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 시대를 열다 (박정희시대의 경제외교사 증언)

고도성장 시대를 열다 (박정희시대의 경제외교사 증언)

$27.48
Description
『고도성장 시대를 열다』는 경제사 연구자인 주익종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외교 업무를 담당한 양윤세 전 동력자원부 장관을 심층 인터뷰한 대담 증언록이다. 경제외교는 외국의 원조를 얻고 차관을 도입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며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대외 교섭으로서 1960~70년대에 한국 경제의 생명선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에는 양 전 장관이 경제기획원의 과장과 국장으로서, 또 주미공사와 동력자원부 장관으로서 미국과 일본, 서독, 월남,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광범위한 국제협력을 불러일으켜서 고도성장 시대를 열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양윤세

증언자양윤세(梁潤世)는1931년황해도곡산태생으로17세에북한공산당의박해를피해단신월남한후고학생,미군통역,육군통역장교를거쳐미국대학의학부와대학원에서경제학과외교학을공부했다.1962년부터1980년까지18년의공직생활중절반은경제개발의사령탑인경제기획원의과장과국장으로근무했으며,나머지절반은농림부차관보,청와대비서관,주미경제공사,동력자원부장관으로봉직했다.우리나라의경제개발기에원조와차관을들여오고직접투자를유치하는국제경제협력을확대함으로써고도성장시대를여는데일익을담당했다.

목차

머리말
증언록소개의말
차례

제1부소년,분단과전쟁의격랑을타고넘다
01출생과가계내력
02일제하의학교생활
03공산치하의박해와혈혈단신월남
04천애고아로서의남한생활
056.25전쟁중미군통역이되어
06육군통역장교복무
07미국코넬대-뉴욕대-하버드대유학
08귀국길

제2부1960년대,경제외교로고도성장의문을열다
01경제기획원입문
02'왕초','불도저장기영부총리
031960년대전반의대미(對美)원조교섭
04대일(對日)경제협력교섭
051965년경제개발의궤도진입
06월남진출
07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의창설
08투자진흥관이되어외국인직접투자의유치종합제철소를최종성사시키다
09외국인직접투자의유치
10종합제철소를최종성사시키다
11경제기획원을떠나다

제3부1970년대,경제개발의현장에서
01농업근대화의현장에서
02관광진흥의특명을받고
03한미관계의안정화를꾀하다
04제2차석유파동과대통령유고(有故)의비상사태속에서
05공직생활18년의세은인

양윤세연보
주요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주요내용
책은양전장관이혈혈단신월남하여미군통역및국군통역장교를거쳐미국유학으로경제관료의준비를마치는과정을제1부로,1962년부터1970년까지경제개발의사령탑인경제기획원에서국장,과장으로서경제외교를펼친시기를제2부로,그리고1971년부터1980년까지농림부농정차관보,청와대경제제3비서관,주미공사,동력자원부장관으로서경제개발의현장리더로,석유외교가로활동한시기를제3부로했다.
분단과전쟁의격랑을넘은인간승리의드라마
제1부에는일제치하황해도태생의그가남북분단후북한공산당의박해를피해서혈혈단신월남한이래만서른에미국유학을마칠때까지고난을이겨낸근면의성장사를담았다.그는일제때에는황민화교육을받다가해방후에는공산주의교육을받았고,반공학생으로몰려처벌받을위기에서고등학생의나이에홀로월남하였다.그는월남한후천애고아나다름없는상태에서고학으로중등학교를다니고,또6.25전쟁으로오갈데없는처지에서미군하우스보이로시작해서미군통역을했고,국군통역장교로군복무까지했으며,전역후에는아무것도가진것없는상태에서미국유학을떠나미국의명문대학과대학원을졸업했다.그는미국에서경제학과외교학을배워1960년대우리가경제개발의시동을걸때꼭필요한인물이되었다.이것은한마디로위대한인간승리의드라마로서,그의공직생활증언에못지않게주목할만하다.

