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 평전 (문무겸전의 전략가)

장만 평전 (문무겸전의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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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란에 빠진 조선을 일으켜 세운 시대의 영웅 장만
장만이 살았던 16~17세기 조선에는 수차례의 전란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심하전투, 이괄의 난·인조반정, 정묘호란 그리고 장만 사후 일어났으나 그의 후배들이 감당했던 병자호란까지 7회의 전란이 그것이다. 이 전란의 시기에 장만은 거의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중앙관료 혹은 지방관으로 근무하면서 백성들과 애환을 함께 하고,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장만은 문무겸전의 전략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이 점을 기려 역대 왕들은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었다. 왕의 칭찬이 높으면 백성들로부터는 외면받기 십상이지만, 장만은 백성들로부터도 칭송을 들었다.

이괄의 난 때 관군과 반군의 전투를 성벽에서 구경한 백성들이 ‘장만은 볼만이요, 이괄은 꽹괄이로세!’라는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였다. 장만은 이른바 ‘조선의 전쟁시대’를 건너면서 민생과 국방에 기여를 한 인물이다. 큰 공로와 확고한 철학, 그리고 남과 다른 특별한 재능을 가졌던 인물이지만 그의 공로나 철학은 물론 장만이란 이름조차 생소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책은 당쟁과 무관하게, 국방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 장만의 공로와 경세철학을 알아보려는 취지에서 씌어졌다. 조선조의 역사적 인물들이 당쟁으로 싸우기만 하고, 성리학 연구에만 골몰하여 실제 국방 일선에서 활약한 인물은 없다는 우리의 안이한 인식에 작은 경종이라도 울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

백상태

저자백상태
소설가.경북영덕에서태어나중앙대정외과를졸업하고서강대언론대학원을중퇴했다.대학시절어려운시간을보내면서동양고전과역사인물에관심을갖게되었다.지한이준녕으로부터한학과유학경전을배웠다.
<월간독서>ㆍ<소설문학>등잡지기자,다리출판편집장을거쳐동아그룹홍보담당이사ㆍ동아건설상무(문화홍보실장),경기도도정홍보전문위원을지냈다.1985년<서울신문>신춘문예소설부문에당선했다.
'어떤묘'·'그여름'·'냄새고(考)'·'수입리에서'등의소설작품과<가헌우상기>·<단군기원을말하다-담암백문보평전>,다수기업의사사·단체사를썼다.역사인물에대한관심으로이책을쓰게되었다.

목차

머리말

Ⅰ.장만
1.장만의가계와선조
2.장만의가족,그리고친·인척
3.장만의인맥

Ⅱ.전쟁의시작(선조시대)
4.장만의발탁-봉산군수,명군을휘어잡다
5.임진왜란의전후복구-조총부대창설,민생경제와수군재건

Ⅲ.전쟁의가운데(광해시대)
6.함경도관찰사와호지지도-정탐전의필요성
7.평안도병마절도사,중진제추진과4군땅회복
8.심하전투와장만의대비
9.광해군의중립외교정책과전략가장만
10.광해군의양두정치와장만

Ⅳ.다시전쟁,또전쟁(인조시대)
11.인조반정의성공과팔도도원수장만의출정식
12.이괄의반란을평정하다
13.정묘호란전야,장만의안주성방략
14.아!남이흥,안주성의치열한전투
15.유배지에서읊은시조'풍파에놀란사공…'

Ⅴ.장만의죽음과그이후
16.북두칠성이지고,장성이무너지다
17.사위최명길,그리고병자호란
18.<낙서집>간행과장만에대한영·정조의평가

충정공장만연보579

출판사 서평

실용국방중립외교전략으로조선을구해낸장만장군을아십니까?

