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항전일기 (왕은 숨고 백성은 피 흘리다)

남한산성 항전일기 (왕은 숨고 백성은 피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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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병자호란은 치욕스런 과거의 역사이지만,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
인조가 명나라와 청나라를 대상으로 편 정책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명분이 실리를 죽인 외교였다’고 할 수 있다. 대명의리론과 명분론은 조선의 국왕은 물론 그 백성들을 철저히 유린한 결과를 불렀다. 그들은 명분 한 가지만을 주요 외교정책으로 내세웠다. 누루하치(후일의 청 태조)가 후금을 건국한 1616년 이후 1640년대까지의 사정을 보면 명·청·조선 사이의 삼각관계를 그저 단선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여러 분야에서 이미 복잡한 관계가 조성되어 있었으므로 조선의 외교가 명나라 한쪽으로만 경도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청나라를 배척하거나 받아들여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17세기 전반을 살았던 조선의 지도층은 대개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하여 나라와 백성을 구해주었다 하여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파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조선의 국왕과 대신들은 현실적인 여건을 무시한 채 청나라와의 전면적인 대결을 선택함으로써 한 나라의 국왕이 삼전도에 나가 삼고구궤의 항복의식을 치르는 굴욕을 당했고, 까닭 없이 백성들만 무수히 죽어나가는 참화를 겪었다.

병자호란은 치욕스런 과거의 역사이지만,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38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피눈물 나는 사건을 이 마당에 떠올려보려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병자호란이나 그 전 정묘호란은 무엇보다도 평형외교에 실패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 외교정책을 어떻게 세우고 수시로 바뀌는 국제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다양한 외교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나라와 국민에 유익한가 하는 기준이나 교훈을 우리는 나만갑의 『병자록(丙子錄)』과 같은 기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나만갑

저자나만갑(羅萬甲)은호는구포毆浦.선조25년(1592)경북영주에서태어나,광해군시대를거쳐조정의요직을두루맡았으며51세의나이로인조20년(1642)에사망하였다.그가살았던시대는참으로혼란한전쟁의시대였다.임진왜란에이어정묘호란과병자호란을겪으며조선의백성은지칠대로지쳐있었다.
그자신이10세이전에겪은임진왜란의참혹한결과를소년기에충분히알고있었고,조정에나아가서는인조를비롯한지배층의한가운데서정묘호란과병자호란을몸으로겪어야했다.그자신이『병자록』후기에“…서애(西厓)유성룡의『징비록』에는그가선조임금을호종하여서도(西道)로간일과그가들은소문이기록되어있다.상촌(象村)신흠(申欽)의유고에도그가보고들은것들이약간적혀있으나열에일곱여덟은없어져버렸다.내가일찍이그것을아깝게생각하여이제『병자록』을짓는바,먼저그화란이일어나게된연유를들고,다음에눈으로본것을자세히기록하였다.…감히스스로야사(野史)에비교하는것은아니지만,때가옮겨가고세월이멀어지면혹시유실될까두려워분수에넘치는일임을잊고여기에모두다기록해둔다.…”고밝혔듯이유성룡이『징비록』을남긴의도와마찬가지로나만갑은후세사람들에게경계하여대비하는자세를갖도록이기록을남긴것이다.

목차

▶머리말
▶사건의시작과곡절을기록하다
▶급보가전해진이후의일록日錄
▶해마다세공을바칠물목物目
▶각처에서근왕勤王한일을기록하다記各處勤王事
▶강도江都에서의일을기록하다記江都事
▶척화하여의에죽은이들의일을적다記斥和死義諸公事
▶난리가지나간뒤의잡다한기록雜記亂後事
▶청음淸陰김상헌이무고를당한일
▶저자후기後記
▶『병자록丙子錄』의저자나만갑의약력