경제개발기한국정부의대외창구
제2부와3부에는경제개발사의주요사건,국면에서의양전장관의경제외교활동을담았다.그가관여한경제개발사의주요사건은다음과같다.
①1960년대전반한미경제협력위원회(ECC)를통한미국의한국경제정책교화노력,
②1965년경한국(의경제개발)에대한미국의시각호전,그에따른적극적지원,
③월남기술자파견,기업진출,
④한국에대한선진국들의협력기구인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의창설과운영,
⑤1960년대후반전자부품업등에대한외국인직접투자확대,
⑥포항종합제철의성사,
⑦1970년대초전천후농업개발및농업기계화,
⑧1970년대전반의관광업진흥,
⑨박정희정부말기한미관계안정화외교,
⑩제2차석유파동과박정희대통령유고(有故)사태속의원유확보활동

그는미국원조기관유솜의한국측파트너로서한미경제협력체제를구축하는일을했다.군사정부시기및민정이양초기에경제개발을우선시하는한국정부와경제안정을중시하는미국정부사이에마찰이있었으나,경제안정화를토대로경제개발을추진하는쪽으로양측의의견이합치되었다.그는한미경제협력위원회(ECC)의간사로서그과정을총괄했다.
또그는한일국교정상화와베트남파병으로열린1965~1966년의한미밀월국면에서정상회담의실무를담당하였다.그는1965년에미국정부에게서1억5,000만달러의AID차관을신속히제공한다는확약을받았으며,1966년에는미국기업의직접투자를늘리겠다는약속을얻어냈다.
또한1966년부터한국기업과근로자가월남에본격진출할길을열었으며,1969년에는건국이후최대프로젝트인종합제철소건설을성사시키는데도참여했다.그는당시의구미제철관련회사들에게맡긴종합제철소건설계획에문제가있음을파악하고그를백지화하도록했다.1969년4월파리의IECOK총회에서종합제철소차관을얻지못했으나,이는우리정부가제대로손도못쓰고당한일이아니라우리정부의사전각본대로진행된일이었다.그후그는일본정부와교섭해서종합제철소건설에대일청구권자금을사용할수있게했다.이처럼1960년대에그는경제개발의사령탑과국제무대를활발히오가면서일했다.그가경제기획원을떠나농림부로가던날한신문은그를‘한국정부의대외창구’(《신아일보》,1971.1.18.)라고불렀다.
그는1971년부터는농업과관광업의개발현장과대미경제외교와석유외교의일선지휘관으로뛰었다.1960년대말부터정부는낙후된농업과농촌의개발에역점을두어,홍수와한발에서자유로운전천후(全天候)농업개발과농업기계화에본격착수했다.그는농림부농정차관보로서금강·평택지구농업개발사업이원활히완수되도록힘을썼으며,경운기보급을중심으로한농업기계화사업에도일조했다.
또그는청와대의처음이자마지막관광전담비서관으로서관광업의진흥에도나섰다.그는민간대기업계열의호텔들이서울에건설되는데산파역할을했으며,설악산과경주,제주중문단지등오늘날한국을대표하는관광지를개발하는일도추진했다.이후그는주미경제공사로서1970년대의어려운한미관계를헤쳐가는일을맡았다.
1979년5년간의주미공사를마치고귀국한그는수출입은행장으로임명되었으나,박정희대통령이10.26사건으로서거한후최규하과도정부에서동력자원부장관으로부름을받았다.밖으로부터제2차석유파동이몰아치고국내적으로는전두환신군부의집권음모와야당과학생들의민주화요구가맞부딪치는어려운상황에서그는석유물량을확보하는중차대한임무로동분서주했다.그성과를볼즈음에신군부의5.17쿠데타로공직에서물러났다.

