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과 고려의 북계 (봉황성 서쪽에 압록강이 또 있다는 것인가?(발해고))

압록과 고려의 북계 (봉황성 서쪽에 압록강이 또 있다는 것인가?(발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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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고려 국경선, 우리 역사의 국경선
서희가 “강동 6주”를 획득한 이래 1100여년이 흐른 1900년대, 일본 학자 쓰다 소우키치는
『만선지리사』에서 서희의 담판에 관하여 이렇게 평하였다.

‘우리는 고려 사람이 그 영토권을 요구할 때 항상 그 역사적 연유를 사실보다 과장되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쓰다는 당시의 압록강이 지금의 압록강 너머라는 고려인들의 인식은 그들의 거짓말 하는 버
릇에서 비롯된 환상이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면서 그런 대표적인 거짓말쟁이로 담판의 당사자인 서희를 가리켜 고려 국경선 비정에 혼란을 초래한 원흉이라고 성토하기까지 하였다.
『발해고』를 쓴 유득공은 자신이 생존해 있던 조선 후기의 압록강(鴨綠江)을 고려시대의 국경선으로 대입한 상태에서 발해사를 연구하자니 지리고증에 아귀가 맞지 않았고, 그러면 혹시 봉황성 서쪽에 또 다른 압록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의 고민은 옳았다. 그가 간과한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안민강(安民江) 혹은 요하(遼河)로 불리던 압록강(鴨?江)이 또 하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 사람들은 당시 요하로 불리던 압록강(鴨?江)을 자국의 서북계로 생각하면서 살았고, 그것을 기록해 인식하고, 또 그 인식의 흔적을 『삼국유사』에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쓰다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고려인들의 거짓말로 호도하였다. 거짓말을 잘하는 고려인들이 원래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지금의 압록강(鴨綠江)을 요하로 불리는 압록강(鴨?江)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리 조상들은 한 결 같이 거짓말쟁이들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고려인들을 거짓말쟁이로 왜곡하고, 고려사를 조작된 역사라고 빈정거린 쓰다의 편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

윤한택

책임저자윤한택(인하대학교고조선연구소연구교수)

목차

들어가는말
우리는거짓말쟁이의후손들인가?
-윤한택(인하대학교고조선연구소연구교수)

본문
고려서북국경에대하여
-윤한택(인하대학교고조선연구소연구교수)

고려윤관이개척한동북9성의위치연구
-이인철(경복대학교교수)

서희개척8주의위치에대한재고찰
-남주성(한양대학교겸임교수,행정학박사,한국수력원자력㈜상임감사위원)

『고려도경』,『허항종행정록』,『금사』에기록된고려의서북계에대한시론
-박시현(인하대학교고조선연구소연구교수)
-복기대(인하대학교대학원융합고고학전공교수)

중국학계의거란東쪽국경인식에對하여
-복기대(인하대학교대학원융합고고학전공교수)

13-14세기고려(高麗)의요동(遼東)인식
-윤은숙(강원대학교교양학부교수)

명대한·중국경선은어디였는가
-남의현(강원대학교사학과교수)

글을마치면서
『압록(鴨?)과고려의북계』를마치며
-복기대(인하대학교대학원융합고고학전공교수)

출판사 서평

한국사분야에서일본인의왜곡이가장심했던고려사를다시본다

일제강점기에조선총독부는어용학자들을동원하여『조선사』를편찬하였다.그들은과연우리의역사를제대로기술한것일까?그들이조선의역사를자의적으로해석하거나왜곡한부분을없을까?이런의문을품은필자는3년전부터조선총독부가『조선사』편찬당시활용한것으로알려져있는원사서들을직접참조하면서해제작업을정밀하게진행해왔다.그리고그과정에서불거진의구심을풀생각으로원사서들을챙겨서역사의현장으로달려간것도여러번이었다.그과정에서과거에는미처생각지도못했던많은사실을새로알게되었다.그사실들중대표적인것이서희와“강동6주”문제이다.서희의담판은역사적으로나외교적으로그리고국가전략에서가장모범이되는사례로꼽힌다.
그래서그런지그문제와관련하여이번에새로알게된사실은참으로큰충격이었다.지금으로부터1100여년전인993년,당시고려군을이끌던서희는어느날혈혈단신으로거란군의장막을찾았다.그가적장인소손녕과마주앉은것은고려와거란두나라가치르고있는전쟁의의미를따지기위함이었다.그날의담판결과,고려는거란으로부터“강동”즉강의동쪽에위치한6개주를할양받아고려의행정구역으로편입시키게된다.당시할양의기준점이된“강”은압록강(鴨?江)이었다.이때부터고려의서북계는압록강으로인식되기시작하였다.고려와거란은그후이압록강을사이에두고전쟁과협상을거듭한다.이런관계는상대가금나라로바뀐후에도계속유지되었다.그러다보니압록강을국경으로삼는영토인식은고려시대를지나조선시대까지희미하게나마계승된다.

