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종군 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

징비록 (종군 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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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임진왜란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기록, 백성의 아픔에 처절하게 공감한 지도자
『난중일기 -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쓴 이순신의 7년 전쟁』에 이은 징비록 르포
2020년, 대한민국은 창궐한 코로나로 일상이 멈추는 집단적 공포를 겪었다. 그러나 임진년에 터진 왜란은 무려 7년 동안 백성의 삶을 뿌리까지 파괴했다. 그 공포와 고통은 상상조차 두렵다. 영의정의 자리에서 밀려오는 왜적에 맞서 전란을 진두지휘한 유성룡은, 지도자의 나태와 무능이 백성에게 미치는 생생한 고통을 목격하고 후세를 경계하는 징비록을 남겼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백성의 아픔에 처절하게 공감한 몇 안 되는 지도자였다. 이것이 백성의 역량을 결집해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유성룡 사후,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거행된 조선조 최초의 ‘백성장’이 이를 잘 증명한다.
저자

조진태

서울대철학과를졸업하고,세계일보사회부,국제부,경제부에서법원,대검찰청과대법원,한국은행,금융감독원등을출입했다.이후국회의원보좌관과디지털타임스기자로도일했다.
전작으로,『난중일기-종군기자의시각으로쓴이순신의7년전쟁』을썼다.

목차

머리말

서(序)-서애유성룡의부음
-한양묵사동에울리는백성들의통곡소리

1부.전란의먹구름
1.1587년(정해년)손죽도왜변,두장수의상반된죽음
-오만한일본사신다치바나
2.1589년(기축년)압송되는조선어민,사을배동
-정여립역모사건,유성룡의승부수
3.1590년(경인년)일본으로가는조선통신사
-도요토미의선전포고
4.1591년(신묘년)정사와부사의엇갈린판단,국방개혁의좌초
-서인정철의실각,남북으로갈리는동인
5.1592년(임진년초봄),허술한국방,안이한장수들-폭풍전야,쓰시마의침묵

2부.토붕와해(土崩瓦解)의조선
1.1592년(임진년봄)잔인한봄,전란이터지다.
-한양을버린선조
2.(임진년여름)벼랑끝조정
-전라좌수사이순신,해로(海路)를틀어막다.
3.(임진년가을)백성의피로물든낙엽
-진주성이살려낸조선의기맥(氣脈)

3부.3국전쟁,한양성수복
1.1592년(임진년겨울)∼1993년(계사년초)평양성수복
-일진일퇴의공방전
2.1593년(계사년봄),폐허가된한양성
-명나라군대의양면성,시산혈해(屍山血海)의산하
3.(계사년여름),진주남강의장례식
-남녘땅을동여맨뱀의똬리

4부.교착상태,이중협상과외로운명의(名醫)유성룡
1.1593년(계사년)∼1595년(을미년),조선을살리는제도의정비
-군역과세제의개혁
2.1596년(병신년)강화협상의결렬과도요토미의복심
-조선,명,일본의동상이몽(同床異夢)

5부.전란의재발,7년재앙의막바지
1.1597년(정유년봄∼여름)이순신과원균,선조의자충수(自充手)
-조선수군의궤멸
2.(정유년가을∼겨울)남원성시신을비추는한가위보름달
-기적처럼부활한조선수군
3.1598년(무술년)이순신의전사와파직된유성룡
-유성룡낙향하다.

결(結)-징비록을남기고
-후세를경계하는선비의마지막책임

출판사 서평

당파를초월한현실적합리주의자,재상유성룡의7년전쟁
종군기자의시각에서,징비록과선조실록에담긴임진왜란을르포기사로재조명

유성룡의징비록을토대로조선왕조실록과일부사료를참고,임진란의전황과유성룡의삶을기사형식으로재구성한책『징비록(懲毖錄)-종군기자의시각으로회고한유성룡의7년전쟁』은유성룡의징비록을골격으로삼았고,선조실록을비롯한다른사료는보완자료로활용했다.징비록이전란이후의기록인만큼유성룡은놀라운기억력을가진재상이분명하지만부분적인착오는불가피하다고보아,전란을기록한자료를종합적으로참고해일부수치와일자를조정했다.단정치적인이유로후세에짜깁기된선조수정실록의날짜는참고하지않았다.