경제외교로고도성장의문을열다
이경제외교는우리나라경제개발이본궤도에오르고가속력을얻을수있게했다.1962년부터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이실시되었으나,실상우리나라의경제개발은이개발계획대로진행된게아니었다.초기3년간박정희정부는시행착오를반복하다가기존계획을사실상포기하였다.박정희정부는계획4년차인1965년에야훗날우리나라경제개발의대표브랜드가되는수출주도공업화전략을전면에내세울수있었다.수출주도공업화라는새길을찾기까지는혼돈의연속이었다.박정희정부는우리현실에맞지않는기왕의단순한투자일변도계획을접고경제안정화와시장자유화조치후새길을찾았다.
1965년우리정부는한일국교정상화와월남파병을단행한후미국정부에게서좋은조건의공공차관제공과미국기업의직접투자촉진등의지원을얻었다.특히우리정부가미국및월남정부와긴밀히협의한결과,1960년대후반에월남에근로자와기업이대거진출할수있었다.월남에대한수출,기업의건설및용역소득,군인과근로자의봉급소득등베트남특수는우리나라가제2차5개년계획을성공적으로수행하는데큰힘이되었다.또1960년대중엽우리의경제성장이본궤도에오르자선진국들은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를만들어우리가필요로하는차관을제공하였다.전자부품계열의미국기업을중심으로외국인직접투자의시대도열렸다.그덕분에국내에서전자부품공업이출범하고가난한농가출신의소녀가돈을벌고기술을익힐일자리가생겼다.그리고1960년대말우리정부는일본측의자금및기술면의적극적협조를얻어포항종합제철소를건설할수있게되었다.
경제외교는한국경제에고도성장시대를열었다.한국경제는1966년에사상처음으로두자릿수성장률(12.2%)을기록했고,그후1968,1969년에다시두자릿수성장(11.3%,13.8%)을이룩했다.이고도경제성장에시동을건것은공산품의수출이었다.경공업공산품을중심으로수출이1960년대에연평균40%씩성장했다.하지만1960년대초수출경공업이경제에서차지하는비중은작았다.경공업품수출이급증한다고해서경제전체가고도성장할수는없었다.
고도성장은박정희정부가전(全)방위로투자사업을펼쳤기에가능했다.박정희정부는이미1960년대부터비료공장·석유화학공업단지·종합제철소등대형중화학프로젝트와화학섬유·PVC·전자공업등의중형프로젝트,그리고도로·항만·발전소와수리시설등사회간접자본투자를강력히추진했다.이대규모투자는외자도입과외화확보없이는불가능했다.외자를도입하고외화를확보할수있게만든게경제외교였다.이를통해한국경제에고도성장의문이활짝열렸다.

○원고작성
질문자와증언자는2015년9월~2017년3월의1년6개월간20회넘게만나서질문과답변을가졌다.질문자는그녹취록을토대로원고를작성하였다.특히질문자는양전장관의증언을듣고관련사실을확인하면서경제개발사를더깊이이해할수있었으며,그에따라새롭고더심층적인질문을해서더깊고풍부한증언을들을수있었다.이책에는이렇게이어지는보완질문과그에대한답변을담았다.또질문자는증언자의증언에대하여미국무부와세계은행,우리국가기록원의문서와신문기사,각종회고록등객관적자료를통해그진위를확인하고구체적인사정을파악했다.이점에서이책은피상적인서술에머물거나자화자찬이나과장이심한그간의회고록,자서전,전기의문제점을극복했다고할수있다.

○증언자의말및추천사
양윤세(증언자)
“나는한국경제발전의요소를세가지로꼽는다.첫째,우리힘으로살겠다는국민의의지,열망이강했다.둘째로그의지와열망에부응하는박정희대통령의리더십,강력한지도력이있었다.셋째,국제협력으로서,미국과세계은행등세계자유국가와국제기구의큰지원을받았다.나는이국제협력을일으키고활성화하는데내젊은날을바쳤다.”

이영훈(서울대명예교수?경제학)
“이대담집은해당분야의전문연구자가충분한준비위에서과거경제개발정책담당자를체계적으로인터뷰한모범적인사례요,성과다.박정희정부의1960년대의경제개발을위한국제협력확대작업과1970년대의관광업진흥,또1980년의석유확보외교등에관한좋은정책사자료집으로길이남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