영,정조시대에조선학자들이현재의두만강너머에선춘령이있다는영토관을공유하고있었던같은맥락일것이다.그러면서지금의압록강과구분되는또하나의압록강이존재할지도모른다는문제의식은당시우리역사에천착하는학자들에게는보편적인현상으로받아들여졌다.물론,개중에는이같은시대적조류에반발하는학자도없지는않았다.그대표적인인물이정약용이었다.그는자신의연구에입각하여고려의국경선이지금의압록강하구에서함경도로이어지는선임을주장하였다.물론,그의주장은유배지에서그나름대로다년간의연구와실증을거쳐도출된결론이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의결론은그다지객관적이라고할수없는것이었다.고증과정에서그는자신에게유리하다고판단되면아무리문제가많은자료라도끌어쓰기를주저하지않았다.반면에자신에게불리한자료들에대해서는애써그가치를폄하하면서아예참고조차하려들지않았다.역사를연구하는과정에서정약용이드러낸이같은자료에대한극단적인편견은결과적으로그의주장이설득력을상실하게만들었다.그의고증은고대사의모든사건과장소를한반도에서찾으려는틀을벗어나지못한탓에큰영향력은발휘하지못하였다

1945년광복이후로국내의역사학계는고려사관련연구에적잖은공을기울여왔다.그간의연구성과를되돌아보면제도사,사상사,정치사,외교사,문화사등다양한분야가모두망라되어있다.한가지아쉬움이있다면,국경사관련연구가상대적으로미진하다는것이다.이국경사연구가미진했다는것은두가지방면에서이유가가장컸을것이다.
국경사는일제강점기에이미연구가잘되었었다고생각했을수있었다.즉완성되었다고생각했을것이다.이런생각은앞서말한어느연구자의말에서알수있는현실이다.그러나그보다더결정적인이유는바로‘미필적고의’에의한전승이라고볼수있는것이다.즉,일제강점기에쓰다가주도한고려사집필진이편견에사로잡혀엉터리지리고증을한것을현대의수한정치적이유로말미암아제때에확인하기어려워묵시적으로인정을했을수있다는것이다.즉국내적으로는남북이분단되는바람에천리장성을직접답사할수없게된것이나,1990년대에한,중간의교류가본격화되기전에는고려국경추정지에대한접근조차불가능했다는것도결정적인요인으로작용했을것이다.이런현실때문에우리는어쩔수없이일본인들이마음대로그어놓은고려의북방국경선을미필적고의로인정할수밖에없었던것은아닐까?
앞서말한대로우리가현재알고있는고려의국경선은‘미필적고의’로인정된것이었다.그렇게만들어진국경선을시대상황으로바로잡을기회가없었다.그러나이제는상황이달라졌다.이제우리는다양한자료들에대한접근과사용이가능해졌다.이제는우리가어떤자료를사용하더라도가타부타압력을행사할세력은없다.『요사』에대한접근이나사용도그렇게되어야한다고본다.『요사』는조선시대에『고려사』를편찬할때에도중요한참고자료로활용되었다.지금도마찬가지이다.세상사람들모두요나라의역사를연구할때에는『요사』를참고하는것을당연하게여긴다.그런데우리학계는어째서『요사』를참고하지못하게하고,그렇다고후학들은참고하지도않는가?차분한마음으로모든자료를일일이비교해가면서읽어보자.천리장성을쌓았다는곳으로직접달려갈여건이되지않는다면인터넷으로위성지도라도확인해보자.그같은시도와검증이반복되고그과정에서역사를통찰하는혜안이생기면쓰다의고증이야말로터무니없는거짓말이고,한국사분야에서일본인의왜곡이가장심각한부분이바로고려사라는사실을통감하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