-르포와스트레이트기사를병행
기사는대부분르포형태로전개,전쟁의양상과백성의고통을사료에기반해전개하는데주력했고,필요한경우제한적으로스트레이트기사를병행했다.임진년(1592년)과같이짧은기간,전황이숨돌릴새없이진행되면독자들이이를한눈에파악하는데도움을주기위해간결하게서두에건조체형식으로제시했다.르포기사는관찰자시점으로작성했고,궁궐및전장의출입기자를전제로사료에기반했다.아주제한적으로나름의직관과상상을동원했다.사료에있는인물코멘트는본래한자로번역,기록되는과정에서한차례변형을겪은만큼그본뜻을왜곡하지않는범위에서가급적일상어로복원했다.기사전개과정에서일부논평이개입하고감정이이입되지만존재하지도않는사실을왜곡하거나어설픈문학적상상력을끼워넣지않았다.
유성룡의막역한지기(知己)이자,전란을승리로이끈이순신의해전은,졸저(拙著)난중일기-종군기자의시각으로쓴이순신의7년전쟁-와일치해,대부분스트레이트기사로짧게처리했다.다만명량과노량해전은징비록에서도깊게다루고있어압축,인용했다.조선수군이최초로패배한칠천량해전은선조실록의기록을충실히따랐다.

-전란의종합적인이해를위해,선조실록을보완자료로활용
기사는유성룡이사망한1607년(정미년)에프롤로그형식으로출발,손죽도왜변이일어난1587년(정해년)으로거슬러올라가이후부터는시간에따라전개된다.유성룡이정계에서은퇴한1598년(무술년)에사실상마무리된다.따라서부분적인회고체식서술이동원되었다.조선조정의당파논쟁과,전란의종합적인전개과정및전장의참상등징비록에없는장면을실록에기초해다소포함시켰다.전란에대한기초적이해에도움이되리라고판단했다.

-명나라군대와협상과정에대한객관적평가에주력
기사는불필요한민족주의적감정에빠져,전란에기여한명나라군대의역할을과소평가하거나,이들의횡포만을부각해서폄하하지않고,선조실록에기초해이들의공과를가감없이담으려노력했다.마찬가지로조선군의활약과무능,전시중시행된일본군의조선점령정책도여과없이담았다.
기사는이와함께,명나라유격심유경과일본군장수고니시유키나가가주도한오랜강화협상의실체를제시하는데도많은지면을할애했다.이들이글을모르는도요토미히데요시를속이고,이른바단순하게사기극을벌였다는기존의‘드라마적해석’을버리고,조선과명,그리고일본간3국의외교적지위와현실적인동북아국제관계를반영해,베일에가린협상의내막을파헤치려고시도했다.특히변방의오랑캐국가에서중국중심의외교질서에편입되어국제사회의일원으로인정받고싶어하던당시일본의상황을토대로,치열한외교전의실체를전달하는데주력했다.

-유성룡에대한평가는독자에게맡겨,국난을이기는지혜
징비록은임란전체에대한종군기의성격을지니고있어,실제유성룡자신에대한기록은그리많지않다.따라서유성룡의행적과그에대한평가를담은서술은사실상선조실록을비롯,다른보완자료를광범위하게참고했다.특히유성룡이전시중설치한훈련도감이나,각종군제,세제의개혁정책은유성룡자신의기록이아니라,다른사료를인용첨가했다.전란이후유성룡의행적도마찬가지다.징비록은통제사이순신이전사한뒤,유성룡이그를추모하는글,이른바‘졸기(卒記)’로마무리된다.유성룡에대한이야기는저자의시각에서재조명했다는사실을참고해야한다.저자는유성룡의행적을있는그대로보여주고,그평가는독자에게맡긴다고머리말에서밝히고있다.이때문에유성룡이정치적위기에몰렸던,기축옥사의전개,그의탄핵과정,퇴임후행적등징비록에없는부분이다소포함되었다.국가의존망이걸린,참혹한전쟁이7년동안이어졌다.재상유성룡은당파를초월해현실성에기초한합리성을부단히추구했고,각종전시개혁정책을쏟아냈다.전란이전부터방비를외쳤고,정치적사활을걸고,통제사이순신을지원했으며,통제사가전사한날정치일선에서물러나후세를경계하는글,징비록을남겼다.코로나로일상이멈춘2020년대한민국,그런데임진왜란의공포와고통은그차원이달랐을것이다.재상유성룡에게서국난을이기는지혜와인내를배울수있다고저자는밝혔다.