출판사 서평

병자호란당시인조의곁을지키던관량사나만갑의뼈아픈병자호란일기
이책은병자호란당시인조곁에서조선의여러대신들과함께병자호란을직접겪고나서당시의처참했던사실들을기록한나만갑의『병자록(丙子錄)』을번역한것이다.전란중식량을책임진관량사로서인조를보필했던나만갑이그뼈아픈역사를잊지않고후세사람들에게전하기위해일기체형식으로기록한『병자록』은현재국내에약10여가지의필사본이전해오고있다.
그중에서분량이가장많고자세한것은일본오사카大阪천리대(天理大)가소장하고있는것으로,이것은현재국립중앙도서관에그복사본이있다.철저하게일기체형식으로쓴것인데,모두5권으로되어있다.
나만갑의『병자록』은한번도활자본으로인쇄·배포된적이없으므로필사본만이전하고있다.앞에서설명한일본천리대소장본『병정록』(5권)은현재까지전하는『병자록』가운데가장분량이많다.누가언제이것을필사했는지는적혀있지않지만,아마도이것은나만갑이직접쓴진본의필사본이거나진본에가장가까운것이아닌가여겨진다.그러나이『병정록』은그양이방대하여이번번역대상으로삼을수없었다.대신또다른『병자록』이한권짜리필사본으로남아있는데,이역시누가언제필사하였는지는알수없다.다만나만갑사후그의후손이나이기록의자료적가치를충분히알고있던누군가가필사했을것으로추정된다.이것을이번번역본으로삼았다.이필사본은원문이151페이지의적당한분량이고,독자의이해에적합할것으로판단하였다.병자호란과관련된내용이간략하게잘
정리되어있어서『병정록』1~5권의요약판이라고할수있다.다만이필사본의표제는『병자록』으로되어있는반면,『병정록(丙丁錄)』5권은강도록과병자일기로구성되어있다.이에주목하여본번역서의표제를『병자록(丙子錄)』대신『병자년남한산성항전일기』로바꾸어출간하게되었다.
380여년전,이땅에서벌어졌던피눈물나는사건을이마당에떠올려보려는것도바로이점에있다.병자호란이나그전정묘호란은무엇보다도평형외교에실패한데가장큰원인이있었다.명분과지나친자존,우물안개구리식의외교감각,실리외교의실종이문제였던것이다.무엇보다도근본적인원인은명나라및청나라와의등거리외교를추진하던광해군을인조반정으로몰아냄으로써명나라에편향된외교정책을밀어붙인데있었다.물론그당시조선은군사·경제적으로도보잘것없던나라였으므로14만청나라군대,그

중에서도기병의기습전에속절없이당한것이었지만,외교와전쟁에반드시힘만이전부는아니다.조선의정치지도자들이성숙된정치감각과외교력을갖추고있었다면정묘·병자의양대호란은겪지않았을것이며그통에애꿎은조선의수많은생령이어육이되는비참한일은없었을것이다.비극적인결과를뻔히알고있으면서도명분만을앞세우고현실과실리를외면함으로써조선의체면과자존심마저송두리째무너졌다.불과40년전,임진왜란은비록참혹했으나조선이이긴전쟁이었다.그러나병자호란은임진왜란보다더욱참혹하였고,그결과는더욱비참하였다.
지금우리가처한현실과한반도의사정때문에한국을‘화약고’라는말로표현하는이도있다.그만큼주변국과의관계가정치·외교적으로과열되어있다는뜻일것이다.그러나한국은그들주변국의한가운데에있다.그것은한국이모든일의중심에있을수있는존재임을의미하는것이기도하다.만약우리가주변강대국의힘을적절히이용하면서여유있는‘평형자’의역할을할수있다면현재의여건은오히려우리에게주어진축복일수있다.그
속에나라의살림살이는물론국격과나라의위상을높일수있는도약의요소도공존하고있기때문이다.
이책의내용은어찌보면서글프고참혹한과거의반추라고할수있겠지만,역사란과거보다는현재와미래를위한기록이라고본다면이기록들이가지고있는의미는크고도중요하다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