장만의행적과철학을통해그의인격이어느정도나타나기도하지만,오늘날과당시를비교했을때현저하게드러나는그의위대성은대략서너가지쯤으로정리가된다.
우선그의전략가적자질의위대성이다.일찍이사신으로북경에갔다오던길에누르하치후금군의군기를보고그들의굴기를예상한바있다.
함경도관찰사시절부터정탐전을시도했던그는정탐을통해얻은데이터를바탕으로,명나라와후금간의힘의추이를파악하여절묘한중립정책을건의,실행시켰다.중립정책은상대방에대한힘의강약을헤아리지않고서는섣불리시행할수가없다.
데이터의중요성은오늘날에도강조되지만장만은이미그시절데이터의중요성을간파하여적지의지도를세밀하게만들어적을막는데활용했고왕에게바쳤다.아울러을지문덕이래중시되던안주성에주목하여안주성방략을누차개진하고있다.
이런자강의바탕위에명과후금사이의힘의추세를관찰하여상대방을기미하자는것이장만의주장이었다.명나라나후금의눈치만볼것이아니라자강을먼저하자는것이다.이런인식때문에장만의상소문에는'백성이나라의근본'이라는주장이끊이지않고나온다.
왜냐하면'무릇용병을하고자하는자는먼저백성을길러야하기때문'이다.그러나장만의이런원칙적이면서도유연한주장은화이론에빠진주자학도나정권안보를일차적가치로여기던반정공신등에의해번번이무산되고만다.여기에왕들의무능도무시할수없는요인이었다.
다음은성공한쿠데타(이괄의난)를뒤집고도권력을찬탈하지않고표표히낙향한자세이다.역사에간신으로이름을올린많은이들이나후세의여느군인들같았으면어땠을까?이괄의난으로왕은도주했고,이괄도부하의손에죽어변란은평정되었다.
이런상황에서장만은도성에진주한토벌군사령관이었다.마음만먹으면헌임금을갈아치우고새임금을세워권력을오로지하거나,아니면스스로임금이될수도있는상황이었다.정충신,남이흥등유수의맹장과수많은병력이자신의수하에있었다.그럼에도그는흰옷을입고임금을맞았다.
그리고는시골로낙향하여인조의추고를받기까지했다.권력을가졌으되권력에초연한이런자세야말로그의위대함이아닐까?
그다음은혼군또는폭군이란이름으로쫓겨난광해군을향해열아홉번씩이나올린질책의상소이다.오늘에비추어본다면아무리강단있는사람이라하더라도서너번쯤은윗사람에게질책의말을할수있겠지만열아홉번씩이나올린것은대단한끈질김이아닌가?절대군주시절에그런질책을받고도장만을죽이지않은광해군도대단하지만장만또한대단한사람이다.심지어장만은광해군의진노로파직당한다음,그러니까인조반정이일어나기직적인1623년1월에도다시질책의소차를올리고있다.이마지막소차에서장만은자신이목격한관리들의부정부패와민생의처참함을호소하고,'이익은간교한자의손으로들어가고원망은구중궁궐의임금에게돌아가는것을마음아파하면서백성은오직나라의근본임'을또다시환기시키고있다.그러고보면십수차례에이르는장만의상소도결국은민본주의자로서의철학때문이라고볼수있을것이다.

장만은이른바'조선의전쟁시대'를건너면서민생과국방에기여를한인물이다.조선전쟁사를쓰면서가장중요한전쟁들을이끈최고의전략가장만을빼고논할수는없는일이다.큰공로와확고한철학,그리고남들과다른특별한재능을가졌던인물이지만그의공로나철학은물론장만이란이름조차생소하다는사람이적지않다.후세의한연구자는그까닭을이렇게설명하고있다.즉'조선시대인물및정치사연구가학문적계보중심이나당쟁사중심으로흘러성리학연구에치중하거나당인으로활동한인물에비중을둔나머지,실제국방일선에서활약한장만같은인물에대해서는별다른관심을기울이지않은때문'(신병주,'文武兼全의인물張晩,그시대와활동')이란것이다.

이책『문무겸전의전략가장만』에서장만장군의일생과그의사위최명길에게이어진실용국방과중립외교의전략을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