편의희곡을공연하거나연극잡지에발표했다.딱히내세워자랑할만한책도없고,대단한화제작도못낸허름한글쟁이지만,그래도지금까지쉬지않고꾸준히글을쓸수있었던것을감사하고또감사하고행복하게생각한다.하늘이주신복이려니여겨허리꺾어절한다.
물론,미안하고아쉬운마음이없을리없다.가득하다.특히,희곡을계속쓰지못하는것에대한죄의식이크다.구차한변명을하자면,나그네타향살이의한계를뛰어넘지못한것이다.나는희곡을문학작품이라기보다공연대본이라고생각하며써왔기때문에현실과밀착하지않은글을쓸수도없었고,공연되지못할희곡도쓰기어려웠다.항상급하게써야할글이밀려있는것도문제였다.그래도이민초기에는상당히많은희곡을써서공연했다.그나마위안이된다.그때는미주한인연극계도제법활발하고공연도많았다.가난했지만순수하고생동감넘치게꿈틀거렸다.그래서나도신나게써댔다.
하지만언제부턴가이동네연극판이메말라가기시작하더니,속수무책으로모래바람황량한황무지가되어버리고말았다.한국무대를떠난지는너무오래되었고,내가사는동네에는무대가없어져버렸다.그렇게공중에떠버린‘왕년의극작가’가되어버리고말았다.계속부채의식을느끼지만,뾰죽한방법이없다.물론멋진작품을쓰고야말겠다는희망은살아있다.

그건그렇고…
그래도명색이50주년인데혼잣술몇잔마시며나스스로를대견하게여기는것으로넘기기엔못내섭섭했다.그래서주섬주섬펴낸것이이작은책이다.시도아니고소설도아닌어중간한짧은글을추려모은것이다.그나마다행이랄까써놓은글은상당히많았다.책몇권은될분량중에서고르고골라엮었다.짤막하고들쭉날쭉한글들이지만그래도내생각을나름대로정리하고꾹꾹눌러담아푹익힌작품들이다.짧지않은세월울퉁불퉁한길을타박타박걸어온나자신에게주는글들이기도하다.
지금이순간까지내가존재할수있도록보살펴주신모든분들에게드리는감사의마음도차곡차곡담았다.감사의절을올려야할분들이너무많아서여기에한분한분거론할재간은도무지없다.(무슨시상식도아니고…)
다만,아무리작고하찮은영혼이라도혼자서는존재할수없다는진리가새롭다.그간단한걸50년이나걸려서겨우깨우쳤으니…그나마다행이지만,어쩐지많이허전하고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